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마법은 못해도 흉내는 잘하지(1) >
“아하핫, 병신새끼들. 졸라 꼬시네.”
테일러는 던전 주변에 진을 치고있는 기자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로스트 데이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하게 던전의 해석을 진행하려고 했었고, 그에 실패하자 반동으로 기자들이 몰려 들어온 것.
테일러도 이 기회를 놓칠 새랴 “병신들아 그러게 작작 나대고 짜져 있었어야지!”라고 기자들을 향해 외쳤으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말이 필터링되어 보도되고 말았다.
과도하게 보도한다고 욕을 먹는 기자조차 축소 보도를 하게 만드는 무차별 쌍욕 인터뷰! 유서담조차 혀를 내둘렀다.
지금도 군인들이 기자들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을 벌떼처럼 몰려들었고 로스트 데이는 침묵을 지키는 상태. 여기서 괜히 말 한마디 잘못 꺼내봐야 좋을 건 없다.
실컷 그들을 비웃던 테일러는 문득 고개를 돌려보았고, 왠지 심각한 표정을 짓고있는 유서담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표정을 와락 구겼다.
‘이 새끼 설마, 아직도 로스트 데이에 미련이 남아있나?’
서담은 로스트 데이의 창설 이후 12년이나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초반에는 다른 어떤 이유로 그곳에 머물렀고, 나중에는······.
‘헬 게이트가 문제였지.’
헬 게이트.
어느 날 태평양 한가운데에 나타난 그 기괴한 홀은 인간의 어떠한 상식조차 통용되지 않는 미지의 장소였다. 왜 나타났는지, 그 안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홀이 유지되고 있는지조차 인간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인간들은 그곳을 정복하기 위해 몇 번이나 도전을 거듭하였고.
유서담 역시 그곳에 도전했던 헌터 중 한 명이었다.
대부분의 헌터들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생환률 0.3%의 지옥보다도 지옥같은 장소. 살아 돌아온 이들 대부분이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했으며, 또한 대부분이 불구가 되어 평생 헌터는커녕 일반인으로 살아가기도 벅차다고 했다.
헌터들이 그곳에서 느낀 감정은 정말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절대적인 공포’를 호소했다. 다시는 몬스터를 상대할 수 없을 것처럼 굴며, 헬 게이트에 다녀와 정신에 이상이 생긴 S랭크의 헌터가 F랭크의 몬스터를 보고서 바지에 오줌을 지려버린 일화도 꽤 유명했다.
‘대체 안에서 뭘 봤는진 모르겠지만······.’
테일러는 그곳에 다녀와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유서담이 그곳에서 뭘 봤는진 모른다.
하지만, 유서담이 헬 게이트에 미련이 남아있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그래서.
문제였다.
몇 년 전, 국제법으로 ‘헬 게이트’의 입장 조건을 최소 A랭크 이상의 헌터만이 가능하도록 변경해버린 것. 유서담은 헬 게이트에 미련이 남아있었으나, 초능력자가 아니기에 다시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
단, 로스트 데이 길드의 힘을 이용한다면 꼭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테일러는 유서담이 길드 내에서 지독한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꾸역꾸역 남았던 이유가 그것 중 하나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 역시 그런 이유가 맞물리고 맞물린 탓이라고 추측하고 말았다.
“야. 너 설마, 아직도 저 길드에 미련이 남은 건 아니겠지?”
그녀는 진심으로 화가 난 듯, 이를 악물고서 그에게 물었고.
“······아니? 뭔 개소리야? 아직 좀 부족해서 어떻게 엿 먹일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서담은 테일러를 이상한 생물체 보듯 쳐다보았다.
*
로스트 데이는 언론에 대해서 침묵을 일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비록 던전의 해석을 끝내진 못했더라도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던전 내에서 활약을 하면 이미지의 커버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들이 던전에 들어가기 전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기자들이 달려들고 있는 것이고,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로스트 데이는 끝까지 침묵으로 버티고 있었다.
이 말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던전 입장 권한자가 타그룹의 입장을 거부했습니다.”
“······예?”
로스트 데이의 해석자이자 A랭크의 해석사, 한유준은 돌아오는 대답에 표정을 일그렸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믿을 수 없는 말에 재차 물어보지만 군인 역시 상당히 당황한 표정으로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할뿐이었다.
“예. 던전 입장 권한자께서 타그룹의 입장을······.”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대체 왜!”
이번 던전을 비롯하여 입장 자체가 불가능한 던전의 경우에는 최초로 출입 조건을 발견해낸 자에게 ‘입장 권한’이라는 것이 생긴다. 무차별적으로 헌터들이 들어가 사망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입장 권한을 가진 가장 현명한 자가 병력을 통솔한다는 취지에서 국제법으로 지정된 것이다.
즉, 사심이 아주 가득 담길 여지가 충분했다.
