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술 토론 경기회(3) >
서담은 어색한 넥타이를 고쳐 매었다. 어울리지 않게도 정장을 입은 그는 그 위에 트렌치코트까지 말끔하게 걸친 상태였다. 코스탄티니 장녀의 정식 사범으로서 국제 검술 토론 경기회에 참여하게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복장을 입어야만 한다고 했던 탓.
하지만 그에게 도복 같은 게 있을 리는 없었으므로 결국 첼레스테가 따로 정장을 준비해주었다. 그래도 맞춤 고급 정장인지라 귀티가 흘렀고, 근육이 깡패였는지 핏은 상당히 잘 살아났다.
“(잘 어울려요.)”
첼레스테의 말이었고.
“와. 존나 안 어울려.”
테일러의 말이었다.
서담은 할 말을 잃고서 입을 다물었다. 테일러는 깔깔거리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으흐흐, 그래도 뭐. 봐줄 만은 하네.”
어이가 없어진 서담은 그녀에게 물었다.
“넌 여기 왜 왔냐?”
현재 서담은 잠실종합운동장에 와 있는 상태였다.
올해의 검술 토론회가 한국에서 열리기로 결정됐을 때부터 부지런히 준비를 했는지, 운동장은 서담의 기억보다 상당히 많이 바뀌어 있어서 영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이 장소에 더욱 어울리지 않는 테일러가 떡하니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어질 수밖에.
“뭐 어때? 임무 끝내고 나도 이제 쉬는 타임이야.”
테일러는 그리 말하고선 서담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근데 너 역시 좀 젊어진 것 같단 말이지.”
“뭐가?”
“뭐 피부에 좋은 거라도 바르냐? 친구 사이에 좀 나눠주지 그래.”
“그런 거 얼굴에 바를 돈 있으면 에테르 총알 하나를 더 뽑겠다.”
“이런 미친 밀덕 새끼···.”
테일러가 툴툴대자 첼레스테가 말했다.
“(슬슬 시간 된 거 같아요.)”
오늘은 세계 각지의 검의 달인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그런 이유로, 입구에서부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나 검술 대련을 구경하기 위해 온 일반인들, 그리고 그들을 대상으로 노점상을 펼친 이들이나 통제를 위한 초능력자 경찰 및 관계자들이 인산인해였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유명 헌터들이 몇몇 보였다.
당연하지만 첼레스테와 테일러는 상당히 눈에 띄었고, 지나갈 때마다 인사를 하거나 취재를 하기 위해 꽤 많은 사람들이 다가왔다.
“첼레스테 양. 이번 검술···.”
“(한국어 몰라요.)”
“헌터 테일러! 오늘 토론회에 오신 이유를······.”
“꺼져.”
그녀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모조리 깔끔하게 쳐냈다. 물론 사람 안 가리고 죄다 쳐내는 테일러와는 다르게 제대로 된 기자나 관계자가 찾아오면 번역기를 켜서 예의 바르게 대답을 해주기는 했다.
여러모로 바쁜 그녀들과는 다르게, 서담은 얼굴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편인지라 딱히 아는 체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랬을 터였다.
“어라, 유서담 헌터 아니십니까?”
“···?”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며 다가오자 서담은 고개를 돌렸다.
아는 얼굴이었으나,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한국의 5대 길드 중 하나인 벨벳 길드 소속의 S랭크 헌터 이준석.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 중 한 명이었다.
“이런 곳에서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하하, 반갑습니다.”
“예 반갑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시죠?”
일단 인사는 받아 주면서 살짝 떨떠름하게 묻자 이준석이 오해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별건 아닙니다. 전에 기형던전을 듀오로 클리어하신 것도 그렇고, S랭크의 던전 변이 현상을 깔끔하게 지휘하신 것도 보았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이준석은 테일러와 첼레스테에게도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서담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뭔가가 어색했다. 충분히 주목할만한 두 명의 헌터를 두고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게.
이준석은 자연스레 서담과 동행하여 잠실운동장을 향해 걸었다. 테일러는 표정을 와락 구겼지만, 그와 별개로 서담은 이준석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잠깐이지만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제 능력이 검술과는 별로 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달인들의 무예를 보고는 싶더군요.”
“그러시구나.”
물론 대부분은 이준석이 떠들고, 서담은 맞장구를 쳐주는 쪽이었다.
“원래 검술 토론이나 대련 같은 게 좀, 딱딱하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그랬었는데 요샌 다르더라구요. 이게······. 전통 검술이란 게 요새는 많이 묻혔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아예 크게 행사처럼 일을 벌이나 봐요. 검은 구경거리가 아닌데 말이죠.”
본인은 검을 쓰지도 않으면서 검술 사범들보다 더욱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이준석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조용히 가리켰다. 몇몇 ‘달인’급의 장인들이 지나가고는 했는데, 이준석은 그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이런 데서 쇼하고 있을 사람들이 아닌데 말이죠.”
