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7화 (27/251)

< 마녀였던 내가 검술명가 셋째딸?(2) >

꿀꺽.

마른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길리텐더 이후로, 다른 세계에 들어가자마자 주인공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땐 정신이 없던 상태였기에 별생각도 안 들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70레벨의 주인공과 정면으로 맞붙어서 내가 이길 가능성은?

뒤통수를 난데없이 후려서 내가 이길 확률은?

없다.

나는 사냥꾼이었고, 사냥꾼은 정면승부를 하는 직업이 아니다. 자신보다 강한 자를 사냥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를 해야만 했다.

“왜 그러시나요?”

“아뇨.”

다행스럽게도 내 앞을 걸어가는 열댓쯤 되어 보이는 저 붉은 머리칼의 주인공은 내가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로 천만다행이었다.

<알머스 공작가는 알레테아 제국의 제일가는 명문 검술 가문입니다.>

<알레테아 제국은 철저히 무술이 숭배받는 곳으로, 마법의 사용은 자제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이 세계에서 마법은 ‘마녀’의 전유물이기 때문입니다.>

<마녀는 모든 인류의 적.>

<마지막 마녀사냥이 끝난 이후 1년이 흐른 현시점에서, 살아남은 마녀는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긴, 마법이 너무나도 당연히 문화 속에 자리를 잡는 세계만 있지는 않을 터. 이렇게 마법이 배척받는 세계가 언젠가 나오더라도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살아남은 마녀가 없다니. 내 눈앞의 저 여자는 뭔데?

<해당 주인공은 ‘빙의’를 한 상태입니다.>

<그녀는 마지막 마녀였으나, 알머스 공작에게 죽임을 당한 뒤 엘라헤 공녀의 몸에 빙의되어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친.

듣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설정이었다. 엘라헤가 주인공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알머스 공작이 주인공이었다면? 자신이 죽인 인류 최악의 적이 자신의 딸에게 빙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만한 고구마도 없을 것이다.

엘라헤가 주인공이라 정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마녀가 대체 뭐야?’

<인간의 상위종으로서, 태어나서부터 마법을 자연스레 사용할 수 있는 종족입니다.>

<인간보다 수명이 월등히 길고 뛰어난 마법을 다룰 수 있지만, 감정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

엘라헤의 뒤를 쫓아가며,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저곳은 동백관, 저곳은 샛잎관입니다. 각각 남기사, 여기사들의 숙소지요. 그리고 저곳은······.”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나긋나긋했으며, 예의 바르고, 품행이 단정했다. 또한 지나가는 하녀들이나 부하 기사들에게 항상 “좋은 아침입니다, 윌리스 양. 윌리엄 경.”이라며 일일이 인사를 하는 모습은 퍽 착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공녀님의 모습이었다.

‘저게 진짜 감정이 없는 거라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엘라헤의 모습은 사뭇 천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또한 나와 엘라헤가 걷고있는 와중 어떤 하인이 실수로 접시를 떨어뜨렸는데, 그녀는 나무라긴커녕 그에게 다가가 직접 도와주기까지 했다.

“가, 감사합니다! 공녀님!”

“아닙니다. 부디 조심하시지요.”

그런 의문이 들었다.

원래 귀족이 하인들에게 존대를 하던가?

내가 기억하는 귀족과 마녀의 이미지가 산산조각 부서지는 느낌에 어쩐지 혼란이 왔다.

‘······이거, 착한 주인공은 아니겠지?’

비록 그 존재 자체로 개연성과 인과율을 어긋나게 만들어 세상을 위기에 몰아넣는다지만, 모든 주인공의 심성이 꼭 나쁘리란 법은 없다고 의뢰인이 말했던 적이 있다.

물론, 주인공이 착하든 나쁘든 내가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착한 주인공 역시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서서히 파괴하는 건 마찬가지였으며 또한 이제와서 ‘착하니까 살려둬야겠어.’라는 식으로 내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었으니까.

주인공을 죽인 이유는 내가 살기 위해서였고, 그건 이기적인 행위였다. 그 외에 세상의 균형을 맞추니 뭐니 하는 이유는 그저 덤으로 따라오는 부산물일 뿐. 나는 내가 살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나는 내가 하는 짓을 정의로운 일이라고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런 꼬맹이를 죽이면 밤자리가 사나운데 말이지······.’

물론 잠깐 본 정도로 엘라헤의 성격을 단언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사가 필요하다고 느낄 뿐.

한참을 걷던 엘라헤는 나를 연무장으로 안내했다. 이 으리으리한 저택에는 연무장만 일곱 개가 넘어간다는데, 이곳은 그중에서도 세 번째 연무장으로서 엘라헤가 사용하는 곳이기도 했다.

수백의 기사들이 모여있는 장소에서, 엘라헤는 나를 소개했다.

