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좌 ■■■가 당신을 바라봅니다(1)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삼 개월이 지났다.
첼레스테에게 일대일 집중 교습을 해주며 자신 또한 검술 및 마법의 공부를 하느라 서담은 단 한 건의 사냥조차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서담쯤 되는 베테랑은 사냥을 하고 싶을 때 해도 문제는 없어서, 테일러가 같이 안 다녀준다고 심통이 난 것만 제외하면 문제는 없었다.
최근 삼 개월 간 그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스킬 ‘백색검법(S)’의 제2초식이 개방되기 직전입니다.]
백색검법의 제1초식은 ‘자아성찰’. 스스로 하나의 도화지라고 생각하고서, 자신의 한계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어떤 검을 사용하면 좋은지, 어떤 검술을 사용하면 좋을지, 어떤 보법, 어떤 호흡까지도.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악한 순간 제2초식이 개방된다.
요즘 들어서 서담이 검을 자주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몬스터를 사냥할 때는 에테르 블레이드가 가장 최고인 만큼 이것을 더욱 자주 수련해야만 했다. 그래서 최근 밤낮으로 검을 휘둘러댔더니 드디어 성과가 보이기 시작한 것.
또한, 그런 서담에게서 검을 배우는 첼레스테 역시 무지막지한 속도로 검술이 성장하고 있었다. 서담과는 달리 마땅한 검술이 스킬로 등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알머스 가의 검술을 베껴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이 된 것.
현재 서담의 신체 능력은 거의 D랭크에 육박한 수준이라, 첼레스테와 대련을 한다면 가볍게 제압을 해야 정상일 텐데 오히려 F랭크 시절 때보다도 상대하는 게 더욱 힘들어졌다.
쩌억!
“(윽!)”
목검이 터져나가며, 첼레스테가 나가떨어지자 서담은 땀을 훔쳤다.
물론, 힘들어졌다고 해서 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말로 조금 힘들어진 게 끝이지만, 아무튼 그게 첼레스테가 성장했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아파요.)”
“(원래 맞으면서 크는 거야.)”
“(세월을 정면으로 맞아버린 어른들이 하는 말 같아요.)”
“(세월은 모르겠고 팩트는 정면으로 맞은 거 같네···.)”
새해가 밝았고, 이제는 서담의 나이도 30대가 되었다. 초능력이 없는 헌터는 슬슬 은퇴를 해야 하는 시기. 그러나 서담은 20대 초반의 전성기 때보다 오히려 훨씬 몸 상태가 좋았다. 심지어 테일러의 말에 의하면 근육도 훨씬 예뻐졌으며, 얼굴도 왠지 모르게 젊어지고 피부도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테일러 역시 서담과 동갑이었으나, 얼굴만 보면 대학생이라고 해도 누구나 믿고 넘길 정도로 동안이었다. 오히려 나이를 얘기해도 믿지 않을 정도로.
이건 에테르를 극한까지 다루는 S랭크의 초능력자들에게서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유화(幼化)현상이었는데, 서담에게서도 마력의 효과로 인해 그 현상이 똑같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다만 서담의 마력은 아직 D랭크의 수준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S랭크의 초능력자들과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다는 것이 독특한 점이었다.
“(이제 좀 쉬자. 너도 오늘부터 파견 나간다지 않았어?)”
“(네.)”
휴식하자는 말에 첼레스테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구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틀었다.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강제적 라이벌이 된 사나기가 대련을 하는 영상을 자주 틀어보곤 했는데, 처음엔 서담이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공략법을 찾아주기 위해 한두 번씩 틀던 것을 요새는 스스로 자주 틀어보곤 했다.
“(오늘도 영상 올라왔네요.)”
사나기는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나름대로 몇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였는데, 얼굴도 예쁘장하니 사납게 생겼고 초능력도 출중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검도하는 영상을 줄곧 올렸는데, 그건 모조리 첼레스테의 먹잇감이 되었다.
멍하니 영상을 보던 첼레스테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어.)”
“(···제가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요 근래의 첼레스테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지내고 있었다. 처음 체육관에 왔을 때 보았던 세상사 흘러가든 말든 그저 살아가는 듯한 무감정의 그 꼬마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당장이라도 검술 토론회가 개최되어, 사나기와 맞붙고 싶다는 그 기대감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첼레스테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서담은 백색 마녀의 도서관을 활성화하여 책을 읽었다.
지난 삼 개월간 마법 역시도 일취월장했는데, 재능은 비록 없었지만 마녀의 마법은 몸에 새겨지기만 하면 누구라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설명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비비안타에서는 고등학교 수준이었던 마법이 마녀는 중학교 수준의 공부만 하면 배울 수 있다고 설명하면 좋을 것이다.
