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였던 내가 검술명가 셋째딸?(3) >
개인적으로 봤을 때, 엘라헤는 상당한 수준의 검사였다.
올해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검술을 배운지는 고작 일 년밖에 안 됐으면서도 벌써 지구에서는 나름대로 천재라 불리는 첼레스테보다 훨씬 뛰어났다.
물론 그녀의 신체 능력을 제외한, 단순히 검술만을 생각했을 때이다.
검술의 컨트롤 면만으로 따지면 나보다도 우위. SS+랭크의 검술은 물론 자체적으로 가진 검술의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엘라헤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련을 해야만 했는데, 굳이 내가 싸우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조수랍시고 몇몇 젊은 기사들을 채용하여 연습 대련 상대로 삼았다.
“아가씨와의 대련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대련을 지켜보며 열심히 가르치는 척을 했다.
“음. 아가씨는 자세는 좋은데, 포즈가 영 엉망이군요.”
때로는 교사인 척하느라 알지도 못하는 전문용어를 섞어서 써야 했다. 물론 어설프게 썼다가는 들킬 염려가 있어서, 아예 다른 세계의 지식을 섞어서 썼다.
그리하여 도착한 장소는 어느 깊은 산속의 폭포. 호위기사 열댓 명을 대동하여 이곳까지 찾아오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쏴아아!!
현재 엘라헤와 나는 폭포 위의 바위에 앉아서 폭포를 등으로 맞고 있었는데, 이게 처음 해보는 건데 생각보다 괴롭다.
“으음, 음.”
옆쪽에서 엘라헤가 찡그린 표정으로 폭포를 맞는 게 보인다.
이걸 왜 하냐고?
당연하지만, 쓸데없는 수업으로 시간을 떼우기 위해서다.
애초에 검술이고 재능이고 나보다 뛰어난 그녀를 내가 가르칠 수 있을 리 없다. 게다가 그렇다고 쳐도, 내가 죽여야 할 적을 이유 없이 단련시키는 것도 멍청한 짓.
그래서 난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폭포 맞으면서 아무튼 명상하기 수련법’을 채용하였다.
‘아가씨. 검술이란 무릇 휘두르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요?’
‘저도 한때는 검을 무작정 휘두르고, 또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벽에 가로막히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는 기초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저는 오랜 세월 지나왔던 길을 다시 처음부터 걸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아가씨에게는 지금부터 심(心)과 기(氣)와 체(體)를 모두 통합하는 삼위일체(三位一體)의 명상법을 먼저 수련시켜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포함된 진실의 함유량은 0.002%로서, 랍스터칩에 들어가는 랍스터의 함유량보다도 더욱 적은 양이었지만 어쨌든 선생이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는가? 이미지 관리를 하는 그녀로서는 나한테 지랄을 할 용기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책 없이 폭포나 맞으며 시간을 때우려고 했는데.
“······아! 저,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아요!”
[주인공 ‘엘라헤’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런 미친?
*
내가 주인공을 얕봤다. 정말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깨달음을 얻는다는 게 허구가 아니었을 줄은 몰랐다. 이래서 주인공은 괜히 건드리는 게 아닌데.
다행스럽게도 엘라헤의 레벨이 올랐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의 검이 한층 더 부드러워졌고 더욱 효율적인 동선을 그리게 되었다.
내가 착잡한 심정인 것과는 별개로, 저택이 난리가 났다. 아주 독특한 수련법이라고 모두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
이 세계관은 검술 하나로 마법의 극의에 다다른 마녀를 모두 때려잡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검술이 가장 발달한 검술명가에서도 이 어처구니없는 폭포 수련법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너도 나도 기사들이 폭포로 뛰어들었지만, 될 리가 있나.
애초에 엘라헤가 주인공 보정을 받아 깨달음을 얻을 시기였기에 우연찮게 폭포를 맞으면서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지, 어설픈 엑스트라들에게는 소용도 없다.
물론 꼭 안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소드 마스터(야매)라는 사실을 증명한 이후로 호의가 차고 넘치기는 했다만, 특이한 기행을 보여주어 엘라헤의 경지를 순식간에 끌어올리자 더욱 인지도가 높아졌다.
“서담 경. 이전번에 그 수련법···. 혹시 내게도 알려줄 수 있겠소?”
에라츠는 소드 마스터를 코앞에 두고서 벌써 10년이 넘도록 경지가 오르지 않고 있다고 했다. 벽에 단단히 가로막힌 것이다. 어쩐지, 날 만나자마자 대련을 신청하더라니 그런 이유가 있었을 줄이야.