“사유는 있을 거 아냐. 그놈들이 뭐라든?”
“예. 입장 권한자 F랭크 헌터 유서담께서 말씀하시길, 자신의 힘이면 충분하다고···.”
“이런 씨발!”
다른 길드나 헌터 연합에서도 의아해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로스트 데이만큼 열이 받지는 않았다.
이번 던전은 로스트 데이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하다. 수백억이나 투자한 것은 비단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저 던전 내에 존재하는 ‘미지의 기술’에 대해서도 파악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지구상에 몇 명 알지 못하는 아주 특별한 그 기술을 밝혀내기 위해 로스트 데이가 얼마를 투자했던가.
한유준은 심호흡을 크게 하였다.
‘아니지. 그래 봐야 그놈은 F랭크의 헌터야. 제아무리 S랭크의 그 미친년이랑 붙어 다닌다고는 하지만······. 둘이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군.’
오히려, 여기서 던전의 공략에 실패하면 로스트 데이가 욕을 먹는 것과는 별개로 온갖 극찬을 받고있는 유서담이 바가지를 뒤집어 쓸 수도 있었다.
기회다.
일전에 로스트 데이가 했던 실수를 유서담이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땐 네가 우릴 엿 먹여서 골치가 아팠지만······.’
결국, 받은 대로 되돌려주면 그만 아니겠는가?
*
활짝 열린 문 안쪽으로는 알록달록하게 흐려지는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음, 확실히 찝찝한 생김새다. 테일러 나인은 내 옆에서 야구 방망이처럼 생긴 에테르 디스펜서, ‘홈런배트’를 허공에 붕붕 휘두르며 말했다.
“야, 진짜 우리 둘이서 되는 거 맞아?”
그도 그럴 게, 무려 기형던전이다. 일반적인 과학 장비로는 랭크가 얼마나 되는지, 안에 무슨 몬스터가 있는지, 어떤 자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모른단 말이다. 지구의 상식과는 다른 또다른 세계.
그런 장소에 아무리 그래도 둘이서 가는 건 테일러라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있다.
눈앞의 이 던전, 마력으로 되어있어서 과학 장비로 측정하지 못했을 뿐 기형던전 치고는 출력이 약하다. A랭크 정도에서 많이 쳐줘 봐야 S랭크 정도.
물론 평범하게 생각했을 때 S랭크의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S랭크의 헌터 셋 이상이 필요하다. 심지어, 나는 2급의 장비가 고작이지 않은가? 이 정도로는 통상 B랭크의 던전을 공략하기도 벅차다. 겉으로 보면 말이다.
문제는 없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이거 실패해서 우리 둘 다 뒈지면 죽어서도 욕 오질라게 처먹을 텐데.”
“괜찮아. 다 생각이 있으니까.”
나는 의뢰인 덕분에 남들보다 먼저 던전의 이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해당 세계는 ‘멸망한 줄레카 제국의 마도황성’입니다.>
마도황성.
이름부터 알 수 있듯 이곳은 마법과 관련이 있다.
다만, ‘발전도’에서 차이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어제 하루종일 마도황성의 입구에 그려진 마법진을 그리며 무언가 의구심이 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도황성의 마법 기술이 비비안타 아카데미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하다는 사실.
굳이 비교하자면 20세기 중후반 수준의 과학 기술과 21세기 중반 정도의 차이, 즉 100년 이상이나 압도적인 기술력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과는 달리, 마법은 기술력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 이점을 살릴 수가 있었는데 바로, 더욱 발전한 세계의 마법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열등한 마법을 완벽히 이해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점.
비록 내 지식은 비비안타 아카데미에서도 초중등 수준에 불과했기에 지배의 영역에 도달할 수는 없겠지만 ‘공략’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라고 교수의 신분으로 비비안타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배웠다.
“위험하면 벨 누르지 뭐. 폼은 좀 안 살겠지만 길드 ‘레카덴’이나 ‘글록’에서도 후발대로 진입해서 도와준다고 부탁을 하더라고.”
“엥? 걔네가 왜?”
“로스트 데이를 싫어하는 건 너랑 나뿐이 아니야. 그리고, 우리 구해주면서 자기들 이미지 채울 명분도 있고, 던전 공략도 할 수 있고. 일석삼조 아니겠어?”
“어···. 그러게? 그런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즉 나도 아무런 대책 없이 던전에 들어가는 건 아니다 이거다. 내 목숨 소중한 건 나도 아는데.
또.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하나 있기도 했고.
슬쩍 뒤를 돌아보자, 로스트 데이의 몇몇 관계자들이 이쪽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와, 진짜 눈빛만으로도 사람 하나 죽일 것 같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피한 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들어가자고.”
[던전 ‘멸망한 줄레카 제국의 마도황성’에 입장합니다.]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세상이 변화하였다.
언뜻 ‘주인공 사냥 의뢰’를 받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느낌.