덕분에 서담은 ‘1단계’ 마법을 이제는 꽤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검술과 마법 모두 성장이 상당히 더뎠다. 다른 초능력자들은 순수하게 에테르를 몸에 투약하거나, 혹은 다른 세계의 검사와 마법사들은 수행을 하는 것으로 능력을 단련할 수 있지만 서담은 그게 불가능했다. 애당초 그의 한계치가 F랭크였기 때문. 거기서 주인공을 사냥하는 것으로 한계치를 늘리고 있을 뿐이지, 레벨 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한계치를 늘릴 수는 없었다.
검술 토론회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첼레스테가 하필이면 이 시기에 파견 예정이 잡혀버려서, 어차피 더 가르치는 것도 무리였다. 이 시기를 타서 한 번 더 의뢰를 갔다 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백색 마녀의 도서관을 통해 마법서적을 읽고 있자니, 첼레스테가 샤워를 끝마치고 돌아옴과 동시에 테일러가 체육관에 방문하였다.
“너 또 멍때리고 있냐? 그 화분은 또 맨날 들고 다니고.”
최근 서담은 테일러가 선물해준 화분을 애지중지 아끼며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는데, 테일러는 그 점에 뿌듯해하면서도 영 마음에 들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왜 마음에 들지 않느냐면···.
“그냥 병신같잖아.”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너, 이번 파견 안 귀찮겠어?”
원래 첼레스테의 이번 파견은 따로 선임자를 구하지 못해서, 유서담을 데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체육관에 종종 놀러오던 테일러가 이 이야기를 듣더니 손을 번쩍 든 것.
이유는 단순하게도.
“귀족들 순회 버스 태워주면, 돈 존나 벌잖아?”
첼레스테는 D랭크 1호봉의 헌터로서, 슬슬 ‘실적’을 보고해야만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만약 제때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헌터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 그래서 첼레스테는 울며 겨자먹기로 실적을 한번에 쭉 올리기 위해 ‘순회’를 준비했다.
순회란 C~B랭크의 던전을 유능한 선임 헌터들과 함께 도는 것을 말하는데, 온실 속의 화초에게만 주어지는 아주 특별한 엘리트 코스라는 의미.
안전하게 B~A랭크의 헌터들과 함께 던전을 공략해도 어느 정도 ‘버스’ 행위로서 공적이 인정되기 때문에 요즘에도 많은 길드에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서담이나 테일러로서는 공적 걱정할 새도 없이 정신없이 사냥하던 나날을 보내왔기에 “세상 참 좋아졌다?” 같은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첼레스테는 테일러 나인과 함께 코스탄티니 가문에서 파견나온 엘리트 헌터들과 당분간 던전 순회를 돌 예정이었다. 그녀는 묘하게 테일러가 자신과 함께한다는 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듯싶었지만, 무려 S랭크의 헌터가 도와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나저나 네 일거리 내가 뺏어도 되는 거냐?”
“사실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상관은 없어.”
“그러냐.”
테일러는 어깨를 으쓱 하더니 말했다.
“그런 이유로 잠깐 집 좀 비울게.”
“···원래 내 집이거든.”
“누나 없다고 외로워하지 말고. 아, 참. 그리고 이번 건수 끝내면 바로 잠실로 내려가서 처리할 일 하나 더 있거든. 좀 오래 비울 거 같다야.”
잠실?
그러고 보니, 이번 검술 토론회도 한국의 잠실에서 열린다는 점을 생각해낸 서담은 고개를 갸웃했다.
‘테일러는 검을 안 쓰니 토론회와 관계는 없으려나.’
*
일전에 기형던전 하나를 통째로 독식한 덕분에 나는 꽤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겼었다.
1등급의 에테르 코팅 슈트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은 이제 몇 개월간 생활비가 간신히 남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꽤 의미 있는 투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럴 거다. 슈트는 원래 헌터들이 제일 최우선적으로 구하는 물건이니까.
3등급의 슈트는 검은색의 디지털 회로 셔츠 위에 조끼를 걸치고, 세 겹의 벨트를 맨 다음 그 위에 방호복과 코트를 걸쳐야만 했는데, 2등급의 슈트는 그런 탈의를 어느 정도 완화해주면서 심지어 성능은 몇 배로 껑충 뛴다.
그렇다면 1등급은 어떠한가.
