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35화 (35/251)

< 성좌 ■■■이 당신을 바라봅니다(2) >

배틀로얄 롤-플레잉 서바이벌 아라슈 프로젝트 월드.

이름 정말 더럽게 길다.

<현재 세계의 시간 배속은 4.0179···입니다.>

시간 배속을 확인한 나는 이 세상을 둘러보았다.

배틀로얄··· 뭐시기. 줄여서 ‘아라슈 월드’는 수많은 세상을 짜집어놓은 듯한 독특한 생김새였다.

나선형으로 하늘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는 대지가 시야에 훤히 들어온다.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저 나선형의 대지는 맨 아래서부터 드넓은 초원, 용암 지대, 가시의 절벽, 유적지, 폐허가 된 도시, 지하철, 어두 컴컴한 동굴 등등의 세상이 순차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대지의 사이사이에는 마치···. 마치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이 ‘공간’ 그 자체를 구분해놓는 듯싶었다.

<이곳은 본래 주인공 ‘더 아라슈’가 만든 게임이었습니다.>

게임. 그 단어를 듣고 보니 확실히 게임처럼 생기긴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작스레 ‘아라슈 월드’에 현실이 덧씌워졌습니다.>

그런 내용이었다.

현실이 되어버린 아라슈 월드. 그리고 이곳에 끌려온 수많은 도전자들.

제1에서부터 제50 스테이지까지 준비되어있는 이 세계를 가장 먼저 끝까지 클리어한 자에게는 단 하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해시 태그 때부터 뭔가 수상쩍다 싶더라니, 설마 진짜 자기가 만든 게임이 현실이 되었을 줄이야. 마치 소설처럼 들리지만 이 세상 또한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이다.

“근데 게임은 지구에만 있는 게 아니었나?”

<지구와 비슷한 문명을 구축한 세계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

나는 천천히 하늘을 날아다니며 나선형의 세계를 보았다.

각 스테이지 뛰어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나는 비록 임시라지만 성좌가 된 몸이라 모든 스테이지를 한눈에 볼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각각 자신이 속한 스테이지 속 세상만이 보일 터.

“주인공은 어디에 있지?”

멀리서 보기엔 너무 멀어서 몸을 낑낑대며 앞으로 비행하자, 의뢰인이 말했다.

<채널 입장을 통해 원하는 화신에게 이동하는 것이 더욱 빠릅니다.>

“그러고 보니 스킬이 생겼던가.”

<그렇습니다. 당신은 현재 ‘임시’ 성좌로서, 모든 성좌의 권능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채널에 한해서는 스킬을 통해 구현해놓았습니다.>

“좋네.”

천천히 스킬의 목록을 확인해보던 나는 ‘채널 검색’ 스킬을 활성화하였다.

그러자.

눈앞에 수백, 수천, 수만, 아니···. 수십만의 채널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오···?”

모든 채널은 각각의 도전자를 의미하고 있었으니, 즉 아라슈 월드에는 최소한 수십 만의 도전자가 있다는 의미. 허공을 터치하여 맨 위를 살펴보자 ‘베스트 핫 픽 3!’라는 글귀와 함께 ‘시청 성좌’의 수가 천 명이 넘어가는 압도적인 1위가 눈에 띄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

[랭킹 1위 채널: 더 아라슈]

[시청 성좌: 2076]

다른 채널은 시청 성좌가 많게는 수십 명에서 기껏해야 백 명 남짓인 것을 생각한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치. 나는 그것을 터치한 다음 ‘채널 입장’ 스킬을 사용하였다.

그러자, 화악! 세상이 뒤흔들리는 감각과 함께 순식간에 시야가 뒤바뀌었다.

“윽···.”

마치 세상을 이동할 때와 같은 현기증에 머리가 띵하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 눈을 뜨자, 방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래로 시선을 내리깔자, 부글부글 끓는 용암 지대가 한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해당 지역은 제7 스테이지, ‘절망의 화산’입니다.}

{이곳의 테마는 ‘경쟁’.}

{과연 어떤 도전자가 가장 먼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용암 지대의 위에는 인간들이 서로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들이 ‘도전자’인 모양. 그리고 스테이지의 위쪽으로는 천사 하나가 날아다니면서 마이크로 무어라 크게 외치고 있었다.

-자아, 여러분! 드디어 하이라이트에 도달했습니다! ‘절망의 화산’의 끝이 거의 막바지로군요! 경쟁의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다섯 명의 도전자들!

제 7스테이지의 최종 관문, 용암의 외다리. 그곳에서는 다섯 명의 인원이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스테이지의 끝에 도달하기 전 마지막 결투를 하는 모양.

-가장 먼저 도착하는 도전자에게는 클리어 보상이 두 배! 과연 누가 1등을 할 것인가!

