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능의 개화(4) >
첼레스테는 걷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단순히 걷는 법이 아닌, 굳이 한자를 섞어가며 보법(步法)이라 붙인 이것은 모든 무술가들이 기본적으로 배우는 스텝과도 비슷한 종류였다. 그러나 스텝과는 다르게, 보법은 리듬을 타지 않았다.
걷는 법.
정말로 단순하다.
한쪽 발로 몸을 지탱한 채, 다른 한쪽 발을 쭉 내뻗어 발을 딛은 후, 한쪽 발을 끌어와 앞으로 내뻗어 다시 딛는다. 그 과정에는 무릎을 굽히고 접고, 발 앞꿈치를 정면에서 바깥쪽으로 틀어지게 먼저 딛는다, 등의 세부적인 과정이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보법은 이 모든 과정을 배배 꼬아야만 했다.
무술의 기본은 몸의 움직임이고, 그 움직임의 바탕은 발동작에 있다. 즉, 발동작이 몸 전체의 움직임을 결정한다는 이야기.
정말로 단순히 발바닥을 옆으로 틀고, 발 뒷꿈치를 먼저 딛거나 평소보다 조금 더 옆으로 내딛었을 뿐인데도 첼레스테는 땀을 비오듯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저 꼬맹이 왜 걷는 법이나 연습하고 있는 거냐?”
“몰라. 유서담 형씨가 가르치는 모양인데?”
유서담은 옆에서 첼레스테가 걷는 법을 지켜보았다. 일전의 데뷔전 이후 금강 체육관에 등록한 헌터 지망생들이 상당수 있었기에 꽤 많은 인원이 첼레스테의 ‘걷기 연습’을 볼 수 있었으나 그 누구도 이해를 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조금 독특한 훈련을 하나보다, 싶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첼레스테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당장 검을 휘두르기도 바쁜 마당에 왜 이런 걷는 법 따위를 연습 해야한단 말인가. 그것도, 일반적인 걸음보다 몇 배는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걸음을.
그런데.
보법을 연습하고서, 2주가 지났을 때.
첼레스테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어······?’
“음?”
김관장님과의 가벼운 대련 도중, 저도 모르게 보법을 사용한 것. C랭크의 강체 능력자인 김관장의 검은 D랭크의 첼레스테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빠른 속도였고, 어지간해서는 반응속도에 기댈 수조차 없이 예측을 하고 막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번에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 뒤로 물러날 수 있던 것이다.
“(첼레스테 양. 움직임이 괜찮아졌구먼? 강체의 수련에 효과가 있던 거요?)”
김관장은 그리 말했지만 첼레스테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강체는 아주 조금씩 발전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건 순전히 ‘보법’의 덕이었다.
그녀는 몰랐겠지만 이것은 소드 마스터, 굳이 지구식 랭크로 따지자면 SS랭크급의 실력을 갖춘 하렌 알머스의 SS랭크 스킬을 아주 극히 일부지만 훔쳐 온 것이었고 그렇기에 단순히 흉내를 낼 뿐임에도 이 정도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당연하지만 원본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수준의 보법이었다. 원본이 SS랭크라면 서담이 베껴온 것은 고작해야 E랭크에서 D랭크 수준.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기동성’ 계열의 D랭크 초능력을 고작 2주 훈련했다고 개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였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첼레스테는 저도 모르게 흥분하고 말았다.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성취감. C랭크의 강체 능력자를 상대로도 공격을 회피할 수 있는 기동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검을 쭈욱 뻗었고.
“앗···!”
어색한 보법이 몸을 따라주지 않아, 발이 꼬여서 넘어지고 말았다.
*
첼레스테는 원래도 훈련을 꽤 즐겨 하는 편이었다.
이른 나이에 E랭크의 강체를 각성한 이후, 훈련을 할 때마다 그 성취도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게 보였으니까.
굳이 수치를 따지자면 10에서 11, 그리고 12에서 13. 천천히, 한 단계씩. 남들이 제자리에서 머물 때 그녀는 조금만 노력을 해도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었고, 덕분에 첼레스테는 한때 정신없이 수련에 매진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성취도가 깨지게 된 날이 있었으니.
어른들이 제멋대로 정해버린 라이벌, ‘오카모토 사나기’와의 대련이 문제가 되었다.
오카모토 사나기. 스물의 나이에 C랭크의 강체 능력자가 된 여인.
