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42화 (42/251)

< 마검사처럼 싸우는 법(1) >

한때, 초능력이 없는 헌터들이 영웅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30년 전 대전쟁 당시의 이야기였다.

낯선 괴수의 등장. 상식 밖의 존재와의 전쟁 당시,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이들을 조용히 사냥하고 다니는 이들. 바로 그 최초의 헌터들은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떠돌이들이었다.

그들은 군대가 닿지 못하는, 전투기나 탱크가 진입할 수 없는 던전 및 시가지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그런 전장을 전전하며 사람들을 구원해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영웅’이라 불렀다.

‘전부 과거의 이야기지.’

이준석은 달인들의 검술 대련을 VIP석에서 내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꼴에 S랭크의 헌터라고, 검도와 별 관계도 없는 자신을 VIP석으로 모셔놓았다는 점이 퍽 웃겼다. 검도를 위한 자리인데 초능력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코스탄티니 가문의 관계자 석에 앉아있는 유서담을 바라보았다.

한때 퓨어 헌터, 즉 초능력이 없는 헌터는 영웅이었다. 그저 총 한 자루, 칼 한 자루 들고서 거대한 괴수와 맞서 싸우는 그들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이지 않는다면 그 누가 영웅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초능력자가 나타난 이후로 모든 게 바뀌었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효율적으로, 더 완벽하게, 그리고 더 화려하게 몬스터를 제압할 수 있는 그들은 모든 면에서 무능력자 헌터들의 상위호환이었다.

F랭크? 애당초 그런 랭크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초능력은 E랭크부터 기록되니까.

‘즉, F라는 랭크는 애초에 무능력자 헌터들을 하나로 묶어놓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평화가 회복되었고, 군대가 다시 일어섰으며, 이윽고는 기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능력자는 그 무엇보다도 완벽한 사업 수단이었다. 적은 돈으로 더 많은 괴수를 사냥하여 ‘에테르 크리스털’을 쓸어담을 수 있었고, 화려한 그들의 능력은 세상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당시 초능력자의 수는 적었고, 당장은 베테랑 F랭크 헌터들의 경험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런 이유로, 최초로 설립된 ‘헌터 협회’에서 무능력자 헌터들을 대거 고용하기 시작했다. 애당초 목적은 하나였다. 그들의 경험을 쏙 빼와서 헌터들의 교본을 만드는 것.

예상대로 초능력 하나 없이 전장에서 살아남은 헌터들은 경험치가 상당했고, 그들은 헌터 업계의 발전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딱, 그들의 쓸모는 거기까지였다.

이준석은 아직도 기억한다. 자신이 처음 초능력을 얻고, D랭크의 헌터가 되었을 때.

자신보다 9년은 더 선배였던 F랭크의 헌터가 자신에게 한 말을.

‘······이번 D랭크 던전에 나 대신 너를 보내기로 했단다.’

‘네? 분명 선배님 차례라고 하지 않았어요?’

이상한 일이었다. 길드 내에서 던전의 TO는 공평하게 분배가 되었으니까.

‘그래. 그랬었지. 근데, 나를 보내는 것보다 너를 보내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길드에서 판단했단다.’

‘아······.’

당시의 이준석은 사냥을 고작 세 번 해봤을 뿐인 초짜였고, 선배는 9년이나 전장에서 구른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그러나. 무능력자 헌터는 사냥을 한 번 하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돈을 깨먹는다. 그에 비해 초능력자는 에테르 디스펜서 한 자루만 있어도 충분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자신을 가르쳐주었던 선배 헌터는 업계를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이준석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지켜주었던 베테랑 F랭크의 헌터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비록 초능력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준석아. 나도 이번에 그만두기로 했다.’

한 명씩, 자신의 우상이었던 퓨어 헌터들이 업계를 떠나기 시작했다.

길드와 기업은 무능력자 헌터들에게 일거리를 거의 주지 않았고, 그래서 길드를 떠난다고 해도 평화가 구축된 국가에서 혼자 사냥감을 찾아 전전하는 건 이제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한때 인류를 위해 맨몸으로 맞서 싸웠던 이들의 말로는 전장에서의 명예로운 죽음도, 모든 이들의 환호를 받는 화려한 은퇴도 아닌.