“이분이 오늘부터 제 검술의 지도를 해주실 유서담 경이라고 해요.”

기사들은 박수를 친다거나, 환호성을 지른다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저 날카로운 눈빛으로 침묵을 유지할 뿐. 그 절도있는 행동을 보며 어쩐지 이 장소가 어색해졌다. 워낙 자유분방하게 살아왔던 나였기에 이 장소가 더욱 어색하게 느껴졌다.

“반갑소. 동백 기사단의 3단장을 맡고있는 에라츠라고 함세.”

콧수염이 인상적인 꽃중년이 내게 악수를 건넸다. 어쩐지 영화배우를 만난 것 같은 느낌에 송구스러워진다.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서담 경의 이름은 대륙을 전전하며 떠돌던 나도 들어본 적이 없네만. 혹시 어느 지역에서 활동했는지 여쭤봐도 되겠소?”

시발.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슬쩍 옆을 돌아보자 엘라헤도 궁금했는지 나를 가만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에라츠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무려 검술명가에서 직접 차녀를 교육하기 위해, 교사를 초빙했는데 그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니. 말이 되는가?

나는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흐름에 끼어든 존재였고, 잘 흘러가던 물결에 돌멩이가 퐁당 뛰어들면 주름이 생기기 마련. 에라츠는 그 주름을 감지한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돌멩이가 되었든 뭐가 되든 강물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천천히 에테르 블레이드를 꺼내든 뒤 칼날을 사출하면서 말했다.

“조금 먼 지방에서 와서, 들어도 잘 모르실 겁니다.”

“허면···.”

“대신 증명을 해보이도록 하죠.”

이건 일종의 도박이었다.

일전에 길리텐더가 내 에테르 블레이드를 보면서 ‘전설 속에나 나오는 오러 블레이드’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 것.

오러 블레이드라. 참으로 흔하게 쓰이는 단어였다. 다름 아닌 ‘소드 마스터’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으니까.

위이이잉!!

“음!”

“오오···!”

“맙소사. 소드 마스터라니···!”

예상대로 검에 빛을 불어넣는 경지는 소드 마스터가 맞았던 모양이다. 아니었다고 해도 살살 어루넘길 방법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속아 넘어가줘서 편해졌다. 나는 천천히 바위를 향해 걸어가, 가볍게 휘둘러 그것을 베어내었다. 2등급의 에테르 블레이드는 아주 가뿐히 바위를 베었다.

“역시. 굉장하셔.”

“우리가 보기 쉽도록 천천히 휘두르신 건가?”

아닌데. 진심전력으로 휘두른 건데.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달성한 검객이라. 아주 훌륭하군.”

에테르를 회수한 뒤 수납하자 에라츠마저 큼큼,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눈치를 슬금슬금 보더니 말한다.

“타지의 소드 마스터와 대련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쉽지 않은 터. 혹시 대련을······.”

“아뇨.”

대련이라니, 무슨 끔찍한 소릴. 에라츠의 경지는 척 봐도 나보다 높아 보였고, 나는 야광봉을 휘두를 줄만 알지 신체 능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대련 신청은 건너뛰어야 한다.

“전쟁 중에 큰 부상을 입는 바람에, 이제는 뛰는 것조차 힘듭니다. 다만 기술은 죽지 않았으니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던 차. 공녀님의 지도교사가 된 것이지요.”

“오호라. 과연···! 이거, 내가 큰 실례를 저질렀소.”

실례까지야. 내가 너네한테 하고 있는 게 실례지.

그렇게 해서, 어찌저찌 나는 지도교사로서 알머스 공작가에 녹아들 수 있었다.

*

알머스 공작가에는 총 다섯 명의 자식이 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선 장남 페일트 알머스.

스물둘의 나이에 ‘소드 프로페셔널’의 경지에 올라선 장녀 하렌 알머스.

열다섯의 나이에 별 성취가 없는 차녀 엘라헤 알머스와 나머지 두 명의 엑스트라.

솔직히 장녀와 장남의 이름을 외우는 것도 귀찮았는데 이곳 얘기를 듣다보니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다.

“네네. 그랬죠. 모르셨나요? 엘라헤 공녀께서는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지독한 병세를 앓아 누으셔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셨답니다.”

흔한 빙의물의 클리셰다.

공녀님이 뭔가를 잘못 처먹고 드러누웠는데, 거기에 다른 영혼이 들어가는 것.

“그런데 신기한 게, 알머스 공작님께서 ‘마지막 마녀’의 심장을 검으로 찌른 그 순간. 엘라헤 공녀님께서 눈을 뜨신 게 아니겠어요? 아마도 공녀님은 저주에 걸렸던 게 틀림없어요!”

“아휴. 하녀장님! 교사님께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욧!”