첼레스테는 1년 전, 자신이 E랭크에 사나기가 D랭크이던 시절 그녀와의 대련에서 대차게 패배했고 그날 이후 체육관에 틀어박혀 밥 먹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수련에 매진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성장 속도는 똑같았다.
물론, 꾸준히 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축복을 받은 재능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소용 없었다.
사나기 역시, 자신과 똑같은 속도로 성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16에서 17, 그리고 18로 성장을 하고 있다면 사나기는 26에서 27, 그리고 28로 성장을 하였다. 똑같은 성장 속도.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격차.
그것이 그녀에게 처음으로 ‘벽’이 되었다. 분명 그녀와 자신의 재능은 엇비슷한 수준인데. 단지 먼저 태어나서, 먼저 강체를 깨우쳤다는 이유만으로.
라이벌이 되었음에도, 첼레스테는 영원히 그녀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의기소침해진 첼레스테를 보다못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검술 사범을 초청하여 수많은 가르침을 내려주었으나, 사나기 역시 검술명가로서 첼레스테와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있었기에 결국에는 원점이었다.
강체의 성장 속도는 분명히 둘 다 똑같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강체가 아닌 검술로 승부하면 되지 않겠는가? 사나기는 첼레스테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강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검술만큼은 검술명가라는 이름이 아깝게도 첼레스테보다 형편이 없었다.
첼레스테의 눈에 사나기의 검술은 단순무식하게 힘과 속도만을 믿고서 붕붕 휘둘러대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던 것.
그러나 그 힘과 속도의 차이가 너무나도 압도적이여서, 단순하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이겨내는 게 불가능했다.
따라잡을 수 없다. 그것이 못내 분했으나, 현실이었고.
그 현실을 받아들였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힘과 속도의 차이를 극복해낸 사람을 만났다.
F랭크의 신체 능력으로 D랭크의 강체를 가진 자신을 단순히 검 하나로 압도했던 유서담. 그를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벽을 따라잡을 방법이 생겼다.’
세상 사람들은 오로지 초능력자가 가진 ‘초능력’만을 재능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초능력이 생기기 이전 스포츠에도 분명히 재능은 존재했다. 현 시대에 들어 초능력에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을 뿐.
검술의 재능.
오로지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르고, 휘두를 뿐이었던 첼레스테에게 그 재능이 꽃 피울 기회가 지금 이 순간 주어진 것이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예전처럼 삭막한 마음으로, 건조하게 검을 휘두를 때와는 달랐다.
유서담에게서 배우는 모든 것들은 틀에 꽉 박혀있던 첼레스테에게는 전부 신비로운 것들이었다. 걷는 법, 숨 쉬는 법까지의 사소한 것들조차. 그녀에게는 그저 신세계였다.
“(몸은 좀 괜찮은게요?)”
벌써 늦은 새벽이다. 다른 지망생들은 모두 돌아가고 없는데, 첼레스테만이 남아있었다. 김관장은 원래 체육관에서 생활해서 누가 남아있든 상관없다지만, 무리를 하는 그녀가 걱정이 되어 다가왔다.
벤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첼레스테에게 물병을 건네준 김관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근 그녀는 김관장이 보기에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지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아니 오히려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더욱 힘이 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 점이 퍽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묵묵히 물을 받아 마셨다. 오늘은 유서담이 자리를 비웠다. 그는 분명 헌터였는데, 최근에는 던전에 거의 가지 않은 채 체육관과 독서실을 왕복하며 지내고 있었다. 김관장이 “너 그러다 지갑 거덜나는 거 아냐?”라고 묻자 서담은 씨익 웃으며 일전에 던전 하나를 독식해서 걱정 없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독서실이라니······.’
학벌이 좋은 헌터도 분명히 있긴 있으나, 대부분의 헌터는 공부에 학을 뗀 편이었다. 사냥에 필요한 필수적인 전문 지식이 아니라면 기초 상식을 제외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유서담은 지식이 여타의 헌터보다 훨씬 풍부한 편이었고 첼레스테가 생각하기에 머리도 꽤 좋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역시 헌터에게 독서실은 뭔가······. 굉장히 어색한 장소였다.
‘대체 거기에서 뭘 공부하시는 거지?’
물어봐도 그냥 수학 비스무리한 학문을 공부한다고 답해줄 뿐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않았다.
“(저···.)”
“(음?)”
