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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2화 (22/251)

< 조금 특별한 F랭크 헌터(3) >

이튿날.

을왕리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서담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 던전의 입구와 거리를 두고서 태블릿을 꺼냈다.

어제 저녁과는 다르게 문처럼 생긴 던전의 입구에는 수많은 과학장치가 즐비해 있었는데, 저것들이 바로 기형던전의 파동 및 패턴을 파악하여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라고 한다.

솔직히, 엄청 대단한 기계인 건 사실이나 여태 기형던전의 해석 성공률이 20%도 채 되지 않는다는 아주 눈물겨운 후일담이 존재했다.

“아, 너네 집이 편했는데. 어깨 존나 결리네.”

“우리 집엔 침대도 없는데?”

서담이 군용 막사에서 머물려고 하는 것을 테일러가 극구 말려, 그들은 근처에 있는 꽤 그럴싸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침대조차 없는 서담의 집보다 잠자리가 훨씬 편한 건 당연한 일. 그럼에도 테일러는 영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어깨를 주물렀다.

“너네 집은 묘하게 익숙하거든.”

“······.”

불법거주자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기에 서담은 입을 다물었다.

유서담을 제외하고서도 기형던전의 입구에는 수많은 연구원들과 학자, 해석사와 길드 등이 모여있었다. 국제 이상현상 기구를 비롯하여 규모가 거대한 길드에게도 간혹 이상현상을 해석하는 기계가 들어서고는 했는데, 그들 모두가 각자의 힘으로 인천에 나타난 저 기괴한 던전을 해석해보겠답시고 난리를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 않았다.

로스트 데이의 거대한 기계가 윙윙거리며 돌아가고 있던 탓.

이번 던전의 해석을 로스트 데이에서 전적으로 도맡은 것이다.

로스트 데이의 길드 문장이 찍힌 저 검은색 기계의 정체는 수백억이나 들여서 만들었다는 이계파형 해석기였다. 아무래도 ‘타임 오버’가 될 경우 큰일이 난다는 점을 언론을 통해 전파한 뒤 그것을 자신들이 해결했다는 식으로 여론을 돌리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테일러 나인은 따분한 눈으로 그들이 거대한 기계를 어루만지는 꼬락서니를 보다가 서담을 바라보았다.

“······근데 넌 고작 네 얼굴 만한 기계로 뭘 해보겠단 거야?”

“그냥.”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괘 그럴듯한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최소 A랭크 이상의 유명 해석사 세 명이 이곳에 찾아온 건 물론이요 던전 관련으로 논문을 몇십 장이나 쓴 박사, 포크레인만한 기계를 끌고 다니는 길드에 비해 서담은 고작해야 사과 무늬가 달린 태블릿 하나가 고작이었다.

“그냥 나랑 같이 적당한 던전에서 데이트나 하자니까?”

“던전에서 데이트하자는 미친 여자는 세상에서 너뿐일 거다.”

“그래서 내가 더 매력적인 거야. 안 그래?”

“너 혼자 해.”

“뭐? 데이트를 혼자 하는 미친년이 어딨어!”

“너 원래 미친년이잖아.”

서담은 자꾸만 귀찮게 구는 테일러에게 손을 훠이 저은 뒤 태블릿에 기록해둔 마법진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틀림없다.

비비안타 마도제국의 마법과는 다른 문자로 쓰여있었지만, 줄레카 제국의 마법 역시도 기본 원칙을 준수하고 있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비비안타에서는 (a+b=c)라고 적혀있던 공식이 줄레카에서는 (ㄱ더하기ㄴ는ㄷ)라는 방식으로 적혀있었다. 아무래도 주인공과 연관되지 않아서 그런지, ‘주인공 사냥꾼’ 스킬이 발동되지 않아 그 언어를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체계적으로 따지고 따지면 어림잡아 뭐가 뭔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해석은 불가능하다. 이해도 불가능하다.

다만, 엉성하게나마 뭐가 문제인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는 말.

‘이거···. 마법진이 엉망진창이잖아?’

문의 마법진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저 마력을 불어넣으면 열리는 구조. 하지만 여기저기 마력의 선을 이어주는 회로가 뜯기고, 지워지고, 부서진 채였다.

태블릿의 펜을 들고서 서담은 천천히 마법의 회로를 이어보았다. 일전에 스마트폰으로 아카데미에서 마법서적의 사진을 몇 번 찍어 보았지만, 지구로 돌아왔을 땐 모두 지워진 채였기에 오로지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2개월 벼락치기 정도로는 제대로 공부가 되지 않았기에 이 상당히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으나······.

‘이미 틀이 완성되어 있어서 그럭저럭 복원은 되겠는데.’

