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술 토론 경기회(2) >
“마법이라고?”
백색 마녀의 도서관이 SNS의 사진으로부터 ‘마법’에 대한 정보를 추출해냈다.
조금 더 자세히 사진을 바라보니, 확실히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한 지식이 없다. 그러나, 백색 마녀의 도서관에게는 있던 모양이다.
“···마법을 검색할 수 있었다니.”
그러고 보면 이 스킬을 얻은 이후로 다른 마법을 마주한 적이 없다. 바로 전에 다녀온 세계관의 사람들도 마법이라기보단 유사 속성 초능력을 사용할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마법을 마주쳤다면, 백색 마녀의 도서관이 어떻게든 검색을 통해 파악했을 터.
‘장난 아닌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백색 마녀의 도서관이 고작 F랭크 스킬인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법 크래킹이 뭐지? 시도하면 어떻게 되는데?”
[타인의 마법 시스템에 침입하여, 분석 및 파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음···. 한 번 시도해봐.”
그러고서 잠시 기다리자, 오류 메세지가 떴다.
[에러가 발생하였습니다.]
[해당 마법에 알 수 없는 기술력으로 인한 방벽이 쳐져 있습니다.]
···그냥 이게 사진이라 불가능하단 말인 것 같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어쨌든 직접 보기만 하면 크래킹이 가능하다는 말과도 같다.
“어쨌든 아티팩트는 맞지?”
[매직 아티팩트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건 꽤 흥미롭다.
지구에 근력과 속력 강화가 걸려있는 마법 아티팩트라.
강체 능력자인 아렌이 저 아티팩트를 몸에 달고 다니는 것 자체가 일단 첫 번째 의문점이었다.
B급의 아티팩트라는 말은, 결국 B급의 초능력이 하나 더 주어진다는 말과도 같다. 만약 S랭크의 초능력자가 저걸 사용했다면 필히 큰 두각을 드러냈을 터.
하지만 아렌은 S랭크 중에서도 무난한 능력치의 소유자였고, 뭐 하나 특별한 점은 없었다.
‘그럼 아티팩트의 도움을 받아서 능력치를 키웠다는 말인가?’
두 번째 의문점.
저 아티팩트가 어디에서 났는가?
지구에는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알고있는 정보의 한계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정말로 지구에 마법이 없느냐, 하고 묻는다면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일전에 리치를 잡았던 기형던전만 해도 마법으로 가득한 공간이었으니까. 물론 그곳은 내가 마법으로 입구를 열지 않았다면 들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했지만, 애초에 모든 던전이 그런 식으로 입구가 암호화되어있지는 않다.
‘···던전을 통해 흘러들어왔다는 게 일단 가장 유력하긴 한데.’
그런 소문이 있다.
아주 가끔, 기형던전이나 특이형 던전을 클리어할 경우 미지의 물건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그 물건을 베테랑 헌터들은 ‘부적’이라 부르곤 했는데, 초능력과도 흡사한 신비로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별 쓸모도 없었지만 아주 가끔 반지를 손가락에 꼈더니 전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던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던가, 갑자기 피부가 깨끗해졌다던가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나도 제대로 본 적은 없어서 그저 그렇겠거니 싶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전부 마법과 관련된 던전에서 흘러들어온 아티팩트인 모양.
‘이건 좀 문제가 커질 수도 있겠는데.’
부적이 저렇듯 떡하니 실존한다면 세계 어딘가에서 그에 대해 다루는 기관이 없을 리가 없다. 마법에 대해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기관이 만약 실존한다면 나는 마법의 존재에 대해 숨겨야만 했다. 아직은 내 비밀을 지키기에 벅찼으니까.
막말로 A랭크의 초능력자 한 명이 갑자기 들이닥쳐도 충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위험할 것이다.
‘일단, 저 아티팩트만 보면 수준은 한참 낮은 것 같고.’
아렌의 마법은 백색 마법에 비해 훨씬 열등했다. 그래서 오히려 의문점이 생겼다. 비비안타 아카데미나 백색 마녀의 도서관에는 ‘신체 강화 계열’의 마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
[신체를 강화하는 종류의 마법은 엄격히 금지되어있습니다.]
[인체 자체에 마법을 걸어 능력을 강제로 끌어올리면 그에 따른 반동이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반동이 온다고?”
[이른 시기에 노화가 오거나, 신경계와 근육이 파손되거나, 심할 경우 신체 부위 자체가 썩어버리기도 합니다.]