그저, 모두에게 서서히 잊혀지고 마는. 그런 것이었다.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뉴스에는 F랭크 헌터들의 실패가 보도되었고 이제 그들이 쓸모가 없음을 암시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F랭크 헌터는 전란의 시대에는 인류의 구원이었을지 몰라도, 평화가 시작된 지금 이 시대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그리고 마침내 이준석이 S랭크 헌터가 되었고, 헌터 협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깨닫고 말았다.

‘···일부러, 그런 임무를 주시는 겁니까?’

연이은 F랭크 헌터의 실패. 그들의 임무 성공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고 있었는데, 그 배후에는 ‘악의적 던전 배치’가 있었다. 그 어떤 헌터가 가더라도 성공률이 낮은 던전에 F랭크의 헌터들을 모조리 보내는 것이다.

또한 F랭크의 헌터가 무언가 큰 일을 성공하더라도, 사회에는 작게 보도될 뿐이었다. 그들의 업적을 감추려는 것처럼.

하나의 기업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국적 헌터 협회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대 헌터 협회장이 F랭크의 헌터였단 건 자네도 알 걸세.’

협회장의 그 말이 아직도 이준석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런데, 이제는 쓸모가 없지 않나.’

‘네?’

‘그래서 쳐냈다네. 이 시대는 무능력자 헌터가 아닌, 초능력자 헌터를 원하거든.’

현 헌터 협회장은 F랭크의 헌터를 ‘돈만 쪽쪽 빨아먹는 개미’라고 칭했다. 초능력자 아카데미를 설립한 이래, 무능력자 헌터들의 가치는 나날이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이건 단지 시대의 흐름일 뿐이라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런 말을 내뱉는 협회장을 보며 이준석은 헛웃음을 쳤다.

지금 당신들을 그 위치에 앉힌 게 누군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최초로 발 벗고 나선 이들이 누군데.

배에 기름칠해가며 살 수 있도록 해주었던 이들이.

대체 누군데.

그러나 이준석은 그 자리에서 입을 열 용기가 없었고, 그 이후로 몇 년이 흘렀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다 안다.

F랭크의 헌터가 더 이상 쓸모가 없음을.

베테랑으로 몇 년이라 전장에서 굴렀다?

분명 대단해. 대단하긴 한데. 그게 끝이다.

이제는 퓨어 헌터의 특별함을 아는 사람이 매우 드물어졌다. 혹은, 알더라도 외면하는 사람들만이 가득했다. 결국 현역으로 활동하는 F랭크의 헌터는 거의 전멸하였고, 특히 10년 이상 활동한 헌터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유서담은 더욱 특별했다. 그 로스트 데이의 정치질 속에서도 꾸역꾸역 헌터로서 살아남아, 마침내는 헬 게이트까지 들어갔다가 되돌아온 사내였으니까.

‘차라리 우리 길드로 데려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로스트 데이, 그리고 협회의 입김이 두려운 여타의 길드는 물론 이준석의 벨벳 길드 또한 F랭크의 영입은 이제 꺼려한다. 그것이 심지어 15년 차의 베테랑이라고 할지라도.

하지만, 이준석은 오늘 유서담의 눈빛을 보고 깨달았다.

‘저 남자, 뭔가가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모를 리가 없다.

그런 그가 아직까지도 헌터 업계에 남아있다는 건······. 여전히 그가 이 업계에서 무언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길드를 만들려나? 아니면 정치? 사업?’

분명 어떤 식으로든, 유서담은 조만간 한 건을 터뜨릴 것이다.

그 사이에 자신이 낄 수만 있다면.

탁! 타악!

“합!”

“머리!”

대련이 시작되었고, 수많은 달인들이 무려 진검을 들고 승부를 펼쳤지만 이준석은 그곳을 향해 단 한 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유서담이 앉아있는 좌석만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

초능력자 대부분의 비중은 ‘강체’ 능력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단순하지만 신체를 강화하는 능력. 그리고 그들의 그런 능력은 괴수에게 제대로 잘 통하는 ‘에테르 블레이드’와 딱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검을 써본 적도 없는 이들이 어디 검을 잡는다고 해서 제대로 휘두를 수나 있을까? 해서 수백 년의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지닌 검도회에서 초능력자들에게 검술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

그것이 최초의 검술 토론회였으나, 사실 지금에 와서는 그런 목적의식도 흐려졌다.

더 이상 강체 능력자들은 무능력자들의 가르침을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초능력을 가진 채 검을 몇 년이나 휘두른 선배에게서 배우기를 원한다.

