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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38화 (38/251)

< 성좌 유서담이 당신을 바라봅니다(5) [유료 시작] >

회귀, 환생, 빙의, 전이, 전생.

주인공들은 각각 정말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정말 다양한 ‘주인공 보정’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서담이 사냥했던 주인공 길리텐더와 이연준의 경우에는 위의 다섯 가지가 해당되지 않는 평범한 ‘성장형’ 주인공이다. 그러나 회귀나 환생 등의 특전이 없다고 해서 덜 좋은 주인공일까? 그렇지 않다.

만에 하나 주인공에게 위기가 닥치는 순간, 세상이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무지막지한 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스킬이 ‘운 좋게’ 생성되거나, 어째서인지 가는 곳마다 사건사고가 터진다거나 하는 것들이 바로 그러한 보정이다.

그러나 회귀나 빙의 등을 한 주인공에게는 그런 보정이 없다.

왜냐하면, 그 존재 자체로 이미 ‘보정’을 듬뿍 받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정보를 모두 알고 있던 회귀자 피올렌.

과거 자신이 달성했던 마법의 경지에 추가로 검을 수련하게 된 빙의자 엘라헤 알머스.

위의 주인공들은 위기가 닥친다고 해서 난데없이 세상이 마구잡이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회귀자의 경우에는 미래에 발생한 일이 조금 더 빨리 발생하거나, 빙의자의 경우에는 주변인의 무한한 신뢰를 받게 된다는 등의 위기 상황에 대한 추가적인 보정이 있겠지만 결국 그 상황 자체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의미.

더 아라슈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유 스킬 [내가 만든 게임이 현실이 되었다(URS)]로 인해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안 채로 주인공이 된 더 아라슈는 이미 그 자체로 ‘주인공 보정’이 끝난 채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기에, 절대로 죽을 만한 환경이 나오지 않아야 정상일 터.

무적이나 다름없던 그 주인공은 주인공 보정을 깨뜨릴 수 있는 어떤 임시 성좌로 인해, 죽음의 끝에 몰리게 되었다.

[만년빙하의 일각이 크게 실망하여 채널을 떠납니다.]

[모서리를 타고 걷는 자가 혀를 차며 채널을 떠납니다.]

[선을 넘는 천 마리의 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채널을 떠납니다.]

제12, 13, 14스테이지의 보스가 한 번에 등장하였으며 각각 세 스테이지의 웨이브가 동시다발적으로 발동되었다. 그 틈새에 껴서, 아라슈는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발악을 하였다.

거기에는, 더 이상 ‘전율’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마리의 햄스터였을 뿐이다.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을 구걸했다.

하지만 전율을 원했던 성좌들은 실망하여 등을 돌렸다.

그리고, 아라슈의 몰락을 바랐던 성좌들만이 남아서 그를 조롱하였다.

[소나기 몰아치는 밤의 촛불이 말합니다 “그래, 그렇게 도망치라고!”]

[밤을 걷는 여인이 말합니다 “아주 꼴사납구나.”]

[새하얀 나룻배의 조각상이 말합니다 “어디까지 추해질 셈인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말합니다 “결국 자만심에 잡아먹혔군.”]

호의라고는 단 한 톨조차 없이, 악의 섞인 성좌들의 시선 속에서.

자신이 만든 세상에 안겨.

그는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였다.

[89레벨의 주인공을 사냥하였습니다.]

[레벨이 5+1단계 상승합니다.]

[수명이 890일 지급됩니다.]

[당신의 수명: 3427일 9시간 31분]

아라슈가 사망하자 성좌들은 빠르게 채널을 빠져나갔다.

그의 죽음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다.

아무도 미련을 담고서 돌아보지 않는, 그런 쓸쓸한 죽음.

성좌들의 그런 행동을 보며 서담은 문득 헛웃음을 흘렸다. 성좌들은 나쁘지 않다. 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땐 악인처럼 보여도, 저들에겐 저 행동이 당연했으니까.

단지, 인간으로서 어쩐지 거부감이 들 뿐이었다.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원래의 세계로 귀환하시겠습니까?]

“아니.”

아직 할 일이 있다.

*

[성좌 불길을 걷는 고양이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바람을 타고 날아온 종이비행기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별을 쫓던 낚시꾼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온실 속의 독초가 당신을······.]

“어, 어?”

제11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서, 만 하루가 지났을 무렵.

4인방은 자신들의 채널에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수십, 수백의 성좌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지난 몇 달간 그들을 바라보던 성좌는 단 한 명뿐. 그런데 갑작스레 이렇게 시청 성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절대세로가 말합니다 “여기도 미션이란 걸 하나?”]

[붉은 산의 구렁이가 말합니다 “일단 후원부터 넣고 시작해볼까.”]

