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좌 ■■■이 당신을 바라봅니다(4) >
‘바록스를 5분 안에 잡으면, 5천 스타포스라고?’
처음 보는 의문의 성좌가 제안해온 미션. 아라슈는 그것을 보고서 짧게 고민했다가, 이내 표정을 활짝 폈다.
문제없다.
애초에 10분이라는 시간도 안전하게 깰 수 있을 때의 이야기. 아주 살짝만 리스크를 감내하면 5분 안에 잡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살짝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나, 별다른 ‘전율’ 없이도 스타포스를 후원받을 수 있다는데 이만한 이득도 없다.
게다가, 갑작스레 난이도가 올라간 미션을 클리어하는 것으로 다른 성좌들이 ‘전율’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편법을 써야겠군.’
이 게임, 아니 이 세상은 버그와 이스터에그 투성이다. 게임 개발자였을 당시에는 능력이 되지 않아서 수정하지 못했던 골칫덩어리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기연이 되어 성장력의 원동력이 되었다.
아라슈는 천천히 바록스의 앞에 섰다. 평범하게 때려잡으면 빨라봐야 9분 정도. 그러나, ‘십자불기둥 패턴’을 이용한다면 4분만에 잡을 수도 있다.
‘중앙의 노란 발판. 저걸 밟으면, 정확히 2초 뒤에 양쪽 벽에서 십자 모양의 불기둥이 터져나온다.’
일반 도전자는 한 대만 맞아도 빈사 상태에 빠질 정도로 강력한 데미지를 가진 그 기믹은 본래 도전자들을 괴롭히기 위해 만든 패턴이었으나, 바록스 역시 그것에 피격되면 큰 데미지를 입는다.
천천히 장검을 뽑은 아라슈는 검에 화속성을 인챈트했다.
[별을 쫓던 낚시꾼이 말합니다 “상대가 불인데 불을 쓴다고?”]
[크락션의 소음이 말합니다 “무슨 생각이야?”]
[온실 속의 독초가 말합니다 “오.”]
당연하지만 채팅창은 의문으로 빠르게 뒤덮였다. 하지만, 아라슈는 안다. 바록스는 불속성이지만, 불에 약하다. 그래서 맵을 뒤덮는 십자불기둥에 데미지를 입는 것이기도 했고.
“흐읍!”
빠르게 도약하여 바록스에게 달려든 아라슈는 불을 두른 장검을 휘둘렀다. 불과 불의 대결! 밀리는 게 정상으로만 보였지만, 서로의 공격이 부딪친 순간.
화르륵!
바록스의 몸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만년빙하의 일각이 말합니다 “불을 불로 태운다고?”]
[온실 속의 독초가 말합니다 “저건 원래 불에 타는 특이한 불이다. 역시 아라슈라면 알고 있을 줄 알았지!”]
[길을 잃은 달팽이가 말합니다 “내심 그냥 불타서 죽어버리길 바랬는데 아깝군.”]
[돋보기로 관찰한 개미가 말합니다 “통찰력이 아주 대단해!”]
상성을 완벽히 압도했을 뿐만이 아니라, 아라슈는 바록스를 1대1로 완벽히 압도하고 있었다. 비록 보스 몬스터인 바록스에 비해 모든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그였지만 이미 대상의 패턴은 머릿속에 훤히 꿰차고 있었다.
불을 두른 주먹질도, 꼬리를 내리쳐 전방 부채꼴 모양으로 5m를 전부 가격하는 스턴 패턴도, 세 번 크게 도약하여 도전자를 쫓아서 내려찍는 패턴도. 그 외의 모든 패턴도.
전부 다 파악하고 있다.
화르륵!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네 개의 벽면에 불이 들어왔다.
‘시간이 됐나.’
현재 바록스의 HP는 30% 정도 깎았고, 3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재빠른 몸놀림과 완벽한 패턴 파훼로 인해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였음에도 5분이라는 시간은 턱도 없는 것처럼만 보였다.
아라슈가 처음으로 실패를 한다?
성좌들은 그 사실이 생각만 해도 짜릿했는지 채팅창이 폭주하기 시작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띡!
