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 특별한 F랭크 헌터(2) >
여덟 명의 소년소녀가 있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괴물을 향한 증오밖에 없었던 그들은 국적도 다르고 성별도 나이도 달랐지만, 모두 헌터가 되기를 꿈꿨다.
그들은 펜을 쥘 나이에 총을 만졌고, 한창 장난감을 들 손으로 칼을 다루었다. 분명 평탄치는 않은 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길에 들어선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고.
15년이 지나, 한 명의 소녀가 죽은 이후 일곱 명의 소년소녀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나는 가수가 되고 싶어.’
‘사업을 하고 싶었다.’
‘조금 더 큰물에서 활동하겠다.’
‘난······.’
각자에게는 더 높은 꿈과 야망이 있었고,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큰 성공을 이루어냈다.
나를 제외하고서.
그들이 정상급의 물에서 놀고 있을 때, 나는 여전히 F랭크의 헌터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연락하기를 꺼려했고, 그들 역시도 내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단 한 명, 나와 마찬가지로 헌터로 남은 테일러 나인을 빼면 말이다.
“···오랜만이다?”
그나마 한국에 자주 찾아오던 테일러 나인이었기에 얼굴이 가장 익숙했다. 내 천연덕스러운 말에 그녀는 질질 흘리던 맥주를 툭, 떨어뜨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깜짝 놀란 듯 커지는 금색의 눈동자가 신비롭게도 빛난다.
“너, 너···. 대체 뭐야? 텔레포트? 그건 텔레포트가 아닌데······ 뭐야, 너 이 새끼 설마 DR(Dimension Returnee)이냐?”
DR. 차원 귀환자라는 뜻으로, 아주 간혹 다른 세상으로 떨어진 이후 돌아온 자를 일컫는다.
DR은 지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들의 능력을 ‘무공’이라고 칭하곤 했다. DR은 에테르 블레이드가 없는 평범한 철검이나 건틀릿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대부분이 숨어 사는 길을 택했다고 한다.
“DR이라. 차라리 비슷하겠네. 아닌가, DT(Dimensional Traveler)가 더 맞는 표현인가?”
단순히 귀환했다기에 난 타차원을 왕복하니 말이다.
“뭐, 뭐야 이 미친놈아. 진짜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말해줄까, 싶었는데.
<주인공 청부살인 의뢰를 타인에게 발설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단순한 부탁일 뿐이니, 서담께서 원하신다면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의뢰인이 부탁을 해왔다.
말을 하지 말라고 압박을 한 건 아니지만, 부탁이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애초에, 살인청부의 의뢰를 다른 사람한테 말하고 다니는 것도 좀 모양새가 웃기기도 하다.
“그 이상은 말해줄 수 없어.”
내 대답에 그녀는 한참이나 나를 보면서 여러모로 복합적인 생각을 하는 듯싶었다. 평범한 사람인 내가 허공을 가르며 나타났다는 비현실적인 현상을 보고서,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무엇을 떠올릴까.
그러나 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 천지였고, 사람들이 그에 대해 쓸데없는 호기심을 가질 때 그녀는 그 호기심을 거기서 멈추는 편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꺼려하는 티를 내자 테일러는 납득을 해주었다. 예전부터, 여러모로 그녀의 그런 부분이 참으로 좋았다고 생각한다.
“새끼, 나 없는 사이에 비밀도 생기고. 많이 컸다?”
“난 원래 너보다 컸어.”
“흐음···.”
나를 빤히 바라보던 테일러는 이내 쿨하게 웃었다.
“그래, 뭐. 네가 DR이 됐든 DDR이 됐든 무슨 상관이겠어.”
살아있는 게 중요하지. 그녀는 굳이 뒷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뒷말을 들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여튼 쓰벌···. 내가 너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얼마나?”
“거의 3주 가까이 머물렀지. 근데 네가 아예 안 돌아올 줄은 몰랐지 이 개새끼야.”
“허.”
그럼, 그거 3주나 내 집에서 무전취식을 했단 소리가 아닌가?
어쩐지 칙칙한 사내의 냄새가 배어있던 집이 그녀의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늘어진 짐을 보아하니, 아예 살림을 차리셨다. 청소를 전혀 하지 않은 게 문제였지만.
“돼지우리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군.”
“아하하, 그러게 평소에 청소 좀 하지 그랬어.”
“네 얘기야 미친년아.”
그보다, 나는 부츠의 끝으로 굴러다니는 캔맥주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너야말로 내 집에서 뭘 하고있는 거야? 빤쓰는 여전히 해괴망측한 빨간 리본 달린 거나 입는군.”
