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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4화 (24/251)

< 난 마법은 못해도 흉내는 잘하지(2) >

이튿날, 새벽.

한유준은 로스트 데이의 마스터 유하람과 통화를 했다.

-너도 알겠지만, 이번 던전은 ‘마법’과 관련이 되어있다.

마법.

과학만을 사용하는 지구에서는 상당히 낯설 수도 있는 단어의 굴림에 한유준은 자신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지구상 그 누구도 마법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밝혀낸 자는 없었다.

마법을 원하는 자는 많지만, 누구도 갖지 못했다는 의미.

하지만 만약 마법을 얻게 된다면? 현재 힘의 판도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될 터.

-을왕리의 던전이 ‘마법’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극히 드물다.

유하람 또한 특수한 인맥을 통해서 얻은 정보였다. 어지간한 대기업과 국가조차 이 사실을 모른다. 그러므로, 유하람은 조금 무리를 하기로 했다.

-···이미 이야기는 해뒀다. 군인들이 출입을 허가할 것이다.

입장 권한이 가로막힌 기형던전의 입장은 국제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있다.

통신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기형던전의 특성상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에서 알 수가 없었는데, 그 점을 이용해 수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한 데다가 10년 전 ‘엘리츠 던전 대학살’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문제점이 크게 이슈화된 것이다.

제아무리 로스트 데이라고는 해도, 국제법을 어겼다가는 질타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기형던전을 두고 수많은 기업 및 헌터들이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입장 권한자가 F랭크든 어쨌든, 허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으니까.

그런 이유로, 유하람은 꽤 많은 손실을 감수했다.

국제법을 속이기 위해 많은 이들의 눈과 입을 가려야만 했으니까.

-그만큼이나 이번 건은 내게 중요하다. 이해하고 있도록.

유하람이 전화를 끊자 한유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사건이 커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상대는 F랭크 헌터 한 명에 S랭크 헌터 한 명. 그에 비해, 이쪽은 S랭크의 헌터가 셋이나 있다.

‘충분히 가능해.’

곧바로 한유준은 S랭크의 헌터 셋을 조용히 불러내었다.

장도진, 윤설균, 안재이.

그들은 각자가 5년 이상이나 활동해온 나름대로 경력있는 헌터였으며, 동시에 S랭크의 초능력을 보유하고 있기도 했다. 비전투요원인 자신과는 다르게 던전 내에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그들에게 길드 마스터의 전언을 읊었다.

“지금부터 너희 셋은 던전에 몰래 진입한다.”

“그렇습니까?”

대충 예상은 했다는 듯 장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들과 이야기는 끝내놨다. 너희는 조용히 들어가서, 둘을 죽이고 일주일을 버텨.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당장 눈앞의 세 명이 투입된다고 치면, S랭크의 던전도 높은 확률로 공략할 수 있다. 제아무리 기형던전이라지만 SS랭크의 출력이 확인되는 경우는 드물고, 또 SS랭크라고 해도 입구 부근에서 버티고 버틴다면 일주일을 버티는 건 일도 아니다.

게다가 만약 진짜로 SS랭크의 던전이라면 애초에 그 두 명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만약에 만약의 상황을 상정해서, 마스터께서는 완벽한 처리를 원하신다.”

던전의 내부로 들어가서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소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실종’ 처리를 하고서 구조대를 보내는 게 원칙이다. 즉, 일주일이 지난 순간 공략 실패 판정을 받는다는 의미.

유서담과 테일러 나인을 죽인 뒤 세 명이 일주일을 버티면 유서담을 구하기 위한 구조대가 파견될 것이고, 거기에 자연스레 합류한 뒤 무사히 공략을 마치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기형던전 내부에서는 기계가 작동되지 않아. 이상하게도 통상적인 전파 수신이 불가능하거든. 영상도 찍을 수 없고, 통신도 불가능. 기껏해야···. 아날로그의 모스 부호의 송출만이 가능하지.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을 꼭 하도록 해라.”

“예.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로스트 데이 내에서도 베테랑으로 손꼽히는 S랭크의 초능력자가 무려 셋이다.

비록 상대측에도 S랭크의 초능력자가 있기는 했지만, 충분히 상대가 가능한 수준.

문제는 없다.

“그래. 지금 출발하도록.”

늦은 새벽이었다.