이윽고, 테블릿으로 마법진의 복원을 끝마친 서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던전의 입구로 다가가자 테일러 나인은 하품을 쩍쩍 하면서 뒤따랐다.

“기다려주시죠. 현재 던전의 패턴을 분석 중이니, 헌터분들께서는 물러나주시기 바랍니다.”

헌터는 싸우는 이들. 그들에게 이런 지식은 없다. 그렇기에 연구원들을 호위하던 군인이 저지하려고 하자 서담이 말했다.

“저도 던전의 패턴을 해석하고 있었는데요.”

“네? 하지만··· 헌터가 아니십니까?”

“헌터는 못하란 법 있습니까?”

없다.

그리고 딱히 헌터가 접근하지 말란 법도 없었다. 그저 연구원들이 활동하기 편하도록 헌터들의 출입을 자제하고 있을 뿐.

“아, 예······.”

하는 수 없이 군인들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서담을 들여보내자, 연구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뭐야?”

“또 헌터들이 귀찮게 구는군.”

“뭐 하지도 못할 거면서 좀 가만히나 있지······.”

연구원들이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서담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연구원들은 헌터의 뒷담화를 하면서도 결국 대들지는 못했으니까.

물론, 전부 그렇단 건 아니었고.

“유서담 헌터 아니십니까?”

백의를 걸친 연구원 한 명이 서담에게 말을 걸었다. 싱글벙글 웃고있는 그의 어깨에는 ‘로스트 데이’의 마크가 박혀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한유준.

세상에 몇 없는 A랭크의 해석사였다.

이계에서 나타난 던전 및 이상사태를 해석할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그들은 비록 랭크가 낮더라도 상당히 높은 취급을 받았는데, 세계에도 몇 없다는 A랭크의 해석사인 한유준이 길드 내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지는 뻔했다. 아마, 유서담과는 정반대의 대우를 받고 있을 것이다.

“아, 예.”

한유준이 굳이 말을 거는 이유는 뻔했다. 그렇기에 유서담은 그냥 지나쳤지만, 한유준이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하하. 간만에 얼굴 봐서 반가워서 인사라도 드렸습니다만, 달갑지는 않으시-.”

“알면서 말 거냐? 이 씹새야.”

그러나 도중에 테일러가 끼어들자 한유준이 표정을 찡그렸다. 은색 똑단발의 머리칼, 어쩐지 귀염상의 얼굴과는 달리 험악한 말을 입에 달고사는 여인. 테일러 나인, 그 유명한 헌터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유준에게 그만큼의 유명세가 없더라도 A랭크의 해석사라는 점으로 이미 S랭크의 초능력자 이상의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꿀릴 건 없었다.

“이거, 테일러 나인 아니십니까.”

“너 나 알아?”

“알다마다.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어. 근데 난 너 모르는데. 그러니까 우리한테 말 걸지 말고 좀 꺼져줄래?”

“저는 그저 인사를 하려고 했을-”

“아 지랄 좀 하지말고. 네가 정치인이야? 괜히 와서 생트집 잡으려고 지랄하려는 거 뻔히 보이는데, 그걸 누가 몰라? 애새끼도 아니고.”

속마음을 모두 표출해내는 테일러와 속마음을 끝까지 감추는 한유준은 애초에 대화가 성립되질 않았다. 한유준은 표정을 굳히고서 말했다.

“한심하군요. 연구원들이 해석을 진행하는 데까지 와서 방해나 하고, 뭐 하는 짓입니까?”

“뭐래. 성과도 없는 게. 솔직히 여기 와서 너나 나나 한 일은 똑같잖아? 처먹고, 싸고, 자고. 그리고 던전 입구 구경하고.”

그녀의 직설적인 말에 로스트 데이의 길드원들은 물론 한유준까지 표정이 일그러졌다. 틀린 말도 아니기는 했다. 이런 던전 타입은 굉장히 희귀했고, 에테르 에너지원이 던전의 내부로 침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 대체 어떤 파형을 내뿜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비싼 돈 들인 기계 역시도, 제대로 된 역할을 못 하고있는 건 당연한 일.

“연구는 차분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방해만 하지 않았더라면, 더욱 순항을 했겠죠. 그러는 댁들은 여기까지 와서 뭘 할 수 있다는 겁니까?”

그의 말이 맞았다. 이곳에는 뛰어난 해석사들과 연구원들이 가득했고, 슈퍼 컴퓨터로 돌아가는 기계 장치가 가득했다. 그에 비해, 관련 장비도 없는 헌터들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반박할 말은 많았기에 테일러 나인은 입을 열려는 그때.

삐잉-삐잉-!

던전 근처에 설치되어있던 경보가 울려 퍼지더니, 슈퍼 컴퓨터에게서 신호가 들어왔다.

“이건······?”

던전이, 반응을 한 것이다.

