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능의 개화(2) >
한국은 택시 문화가 참 제대로 발달해 있다. 택시 정류장이 있는 나라는 정말로 흔치 않다. 그래서 테일러 나인은 한국을 참 좋아했다. 택시를 타고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였기에.
창밖으로는 빌딩 숲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광경을 보지 않고서 핸드폰을 톡톡 두드렸다.
[테일러 나인: 미친놈]
[테일러 나인: 뭐 어디 갔다오자마자 바로 체육관에 틀어박혔냐?]
[유서담: ㅇㅇ]
[테일러 나인: 아니 어딜 갔다왔는진 말해줘야지]
[테일러 나인: 야]
[테일러 나인: 씹냐?]
[테일러 나인: 씨발새끼]
읽었음을 확인한 ‘1’이 사라지지 않는다. 대충 저 할 말만 하고서 스마트폰을 내려놨을 게 뻔하다. 몇 년 알고 지낸 탓에 그 성격은 알고 있었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슬그머니 미소가 올라갔다. 몇 년 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던, 공백기가 너무 길었기 때문일까. 이런 식으로라도 연락을 하면서, 가까이에서 서로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으로도 충분했다.
“음···. 여기서 내리면 되겠수? 외국 처자.”
“Okay~ 카드로 계산되죠?”
그녀는 한국어를 썩 유창하게 하는 편이었다. 러시아 토박이의 외모를 가진 그녀였기에 사람들은 괜히 눈만 마주쳐도 말을 버벅이고는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꽤 익숙해진 참이다.
택시에서 내린 테일러는 선글라스를 깊게 얼굴에 걸쳤다.
최근 그녀는 한국 내에서 꽤 얼굴이 알려진 채였는데, 로스트 데이 사건이고 뭐고 그런 건 상관없이 단순히 외모가 화려해서였다. 사람들은 그녀가 언론에 나와서 대규모 길드인 로스트 데이를 향해 시원스레 막말을 하는 데에 환호를 했고, 덕분에 여러 TV프로나 라디오에 초대를 받기도 했다.
‘이거 원. 연예인도 아니고.’
이런식으로 얼굴이 알려지는 건 꺼려하는 테일러이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뛰어다닐 정도로, 이번 건에 대해서는 결코 놓고 싶지 않았다. 그걸 유서담은 아는지 모르는지.
“잠시만요, 테일러 나인. 긴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응?”
입에 풍선껌을 하나 물고서 방송국 건물로 향하려던 테일러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검은 정장의 사내 두 명을 보고서 희미하게 미소를 띄웠다.
“이번엔 좀 정중하네?”
그들의 정장에는 로스트 데이의 길드 마크가 붙어 있었다. 그녀가 언론에 나와서 로스트 데이를 디스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꽤 테일러에게 자주 찾아오곤 했는데, 대부분은 협박을 하는 어조였고 그래서 대차게 열을 낸 다음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한번은 S랭크의 헌터 네 명이 찾아오기도 했었는데, 그럴 걸 대비해서 아예 사람이 많은 곳으로만 다니던 바람에 그들은 오히려 ‘로스트 데이에서 헌터를 보내 사람을 위협한다!’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헌터가 아닌 제대로 된 사무직이었고, 한 명은 그중에서도 로스트 데이의 ‘부길마’라는 직책과 동시에 대표이사라는 명함을 달고있는 ‘제임스 클린턴’이었다.
곱게 늙은 금발 중년의 사내, 클린턴은 테일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중하게, 거래를 요청하겠습니다.”
“거래라. 흐음, 말해봐.”
“당신에 대해 조금 알아보았습니다. 테일러 나인. 당신은 로스트 데이와의 접점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동료 ‘헌터 유서담’과 비롯된 원한이 문제일 터. 그 때문에 활동을 하고 계신 게 아니십니까?”
“맞지. 잘 아네.”
로스트 데이는 유서담을 쫓아냈다. 그에, 유서담은 복수를 하기 위해 다짐하고서 서서히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그것은 F랭크의 퓨어 헌터가 거대한 사냥감을 사냥하는 방식이었다. 한 대를 맞고 10원을 빼앗기면, 훗날 열 대를 치고 100원을 빼앗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하지만, 테일러 나인은 그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능력이 있었다. 한 대를 맞고 10원을 빼앗긴다면, 그 자리에서 상대방을 두들겨 패서 가진 돈을 모조리 빼앗는다. 그녀는 이번에도 역시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있었을 뿐.
“그럼.”
테일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거래를 요청할 땐, 밥 한 끼 사주는 게 국룰인 건 알지?”