그럼에도 던전의 입구에서 보초를 서는 군인들의 숫자는 스무 명이 넘어갔고, 그중에는 S랭크의 초능력자도 존재했다. 이마에 대령의 마크를 달고있던 중년의 육군, 한해중은 다가오는 세 명의 초능력자를 보더니 눈썹을 꿈틀했다. 그러나 장도진은 아랑곳않고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수고가 많으시군요.”

그에 한해중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이들을 들여보낼 경우,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새벽부터 갑작스레 상부에서 내려온 지침. 로스트 데이의 헌터 세 명의 출입을 허가하라. 육군은 물론, 국제 이상현상 기구와도 이야기가 끝났다고.

그런 명령이 떨어지면 결국 일개 군인일 뿐인 한해중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조만간 후회할 날이 올 거요.”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조용히 자리를 비켜섰고.

“그런 날은 없을 겁니다.”

짧게 일축한 뒤, 세 명의 헌터는 빠르게 던전으로 향했다.

화아악!

던전에 들어선 즉시 느껴지는 다른 환경의 냄새.

어쩐지 답답하고 무거운 공기를 느끼며 그들은 표정을 와락 구겼다. 헌터들의 기본적인 장비 중에서는 공기 정화제 및 산소 필터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있었지만, 아무래도 다른 환경은 적응하기가 영 힘들었다. 심지어 가끔은 중력이 다르거나 거꾸로 흐르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여긴 그래도 지구와 비슷한 거 같은데.”

그들은 고개를 들어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지구는 새벽이었지만, 이곳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거대한 성채 하나가 반파된 채로 그들을 반기고 있었는데,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장도진은 최대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센서에 반응되는 것은 없었다.

“이것 봐. 던전 해석이 좀 이상한데?”

“뭐?”

30년간 수많은 던전이 존재해왔고, 이제는 현대 과학 기술로 던전의 ‘이름’을 색출해내는 것도 가능해진 시대. 이상현상 탐지기가 던전의 특징을 잡아내서 이름을 특정해내면 그것이 곧 던전 공략의 포인트가 된다.

그런데······.

[멸망한 ???의 ??황궁]

“뭐야? 던전 이름이 왜 이래?”

“옛날엔 다 이랬어. 요즘엔 별로 없긴 한데······. 처음 등장한 타입의 던전인 모양이야.”

“황궁이라. 던전 내에 건축물이 있던 적은 있긴 한데, 성 한 채가 떡하니 있다니···. 이런 케이스가 더 있던가?”

여성 헌터, 안재이의 물음에 다른 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하군.”

황궁의 정면이 활짝 열려있다.

즉, 놈들이 던전의 안쪽으로 향했다는 의미.

“가자.”

세 명의 초능력자는 조심스레 움직였다. 상대방이 눈치를 챘을 확률은 제로. 그러나 상대 중에는 S랭크의 초능력자, 테일러 나인이 있었다. 그녀의 능력은 그들로서도 꽤 골치가 아팠기에,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안재이는 자신이 가진 초능력 중 하나인 탐지능력을 활성화하였다. 랭크는 낮지만, 단기간 내에 미리 지정한 대상이 이동한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초능력. 유서담을 최근에 체크해두었기에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음?”

“왜 그래?”

“아니, 뭔가 이상한 루트로 이동해서.”

그녀는 고개를 돌리다가, 벽과 벽 사이에 숨어있는 공간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기로 들어갔는데?”

“흠······.”

주변에는 골렘처럼 보이는 몬스터들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모두 가슴이나 허리, 머리 등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었는데 아무래도 테일러 나인의 초능력으로 추정. 하지만 이것들을 모두 잡으면 정면의 커다란 통로로 향하는 게 정상적인 판단일 터.

‘왜 저기로 간 거지?’

이해는 할 수 없었으나, 아무튼 쫓아야 했다.

“이유는 알 필요 없다. 추격한다.”

장도진의 말에 나머지 둘이 고개를 끄덕이고선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동하였다.

던전에 입장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아주 살짝의 긴장감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유서담을 추격하면 할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가 향하는 길이, 통상적인 길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

보통 이런 형태의 던전이라면 꼭대기에 보스 몬스터가 존재할 터.

‘어째서 지하로 향하고 있는 거야?’

설마 자신들이 쫓아온다는 사실을 눈치챘나 싶다가도, 고개를 저었다.

그 어떤 감지계열 능력과 기계도 발견되지 않았다. 최첨단 센서와 감지 능력을 사용하는 안재이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을 터. 혹여나 추격의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고 해도,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상대를 기다리겠다고 지하로 향하겠는가? S랭크의 던전 공략의 시간만 잔뜩 빼앗길 텐데.