그래서 더욱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달인들은 검을 휘둘렀지만······.

‘지랄들 났군.’

이미 검술 토론회는 ‘친목질’의 현장이었다. 흔히 ‘검술명가’라 불리는 족속은 하나 둘 초능력자들이 꿰차기 시작했고, 달인이 앉아있을 장소에는 강체 능력자들이 앉아서 텃세를 부리고 있었다. 그러고선 저들끼리 하하호호껄껄 웃고 떠든다.

이제 더 이상, 초능력자들은 일반인의 검도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전혀 되질 않으므로.

테일러는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유서담.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묵묵히 무능력자 검도 달인들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쩐지,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 테일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

“끝났잖아.”

“곧 있으면 이벤트식 대련 시작해. 첼레스테 나오는 거.”

“어. 그 전에 올 거야. 담배 한 대만 피고 올라고.”

서담이 있을 땐 어지간해서 담배를 손에 대고 싶지 않았으나 테일러는 그냥 그렇게 툭 말하고선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벤트식으로 대련을 한다는 것도, 결국에는 검술명가 사이의 친목질이었다. 누구 가문의 자제가 재능이 이렇게 뛰어나네 어쩌네. 대단하네 어쩌네. 거기에 서담이 연관되어있긴 하지만, 솔직히 테일러는 그 꼬라지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복도에 나오자 잠깐의 휴식 시간이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테일러처럼 담배를 태우거나 화장실을 가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복도에서까지 친목질을 이어가는 부류가 있었다.

그리고.

아렌도 그중 한 명이었다.

S랭크의 강체 능력자이자, 검의 달인 협회에 당당히 엉덩이를 들이민 사내.

그는 비록 명문가는 아니었지만 검을 다루는 기술이 상당히 좋았으며 헌터 업계에서도 실적이 상당하여 평판이 굉장히 좋았다.

다만.

약자 멸시가 조금, 있을 뿐이었다.

그는 도복을 입은 다른 검의 달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미소를 띈 아렌과는 달리 달인들은 영 불편한 표정이었다.

“물론이죠. 제가 사범으로 있는데, 그 정도의 성과는 있어야죠.”

무능력자 사이에 낀 초능력자. 아마도, 그는 어떤 종류의 우월감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최소한 테일러는 아렌이라는 남자를 잘 알았기에 그 점에 대해서는 사실상 확신을 하고 있었다. 달인들이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만 봐도 뻔했다.

‘에라이 씨, 똥 밟았네.’

서둘러 방향을 틀었지만, 안타깝게도 늦은 모양이었다.

“오, 테일러!”

“···아오, 씨발.”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며 테일러는 아렌을 쏘아보았다. 그는 달인들에게 잠시 실례 좀 하겠다며 말한 뒤 테일러에게 다가왔는데,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그녀와는 다르게 달인들의 표정은 활짝 펴졌다.

“용건만 말하고 꺼져.”

“하하, 왜 그렇게 까칠해? 너도 토론회에 왔다고 이야기 듣긴 했는데, 바빠서 못 찾아갔네. 점심은 먹었어? 조금 있다가 같이 밥이나 먹을까?”

그러자 테일러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내가? 너랑? 왜?”

“근처에 내가 아는 쉐프가 이번에 호텔 레스토랑에서······.”

“야.”

그녀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들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지금 존나 피곤해서, 좀 가봐야겠으니까. 닥치고 꺼져.”

“······그래?”

아렌은 테일러를 빤히 바라보더니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유서담. 그 새끼도 이번에 여기 왔다지? 코스탄티니 가문의 사범 자격으로.”

“뭐?”

“맞지? 또 유서담이야?”

그 말에 테일러는 담뱃갑을 만지작대던 손을 멈추고선,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아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예전부터 너, 이상한 거 알지?”

아렌의 경력은 이제 무려 12년 차. 그런 그가 신참이었을 시절, 테일러는 무려 3년 차의 선배 헌터였다. 고작 3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당시의 테일러는 누구보다 과감하고, 용기 있었으며, 결단력이 똑부러졌고, 리더쉽이 뛰어났다. 비록 언행이 거칠었지만 그게 전부 팀의 분위기를 위한 배려였다는 사실을 아렌은 알고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아렌은 테일러에게 관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분위기는 ‘서로 진심으로 정을 나누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연애를 하든 섹스를 하든 상관없다는 분위기여서 아렌은 몇 번 그녀에게 접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넌 그때부터 유서담, 유서담. 질리지도 않아?”