[중심을 못 잡는 천칭이 말합니다 “당연히 아라슈가 이기겠지”]

[웃는 반달이 말합니다 “나는 아라슈가 지는 걸 보고 싶은걸?”]

[승리를 포효하는 하얀 늑대가 말합니다 “절대로 아라슈가 이겨야 한다!”]

갑작스레 속속 떠오르는 메세지를 보며 나는 표정을 찡그렸다.

‘채팅창?’

더 아라슈의 채널에 입장한 순간부터 허공에 떠오른 반투명한 채팅창. 거기에서 성좌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태양을 집어삼킨 용이 말합니다 “전부 죽여라, 아라슈!”]

[떠나가는 조각배의 마녀가 말합니다 “머리통을 뽑고, 척추를 내게 바쳐라!”]

[여름 아래의 세상을 관조하는 늑대가 말합니다 “가장 용맹한 전사에게 내 이빨을 주겠노라!”]

···정말 하나같이 유치찬란한 닉네임들이었다. 게다가 말하는 꼬라지도 영 꼴불견이다. 나쁘게 말해서 그냥 초딩들 대화 수준이었고, 정말정말 좋게 포장하자면 셰익스피어의 희극 단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흐음······.”

나는 천천히 결과를 지켜보았다.

7스테이지에 최초로 도착한 선발대 100명.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 다섯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만약 다섯 명이 모두 개인이었다면 말이다.

-아아, 이럴수가! 네 명이 전부 한 팀이었군요. 여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해온 도전자 아라슈는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요!

천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안내 말이 떴다.

{도전자들에게는 ‘클래스’와 ‘레벨’이 존재하며, 또한 ‘스킬’이 존재합니다.}

{해당 도전자들의 클래스를 열람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아라슈를 포함한 다섯 명의 스테이터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먼저 아라슈를 적대하는 네 명의 한팀은 각각 사제, 궁수, 전사, 마법사라는 클래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레벨은 평균적으로 6.

그러나 아라슈의 레벨은 무려 9였다. 다른 모든 도전자보다도 앞도적으로 높은 수치. 게다가··· 클래스가 아주 독특했다.

“···‘별을 가르는 마검사’? 클래스 이름이 뭐 저래?”

{‘히든 클래스’입니다. 단 한 명만이 얻을 수 있으며, 구하는 방법 또한 극악입니다.}

그런데 그걸 아라슈가 해냈단다.

아마도 정보를 독점했을 터.

“진짜 별게 다 있네.”

생각해보자.

아라슈는 게임의 개발자였다. 즉, 이 게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다는 의미. 그런 아라슈를 어떻게든 죽음으로 몰아가기 위해서는 나에게도 그 정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주인공 사냥꾼 Lv.2’로는 세계의 모든 정보에 간섭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왜? 저번엔 봤잖아.’

[당시에는 ‘회귀’로 인한 세상의 변환점을 감지했을 뿐입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피올렌이 회귀의 지식을 사용할 때마다 내게 언뜻 보였던 게 전부였을 뿐, 그 세계의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했다.

즉, 저번처럼 ‘정보의 이점’을 이용해서 죽일 수는 없다는 의미.

정말 갈수록 태산이다.

내 고민이 깊어지는 와중에도, 위기에 몰린 아라슈는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천사가 우렁차게 외쳤다.

-아라슈 도전자!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레벨 6의 도전자 넷과 레벨 9의 도전자 한 명의 싸움. 잘은 모르겠지만 보통은 4명이 이기지 않을까 싶었는데,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다.

-앗! 저건 ‘락타락스의 물발톱’이로군요! 아라슈 도전자, 저걸 대체 왜 꺼낸···오오?! 이럴수가! 만타코어의 침액을 물발톱과 조합하였습니다!

{도전자 ‘더 아라슈’의 아이템 제조!}

{만타코어의 침액과 락타락스의 물발톱이 합쳐져 ‘플루텐 마비독 풍선’이 완성되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중계와 해설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저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싶을 때, 채팅창이 감탄사로 도배되었다.

[하늘을 가르는 검이 말합니다 “대단하군! 정말 영리해!”]

[절대목걸이의 제작자가 말합니다 “저건 내가 만든 조합법이지! 이걸 알고있다니, 아주 훌륭해!”]

[다시 담을 수 없는 물이 말합니다 “어떻게 저런 발상을!”]

[상상할 수 없는 꿈이 말합니다 “7스테이지의 도전자가 저런걸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게 뭔데 그렇게 대단하다고 말한단 말인가.

그런 내 의문은 정말 허무하게도, 결과가 증명해주었다.