달인이라는 말은 일견 검에 통달한 강자를 뜻하는 말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럴 거였다면 차라리 랭크를 붙였을 것이다.
달인.
안타깝게도 초능력을 얻지 못해, E랭크를 각성한 어린 초능력자조차 이기지 못하게 된 이들을 통칭하는 단어였다.
물론 그들은 현대에서도 검의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유지해왔고 덕분에 현재 초능력자들의 검술이 탄생하기도 했기에 어느 정도는 대우는 해주고 있으나, 초능력자에 비해 취급이 박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상 사태가 벌어졌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일반인의 몸으로 에테르 블레이드를 휘두를 바에야, 차라리 에테르 건을 쏘는 게 낫다.
······보통, 그런 상식이 박혀있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담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단순히 지구의 검술이 너무나도 뒤처져있다는 게 문제였을 뿐 ‘검’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기와 마나가 없는 세상의 검술은 그 발전도에 한계가 있었으니까.
물론 서담 또한 이런 검술 토론회가 썩 기분 좋게 와닿지는 않았다. 결국, 검술 토론회는 초능력을 얻지 못한 무술가들의 미련이 가득 담긴 발버둥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저는 ‘아렌’이라는 달인 협회의 무술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렌?”
그 이름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은 몰랐기에 서담은 고개를 갸웃했다. 동시에, 테일러가 눈썹을 꿈틀 올라가 대놓고 열 받았다는 티를 냈지만 서담이 묘한 위치에서 가리고 있어 이준석에게 보이지는 않았다.
“네. 들어는 보셨죠?”
“당연하죠. 근데 왜요?”
“아렌, 그 양반이 검의 달인 협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아···. 그랬나요?”
“네. 아, 그러고 보면 이번에 ‘검도 사범’으로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 검술명가 ‘오카모토’ 가문의 ‘사나기’라고 아시죠? C랭크의 강체를 스물에 각성해서 화제가 됐던,”
“알죠.”
다름 아닌 첼레스테의 라이벌 포지션이었으니 말이다.
“아렌, 그 양반이 오카모토 가문에서 장녀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뭐, 이해는 가요. 그냥 일반인 무술가보다 같은 강체 능력을 가진 무술가를 초빙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니까요.”
게다가, 무려 S랭크의 강체를 가진 초능력자다.
“오카모토 가문에서 단단히 준비를 한 모양이에요. 뭐, 십 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코스탄티니 가문에게 맨날 밀리고 살았는데 이제 좀 자존심 세울 기회가 생겼다 이거겠죠.”
첼레스테의 아버지, 살바토레는 무려 SS랭크의 강체 능력자이자 동시에 검사였다. 하지만 사나기의 아버지, 잇세이는 현재에 와서도 여전히 S랭크에 머물고 있는 검사였다. 같은 검술명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한 알파벳 하나 차이 때문에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던가.
하지만 지금, 그들의 세대는 저물었다.
이제는 그 자식들의 세대.
오카모토 잇세이는 자신의 딸이 살바토레의 딸을 이기는 것으로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모양이었다.
“흠······.”
여러모로 복잡한 사정이 뒤에 숨어있을 줄이야. 이런 와중에 F랭크인 자신을 사범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결심한 첼레스테의 그 결단력도 대단했고, 그걸 또 허락해준 살바토레 또한 어쩐지 대인배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떠들면서 걷자, 거의 행사장으로 변해버린 운동장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곳에는 검술 토론회에 걸맞게도 도복을 입은 이들이 한가득이었는데, 이준석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왔다.
“선배님. 여기 계셨어요?”
내부에 들어서까지 서담에게 붙어서 쉴 새 없이 떠들던 이준석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침내 말을 멈추었다. 그곳에는 웬 20대 중후반의 여인이 서 있었다.
“어라. 희정이 너 미리 관계자 석에 가 있는 거 아니었니?”
“무슨 소리예요, 진짜···. 제가 선배님 없이 거길 어떻게 혼자 들어가요? 옆에 그분은 누구세요?”
희정은 이준석과 함께 걷는 사내를 보고서 눈을 빛냈다. 그녀는 준석과 같은 벨벳 길드 소속의 A랭크 초능력자로서, 처음 각성을 하자마자 C+랭크의 화염계 능력을 선보여서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준석이 신난 듯이 떠들고 있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필시 유명인사라고 생각하여 희정은 눈빛을 빛냈다.
“그렇지! 이분은 헌터 유서담이셔. F랭크의 헌터신데, 무려 15년이나 활동하셨다고. 너도 들어는 봤지?”
“···네? F랭크요?”
정말 대단하다는 듯이 말하는 이준석과는 달리, 희정의 눈빛은 순식간에 식어갔다. 그러나 그녀도 나름대로 3년 차의 헌터. 사회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으므로 그것을 애써 티내지는 않았지만, 대놓고 반응이 건조해졌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아···. 네! 들어본 것 같기도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하지만 그 반응을 모를 리가 없는 이준석이었기에 무덤덤한 서담에 비해 오히려 본인이 더 당황하였다.