그들은 그런 식으로 각자 머릿속으로 합리화를 했고.

마침내, 지하 가장 깊은 곳.

현대인들은 읽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겠지만, ‘마력의 심장’이라 불리는 거대한 공간에 도착했을 때.

깨달았다.

“······설마설마했는데, 함정이었나?”

이상한 공간이었다.

여기저기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진 기둥이 들쭉날쭉하게 솟아있고, 천장은 이상하리만치 높았다.

그리고 정가운데에 마치 죽은 것처럼 빛을 잃은 바위 하나가 놓여있었다. 지구인들은 알 수 없겠지만, 저것이 바로 모든 ‘마법의 건물’에는 반드시 발전기처럼 심장부로 들어가는 거대 마정석(마력의 심장)이었다.

비록 모든 마력을 잃은 채였지만, 어쩐지 그곳에서 피어나는 음울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장도진은 그 마정석을 쓰다듬고 있는 유서담을 향해 물었다.

“우리가 올 걸 알고 있었나?”

“그래.”

“그럼 왜 도망치지 않았지?”

그렇게 물으며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테일러 나인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숨었지?’

하지만 걱정은 없다. 초능력자 상대에 특화된, 윤설균의 능력이 있었으니까.

에테르 사출(S)과 대상 추적(D)의 능력을 갖춘 안재이.

에테르 방사(S)와 에테르 교란(A)의 능력을 갖춘 윤설균.

에테르 실드(S)와 강체(S)의 능력을 갖춘 장도진까지.

세상에 듀얼의 초능력을 각성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으나 그들은 드물게도 듀얼의 초능력자였고, 또 S랭크의 출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상의 초능력을 윤설균이 교란시키고, 장도진이 강철보다도 더욱 단단한 몸집으로 돌진을 하며, 안재이가 활 형태의 디스펜서를 이용해 에테르 화살을 난사하여 적을 끝까지 쫓아가 명중시킨다면 설령 S랭크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라 불리는 테일러 나인조차 버틸 수 없으리라.

그러나.

“테일러는 지금 사냥하고 있어. 간만에 몸 좀 풀어야지 걔도.”

“···뭐?”

서담은 천천히 걸어서, 기둥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마법사의 건물, 그중에서도 심장부. 건물의 생명 자체를 유지시키는 장소.

그런 장소에 과연 침입에 대한 대비책이 하나도 없을까?

비록 지금은 건물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심장조차 가동이 정지되었지만, 여전히 ‘룬’의 존재는 남아있었다.

침입자가 들어오면 마법이 즉시 발동되어 적을 격추하는 일종의 시큐리티 시스템. 비록 마정석이 존재하지 않는 데다가 대부분의 룬이 파손되었고, 비비안타에 비해 상당히 구식의 룬이었지만.

문제는 없다.

웅웅웅!!

이미 서담은 1시간 사이에 이곳에 있는 모든 룬을 빠르게 해석해둔 채 준비를 끝마쳤다.

마법사란 곧 준비하는 자.

그리고 유서담은 F랭크의 헌터로서, 질리게도 준비를 해왔다.

F랭크의 몬스터를 잡기 위해 3시간을 기다렸다. E랭크의 몬스터를 포획하기 위해 48시간을 기다렸다. D랭크의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장장 한 달을 버텼다. 그는 준비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고, 이 부분에서는 그 어떤 마법사보다도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뭐, 됐다. 저놈을 죽이고 찾으면 되겠지.”

장도진의 말이 떨어지자 그들은 각자 활, 방패, 아대를 꺼냈다.

헌터를 상대하기에 가장 최적화된 초능력을 가진 S랭크의 헌터 셋이 모였다. 제아무리 잔머리 잘 굴러간다고는 해도 F랭크의 헌터 따위는 가볍게 찍어 누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적당히, 파리를 향해 파리채를 휘두르는 정도로 생각하며.

퉁, 장도진이 자리를 박차는 순간.

피슉!

“······!”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떨어졌다.

*

테일러는 야구 방망이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왼손으로는 빛의 구체 세 개를 빙글빙글 돌렸다.

쿠웅!

방금 막 ‘혼혈혼종 키메라’라는 기괴한 이름을 가진 집채만한 S-랭크의 괴수를 쓰러뜨린 차. 어지간한 S랭크의 헌터들이 와도 고전할 정도로 강력한 괴수였으나, 테일러 나인은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채 놈을 혼자서 쓰러뜨릴 수 있었다.