테일러는 단 한 번도 다른 누군가에게 눈길을 돌린 적이 없었다. 12년 전, 아니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 15년 전의 최초 데뷔 때부터. 테일러는 오로지 유서담을 쫓아다녔다고 했다.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다른 유능하고 뛰어난 자들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초능력도 없는 유서담이란 말인가?

그 질문에 테일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야.”

“말해.”

“그럼 네가 나에게 있어서, 유서담보다 나은 점을 얘기해 봐.”

“뭐?”

그에 아렌은 황당하다는 듯, 대답을 하려 했으나.

“초능력? 재산? 그딴 거 다 필요 없어 나는. 왜 그런 줄 알아? 내가 다 가지고 있으니까.”

“테일러.”

“다 필요 없다고. 초능력이 S랭크건 F랭크건 중요하지 않아. 유서담이 F랭크의 헌터라고 해서, 사람 그 자체의 가치가 F랭크일까?”

반대로.

“넌 S랭크인데······. 초능력만 S랭크네?”

“······.”

테일러는 거기까지 말하고선 말을 거의 뱉어내듯이 했다.

“너. 예전엔 짜증나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그녀는 항상 입에 욕을 달고 산다. 그러나 진짜로 화가 났을 땐 욕을 하지 않고서,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꽤 발랄하고 상큼한 미소를.

“그냥, 좀. 역겹다.”

누가 보기에도 상당히 아름다운 미소를 띠운 채 그렇게 말한 테일러는 그대로 자리를 떴다.

그리고, 아렌은 여전히 자리에 남아서 주먹을 움켜쥐곤 한참이나 생각을 정리했다.

‘······유서담.’

결국, 능력이 모든 걸 증명하는 시대이다. 이제는 그 능력이란 게 가시적으로 보이는 현대에서 어째서 테일러 씩이나 되는 여자가 낮은 가치를 가진 유서담에게 집착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자신보다 ‘절대적 가치’가 떨어지는 놈에게 말이다.

‘차라리, 유서담을 철저하게 밟을 수만 있다면······.’

그는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묵묵히 오카모토 가문의 관계자 석에 착석하려던 아렌은······.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첼레스테 코스탄티니 VS 오카모토 사나기]

‘아, 벌써 시작됐나?’

테일러와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졌다고 생각하며 그는 경기장을 내려보았다. 애당초, 별 관심도 주지 않던 대련이다. 사나기는 자신이 직접 검술을 가르쳤고, 첼레스테는 애초에 랭크가 낮아서 사나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말하는 듯이, 당연한 결과를 점쳤다.

그래서였다.

이상하게도 경기장이 조용한 이유가.

“······어?”

하압! 툭, 차앙!

모든 게 고요하다. 그저 진검과 진검이 맞부딪치며 두 명의 여인이 내는 기합소리만이 이곳을 가득 채웠다.

아렌은 떨리는 눈으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오카모토 사나기. 그녀가 첼레스테 코스탄티니에게 밀리고 있었다.

C랭크의 강체 능력자가, D랭크에게 밀리고 있었단 말이다.

‘그게······ 말이 돼?’

C랭크과 D랭크의 차이는 승용차와 자전거 수준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승용차가 아주 천천히 달려서, 속도의 대결에서 져주고 싶어도 절대로 져줄 수 없는 그런 수준의 차이란 말이다. 어린아이와 어른의 대결? 아니, 쥐새끼와 들고양이의 대결이라고 봐도 좋았다.

그런데.

쥐새끼가 들고양이를 물어뜯었다.

자전거가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첼레스테가 갑작스레 C랭크의 능력을 각성해서?

아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D랭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첼레스테가 사나기를 압도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첼레스테의 검술이 사나기의 검술을 압도한다.’

그것도, 강체의 능력 차이를 메울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작년까지의 첼레스테는 사나기의 검을 압도하기는커녕 오히려 검술 자체로는 비등비등한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녀가 일 년 사이에 갑작스레 수준이 높아진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몇몇 달인들은 하나 둘씩 코스탄티니 가문의 ‘사범’이 앉아있을 자리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초능력이 없는 F랭크의 헌터가 있었다.

< 마검사처럼 싸우는 법(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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