*
종로구 경복궁 근처에는 한옥으로 만들어진 5성급 호텔이 하나 있었는데, 테일러 나인은 이곳에 위치한 ‘타운 갤러리 레스토랑’으로 향할 것을 요청했다. 무려 1시간이나 클린턴의 자차를 타고 달려서 레스토랑에 도착한 테일러는 대뜸, 웨이터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싹 다 내와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5성급 호텔의 레스토랑인 만큼 가격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 정도 가지고 로스트 데이의 자금에 흠집도 가지는 않겠지만 테일러는 그저 그들에게서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기를 원했다. 클린턴은 그저 카페에 가거나 간단하게 식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설마 레스토랑을 올 줄은 몰랐기에 살짝 당황한 듯 보였으나 이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테일러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나 하나 떠든다고, 너희가 굳이 날 찾아올 필요는 없거든.”
“······.”
클린턴은 대답하지 않고서 그저 묵묵히 들었다.
“그래서 사실 나도 적당히 하다가 그만두려고 했어.”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소란은 잠잠해지기 마련이고, 그녀가 아무리 유명인이든 어쨌든 결국 여론을 조금만 조작하면 테일러에게 스캔들을 뒤집어씌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걸 알고 계시면서도 그렇게 하셨습니까?”
“응. 사실 너희가 언론 뒤집어 씌우기 하려고 했으면, 카운터를 칠 방법이 하나 있었거든.”
그것은 바로 로스트 데이의 자회사가 된 ‘동각제약회사’와 관련된 건수였다.
몇 년 전, 동각제약회사가 남아메리카에서 활동을 하던 때였다.
그 당시에 동각제약회사는 인체실험을 하는 회사로서 악명이 자자했다. 물론, 겉으로는 평범한 제약회사였기에 인체실험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동각제약회사는 주로 F랭크의 헌터들에게 접근하여 자신들의 약물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유혹을 했고, 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간 수많은 퓨어 헌터가 번번이 불구가 되거나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에 분노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능력자 연합이 탄생하여 동각제약회사는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는데, 당시 그 자리에 로스트 데이 소속이었던 유서담이 있었던 게 문제였다.
유서담에게서 동각제약회사에 대해 보고를 들은 로스트 데이는 해당 건을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였고, 이내는 그들과 거래를 하며 서서히 자신들의 길드로 흡수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것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애당초 동각제약회사 건으로 반격을 할 준비를 하고 있던 것. 그러나 그들은 언론을 크게 키우지 않았다.
“너희가 왜 굳이 일을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을까? 생각해봤는데.”
사실 뻔한 이유였다.
이 사건을 더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차라리 자신을 협박하고, 그것도 안 되니 이제 와서 거래라도 해보려고.
“···폭주 능력자. 그 얘기를 듣자마자, 동각제약회사가 떠오르더라고. 너희들, 폭주 능력자 건이 언론에 자꾸 언급돼서, 결국 동각제약회사가 언론에 노출되는 게 무서운 거잖아?”
폭주 능력자 이연준. 과연 그에게 투입할 약물을 누가 만들었을까?
바로 로스트 데이의 동각제약이었다.
“···예. 맞습니다.”
“너희가 유서담을 왜 내쫓았나, 궁금했는데 말이야. 이유는 두 가지가 떠오르더라.”
유서담이 무능해서? 아니다. 그는 자신이 무능해서 쫓겨난 거라고 알고 있겠지만, 그건 그저 피해의식일 뿐이다. 유서담은 충분히 유능했고, 비록 초능력자는 아니더라도 그가 가진 지식을 잘 조합하기만 해도 상당히 길드에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러나, 유서담보다 가치가 있을 게 뻔한 동각제약회사와 ‘그것’이 길드의 손아귀에 떨어진 게 문제였다.
“헬 게이트. 그곳의 생환자였던 마흔일곱 명 중, 원정대장이었던 ‘라이튼’이 내부의 물질을 들고 왔었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로스트 데이를 포함해서 각국에서 모집한 최정예 헌터로 이루어진 원정대가 헬 게이트로 파견되었다. 총 오백 명에 달했던 대규모의 원정대.
지구의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헬 게이트 내부에서 탐험을 진행하던 와중, 많은 이탈자가 발생하였다. 중도 포기하고 돌아온 귀환자가 200명.
그중 100명은 헬 게이트 진입 사흘 차에 돌아왔고, 나머지 100명도 1년이 되지 않아 돌아왔다. 대부분이 정신이상자에 불구가 된 그들을 보며 사람들은 헬 게이트 내부의 원정대 300명이 살아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적이 발생했다.
헬 게이트 진입 3년 차. 47명의 생환자가 헬 게이트에서 돌아온 것.