맵의 정중앙에 놓인 노란색 발판을 밟은 뒤, 정확히 2초를 센 다음 뒤로 펄쩍 물러서자.
쿵!
자신을 잡기 위해 도약했던 바록스가 방금까지 아로슈가 서 있던 위치를 내려찍었고.
화르르륵······!!
네 방향의 벽에서 불기둥이 솟구치기 시작하였다.
순간, 고막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비명이 맵 전체를 강타하였으나 신체가 강화된 아라슈에게는 별 타격이 없었다.
‘지금이다!’
십자불기둥에는 ‘홀딩’ 판정이 없기에, 계속 발을 묶어둬야만 했다. 아라슈는 잽싸게 바록스에게 달려들어 검면으로 바록스가 빠져나올 수 없게 계속해서 충격을 주었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바록스는 빠르게 HP가 깎여나갔다.
그렇게, 1분 30초가 더 흐르고.
도합 4분 40초라는 시간이 되었을 때.
{제9 스테이지- 던전 마트나의 고대유적의 최종 보스를 쓰러뜨렸습니다!}
{솔로 플레이! 놀라운 업적에 대한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스타포스를 지급합니다.}
{최단 시간 격파! 추가 보상이 지급······.}
수없이 뜨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새하얀 나룻배의 조각상이 말합니다 “정말 미쳤군!”]
[엎드려 일어선 사내가 말합니다 “함정을 역으로 이용할 줄이야. 놀라워.”]
[모서리를 타고 걷는 자가 말합니다 “그 잠깐 사이에 저걸 판단했다고? 말도 안 돼.”]
성좌들의 흥분한 듯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스타포스를 상당량 후원했으며, 미션을 건 성좌 또한 정말로 스타포스를 후원했다.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5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설마 깰 줄은 몰랐는데 대단하네. 다음에 또 즐겁게 해달라고.”]
그 반응을 보며 아라슈는 깨달았다.
‘···이거, 상당히 좋은데?’
여태까지는 평이하게 쭉쭉 올라가는 것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 살짝만 더 자신이 아는 ‘비밀’을 이용하면 성좌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위기.
불가능할 것 같은 도전.
그리고, 그것을 기어이 해내고야 마는 자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성좌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게, 이렇게까지 흥분이 될 줄은 몰랐다.
‘이건 기회다.’
아라슈는 양팔을 활짝 벌린 채, 성좌들을 향해 말했다.
“성좌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님! 미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도 조금은 어려웠지만 저도 재미있었습니다. 다음에도 또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것은 곧 ‘미션’을 달라는 말이기도 했으며.
그의 바램대로, 성좌들이 폭발적으로 ‘미션’을 신청하기 시작했다.
아라슈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
제10 스테이지에 올라선 아라슈는 두 달이라는 기간 동안 미션을 수행하였다.
10단위의 스테이지는 다른 곳보다 평균적으로 스테이지가 세 배 이상 넓었고, 던전 역시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지금은 아라슈 혼자 이곳에 도착했으니 자연스레 모든 던전은 아라슈의 몫이 되었고 시청 성좌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선을 넘는 천 마리의 새가 5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보스 잡으면서 뺨 다섯 번 치면 3000스타포스 추가.”]
[절대세로가 2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보스 잡는 내내 세로 방향으로만 이동하면 5000스타포스 추가.”]
[물에 잠긴 모래시계가 3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방어구 전부 벗고 보스 잡으면 7000스타포스 추가.”]
미션은 다양했고, 그 난이도가 점차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때로는 아라슈조차 위험할 정도의 미션이 주어졌으나 그에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왜냐하면, 최초로 미션을 걸었던 성좌 이후로 문화가 자리잡혀서 다른 성좌들 역시 미션을 주기 전에 미리 ‘선금’을 넣고 시작하기 때문.
‘젠장······. 이번 미션은 조금 무리인데.’
만약 동료가 있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긴 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절대로 다른 누군가와 소원을 공유할 생각이 없었다. 정보를 독점해야만 자신이 소원을 빌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애초에 아라슈에게 조금이라도 이타심이 남아있었다면, 아라슈 월드의 정보를 다른 수십만의 도전자들에게 공유하여 그들의 생존율을 높였을 것이다.