“미친.”
그렇다.
애초에 뒤떨어지는 마법으로도 신체를 강화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고 백색 마녀의 도서관이 내게 설명해주었다.
다만, 부작용 없이 강화하는 게 무리였을 뿐.
만약 정말로 아렌이 아티팩트에 의존하고 있다면······.
“······저거, 조만간 큰일 나겠는데?”
짧은 고민.
그러나 이내 나는 아렌의 SNS을 꺼버렸다. 나한테 허구헌날 지랄하던 놈을 굳이 챙겨줄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나는 허공의 스킬창을 톡, 터치한 뒤 ‘백색 마녀의 도서관’을 활성화하였다. 그러자 눈앞에 무수히 많은 책꽂이가 나열되며 제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예상대로 신체 강화에 대한 책자는 ‘금지!’라고 적힌 항목에 들어있었는데, 대충 훑어보고서 집어넣었다.
안 그래도 헌터는 신체가 곧 재산인데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걸 굳이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주사 맞거나 폭주 능력을 가져왔겠지.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 백색 마녀의 도서관 자체는 연구를 할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이 안에는 정말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의 무수히 많은 지식이 들어있었기 때문. 고작 동네 도서관 만한 크기밖에 안 되는 주제에, 참 쓸모가 많다.
이곳의 모든 마법을 독파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라슈 월드에서 시간이 남는 틈틈이 공부를 하긴 했었다. 하지만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영역이 더 많았고, 문득 호기심이 동했던 나는 책장을 하나씩 하나씩 건너 뛰었다.
그러자 제목만 봐도 현기증이 몰려올 정도로 어려운 마법들이 속속 등장하더니, 이윽고는······.
“···뭐야?”
새하얀, 문이 나타났다.
허공에 선명하게 그려진 그 문에는 당연하지만 문고리가 걸려있었는데, 마치 나보고 열어달라고 시위를 하는 듯싶었다.
마치 향기로운 꽃에 유혹당한 나비처럼, 나는 나도 모르게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고. 그때 경고음이 날카롭게 머릿속을 울렸다.
[경고! ‘E’등급 이상 마녀의 지식에 접근을 할 경우, ‘마녀화(魔女化)’가 진행됩니다.]
“······뭐?”
순간 화들짝 놀란 나는 뒤로 엉거주춤 물러났다. 그래봐야, 도서관 자체가 나에게만 보이는 환상같은 것이기에 내 초점을 따라오는데 말이다.
“마녀화라고? 그게, 대체 뭔데?”
[심신이 마녀와 비슷한 존재가 되는 것을 일컫습니다.]
“미친?”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일전에 보았던 그 마녀처럼 감정이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되었다. 반대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마녀처럼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종족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인데, 그게 감정과 맞바꿀 정도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자면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무슨 부작용이 일어날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지만, E등급이라고 했다. 현재 이 스킬의 랭크는 F. 저 문을 열기만 하면, 랭크가 상승할 수도 있다는 의미. 지금 당장 F랭크만 하더라도 이렇게나 무수히 많은 정보와 지식, 기능이 달려있는데 하물며 E랭크부터는 또 얼마나 대단할까?
“마녀화를 진행하지 않고 E등급에 접근할 방법은 없나?”
[E등급 마녀의 지식을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버텨낼 수 있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오······?”
애매모호한 말이었지만, 결국 버텨낼 방법이 있긴 있다는 뜻이었다.
*
테일러 나인은 다 무너져내린 공사판을 짜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염병하네 진짜.”
그녀가 이번에 받은 의뢰는 잠실에 숨어든 ‘빌런’들을 처리하는 것. 초능력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모든 초능력자가 꼭 헌터가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헌터보다도 초능력 범죄자의 수가 더 많다는 통계가 있었다.
그래서 빌런을 처리하는 헌터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몬스터 헌터’와는 다른 분야로서 ‘빌런 헌터’로 분류가 되었다.
테일러는 아주 드물게도 몬스터와 빌런 사냥을 둘 다 하는 편이었다. 이유는 별 것 없고,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다.
다만,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영 꺼림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철근을 야구 배트로 툭, 밀어냈다. 신체 능력 자체는 일반 성인 여성의 것과 비슷하지만, 야구 배트의 끝에 ‘광선’을 아주 살짝 담아내자 퉁!! 소리와 함께 철근이 날아가버렸다.