[밤에 구슬피 우는 사나운 염소가 말합니다 “여기가 11스테이지로군. 음, 꽤 볼만한 곳이야.”]

그중에는 예전에 자신들의 채널에 머물다가 떠난 이들도 있었으며, 자신들이 괴롭기를 바랐던 성좌들도 있었고, 그저 즐거움을 원했던 성좌들도 있었다.

“제술! 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귤루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들의 리더인 제술에게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을 때도 시청 성좌가 열 명 남짓했던 그들이다. 리더라고 해서 별반 다를 건 없다.

“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인사라도 해볼까?”

“그러게. 그게 좋겠어.”

4인방은 당황하면서도 최대한 침착하게 성좌들을 맞이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뜸 와서는 ‘미션’이니 뭐니 하면서 아우성을 해대는 것 아닌가.

‘대체 미션이 뭐야?’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

[성좌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들의 가호성이자, 은인이 채널에 입장하였다.

지난 석 달간 그들을 먹여 살리고 키워내고 수련시키고 성장하도록 만든, 단 한 명뿐인 자신들의 유일한 성좌. 떡만둣국의 입장에 그들이 표정을 환하게 밝히며 인사를 하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잘 들어.

“어?”

그것은 가호성이 자신의 화신에게만 보이도록 보내는 일종의 개인 메세지였다. 여태까지는 시청 성좌가 떡만둣국 한 명뿐이었기에 사용할 일이 없었으나, 지금은 사용해야만 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후원을 하면서 미션을 걸 거야.

‘네···.’

-그럼 거절해.

‘네?’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태 그의 말을 따라서 나쁜 일이 있던 적이 있던가?

없다.

그러므로, 4인방은 긍정의 의사를 표했고 이어서 유서담이 떡만둣국이라는 아이디로 채널 전체에 보이도록 메세지를 흘렸다.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1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그것은 유서담이 가진 마지막 스타포스. 일전에 5만 스타포스를 후원하면서, 가진 것을 모조리 탕진해버렸다. 당연하지만 애초에 미션 성공 시 주겠다고 했던 20만 스타포스 따위 존재하지도 않았다.

즉, 서담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벅벅 긁어서 모은 스타포스로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말합니다 “미션 하나 걸어보지. 성공하면 1만 스타포스.”]

“앗, 넵!”

유서담의 등장에 성좌들이 흥미 깊은 눈으로 대화를 쳐다보았다. 무려 50000스타포스를 후원하더라도 자신의 격이 깎여나가지 않을 정도로 ‘이름값’을 가지고 있으며, 미션 제도라는 아주 즐거운 유희 거리를 개발해낸 화제의 성좌가 아니던가?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말합니다.]

떡만둣국은 천천히 미션을 설명하였고, 성좌들은 고개를 주억였다.

예상대로 그는 꽤 그럴듯하면서 굉장히 어려운 미션을 걸었다. 이전처럼 참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채널에서 새로운 도전자들이 진행하는 미션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성좌들 역시도 흥분하였으나······.

“죄송합니다. 그 미션은 너무 어려워서 무리인 것 같네요. 거절하겠습니다. 후원 스타포스는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리더로서 제술이 나서서 거절을 해버린 것이다.

성좌들은 모두 어이를 상실하였다.

인간이, 성좌의 미션을 거절했다고?

당치도 않는 일이다. 당장 저 도전자들에게 위압을 행사하려던 성좌들은 이내 떠오르는 메세지를 읽고서 서둘러 힘을 거두었다.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말합니다 “그럼 어쩔 수 없겠군.”]

[“하늘에 이름을 새긴 별자리가 되어서, 이런 일로 소인배처럼 굴 수는 없지. 미션은 거두겠다. 스타포스는 너희가 나눠 가지도록 하여라.”]

일전에 서담은 자신이 가장 먼저 ‘선금 미션’ 제도를 시행하여 룰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이 룰 하나 때문에, 아라슈는 미션을 거절할 수 없어 강한 압박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룰을 만들었던 전적이 있는 서담이었기에, ‘미션 걸었다가 거절당했다고 지랄하면 소인배’라는 분위기를 새로이 조성하는 것도 가능했다.

미션을 위해 후원을 하더라도, 도전자가 거절하면 성좌는 대인배로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몇몇 성좌들이 제 분을 못 이기고서 열을 내려다가 다른 성좌들의 눈치를 보고서 채널을 나가버렸지만, 결국 그들은 언젠가 4인방에게 해악이 될만한 존재였으니 지금 당장 나가버린 게 훨씬 더 긍정적인 효과였다.