그의 소원은 언젠가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여 성좌가 되는 것. 목표를 빠르게 이뤄내기 위해서는 다른 인간들 따위, 신경 쓸 겨를은 없다.
‘미션도 적당히 걸러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군.’
정말 말도 안 되는, 예를 들면 “그냥 죽어라.”라던가 “맨몸으로 용암에 뛰어들어.”라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미션이 주어지면 선금이고 뭐고 다른 성좌들이 재미 없다며 그런 미션 따위 취소하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렇듯 보스 사냥 및 던전 공략에 관한 미션은 선금을 받아버렸으므로 무조건 수행을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라슈는 그동안 모든 던전을 독차지하며, 스타포스를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인 덕분에 레벨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당장 제10 스테이지는 물론 제12 스테이지조차 손쉽게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아직 제10 스테이지의 최종 관문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테이지를 넘을 법하면, 꼭 자꾸 성좌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등장해서 미션을 걸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성좌는 굉장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들고 와서, 모두의 두 눈을 만족시킬 만한 미션을 걸어주었기 때문에 다른 성좌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또한 스타포스를 항상 후하게 쳐주는 데다가 그 미션 한번 깨고 나면 다른 성좌들도 보너스를 마구마구 쏴주는데 어찌 미룰 수 있겠는가?
만약 ‘선금’ 시스템이 없어서 거절을 할 수 있었다고 해도, 아라슈는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3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그는 이틀에서 사흘에 한 번씩 얼굴을 비추고는 했다. 아라슈는 반갑다는 듯 얼굴을 활짝 피고서 말했다.
“오셨군요! 이번에도 미션을 주시는 겁니까?”
[“아니. 그냥 후원했는데.”]
“그렇습니까?”
[“그래. 이제 슬슬 제10 스테이지는 좀 질리거든? 다음으로 넘어가자고. 거긴 어떨지 궁금하니까.”]
“······!”
드디어, 라는 생각에 아라슈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두 달이나 제10 스테이지에 묶여있었다. 여기서 스타포스를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여서 이미 다른 도전자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진 것까지는 좋았지만 결국 목적은 최종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것. 슬슬 위로 올라갈 때가 되었다.
다른 성좌들 역시 제10 스테이지의 컨셉이 질렸는지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럼 제10 스테이지의 최종 관문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좌 여러분!”
준비 과정은 별것도 없었다. 어차피 공략법을 전부 아는 데다가, 적정 레벨을 조금 오버한 상태였기에 위험할 일도 없었으니까. 사실 그 부분 때문에 최종 관문의 통과가 재미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도 들었다.
‘최종 관문에는 미션이 걸리는 게 나을 것 같단 말이지.’
아라슈는 그런 안이한 생각을 하며, 제10 스테이지의 최종 관문에 도착하였고.
{띠딕! 이미 다른 도전자가 최종 관문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루 뒤에 다시 와주십시오!}
그곳에는.
{제10 스테이지의 최종 관문이 최초 클리어되었습니다!}
{도전자: 사준, 제술, 귤루, 메이바}
{제11 스테이지가 개방됩니다.}
자신보다 먼저 최종 관문을 통과해버린, 왠지 모르게 낯익은 4인방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눈물까지 주륵 흘리며 서로를 부둥켜 껴안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아라슈는 생각했다.
‘언제?’
‘벌써?’
‘이렇게 빨리?’
‘그럴만한 수준은 되고?’
머릿속에 온갖 의문의 폭풍이 휘몰아쳤지만, 결국 현실은 간단했다.
‘나보다 먼저 제10 스테이지를 통과한 도전자가 나타났다.’
그래. 어렴풋이 불안감이 느껴지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무려 2개월이나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다른 도전자가 올라오기엔 충분한 시간.
어안이 벙벙해진 아라슈가 서둘러 상황을 파악하려고 할때, 그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채팅창에 메세지가 올라왔다.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말합니다 “흠···. 그럼 이제 저쪽이 1등인가?”]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말합니다 “어? 쟤들 방금 제11 스테이지로 올라간 거지? 저기 가서 미션이나 줘볼까.”]
분명 자신이 1등이다. 레벨, 가호성, 스킬, 숙련도,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1등.