이 일에 대해서는 사회에 발표가 되지 않아 아는 이가 극히 드물다. 심지어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생환자에 대한 정보가 거의 기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로스트 데이는 헬 게이트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원정대장이 죽고, 그 직위를 위임받은 ‘라이튼’이 로스트 데이 길드의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원정대는 헬 게이트 내부에서 그곳의 물질 몇 개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라이튼은 이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전에 심장병으로 죽어버린 것. 그렇다면, 라이튼이 가지고 돌아온 물질은 누구의 소유일까?
“라이튼의 부사수였던 유서담. 그놈한테도 소유권이 있었겠고.”
하지만 유서담은 그 물질에 대한 존재를 몰랐다. 무능력자였던 그는 헬 게이트에서 빠져나오며 제정신을 붙잡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테일러 나인은 헬 게이트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암약하던 정치질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지만, 굳이 유서담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당시의 유서담은 정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기에.
그런데.
지금 그것을 원인으로 유서담이 쫓겨나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너희들. 유서담에게 말 안 하고, 그 물질을 독차지하려고 했지?”
게다가, 유서담과 척을 지고있는 동각제약회사까지 인수할 수 있는 상황. 쫓아내지 않을 이유가 더욱 적었다.
“······얘기 잘 들었습니다. 해서, 원하시는 게 뭡니까? 헌터 유서담의 복귀를 원하십니까?”
“아니? 너희 쓰레기들한테 우리 서담이를 보낼 거 같아?”
그녀는 손바닥을 클린턴에게 내밀었다.
“내놔. 유서담의 몫. 그거 주면 조용히 있어줄게.”
클린턴은 침음을 흘렸다. 이 사실을 유서담이 모른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조용히 넘어가기는 힘들었다.
사실 테일러 나인은 이 사실을 언론에 제대로 공개하여 로스트 데이가 설설 기는 걸 바랬지만, 굳이 거래를 하겠답시며 나왔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언론은 어디까지나 제시할 게 아무것도 없던 그녀와 서담에게 있어서 ‘거래의 수단’에 불과했으니까.
마지막으로 클린턴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그걸 당신들이 받는다해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저희들도 동각제약은 물론 최첨단 에테르 과학을 이용해 헬 게이트의 물질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낸 건 고작해야······ 1%. 그 정도입니다. 당신들이 이걸 받는다고 뭘 어쩌지는 못할 텐데요? 차라리 돈으로 받으십시오. 이건 진심으로 하는 충고입니다.”
“닥쳐.”
테일러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클린턴을 바라보았다.
“내놓으라면 내놔.”
그에 클린턴은 입을 다물고서 침음을 흘렸다. 제아무리 클린턴이라도 이 건에 대해서는 쉽사리 결정할 수 없다. 게다가, 통칭 ‘헬 게이트 매터’라 불리는 이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하지만 그와 별개로, 테일러 나인이 가진 언론의 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상황. 만약 그녀가 작정을 하고 들고 일어난다면 외부의 길드가 헬 게이트 매터를 노리고서 입을 모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부를 빼앗길 바에, 차라리 일부를 포기하고 넘겨준다. 어쩌면 이게 나은 판단일 수도 있다.
‘젠장. 차라리 폭주 능력자 건, 그리고 기형던전 건이 터지지 않아서 언론이 잠잠했다면 모를까···.’
상황이 하필이면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테일러 나인 같은 뛰어난 사냥꾼에게 물어 뜯기기 아주 좋은 상황.
결국, 클린턴은 침울한 표정으로 긍정을 표했고.
“···본부에서 의논을 나눠보겠습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테일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담의 몫을 돌려받긴 하겠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이건 그저, 원래 돌려받아야 할 것을 받았을 뿐.
“다음에 또 보자구, 친구들.”
뒤늦게 요리가 나오기 시작하였지만 그녀는 단 하나도 입에 대지 않았다.
“아, 그건 늬들끼리 많이 먹어. 사실 나 점심 배부르게 먹고 왔어.”
“······.”
“······.”
클린턴과 부하직원은 테일러 나인의 따스한 배려에 감격하여 포크를 집었다.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상당히 아까웠으니까.
*
SS랭크의 검술을 보고 배우며, 서담은 본인 자신의 검술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신체 능력치는 거의 E+급에서 D랭크에 근접했고, 이제는 첼레스테에게 크게 뒤지지 않았다.
덕분에 그녀와 서담이 검을 맞대면 반드시 승자는 서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
바닥에 널브러진 채 땀을 뻘뻘 흘리는 첼레스테를 보며 서담은 생각했다.
‘이 아이는 천재다.’
의뢰인이 말하기를 재능 C랭크 이상부터 ‘천재’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A랭크는 어떨까. 흔히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재능’이라는 말을 바로 A랭크의 재능을 가진 자에게 사용한다고 했다.