이윽고 눈을 뜨자.
노을진 하늘이 인상적인 배경 아래로, 반파된 거대한 황국이 시야에 들어왔다.
“와우······.”
[주의! 해당 세계는 ‘에필로그’가 끝났습니다.]
“음?”
들려오는 메세지에 고개를 갸웃했다. 에필로그가 끝났으면 끝난 거지, 주의할 건 또 뭐람. 그러자 의뢰인이 말한다.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끝내버리면, 해당 세계는 존속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즉, 현재 세계는 ‘멸망’이 진행 중입니다.>
<문명의 멸망이 아닌, 세계의 멸망.>
<만약 세계가 완전히 멸망할 때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당신의 존재도 위험해집니다.>
헐 씨발. 야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흥분한 것도 잠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던전이 멸망하든 말든 바뀌는 건 없다. 다만 ‘에필로그’라는 단어가 조금 거슬렸을 뿐.
“에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렸다. 테일러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상관은 없다.
“됐다. 이제 가보자고.”
테일러를 이끌고서 황궁의 입구로 향했다.
입장은 간단했다. 애초에 입구의 문짝에 그려진 마법진이 엉성한 수준의 나에게 간파당한 것처럼, 이 역시도 비슷하게 마법진을 몇 번 덧대니까 금세 열렸다.
이윽고, 드러나는 내부.
테일러와 나는 멀찍이서 망원경으로 구조를 확인하였다. 황궁의 내에는 검은색의 금속으로 이루어진 이족보행의 생명체가 걸어다니고 있었는데, 푸른색의 안광을 흉흉하게 빛내고 있었다.
“미친, 저거 골렘이냐?”
“아니. 가디언이야.”
골렘과 가디언. 언뜻 비슷해 보이는 두 생명체는 사실 본질적으로 다르다.
골렘은 자연물질 그 자체가 심장을 얻어서 생명체가 되는 것이었기에 그 종류도 불, 바위, 물 등으로 다양했다. 즉, 일종의 ‘정령’과 비슷하다는 의미.
하지만 가디언은 마법 생명체였다. 일종의 로봇과도 비슷했다. 회로와 회로를 연결하여 배터리로 작동하는 로봇.
그리고.
내 눈에 저 모든 가디언들의 회로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마치 중학생 때 초등학교 수학책을 본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간단하게.
어디를 건들면 더 효율적으로 적이 무너지고, 어디를 건들면 관절이 박살 나는 지까지.
게다가 황궁의 구조는 또 어떤가.
비비안타의 건축물에도 마법은 분명히 첨가되어있었다. 하지만 마법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회로를 숨겨놓았는데, 이곳은 달랐다.
회로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예상대로······. 황궁의 구조까지 전부 파악할 수는 있겠어. 이거, 애써 준비했던 게 무의미하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위잉위잉!!
갑작스레 귓가에 알람이 울렸다.
테일러에게는 들리지 않고, 나에게만 들리는 알람.
그것은 아주 기초 중의 기초 마법인 ‘경계 알람’이었다.
비비안타의 세계에서는 별 쓸모가 없는, 어린애가 고무줄을 쳐놓는 수준의 알람 마법이었기에 마법을 조금이라도 배운 자라면 금세 알아차릴 수가 있어서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겠지만.
이곳은 현대.
마법을 사용할 줄 알고, 감지할 줄 아는 자가 한 명도 없다.
즉 몰래 던전에 침입한 자가 있다는 의미.
나는 피식 웃었다. 애초에, 누가 들어왔는지조차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느껴지는 인원은 총 세 명. 틀림없이 로스트 데이가 어떻게든 힘을 써서 들여보냈을, S랭크 초능력자들이다. 애초에 법이고 뭐고 지키는 놈들이 아니었으니까. 수백억을 들여서까지 이 던전을 노리고 있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어쩐지 너무 뻔할 정도로 여전한 행동패턴에 기가 찼다.
아마 놈들도 어마어마한 손해를 감수해서까지 이런 짓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테일러. 손님이 왔어. 아무래도 던전은 그놈들 족치고 진행 해야될 것 같다.”
“아, 시발. 진짜 귀찮게.”
“너는 가만히 있어. 나 혼자 되니까.”
“뭐? 그래도 돼?”
천천히 황궁을 훑어본다.
마법은 의외로 굉장히 고지식했고, 또한 뻔했다.
마법을 제대로 목격한 건 이번이 두번 뿐이지만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의 마법 역시 그 틀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마법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라면······ 곧 구조적으로 마법이 가득한 공간이라는 의미.
“으흐흐흐.”
나는 에테르 블레이드와 에테르 건을 집어넣었다. 이것들은 당분간 필요가 없을 테니까.
이제부터는 헌터 유서담이 아닌, 마법사 유서담이 될 차례였다.
< 난 마법은 못해도 흉내는 잘하지(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