그러나···. 스테이지에서 뒤떨어지기 시작하면, 결국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안돼, 안돼···!’
떡만둣국의 한 마디에 다른 성좌들 역시도 동요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즐거움을 찾는 이들이었고, 당장 제11 스테이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기도 했을 터. 심지어 떡만둣국이 미션을 주겠다고 말을 꺼내는 바람에 성좌들의 호기심이 강하게 동해버린 것이다.
‘누군가가 한번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다른 도전자들은 반드시 하루를 기다려야 해.’
즉, 그 하루 사이에 고정 시청 성좌를 저 4인방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의미.
그럴 수는 없다.
‘이건 조금 위험하겠지만······.’
아라슈는 허공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아직까지 채널을 나간 성좌들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이 그들을 붙잡을 마지막 기회.
“성좌 여러분, 기다려주십시오. 가장 앞서나가는, 흥미로운 방송을 보고 싶으십니까?”
성좌들이 그렇다고 말한다. 아라슈는 그에 활짝 웃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엘리베이터 시스템’을 이용하도록 해보죠!”
[붉은 가락의 인연이 말합니다 “뭐? 엘리베이터라니. 진심인거냐?”]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석공이 말합니다 “오···! 이건 또 참신한데?”]
[세 번 불러야 대답하는 귀가 말합니다 “재밌겠는데! 엘리베이터 시스템을 쓰는 도전자는 처음 본다고!”]
다시금 성좌들의 반응이 뜨거워진다. 그럴만도 했다.
엘리베이터 시스템.
한 번의 도전으로 무려 2개 이상의 스테이지를 올라갈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사실상 클리어가 불가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게도 ‘더럽게 어려워서’였다.
예를 들어 10에서 12로 엘리베이터를 탄다고 치면, 10스테이지와 11스테이지를 모두 합친 난이도에 추가로 2배나 더 난이도가 상승다. 대신에 추가 보상이 빵빵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오를 수는 있다지만······. 누가 이런 무식한 방법을 쓰겠는가?
하지만.
지금의 아라슈라면 가능하다. 제10 스테이지에서 오래 머물며 레벨과 장비를 빵빵하게 업그레이드한 채였고, 이미 제12는 물론 제13 스테이지까지 도전하는 것도 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
{엘리베이터 시스템을 사용하였습니다.}
{목표는 2단계 스테이지의 상승이 맞습니까?}
“그래!”
{엘리베이터 시스템이 채택되었습니다.}
{최종 관문으로 이동합니다.}
시야가 뒤바뀌는 것을 느끼며, 아라슈는 굳은 표정으로 장검을 쥐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생각하면서.
*
{제10, 11스테이지를 엘리베이터로 통과하였습니다.}
엘리베이터 시스템을 도전하는 건 생각보다도 훨씬 더 간단했고, 생각보다 훨씬 더 성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톡톡 튀는 센스와 보는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재치!
어디에서도 구경할 수 없던 아이템의 활용 방식과 다양한 스킬의 조화!
그리고, 남들은 전혀 할 수 없는 특이한 발상!
절대로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두 마리의 거대 보스의 습격에도 아라슈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으며, 갑작스레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기 시작했음에도 마치 어디로 가면 피할 수 있는지 아는 것처럼 침착하게 땅을 디뎠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언밸런스의 패턴이 툭 튀어나왔음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도전과 결과물.
쏟아지는 모든 몬스터와 보스를 쓰러뜨린 아라슈는 숨을 헉, 들이키고선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기합을 내지른다.
“으아아아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율.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이보다도 더 완벽할 수는 없었다.
{제12 스테이지로의 엘리베이터를 성공하였습니다!}
{최초로 엘리베이터 시스템을 사용하여,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눈앞에 수많은 업적이 떠오르며 어마어마한 양의 스타포스가 지급되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성좌들이 뜨겁게 반응해준다는 사실에 더욱 더 흥분되었다.
[영원한 감옥의 수감자가 5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말처럼 달리는 소가 말합니다 “미쳤어, 진짜 미쳤다고!”]
[불처럼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가 2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천년 묵은 홍삼이 말합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군! 정말 위대한 전사야!”]