첼레스테는 고개를 들어 김관장을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줄곧 궁금하던 점이 하나 있었는데, 본인들에게 물어보기는 썩 꺼려졌던 그 의문.
“(정말로 저희 아버지를, 유서담 헌터님이 이긴 적이 있는 건가요?)”
자신의 아버지는 비록 은퇴했지만 그래도 SS랭크의 헌터이다. 도저히 F랭크의 헌터인 유서담이 이기는 광경을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그 질문을 듣고서 김관장은 무슨 질문인지를 깨닫고서 헛웃음을 쳤다. 하긴, 본인들에게 직접 묻기는 꺼려질만도 했다. 그렇다고 남의 입으로 말하기도 그랬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듣겠거니 싶었다.
“(그때가 벌써 8년 전이었나.)”
S랭크의 최상위권 초인, 살바토레 코스탄티니는 F랭크의 헌터 유서담을 비롯하여 총 12명으로 팀을 이뤄서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폐화된 땅의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돌아다니고는 했는데, 살바토레는 쉬는 시간마다 다른 초능력자들에게 대련을 요청하고는 했다.
그는 사람을 능력으로 차별하지 않았다. 반대로 말해서, S랭크의 힘을 가졌음에도 F랭크의 헌터인 유서담에게도 진심으로 결투를 신청했다.
“(결과는 뻔하게도 99전 99패. 결과적으로, 유서담은 대련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지.)”
“(그럼······?)”
설마 유서담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쳤나 싶었을 때, 김관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거의 막바지였지. 몬스터들이 새어 나오는 게이트를 봉쇄하기만 하면 됐거든. 그때, 최악의 빌런 ‘커스 바이러스’가 등장한 거요.)”
커스 바이러스라 명칭 된 SS랭크의 초능력자는 당시 ‘저주’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전 세계에 흩뿌리고 다니면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그 커스 바이러스가 하필이면 유서담의 팀이 향하던 목적지에 숨어버린 것.
당시 커스 바이러스는 살바토레 코스탄티니와 가장 먼저 조우했고, 그의 딸에게 저주를 내렸다.
“(네······?)”
즉, 첼레스테는 8년 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주에 걸렸었다는 의미.
“(저주는 간단하게도 대상의 수명을 서서히 빼앗아서, 일주일 뒤에는 죽음에 이르게 되었지. 초인의 상태에 따라서 버티는 정도는 달랐겠지만······. 첼레스테 양은 당시 9세였고 초능력도 없었으니 아마 위독했을 거요.)”
그때.
S랭크의 최상위권 초능력자였던 살바토레는 그날 ‘폭주’라는 능력을 각성하였다. 자신의 능력치보다 월등히 높은 힘을 얻게 되는 그 능력은 훗날 ‘SS랭크’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그날이 바로 살바토레가 지구상 단 37명밖에 없는 SS랭크의 초능력자가 된 계기였다.
그러나, 폭주의 능력에는 단점이 있었다.
피아를 전혀 식별하지 못한 채, 무차별적으로 눈에 띄는 생명체를 모조리 공격해버린다는 것이었다.
항상 유쾌하게 웃고만 다니던 살바토레가 그토록이나 무서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말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당시 첼레스테에게 저주를 건 빌런 커스 바이러스를 죽여버리면 그녀를 포함한 저주에 걸린 피해자들이 모두 죽어버리기 때문.
‘살바토레가 여기까지 쫓아오면 우리는 괴인과 싸울 수 없어!’
‘젠장, SS랭크의 아군을 상대하면서 SS랭크의 빌런과 동시에 싸운다니. 승산이 제로야.’
‘지원군은 언제 온다는 거야!’
‘온다고 해서 그놈들이 막을 수나 있을까?’
‘만약 살바토레가 오면 무조건 커스 바이러스를 죽이려고 들 게 틀림없어. 그래, 죽일 수 있겠지. 그 힘이면 가능해. 하지만···.’
누군가가 말하기 싫은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냈다.
‘폭주가 끝나고, 자신 때문에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 과연 그가 정상적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절대로 안 된다.
즉, 당시 작전을 수행 중이던 11인의 헌터들은 SS랭크의 능력치를 지닌 살바토레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면서 동시에 SS랭크의 빌런 또한 죽이지 않고 제압해야만 한다는 무지막지한 임무를 떠맡게 된 것이다.
불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잠자코 있던 유서담이 말했다.