그에 한유준은 물론 연구원들은 본능적으로 슈퍼 컴퓨터의 해석 결과물이 아닌 던전을 바라보았고.

덜커덩······!!

그곳에는 한유준을 무시한 채 던전의 입구를 어루만지던 유서담이, 그 거대한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었다.

*

찰칵, 찰칵!

온갖 플래쉬가 사방에서 터져나온다.

유하람은 수많은 언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보며 썩 피로함을 느꼈다.

국내에 셋밖에 없는 SS랭크의 초능력자이자, 전 세계로 발을 뻗고 있는 거대 길드 로스트 데이의 마스터인 그가 이렇듯 언론에 직접 얼굴을 드러낼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여론이 좋지 않게 흐르는 지금 상황을 기자회견 단 한 번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나서지 않을 이유도 없다.

얼마 전 발생한 폭주 능력자 사건. 아무래도 헌터사회가 안정화된 현재, 약물로 인한 폭주 능력자 사건이 발생한 만큼 쉽사리 잠잠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약을 준비하라고 했거늘······.’

안 그래도 이번 건으로 인해 동각제약회사의 연구원들이 상당히 물갈이가 되었고, 덕분에 손해액이 상당했기에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게 전부 유서담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시한부로 앓던 놈이 갑자기 왜 설치고 다니는지 모르겠군.’

그의 병이 호전되었다는 말은 들었다. 그러나,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F랭크의 헌터가 뭘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상관은 없다. 며칠 안에 잠잠해진다.’

그가 고개를 들자, 기자들이 눈빛을 날카롭게 빛냈다.

그들의 질문은 뻔했다.

‘일전에 벌어진 폭주 능력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럼 ‘우연’과 ‘안타까운’ 등의 단어를 조합하여 적당히 답을 해준다. 절대로 트집을 잡힐만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융통성 있게 대화를 풀어나감과 동시에, 본론을 꺼냈다.

유하람이 미리 심어두었던 기자 중 한 명이 화제를 돌린 것이다.

“유하람 씨. 이번에 인천에서 발생한 ‘기형던전’으로 인해 시민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어떠한 방안을 준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S랭크의 헌터 셋과 A랭크의 헌터 서른 명을 파견한 상태이며, 신형 ‘이계파형 해석기’를 투입한 채입니다.”

무려 수백억을 호가하는 기계를 이번 일을 위해서 투입했다고, 강조하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질문으로 돌아선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질문만 날아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계파형 해석기도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물론, 대답은 뻔했다.

“저희는 그저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할 뿐입니다. 반드시 성과를 보이겠습니다.”

이번 기형던전에 과학 따위로는 절대로 파악할 수 없는 신비로운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로 준비한 게, 이번 세대의 이계파형 해석기였다. 국제 이상현상 기구의 본부에서 사용하는 과학과는 다른, ‘어떤 미지의 기술’이 들어간 채였으니까.

아마 조만간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웅성웅성.

‘뭐, 뭐야? 기형던전의 입구가 열렸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히 얘기해 봐!’

‘벌써 해석이 됐다고? 로스트 데이가 해석을 성공한 거야? 빨리 말해봐!’

여기저기서 기자들의 스마트폰이 울려댄다. 아마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어딘가에서 연락이 마구잡이로 쏟아지기 시작했을 터. 상황이 너무나도 좋게 굴러갔기에 유하람은 씨익 미소를 띄었다.

타이밍도 좋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역시도 자신에게 다가온 부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마, 마스터. 던전의 해석이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역시 그렇군요.”

“···역시가 아닙니다.”

“음?”

고개를 돌려보자, 스마트폰을 쥔 채로 표정이 창백하게 물든 부하직원이 눈에 보였다.

“저희 길드에서 해석을 한 게 아니라······. 현장에서 대기중이던 F랭크의 헌터, 유서담이 단독으로 해석을 성공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유서담? 그 이름을 읊으며, 유하람은 표정을 천천히 굳혔다.

그는 무리하게 언론을 뒤집기 위해 일부러 자신들이 책임지고 던전의 해석을 진행하고 있었고, 거기에 여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이때 확실하게 뒤집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에 실패한다면?

뭐 하나 잘걸렸다 싶은 온갖 인터넷 기자들이 달려들게 되며.

그로 인한 반동이 격하게 찾아오게 된다.

[로스트 데이, 수백억 가량의 기계를 투입했으나···.]

[마스터 유하람 “반드시 우리가 해석해낼 것” 호언장담, 그 결과는?]

[이럴거면 그들은 왜 굳이 나섰는가?]

[로스트 데이조차 해석해내지 못한 던전을 해석한 헌터의 정체]

[S랭크 헌터 테일러 나인 “나대지 말고 허언 자제할 것” 충고]

< 조금 특별한 F랭크 헌터(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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