“으, 으흠! 아무튼. 이거 어디 가서 얘기하시면 안 돼요?”

“당연하죠.”

오늘 당장 수업이 있지는 않았기에, 엘라헤에게서 풀려난 나는 공작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며 이곳에 대해 알아보았다.

정말, 저택은 입이 쩍 벌어지도록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작은 마을 하나 정도의 크기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게 성이 아니라 저택이라니.

“그러고 보면···. 일전에 공녀님의 성격이 그러셨던 것도 저주일까요?”

“음음. 일리가 있어.”

“그건 또 무슨 소린데요?”

“아니 글쎄, 공녀님이 일년 전에 잠드시기 전까지만 해도 성격이 영······. 좀, 그랬거든요.”

짜증난다는 이유로 접시와 촛대를 집어 던지거나, 하녀와 기사들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새벽에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거나.

그래서 이 저택에는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예 없다시피 했고, 심지어 검술명가의 차녀인데 검을 쥘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어서 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장남과 장녀가 각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벌써부터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데에 비해, 엘라헤는 뭘 제대로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그러던 어느 날 엘라헤 공녀가 쓰러졌으며, 이후 알머스 공작이 마지막 마녀의 심장을 꿰뚫는 그 순간.

깨어난 엘라헤 공녀의 모습이 180도 달라졌다고 했다.

“모두에게 예의도 바르고, 여태 밀렸던 수업을 몰아서 한 번에 듣고 계시기도 하고···. 심지어 검술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니까요?”

“아휴. 우리 아가씨 너무 무리하지만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아가씨 정말 든든하지 않나요?”

그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려서 창밖의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기사들의 훈련 시간이 끝난 늦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연무장에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솔직히, 레벨이 70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준은 형편없었다. 아마 저 레벨의 대부분은 숨겨두고 있는 ‘마법’으로 이루어진 수준일 터. 그 마법에 대해 제대로 알아내기 전까지는 섣불리 사냥을 시작하기 어렵다.

음. 단순히 검술로만 따지면 기껏해야 첼레스테보다 조금 나은 수준일까.

물론 기술만 놓고 따지고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 신체 능력은 상당히 연약한 수준이었기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신체가 허약한 그녀가 저토록이나 뛰어난 검술을 선보일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검술 자체의 근본이 아주 환상적이었가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엘라헤가 스킬 ‘알머스 류 비전검술(SS+)’를 사용합니다.]

저게 바로 금수저라는 걸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SS+급의 스킬을 익힐 수 있다니.

“아무튼, 원래부터 선한 분이셨는데. 마녀 그 썅년들이 문제야.”

“그래도 전부 처죽여서 다행이지 뭐에요.”

“······.”

마녀의 이야기가 나오자 하녀들의 말투가 바뀌었다.

증오가 가득 담긴 목소리. 그것은 본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혐오였다.

“마녀를 많이 싫어하시나 봅니다.”

“당연하죠.”

“제가 이쪽 대륙은 처음이라 그런데, 이곳의 마녀도 똑같습니까?”

“아휴, 어딜 가나 똑같겠쥬.”

그러면서 하녀들은 끔찍하다는 듯이 마녀가 인간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주었는데 과연 나조차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잔혹하고, 끔찍한 행위를 서슴치 않고 저질러왔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마지막 마녀’라는 존재는 이 세계의 절반을 전란에 휩싸이게 만들었을 정도로 아주 지독한 마녀였단다.

“마지막 마녀라면······.”

“각하께서 마지막으로 잡으신 바로 그 마녀!”

잠깐.

“그 마지막 마녀에게 나는 부모님을 모두 잃었어.”

“나는 고향이 사라졌다고. 젠장.”

“저도···. 남편을 잃었지요.”

워낙 악명이 자자했던 마녀였기 때문일까, ‘마지막 마녀’는 이들이게 더욱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내가 그저 가만히 듣고있는 와중에, 뒤쪽에서 곱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온다.

엘라헤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어머, 아가씨. 아휴, 갑자기 사라진 고향 생각이 나서···!”

“고향이 어떻게 됐길래요?”

“그 썩을 마지막 마녀 때문에···앗!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험한 말을···.”

“아니에요.”

엘라헤는 따스하게 웃으며 하녀들을 꼬옥, 안아주며 말했다.

“고향을 잃고 힘드실 텐데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순 없겠지만, 위로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아아. 아가씨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바로 저런 모습일까. 모든 이들이 그녀의 따스한 마음씨에 감동을 먹은 듯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엘라헤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마녀.

그건 다름아닌 엘라헤를 칭하는 말이지 않은가?

“여러분과 고통을 나눌 수만 있다면, 저도 기꺼이 함께 슬퍼하겠어요.”

저건 그냥 개싸이코였다.

< 마녀였던 내가 검술명가 셋째딸?(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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