“그냥 가서···. 상의 벗고 폭포 맞으십쇼······.”
“오오. 고맙소!”
솔직히 에라츠 같이 착한 사람한테 거짓말을 치는 것도 양심에 찔리기는 했으나 이미 시작한 구라질, 이제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하압!”
쩍!
목검과 목검이 부딪쳤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소음이 울리더니, 기사 한 명이 나가떨어졌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 기사조차 엘라헤에게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의 검술은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그렇다고 막 베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검법’이란 본디 그 자세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근육의 움직임과 호흡의 간격마저도 정확히 재야만 했기 때문. 내가 그런 걸 전부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카피는 가능했다.
‘작은 체격의 여자가 어떻게 하면 적을 효율적으로 제압하는지.’
‘상대적으로 부족한 완력과 스피드, 리치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검술의 재능이 생긴 이후로, 그저 검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생겨버렸기에 나조차 넋을 놓고 엘라헤의 검술을 지켜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쌩판 남, 아니 적인 나조차도 그녀의 성취를 보며 즐거웠는데 하물며 알머스 공작가의 사람들이라면 어떨까.
“오오, 역시 아가씨. 굉장하세요.”
“또 승리하셨어!”
뒤에서 몇몇 하녀들이 자나가면서 감탄사를 내뱉는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었고, 그들이 어떤 사연을 겪었는지도 알고 있다.
단발머리의 주근깨 어린 하녀.
눈앞에서 마지막 마녀가 부모님을 동강 내는 것을 보고서 큰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알머스 공작가의 따뜻한 요람 속에서 애써 힘을 내어 살아가고 있다.
펑퍼짐한 옷을 입은 40대의 아주머니 하녀.
마지막 마녀를 소탕하기 위해 남편이 용병으로 참전했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지만 알머스 공작가의 엘라헤 공녀에게서 희망을 얻고서 살아가고 있다.
매끄러운 갈색 머리칼을 가진 20대 하녀.
마지막 마녀에 의해 가족 모두를 잃고 왼쪽 눈과 오른손의 손가락 3개를 잃고, 실어증을 앓게 되었다. 그 누구도 장애인에 실어증 하녀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지만, 엘라헤 공녀가 따스한 마음으로 보살펴주어 마음을 열게 되었다.
솔직히, 조금 착잡하다.
엘라헤를 죽이는 방법은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지만 이곳에 남게 되는 이들의 마음이 찢어지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상당히 찝찝했다.
물론 내가 그런 걸 신경 쓸 짬은 아니었지만.
이 세계에서 마녀는 절대적인 악(惡)으로 구분되고 있다.
그러나, 절대적인 악이라기에 마녀들에게는 악의(惡意)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저 그들은······. 그저, 인간을 생명으로 취급하지 않을 뿐. 단순히 그게 전부였다.
어린아이가 돋보기로 개미를 불태워서 지워버리는 정도의. 그런 사소한 호기심. 그것이 마녀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어라? 어미가 갓 낳은 아이를 생으로 삶아서 어미에게 다시 먹였더니 갑자기 스스로 혀를 깨물었네? 신기해라.’
‘앗, 인간은 자신의 배를 갈라서 꺼낸 심장을 다시 먹을 수는 없구나. 생체 기능이 전부 정지되는 바람에!’
‘왜지? 인간은 왜 자신과 관계를 맺은 자를 괴롭히면 스스로가 더 괴로워하는 거지? 혹시 신경계가 연결되어 있을까? 응? 그건 또 아니네?’
그것은 악의 없는 악의.
감정 없이 움직이는 마녀들의 절대적인 호기심에 닿아버린 인간들은, 지옥과도 같은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인간들은 마녀에게 대응하기 위해 냉병기를 들었으며, 살아남기 위해 일어선 위대한 천재들로 인해 무술이 발달하였다.
수천 년간의 전쟁을 끝으로 마침내 모든 마녀를 해치울 수 있게 되었고 바야흐로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나만이, 마녀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주말이 되었다.
엘라헤는 여전히 수련을 하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엘라헤에게 약을 팔고 있을 무렵.
저택을 비우고 있던, 그녀가 찾아왔다.
하렌 알머스.
알머스 공작가의 장녀이자, 소드 프로페셔널의 나이에 접어든 천재 중의 천재.
“오랜만이구나, 엘라헤. 많이 달라진 것 같군.”
“지난날의 저를 떠올리셨다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의 조우에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킨다.