‘제가 살바토레 씨를 막아볼게요.’
‘······뭐?’
이 자리의 유일한 F랭크의 헌터. 그러나 그 누구도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비록 무능력자였지만, 실력 하나로 이 자리에 서 있었으니까.
또한, 누구보다도 판단력이 좋은 헌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자리의 누구도 유서담이 살바토레를 막고서 버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유서담이 자신을 희생하려는 것이다’라고. 그렇게만 되면 그들은 빌런을 성공적으로 제압하고서 살바토레 역시 제압한 뒤, 단 한 명의 사상자만을 낸 채로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었다.
‘······버티고만 있어.’
‘그럼, 우리가 재빨리 그 개자식을 제압하고서 돌아갈 테니까.’
‘둘 다 살아만 있으면, 잽싸게 다녀와서 어떻게든 해줄게!’
그렇게 11인의 헌터는 성공적으로 빌런을 제압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커스 바이러스의 초능력을 강제로 무력화하여, 전 세계에 퍼진 모든 저주를 해제시키는 것까지 성공한 그들은 빌런을 살해한 뒤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무 늦었다.
빌런을 살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일주일. 그 시간 동안, 유서담이 버티고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유서담의 신호를 추적하여 시체라도 회수하기 위해 달려갔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사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살바토레를 기절시킨 유서담이 그곳에 홀로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살바토레를, 제압한 거야?’
‘운이 좋았어. 마침 발전소가 근처에 있어서······.’
유서담은 살바토레를 상대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서 이 자리에 수많은 장비를 설치하였고, 싸움의 모든 수를 계산하였으며 심지어 그조차도 부족해서 근처에 있던 발전소 하나를 폭발시키고 탱크까지 사용했다고 했다. 초능력자를 무능력자가 이길 수 없으니, 기술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그리 말했으나 그 말이 크게 와닿는 이는 없었다.
그저, F랭크의 헌터가 SS랭크의 폭주 능력자를 제압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김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따지고 따지면, 유서담이 첼레스테 양의 은인이 되겠군.)”
“(그런···그. 저는 전혀, 몰랐어요···.)”
자신도 몰랐던 사이에, 자신을 위해 수많은 헌터들이 목숨을 걸고서 싸웠다는 이야기는 정말로 처음 들어보았다. 첼레스테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김관장이 말했다.
“(그럴 만도 하지. 당시의 일은 비밀로 묻혔거든. 알다시피, 폭주 능력자가 세간에 썩 이미지가 좋지는 않으니까요. 살바토레의 근간은 그 당시 흔들려서는 안 되는 위치였거든. 뭐, 정치적인 이야기니까 이건 넘어가도록 하고.)”
“(네······.)”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는 없수다. 유서담이도 당시의 일이 있고서 살바토레 그 양반에게 합당한 보상을 받았으니까.)”
거기까지 이야기한 김관장은 전화를 받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첼레스테는 여전히 벤치에 앉은 채 멍하니 생각을 정리하였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은인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던가.
‘미쳤어. 내가···. 보수를 주고, 누굴 고용한다고?’
깊은 자괴감의 늪에 빠져든 채로, 첼레스테는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기를 한참, 체육관의 문이 열리며 검은색의 허름한 패딩을 입은 서담이 한쪽 손에는 화분이 들어있는 케이스를, 한쪽 손에는 비닐 봉투를 든 채로 어슬렁어슬렁 들어왔다.
“(와. 너 아직도 이러고 있냐?)”
“(···네.)”
“(그래? 아이스크림 먹을래?)”
“(아뇨.)”
그 단호한 말에 서담은 검은색 봉투를 흔들다가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그것을 내렸다.
“(그래···. 나 혼자 두 개 먹어야지.)”
“(아뇨. 밥 먹으러 가요. 제가··· 뭐라도. 뭐라도 좋으니까 맛있는걸로 사드릴게요. 레스토랑? 뷔페? 랍스터? 스테이크? 어떤 게 좋으세요?)”
“(······?)”
서담은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 새벽 3신데···?)”
하지만 첼레스테는 기어이 서담에게 뭘 먹이고 싶다면서 샤워를 하러 후다닥 달려갔다.
"쟤가 왜 저러지?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해는 서쪽에서 뜨지 않아···.
"···말이 그렇단 거지."
-말이 되지 않아···.
"이런 개같은 화분이 진짜."
< 재능의 개화(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