양손에 아이템을 장착한 아라슈가 사방으로 가시를 휘두르자, 그것에 닿지도 않았음에도 다른 네 명의 도전자들이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한 것.

-플루텐 마비독 가시는 뜨거운 지대에서 공기 중에 녹아들어, 그것을 호흡한 생명체의 움직임을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과연 아라슈 도전자! 이 모든 사실을 예측하고서 미리 아이템을 준비했군요!

아라슈는 마스크 하나를 쓴 채로 가시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라슈는 허공에 손을 집어넣어서 아이템을 꺼내 네 명의 도전자를 속전속결로 제압해 나갔고, 결국에는 모조리 쓰러뜨리고 만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기승전결.

위기에 몰린 랭킹 1위는, 이번에도 기가 막힌 발상을 토대로 불리한 상황을 어떻게든 역전으로 끌고 나갔다! ···라는 완벽한 시나리오가 완성된 것이다.

당연히 반응 역시도 폭발적이었다.

-역시 아라슈 도전자!!

천사의 외침과 함께, 성좌들이 아라슈에게 ‘채널 후원’을 시작했다.

[크락션의 소음이 1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태양을 집어삼킨 용이 15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빛을 잃은 빛이 12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퇴역 장군 비빌타가 500스타포스를······.]

끝없이 뜨는 후원 메세지를 보고 있자니 정신이 멍해졌다.

스타포스? 저거 나도 있나?

{도전자들은 스타포스를 이용해, 도전자들은 레벨과 스텟을 올리거나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잔여 스타포스: 370]

“···에게?”

생각보다 훨씬 더 처참한 스타포스의 양.

<스타포스는 당신의 ‘마력’을 토대로 구현됩니다. 한번 사용하면, 마력이 소모되며 재충전 시 다시 스타포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스타포스는 당신이 자신의 지정한 ‘화신’이 던전 및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거나 퀘스트를 수행했을 경우 획득할 수 있습니다.>

“허.”

이런 시스템이 있을 줄이야.

놀랍기도 하고, 껄끄럽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아라슈는 보이지도 않을 성좌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성좌 여러분! 제가 50스테이지를 통과하고 성좌가 되면, 이 모든 신세는 반드시 갚도록 하죠!”

그 모습을 보며, 어쩐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부터 나는 모든 성좌의 주목을 받고있는 저 아라슈를 죽일 방법을 떠올려야 한다.

정보의 이점도 없다. 심지어 직접 싸운다는 선택지도 불가능. 그렇다면 결국, ‘채널 간섭’을 통해 주인공을 부순다는 선택지밖에 없었으나 한번 후원하기에도 처참한 370의 스타포스로는 뭘 해보기도 힘들었다.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스며들자, 나는 생각을 고쳐잡았다.

‘아니. 여태까지도 쉬웠던 사냥은 없었어.’

F랭크의 사냥꾼으로 살면서 나는 단 한 번도 ‘해볼 만한’ 사냥을 한 적이 없다. 도저히 이기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 적을 만난다면,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어떻게든 이용할 뿐이다.

내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어느덧 아라슈는 제7 스테이지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천사가 우렁차게 “마침내 1등이 정해졌습니다!”라고 외침과 동시에 빵파레가 터졌다.

1등의 보상이 정해졌으니, 이제 나머지 4명이 순차적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되는 상황.

최종 목적지의 바로 직전인 외나무다리의 입구에서 쓰러진 네 명의 도전자는 힘겹게 일어나더니, 애써 해독제를 먹고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때.

아라슈가 다리를 향해 손을 얹으며 말한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아라슈는 그 사실을 만끽하면서.

“여기서 제가 최초 클리어의 보상을 포기하면, 최종 목적지로의 유일한 입구가 사라져버린다는 ‘버그’가 있다는 사실!”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했다.

“1등의 보상을 포기하겠다. 그러니, 입구를 닫아라.”

직후. 다리가 마치 증발한 것처럼 사라지며, 네 명의 도전자가 용암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제7 스테이지의 합격자가 결정되었습니다!}

직후, 떠오르는 수많은 성좌들의 메세지와 후원.

[별을 달리는 말이 말합니다 “아주 통쾌하군! 그래, 모조리 죽여야지!”]

[별을 달리는 말이 1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온실 속의 독초가 말합니다 “한번 덤빈 놈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꺾어야지요.”]

[온실 속의 독초가 2000스타포스를 후원합니다.]

[칼을 가는 나뭇잎이······.]

정신나간 듯한 그들의 행각을 보며 나는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용케도 용암에 빠지지 않은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네 명의 도전자.

그리고 사이다에 미치고 환장하는 성좌들.

주인공을 죽일 수 있는, 꽤 그럴듯한 방법이 떠올랐다.

< 성좌 ■■■이 당신을 바라봅니다(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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