“아오, 또라이 새끼들. 공사장을 박살내긴 왜 박살내?”
테일러는 무려 S랭크의 헌터로서 어지간한 빌런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손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다만 빌런들이 겁을 먹은 나머지 공사장을 자신들의 능력으로 아예 박살내버린 게 문제였다. 이런 피해를 입혀서야, 의뢰금에서 까이고 만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어쩔 수 있나.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 인증샷을 몇 번 찍은 뒤 그대로 뒤돌아 복귀를 하려다,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공사장으로 걸어갔다.
벌써 2년 전에 공사가 중지된 곳이지만, 어째서인지 반만 완성된 건물을 철거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 이유.
이곳에 흔히 말하는 ‘조폭’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였다.
공사장의 잔해물을 광선의 구체를 튕겨 치워가며 지하로 통하는 길을 찾은 그녀는 거대한 철문을 빛의 구체로 박살내버렸다. 그러자 먼지가 일며 내부가 드러났는데, 그곳에는 피떡이 된 채로 결박당해있는 수십 명의 떡대들이 있었다.
바로 잠실 인근을 점거하고 있던 조폭들이었다. 수도권에 자리를 잡은 조폭이라는 건, 어지간한 정계와 기업은 물론 경찰 쪽까지 손을 뻗을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놈들이라는 건데 하필이면 빌런들에게 잘못 걸려버렸다.
‘뭐, 이젠 조폭도 힘쓰는 놈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이지.’
듣자 하니 깡패에게도 깡패 나름의 신념이라도 있는 것인지, 빌런들이 이곳을 먹으려 하자 잠실을 지키겠답시며 초능력자들에게 맞서 싸우는 기염을 토했다고는 한다. ···결과적으로, 저런 꼬라지가 되어버렸지만.
테일러는 제일 멀쩡해 보이는 한 놈의 결박을 가볍게 풀어낸 뒤 손을 툭툭 털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오, 새끼야. 깡패 씩이나 돼서 질질 짜지 말고. 네 친구들 알아서 챙겨.”
“네, 넵! 감사합니다!”
찝찝할 뻔했던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처리한 테일러는 그대로 그 장소에서 빠져나왔다.
시내로 나오자, 더럽게 퀴퀴한 공기가 상쾌하게도 테일러를 반겼다.
담배라도 한 대 태우고 싶었지만, 시내에서 그럴 수는 없으므로 그녀는 습관적으로 사탕을 꺼냈다. 유서담은 자신의 몸을 끔찍하게도 챙기는 편이었고, 술은 하더라도 담배를 멀리하는 그의 영향을 받아 그녀도 담배를 줄이기 위해 사탕을 항상 들고 다녔다.
멍하니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하품을 쩍쩍하던 테일러는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스마트폰을 겨누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또 사진을 몰래 찍으려는 미친놈들이다.
“이 나라는 어떻게 된 게 초상권이 없냐.”
어이가 없어진 테일러는 그 카메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일일이 지랄하기도 이젠 지쳤다.
임무도 모두 끝마쳤겠다, 보고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어서 톡톡 두드리던 그녀는 요 며칠 째 연락이 두절 되었던 유서담에게서 문자가 온 것을 확인했다.
[유서담: 나 왔어]
그에, 테일러는 기분 좋게 웃었다.
“새끼, 말 잘 듣기는.”
[테일러: ㅇㄷ?]
[유서담: 아직 집인데]
[유서담: 이제 잠실로 출발하려고]
[테일러: 잠실?]
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시야의 한구석에 들어오는 거대한 운동장 하나. 30년 전까지만 해도 잠실종합운동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스포츠를 위한 장소였으나, 현재에 와서는 재설계되어 초능력 격투 훈련장으로 쓰이는 장소였다.
그리고, 며칠 뒤 ‘국제 검술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기도 한 그곳.
[테일러: 아 그러고보니 너요번에 검술토론회 참가하냐??]
[유서담: ㅇㅇ]
분명히 첼레스테의 사범 자격이라고 했던가.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테일러는 씨익 웃으며 답을 보냈다.
[테일러: ㅇㅋ나도감]
검술이고 뭐고 별로 관심도 없는 그녀였지만 이번 한 번쯤은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치솟은 그녀는 그 즉시 방향을 틀어, 잠실운동장으로 향했다.
< 검술 토론 경기회(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