예로부터 하렌과 엘라헤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기사 중의 기사, 타고난 알머스 가문의 검사 하렌 알머스는 냉혹한 성격이지만 누구보다도 검을 향한 뜨거운 가슴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엘라헤는 애초부터 검을 쥘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어린 나이부터 난폭한 성미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방탕한 삶을 살아온 터에, 하렌 알머스는 그녀를 극도로 싫어했다.
덕분에 하렌은 엘라헤를 무시로 일관하였고, 엘라헤 또한 그녀에게 겁을 잔뜩 먹어 평소의 지랄맞은 성격은 어디로 갔는지 하렌을 마주할 때마다 겁먹은 쥐새끼마냥 벌벌 떨고는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엘라헤 알머스가 하렌 알머스를 당당한 눈으로 마주보고 있던 것.
“···근래, 눈빛이 많이 달라졌구나.”
“세상을 당당히 마주볼 수 있게 된 것 뿐이지요.”
“그래. 훌륭하군. 잠시 지켜보았는데, 검도 또한 많이 정진하였더구나.”
“과찬이십니다. 언니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부족하지요. 좋은 스승을 만나게 되어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소문의 스승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아주 독특한 분이 오셨다지.”
하렌이 나를 바라보자 나는 적당히 목례를 했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제 부족한 동생을 가르쳐주어서 고맙습니다. 소드 마스터라고 들었는데, 과연 예사롭지 않은 분이시군요.”
뭔가, 하녀들에게 들었던 하렌의 성격과는 상당히 달랐다. 말수도 거의 없고 차갑기 그지없는 그녀가 이렇게나 말을 많이했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다른 이들도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가진 재능이 이것 뿐인데, 공녀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지요.”
“후후.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으면서, 그런 겸손은 됐습니다.”
나와 인사를 짧게 나눈 하렌은 다시 엘라헤에게 관심을 돌렸다.
“지금보니 휴식을 취하고 있던데, 지금부터 무얼 하려고 했느냐?”
“교회에 가서 기도를 올리려고 했습니다.”
“오호라. 그렇다면, 나와 함께 가도록 하지.”
하렌은 전체적으로 바뀐 엘라헤가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흔한 전개였으니까.
원래 방탕하게 살던 귀족의 몸에 다른 이가 들어가서, 180도 바뀐 모습을 선보여 주변 인물들은 물론이요 가족들에게마저 인정받는 전개.
이 또한 클리셰이리라.
“그래, 지금 가도록 하지.”
잠깐의 준비를 끝낸 후, 하렌과 엘라헤를 포함한 수행원들이 교회로 향했다.
알레테아 제국의 국교 ‘전쟁과 승리의 여신 앨러시아’을 모시기 위함이었다.
그녀들의 뒤를 쫓아가며 나는 하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렌 알머스. 그녀 또한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지막 마녀로 인해 어머니를 잃은 것이다. 즉, 공작이 마지막 마녀를 죽인 이유가, 자신의 아내를 죽였기 때문이라는 설정으로 이어지겠다.
교회 역시도 알머스 공작가에서 세운 것이기에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고, 공작의 자식들은 가장 앞쪽에서 기도를 올리게 된다.
나는 외부인이기에 적당히 뒤쪽에 자리를 잡아서 기도를 올리는 척했다.
성가가 흘러나오고, 목사인지 신부인지하는 검은색 복장의 남자가 나와서 무어라 무어라 떠든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
“모두, 어제의 나에게 속죄를 하도록 합시다.”
신부가 그 말을 끝마치는 순간, 엘라헤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는 굉장히 작았으나 워낙 조용한 공간이었기에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하렌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엘라헤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느냐?”
“···아뇨. 여태, 제가 해왔던 일이 너무 죄송스럽고, 창피하고, 또 모두에게 미안해서. 그래서···. 으흑, 흐···.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
하렌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 순간.
의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공 ‘엘라헤’가 감정을 서서히 각성하고 있습니다.>
엘라헤.
평생을 마녀로 살아와,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그녀는 알머스 공작의 검에 꿰뚫려 죽는 순간까지도 무덤덤했다.
복수? 그런 감정 따위, 들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약해서 죽었구나. 그런데, 날 죽이는 이유는 잘 모르겠구나. 그뿐이다.
하지만 엘라헤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슬픔과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주었을 때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또한 과거의 자신을 경멸하게 되었다. 여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여왔던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벌렸던가.
‘이제부터는, 모두에게 속죄하는 삶을 살겠어!’
그것이 주인공 엘라헤의 전체적인 스토리.
···그런데.
“정말, 으흑! 정말 모두에게 죄송해서······.”
“아이고, 우리 아가씨 어떡해···.”