[대지에 떨어진 달이 15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쏟아지는 후원과 메세지에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 지경.
아라슈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그래. 이거야.’
온갖 성좌들의 관심을 받으며 아라슈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래, 잠깐의 위기 정도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다.
어렴풋이, 그는 깨달았다.
‘나는 주인공이다.’
성좌들조차 모르는 비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전부 알고 있는.
유일무이한 주인공.
{제12 스테이지 ‘별이 저무는 지하철’로 이동합니다.}
{안전지대에 입장하여 모든 데미지와 피로가 회복됩니다.}
어느덧 정신을 차리니, 그는 제12 스테이지에 도착한 채였다.
밤하늘의 별이 아름다운 장소였다. 하늘을 가르며 떨어져 내리는 지하철 한 대. 그것이 바로 제12 스테이지의 무대. 이제부터 이곳에서, 자신은 또다른 활약을 펼칠 것이다.
···그럴 예정이었다.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말합니다 “재미있네. 또 보여줘.”]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50000스타포스를 후원했습니다.]
‘······어?’
5만?
순간 숫자를 잘못 셌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정말로 5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의 스타포스가 자신의 수중에 들어와 있던 것이다. 제아무리 성좌라 해도 스타포스는 자신의 격을 떼어내서 후원해주는 것이었기에 저토록이나 많이 뿌리지 않는단 말이다.
‘대체······?’
그러나 기쁜 것도 잠시. 그는 위화감을 느꼈다.
‘또 보여달라고? 뭘?’
갑작스레 가슴을 파고드는 불안감에 서둘러 입을 떼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메세지가 떠올랐다.
[“선금 보냈으니, 미션 건다. 이번에는 3단계 엘리베이터 해보자고. 성공하면 20만. 콜?”]
그 즉시.
채팅창이 터져나갔다.
성좌들이 흥분하여 마구잡이로 메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금색의 전기를 쥔 사내가 5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나도 선금 넣지! 성공하면 1만 추가!”]
[뾰족한 손을 가진 여인이 3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나는 성공하면 5000스타포스를 주도록 하겠다. 도전하겠는가?”]
[명치로 주먹을 후려친 격투가가 7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군! 불가능한 도전만큼이나 흥분되는 일은 없지!”]
[선 채로 죽은 사나이가 2500스타포스를······.]
끝없이, 정말 끝없이 어마어마한 양의 스타포스가 쏟아졌다.
성좌 모두가 바라고 있었다.
방금의 ‘전율’을 또다시 느끼게 해달라고. 불가능한 도전을 향해 나아가라고.
그러나······.
‘죽는다.’
만약 이 미션을 도전하면 무조건 죽는다.
그 사실을 성좌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라슈가 도전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이건······.”
[별처럼 빛나는 눈이 2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불가···능······.”
[어둠에서 반짝이는 보석이 4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그건 정말로 단순한 이유였기에, 아라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치챌 수 있었다.
‘재미있으니까.’
그제야, 아라슈는 깨달았다.
성좌들은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그들에게 ‘전율’을 선사했기 때문에.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재미있으니까.
그래서. 나의 채널에 남아있던 것뿐이었다.
애정?
그것은 마치 쳇바퀴를 열심히 제자리에서 돌리는 햄스터를 구경하는 정도보다도 못할 것이다. 하등한 존재가 발버둥을 치며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내키면 해바라기 씨를 하나씩 던져주는. 딱 그 정도 수준의 가치.
만약 병 들어서 죽으면, 마음은 정말 아프지만······.
다른 햄스터를 구경하면 된다.
‘나는···대체······.’
아라슈는 손을 벌벌 떨었다.
온 사방에서 느껴지는 성좌들의 시선이, 자신을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좌 바위의 틈에 스며든 가랑비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길을 잃은 달팽이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중심을 못 잡는 천칭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승리를 포효하는 하얀 늑대가 당신을······.]
[성좌 모서리를 타고 걷는 자가······.]
죽는다.
분명히 죽는다.
[설날에는 역시 떡만둣국이 말합니다 “하기 싫어?”]
그 사실을 알면서도.
“······도전, 하겠습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성좌 ■■■이 당신을 바라봅니다(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