만약, 누군가 미션을 거절했다고 불같이 화를 내면 암묵적인 분위기 속에서 다른 성좌들의 질타를 받게 될 터. 이제는 대책 없이 어려운 미션을 걸 수 없었고, 서담처럼 미션을 통해 도전자를 죽이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어, 음···. 감사히 쓰겠습니다!”

이 한 번의 행위에 그런 뜻이 담겨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4인방은 서담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물론, 서담 또한 굳이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이후로 4인방이 던전에 입장하자, 성좌들은 너도나도 조심스레 미션을 걸기 시작했다. 서담이 보기에도 꽤 할만한 것들만 모여있었고 4인방은 꽤 똘똘한 두뇌를 4개나 가지고 있는지라 서로가 의논하여 미션을 받아들였다.

“그 미션은 불가능할 것 같아요. 하지만 다음에 더 재밌는 미션을 걸어주시면 도전해보겠습니다!”

“아하. 미션 감사드려요! 이걸로 도전해보도록 하죠!”

어느 사이엔가 저들끼리 방송을 주도하고 있는 4인방. 그러나, 던전의 입구에 들어서자 갑자기 허공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성좌님?’

-왜.

‘이번에는 안 도와주시나요?’

-······.

그렇다. 지난 석 달간, 서담은 아라슈에게 스타포스를 후원하면서 온갖 던전의 비밀들을 빼왔고 그 정보를 토대로 4인방을 도와준 전적이 있었다.

-이젠 못 도와줘.

‘그···런가요?’

-어. 내가 산업 스파이로 잠입했던 기업이 망했어.

‘······?’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4인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서담이 숱한 도움을 주었으나, 도움이 없다고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들은 아니었다. 무려 주인공인 더 아라슈와 한때나마 경쟁을 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었으니까.

‘그럼 저희들끼리 도전해볼게요!’

그 이후로.

만 하루 동안 4인방은 던전을 주파하였으며 미션을 수행하였고 결과적으로 채널은 성황리에 방송을 막 내렸다.

방송이 종료되어 모든 성좌들이 채널을 빠져나간 저녁.

4인방은 그제야 서담을 찾았다.

“성좌님? 계신가요?”

[“왜 찾아 또.”]

“저희 오늘 어땠나요?”

이상한 질문이었다.

[“뭐, 잘하더라.”]

고작 그 한 마디에 그들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저들끼리 히히덕거렸다. 서담은 그 모습을 보며 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다 싶었다.

“저, 성좌님. 혹시 지금······. 저희들 곁에 계신가요?”

[“응? 일단은 그렇긴 하지.”]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디에 계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니들 바로 앞.”]

그러자.

4인방은 서로 합을 맞추지 않았음에도, 동시에 서담이 서있는 곳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감사합니다, 성좌님!”

[“······.”]

“그동안, 저희를 이끌어주셔서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제술은 목이 멘 목소리로 그 말을 천천히 서담에게 흘려보냈다.

자신들이 죽어갈 때, 모든 성좌들에게 외면받았을 때. 유일하게 자신들을 구해내어 이끌어주고 마침내는 최고의 자리까지 끌어 올려준 성좌. 고작 석 달밖에 함께하지 못했으나, 그 어떤 성좌보다도 뜨겁게 자신들을 지켜 보아주었던 성좌.

입을 다물고 침묵하던 서담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난 너희를 이용한 거야.”]

“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좌님은 오늘 아침, 진작 목표를 달성하셨죠.”

[“···그렇지?”]

“하지만 결국, 저희가 독립할 때까지 남아주시지 않으셨습니까?”

[“허 참.”]

서담은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착한 일을 하러 이곳에 온 게 아니다. 그런데, 감사 인사를 받을만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그저 필요에 의해 이용했을 뿐이었으니까.

그는 몇 번이나 4인방을 지켜보며 그 말을 하고는 했다. 그럼에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받은 은혜가 중요했으니까.

“떠나시기 전에,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들도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다.

자신들의 가호성이 떠난다는 사실을.

4인방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서담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혹시, 본명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에 서담은 짧게 고민하다가, 메세지로 답을 대신하였다.

[성좌 유서담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유서담.

그들은 네 쌍의 눈동자로 그 석 자의 이름을 가슴 깊이 새겼고.

이내 동이 텄을 때.

[당신의 가호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좌가 떠나갔다.

어쩐지 가슴이 먹먹하고, 허전한 느낌에 그들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 중요한 게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있을 생각은 없었다.

터오르는 여명을 받으며, 제술은 자신의 동료이자 친구들에게 말했다.

“가자. 다음 스테이지로.”

그들의 소원은 단 하나.

인간이 장난감처럼 굴려지는 이 끔찍한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

이제 그 목표를 향해, 고작 한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다.

< 성좌 유서담이 당신을 바라봅니다(5) [유료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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