아예 체육복만 입은 채로 검은색의 가방에 양손을 넣어서 몸에 부착하기만 해도 자동으로 슈트가 입혀진다. 그야말로 최첨단 과학기술의 정수. 단점이 딱 하나 있다면, 슈트를 입고 있는 내내 지속적으로 에테르가 소모되어 돈이 술술 새어나간다는 점이지만 그래도 휴대에 용이하면서 방어력 및 유틸이 어마어마하게 상승하기에 충분히 투자를 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당장 돈보다는 내 목숨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돈이 더 중요하다면 할 말은 없다만.
이 1등급의 슈트는 온도 조절은 물론 간단한 디지털 기능까지 있었으며 가격대에 따라서 슈트 자체에 소형 건이나 블레이드, 미사일이 부착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니 헌터들이 슈트 하나에 죽고 사는 이유가 다 있었다.
내의 슈트는 전체적으로 검은색에 광택을 띄고 있었는데, 마치 성인 남자의 몸에 먹물을 칠해놓은 듯한 인체공학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디자인 자체는 심플했지만 그런 심플함의 멋이 존재했다.
거기에 메가 슈터를 등에 장착하고서 가볍게 제자리에서 점프를 하자, 확실히 몸이 날렵해진 게 느껴졌다. 1등급의 슈트는 어지간한 일반인이 장착해도 F랭크의 헌터 수준의 능력치를 보여줄 정도로 힘과 속도 역시도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화분에다가 인지 저하 마법 및 방법 마법을 걸어서 에테르 금고 속에 잘 숨겨두는데, 화분에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 가···?
“돈 벌러 간다.”
-물질은 모두 덧없어···.
“···그 목소리로 그런 말 안 하면 안 되겠냐?”
-혼자 있으면 무서워···.
“그렇게 말해도 데려갈 수는 없어.”
저 힘 없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괜시리 기운이 빠진다. 화분을 적당히 어르고 달랜 뒤 나는 의뢰인을 향해 말했다.
“다음 의뢰 준비해줘.”
<알겠습니다.>
최근 나는 화분 때문에 상당히 마음이 급해졌다.
재료를 한시라도 빨리 구해와서 꽃을 피워야만 하는데, 그 시기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시들어버린다는 도서관의 글귀를 읽어버렸기 때문. 무엇보다도 ‘정령’이라는 존재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건 진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계를 꽤 자주 왕복하면서 꽃을 개화시킬 방법을 수소문할 생각이었다.
떠오르는 목록을 보며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음······.”
세계는 넓고, 세상은 많았으며, 주인공 역시도 많았다.
“추천 목록에서 고르면 레벨 보너스가 있댔지?”
<그렇습니다.>
“그럼 이걸로 하자.”
가장 위쪽에 떠있는 추천 목록 중 하나를 클릭하자, 메세지가 떴다.
#내가_만든_게임이_현실이_되었다
#퓨전 #성좌 #인방 #성장 #전율
<지금 바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메가 슈터를 꼭 붙든 채 고개를 끄덕이자, 순식간에 시야가 흐릿해졌다.
[73레벨의 주인공 ‘더 아라슈’의 세계, 배틀로얄 롤-플레잉 서바이벌 아라슈 프로젝트 월드로 이동합니다.]
[10···9···8···.]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세상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가, 재구성이 완료되었고.
눈을 뜨자.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 아래로, 드넓은 대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뭐, 뭐야!”
그렇다.
나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슈트에 비행 기능은 없었고, 결국 나는 당황하여 허공을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으나······.
‘어라?’
이상하게도 낙하를 할 때 느껴지는 그 감각이 없었다.
마치, 자연스레 부유를 하는 것처럼.
[당신은 ‘케플록 성운’의 ‘성좌(임시)’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현재 상태는 ‘영체’이며 현실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
“······성좌?”
직후.
허공에 의뢰인의 메세지가 아닌, 전혀 다른 종류의 다른 메세지가 떠올랐다.
{혜성처럼 등장한 성좌 유서담님! 아라슈 프로젝트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영겁의 세월을 살며 삶이 지루하셨나요}
{당신을 대표할 수 있는 화신을 원하시나요?}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당신을 위한 화신에게 직접 투표하세요!}
띵!
[스킬 ‘채널 고정(임시)’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채널 간섭(임시)’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채널 검색(임시)’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채널 후원(임시)’를 획득······.]
연달아 뜨는 메세지를 보며 나는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성좌라고?
그러나 내가 현실을 채 깨닫기도 전에, 메세지 하나가 나를 현실에서부터 강제로 끌어냈다.
{참고로, 성좌 여러분은 현실에 직접 간섭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럼 주인공은 어떻게 죽이는데?
< 성좌 ■■■가 당신을 바라봅니다(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