첼레스테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A랭크와 C랭크 사이. 최소한 B랭크 이상의 검술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알머스 가문의 검술을 보고 배우며, 서담은 본인의 검술을 더욱 정진하기도 했지만 그것들은 사실 대부분이 여자의 몸에 알맞게 맞춰진 검술이었다. 그가 보고 관찰했던 이들이 바로 하렌과 엘라헤였기 때문.
하렌은 키가 170도 채 되지 않았고, 엘라헤는 쓰러진 이후 제대로 먹질 못해서였는지 키가 간신히 150이 넘어갔었다. 그리고 첼레스테의 키는 160 중반대. 그녀들의 검술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서담은 하렌의 검을 떠올리며, 첼레스테의 자세를 교정해주고는 했다.
“발을 왜 고따구로 뻗어?”
“야. 네 팔이 나보다 길어? 검이 길어? 왜 그렇게 휘두르는데?”
“숨을 참고 휘두르지 말라고.”
그는 이제 제대로 된 ‘검법’에 대해서 잘 안다. 근육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발을 어떻게 꼬아야 하는지, 숨을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강체라는 초능력이 발현된 이후로 30년, 현대의 검술이 발전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한 시간.
그는 그런 강체라는 신체에 수백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검법을 덧씌웠고, 그 결과가 바로 첼레스테였다.
그녀는 알머스의 검술을 아주 빠르게 흡수해나갔다. 비록 스킬로서 얻지는 못해 알머스 가의 비기나 제대로 된 호흡법, 보법 등을 전수해주는 건 불가능했지만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여검사가 검을 휘두를 수 있는지’ 정도는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고작 2주. 첼레스테는 그 사이에 아주 빠르게 성장해나갔고, 이제는 유서담조차 그녀의 허를 찌르는 반격에 가끔씩 당황을 할 정도였다.
‘이거······. 제대로 크면, 나중에는 아버지도 넘어서겠는데?’
물론 그녀의 아버지 또한 천재였고, 뛰어난 검사였지만 SS랭크는 사실상 어거지로 달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첼레스테라면 진짜 자신의 실력으로 순수하게 SS랭크의 힘을 달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넌 아직도 그러고 있냐?”
일요일 오전, 체육관에도 사람이 없을 시간. 단 둘이서 검을 휘두르고 있던 와중이었는데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일러 나인이었다.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은 시원스러운 흰색 나시에 푸른색 핫팬츠를 입은 상태였는데, 곰의 귀가 달린 갈색 모자가 인상적이었다. 테일러는 첼레스테를 힐끗 쳐다보더니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이 누님은 누굴 위해 발에 피나도록 뛰어다녔는데, 그 누구는 다른 여자랑 노가리까고있던 거냐?”
“무슨 일인데.”
“이거 주려고 찾아왔지.”
“그건···?”
테일러는 품에 안고 있던 화분 하나를 서담에게 보여주었다. 투명한 크리스털 관에 들어있는 그 검은색 화분에는 흰색으로 발광하는 신비로운 꽃 한 송이가 자라나고 있었는데, 생기가 거의 없는 듯 시들시들했다.
“헬 게이트. 그 안에서 자라던 꽃이야. 너도 기억은 나지?”
“음···. 알지.”
헬 게이트 내에서 보았던 그 무수히 많은 물질 중에서도, 유독 특이했기에 기억이 남는다. 아비규환, 지옥 그 자체나 다름없던 그곳에서 몇 안 되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였으니까. 설마 그게 헬 게이트 바깥에까지 나와있고, 또 살아있는 줄은 몰랐지만.
“이 누님이 로스트 데이가 숨겨둔 거 빼왔다 이거지. ···뭐, 거의 다 시들시들해져서 얼마 키우진 못하겠지만 그놈들 손에서 굴러다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거든.”
서담은 테일러에게 다가가 화분을 받아들었다. 그 끔찍한 지옥 속에서 보았던 몇 안 되는 희망의 상징. 이걸 설마 여기서 다시 볼 줄은 몰랐기에 어쩐지 싱숭생숭해졌다.
물론 제아무리 서담이라도 이런 걸 어디에 써야될 지는 모른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로스트 데이조차 제대로 뭘 알아내지도 못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스킬 ‘백색 마녀의 도서관(F)’이 발동되었습니다.]
[해당 대상에 대한 지식을 검색합니다.]
“어?”
갑작스레 허공에 투명한 책 한 권이 떠올라 페이지가 사르륵 넘어가더니, 이윽고 멈췄다.
[이미지 검색 결과 ‘은색 정령의 꽃’ 항목을 찾았습니다.]
“정령···?”
< 재능의 개화(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