“아하하, 얘가 아직 뭘 잘 몰라서 그래요.”
“······네. 근데, 상관은 없는데. 저희 이만 가봐도 될까요?”
서담은 테일러의 입과 양손을 콱, 붙잡고선 이준석에게 땀을 뻘뻘 흘리며 그리 말했다.
당장이라도 쌍욕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이 판도라의 상자를 봉하는 게 상당히 힘겨웠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서담이라도 이런 유명인사가 많은 자리에서 쌍욕으로 주목을 받는 건 골치가 아프다.
“아, 하하···. 실례했습니다. 그럼 저희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길드를 대표해서 나온 만큼, 자리를 지켜야 해서요.”
“예.”
인사를 나눈 뒤 먼저 등을 돌리던 이준석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서담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올해에 있을 ‘한국 헌터 토론회’에 꼭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네요. ···‘헬 게이트’에 대해 꼭 묻고 싶은 게 있거든요.”
“······.”
그 말과 함께 이준석은 서둘러 희정을 데리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한참을 걸어서 마침내 테일러와 서담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이준석은 그녀를 세워놓고 말했다.
“···희정. 너 방금 대선배한테 그게 무슨 실례야?”
“네? 아니 뭐, 그래도 F랭크 헌터잖아요. 그냥 일반인 아니에요?”
심지어 유서담은 유명인도 아니었고, 얼마 전 로스트 데이에서 쫓겨났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끼리는 공공연하게 전해 듣고 있었다. 그래서 뭐 얼마나 대수냐는 듯 희정이 말하자, 순식간에 이준석의 말투가 싸늘해졌다.
“···그래. 일반인의 몸으로 15년 동안 전장에서 살아남고, 심지어 헬 게이트에서도 생환해온 헌터.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아, 어···. 그건 대단하긴 하지만요······.”
“안희정.”
이준석은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듯 희정에게 말했다.
“네가 인맥 쌓으려고 내 꽁무니 졸졸 쫓아다니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네가 썩 괜찮은 후배라서 나도 그걸 허락해줬지. 좋은 후배가 나를 통해 좋은 인맥을 쌓는다면 그것만큼이나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해서.”
속내를 들켰다는 생각에, 아니 진작부터 이준석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희정은 입을 꾹 다물고서 식은땀을 흘렸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네게 좋은 인맥을 만들어주려고 했다. 그와 만난 시간은 짧지만,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호의를 사기 위해 노력을 했고 내가 한 노력을 고스란히 너에게도 주려고 했지. 근데, 넌 그걸 발로 걷어찬 거야.”
“아···. 죄, 죄송해요···.”
“참 실망이 크다, 희정아.”
이준석은 그리 말하고선 그대로 몸을 돌려 먼저 앞장섰다. 희정은 그 뒤에 남아서 옷자락을 움켜쥔 채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그녀가 자존심 높은 A랭크의 헌터라서가 아니다. 무려 벨벳이라는 5대 길드에 소속되어있어서도 아니다. 그녀가 유명인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꿈 많은 20대라서가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한 사람으로서.
‘대체······. F랭크의 헌터가 뭐가 어떻다는 거지?’
유서담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적당히 들어서 알고 있다. 꽤 큼지막한 두 개의 사건에 전부 관여되어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아는 A~S랭크의 5년 차 이상 베테랑 헌터들은 저 사건을 보고서도 영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어, 뭐. 그래. 대단하긴 한데···. 좀, 그렇지?’
‘일전에 기형던전도 그 테일러가 클리어한 거 아니야? 출력만 보면 SS랭크라는 말도 있던데.’
‘F랭크잖아. 요전번에 오퍼레이팅 하는 거 보면 좀 똑똑해 보이긴 하던데···. 그래도 한계는 있지.’
‘15년이라. 초능력도 없이 오래도 했네. 진짜 대단해. ···뭐, 그래도 난 그 사람 데려갈 바에 3년 차 C랭크 한 명 더 데려갈래.’
‘맞아. 짐꾼으로 쓰더라도 C랭크가 더 유용하지 않겠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안희정 또한 묘하게 납득을 한 바가 있었다. 그녀는 물론 선배들이 겪은 전장이란, 초능력에 의해 모든 게 좌우되는 세상이었으니까.
‘진짜로 모르겠어······.’
그녀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와중, 이준석은 빠르게 복도를 걸었다.
이준석.
10년 차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S랭크 헌터.
오랜 시간 헌터 업계에서 활동해온 만큼 어지간한 헌터보다 더욱 많은 것을 보고 들었고, 그 덕분에 그는 알고 있었다.
헬 게이트. 그 지옥에서 생환해온 헌터가 무얼 의미하는지.
그는 단지 F랭크라는 이유만으로 천대를 받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인재였다. 아마도, 로스트 데이의 어떤 ‘수작질’만 아니었다면 진작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까운 기회를 날렸어.’
이준석은 조용히 혀를 찼다. 방해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와 조금 더 영양가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 검술 토론 경기회(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