“오, 로봇이랑은 다르게 요 귀여운 것들은 에테르가 있잖아?”

서담이 ‘가디언’이라 칭한 적들은 안타깝게도 전부 죽여도 에테르 크리스털을 회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키메라 종류에게선 에테르 크리스털을 추출해낼 수 있었고, 상당한 양을 모을 수 있었다.

에테르 크리스털을 모두 추출해낸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넌 사냥이나 실컷 하고 있어. 잠깐 손님 좀 대접하다 올 테니까.’

유서담은 그렇게 말한 뒤, 지하 깊은 곳의 공동에 홀로 남았다.

그는 자존심이 강하다. 그러나, 자만심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매사에 신중한 성격이었다. 도와줄까?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자신만만했고, 그렇기에 테일러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서담은 항상 자신만만했다.

15년 전, 여덟 명의 소년소녀가 헌터가 되었을 때.

단 한 명을 제외한 일곱 명이 모두 초능력을 각성했을 때에도.

언제나 서담은 자신에 차 있었다.

테일러는 그때의 서담을 떠올렸다.

그를 제외한 자신들이 E랭크의 초능력을 각성했을 때에도, 그것이 D가 되고 C가 되고 마침내 A가 되었을 때도.

그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초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그는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걸 원치 않았고, 모두가 선을 지켰다. 그렇기에 테일러가 망설이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에라이 씨, 확인만 해보자. 사냥하기도 찝찝한데······.’

결국 테일러는 뒤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쿵, 쿠궁!

“······이건 또 뭔 소리야?”

서담이 대기하고 있던 공동으로 되돌아가던 그녀는 지축을 울리는 진동에 표정을 찡그렸다. 약간의 폭발음과 타격음. 그리고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

그녀가 알기로 서담은 저런 소리를 낼 수 없다. 설마 싶은 마음에 테일러는 이를 악물고서 공동을 향해 달려갔고.

입구에 들어섰을 때.

···하늘에서 웬 불꽃의 기둥이 로스트 데이의 마크를 단 헌터들에게 내리꽂히는 걸 볼 수 있었다.

“뭐, 뭐야?”

테일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상황을 파악하였다.

S와 로스트 데이의 견장을 단 세 명의 헌터, 그리고 아무런 견장도 달지 않은 한 명의 헌터의 대치상황.

제아무리 유서담이라도, 이건 아니다. 불가능하다. 그럴 터인데.

“저건 대체···?”

하늘에서 날벼락이 내리꽂힌다. 바닥에 선이 그어지더니 나선형의 칼이 솟구치기도 했으며 바닥에서 붉은 원이 솟아오르더니 범위 내의 모든 것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것은··· 전혀 본 적 없는 종류의 초능력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난사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유서담이.

‘언제부터 초능력을···. 아니 그 전에, 저게 말이 돼?’

지구상에 기록된 다중 초능력자 중 가장 많은 수의 초능력을 보유한 자는 세 개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초능력자도 저런 기묘한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었다.

유서담이 바람처럼 질주하며 벽에 손을 짚을 때마다 허공이 구부러지거나 빛의 광선이 쏟아져 내렸고, 푸른색의 구슬이 굴러다닌다. 그것은 현대의 초능력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이(奇異).

S랭크의 헌터 세 명이 힘의 차이를 버텨내지 못하고, 부조리를 울부짖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냐고. 말이 되냐고, 제발 살려달라면서. 절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저게 대체···?’

S랭크 헌터 셋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말도 안 되는 광경에 테일러는 입을 쩌억 벌렸다.

그녀는 무심코, 서담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다는 듯이 싸우고 있었다.

재능이 없어서. 초능력이 없어서. 언제나 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었던 30년 남짓의 삶. 그런 그가 처음으로 천재들을 순수한 능력으로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저 표정을 보고 있자니 모든 의문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

그냥, 기뻤다. 서담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더 기뻤다.

저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저런 일이 발생하는지.

그런 것따위는 지금 이 순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언제나 부조리의 정점에 서 있던 이들이.

정점의 가장 밑바닥에 있던 서담에게 찢기는 광경을 보며.

테일러 나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와, 미친. 존나 예쁘네···.’

그 어떤 다른 감상도 필요치 않았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신비롭고 아름다운 전투.

테일러 나인은 홀린 듯이, 한참이나 그곳을 바라보았다.

< 난 마법은 못해도 흉내는 잘하지(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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