“나는 아가씨한테 괴롭힘 당했던 거 이제는 기억도 안 나.”
“아휴, 저렇게 예쁘고 올곧게 자라셨는데.”
사람들이 동조하는 것을 보며 나는 어쩐지 가슴이 착잡해졌다.
엘라헤의 사죄는 그게 아니다.
마지막 마녀로서, 여태까지 저질러왔던 일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이지 ‘빙의 전 엘라헤’로서 저질렀던 망나니짓을 사과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주변인들은 착각계에 빠져서, 엘라헤의 눈물에 다같이 젖어들고 마는 것이다.
어느덧 교회는 눈물바다가 되었고, 엘라헤는 마지막까지 모두에게 사죄를 했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 미안하다면 진실을 밝혀야 했다.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고, 가장 강한 호기심을 가진 자신으로 인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박탈당했던가. 그런 이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힐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함으로써 자기합리화를 하려는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미안하니까. 속죄의 삶을 살 것이니까. 그렇게 자위하며.
그녀도 알고 있다. 진실을 밝히게 되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두려운 것이다. 미안하다고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이미지를 지켜내고 싶었기에.
모두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고작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는 안 된다.
모두를 속인 사죄는 사죄가 아닌 기만일 뿐, 전혀 사죄도 속죄도 되지 못한다.
“여러분,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러나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사실 엘라헤가 사과를 하든말든 어찌되었든 상관은 없다.
다만, 가식과 진심이 섞인 사죄를 보면서 그녀를 사냥할 방법이 떠올랐을 뿐.
‘미안해?’
그렇다면 제대로 된 자리에서, 어디 한번 진짜 사죄를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줘야겠다.
*
늦은 저녁.
모두가 깊게 잠든 밤, 서담은 저택의 근방에 위치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의 계획과는 달라졌지만, 사냥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철컥!
저격 포인트는 사실 널리고 널렸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저격으로는 적을 사냥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서담이 메가 슈터를 굳이 꺼내든 이유는 그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가 슈터에 ‘에테르 방사탄’을 장착한 뒤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거리는 꽤 멀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지만 목표에 맞춰서 스코프가 자동으로 영점을 맞춰주었다. 먼 과거에는 저격수들이 저격을 한번 하기 위해 손가락에 침을 묻히고 총알을 깎아내는 등 고생을 했다던데 현대 과학이 발달한 현재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사실 제대로 저격을 할 거라면 광범위로 폭발을 하는 방사탄보다 한 명의 적에게 화력이 집중되는 여타의 탄환이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서담은 그녀에게 큰 피해를 입힐 생각이 없었다.
그저.
그녀가 피해를 입었다는 흔적만을 남기는 것이 중요했다.
휘이이잉······!
한차례 바람이 서담의 머리칼을 휩쓸고 지나갔고.
숨을 2/3쯤 참은 뒤, 방아쇠를 격발하자.
따아앙!!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쨍그랑, 꽈앙···!!
엘라헤의 침실이 어마어마한 폭발에 휘말렸다.
기사들이 반응하기까지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가···씨!”
호위 기사들은 잽싸게 엘라헤의 방을 열고 들어섰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방의 내부에 있는 물건들은 죄다 검은색의 재가 되어 사라져있었으며, 침대도 절반쯤 날아간 상태. 그러나, 엘라헤는 멀쩡했다.
“아···. 저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윽고, 하렌 알머스가 잠옷 바람으로 검 한 자루만을 든 채로 찾아왔다.
“엘라헤! 괜찮으냐!”
“언니···!”
항상 냉랭하던 그녀가 폭발음이 들리자마자 자신을 찾아와줬다는 사실에 감격을 받은 엘라헤는 날랜 걸음으로 달려가 하렌의 품에 안겼다. 하렌 역시 엘라헤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으니까 걱정말거라. 제츠돈, 칼머. 지금 즉시 수색을 개시한다!”
“명을 받듭니다!”
호위 기사들이 뛰쳐나가는 것까지 확인한 하렌은 여전히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엘라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뭐···지···?’
엘라헤가 누워있었을 침대가, 반원형으로 잘려나간 것.
반원형의 지름 3m 남짓의 공간을 제외한 방 내부의 모든 것들이 재가 되어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엘라헤가 누워있던 자리만이 깔끔했다.
‘반원형이라고···?’
하렌은 문득, 떠올리지 말아야 할 생각을 떠올렸다.
반원형의 보호구역.
그건 마치······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어떤 종족의 기술을 닮지 않았는가?
< 마녀였던 내가 검술명가 셋째딸?(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