“이건···.”
그녀는 꽤 시원스러운 복장이었다. 흰색의 나시 티 하나에, 검은색의 팬티 한 장. 테일러는 자신의 팬티를 내려보더니, 이내 진지한 눈빛이 되었다.
“리본이 포인트라구. 존나 예쁘잖아.”
“···바지 안 입냐고 돌려서 물은 거야.”
“실내인데 뭐 어때. 그리고 빨간 리본 보면 몰라?”
뭘?
“이런 건 원래 보여주려고 입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리본이 왜 있겠어?”
“허.”
분명 개소린데, 좀 그럴듯하다. 반박할 말이 도저히 떠오르질 않는다.
“됐고. 왜 왔는지나 말해.”
“왜긴. 보고 싶어서 왔지.”
“그게 전부야?”
“어···. 3% 정도는?”
“어이가 없네.”
“겸사겸사지. 후후, 이 누님이 찾아왔다는데 순수하게 고마워하진 못할망정.”
바닥에 굴러다니는 오징어포 잔해물을 보니 전혀 그럴 맘이 들지 않는다.
천천히 전투복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둔 나는 거리낌 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테일러와 내가 알몸 가지고 연연하기엔 전장에서 구르며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진 사이였다. 그녀는 내가 옷을 갈아입는 걸 가만히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너 뭔가 이상한데.”
“뭐가 또.”
“근육이 이상해.”
“뭐?”
그러고 보면, ‘주인공 사냥꾼’의 힘을 얻은 이후로 제대로 병원에 갔던 게 한 번밖에 없다. 그마저도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없었을 때였고. 만약 주인공들에게서 훔쳐 온 내 재능이 내 몸을 해친다면?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
“근육이 존나 예술이 됐어.”
“······?”
“아니, 진짜. 봐. 미친, 너 예전이랑 엄청 달라진 거 알아? 진짜, 근육 뒤지게 예뻐졌네. 얼굴은 여전히 뭉개졌지만.”
그리 말한 뒤 그녀가 깔깔거리면서 웃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원체 테일러는 동안에다가 상당히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외모로 말다툼을 하면 무조건 내가 진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는 내 상체에 가까이 붙어서 심각한 눈으로 오밀조밀 따져보았다. 나도 전신거울을 보았지만, 솔직히 뭐가 달라진 지 전혀 모르겠다.
얘는 나도 차이를 못 느끼는 걸 어떻게 구분하는 거야?
“오랜만에 만져봐도 되냐?”
“안돼.”
나는 그녀를 살짝 밀쳐낸 뒤 말했다.
“어쨌든 이렇게 찾아왔다는 건, 꽤 쓸만한 건수가 있다는 뜻이겠지?”
“맞아.”
S랭크의 헌터인 테일러 나인이 굳이 한국으로 왔을 정도의 건수.
“나 없는 3주 사이에 해결은 됐고?”
“역시, 너 아예 이상한 데 가있었구나? 뉴스도 안 봐?”
“모르니까 말해봐.”
“인천 앞바다에 ‘기형던전’이 나타났어.”
그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기형던전. 출력의 구분을 할 수가 없어 랭크를 매기기도 힘든 던전을 말한다. 애초에 던전이라는 곳 자체가 상식이 통하질 않는데, 그나마 연구가 끝난 던전의 규칙마저도 벗어난 곳이 바로 기형던전이었다.
30년의 역사 속에서 기형던전이 출현했을 때면 항상 소란이 꽤 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필이면 한국에서 벌어지다니.
“던전 공략 진행도는?”
“한국의 헌터 협회는 물론 외국의 길드에서도 여러모로 지원을 왔는데 말이야. 개시발, 던전을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어.”
“뭐? 그게 말이 돼?”
“몰라. 모르니까 좆같은 거지.”
그녀는 표정을 왕창 구기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초능력은 없어도 대가리가 좀 굴러가잖아? 그래서 같이 활동하자고 할랬지.”
이 세상에서 ‘헌터’라 하면 무조건적으로 초능력, 즉 랭크가 중요시된다. 그건 나조차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세 명의 헌터를 데려갈 거라면, 이왕이면 높은 등급의 헌터를 데려가고 말지 대가리 굴러가는 F랭크의 헌터를 누가 쓰겠는가? 제아무리 F랭크의 헌터가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머리가 잘 굴러간다 하더라도, 유사시에는 손에서 레이저가 뻥뻥 나가는 초능력자가 더 유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정점에 선 초능력자라면.
혼자서 나머지 둘을 커버할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차라리 두뇌가 필요한, 이를테면 테일러 나인 같은 S랭크의 헌터들의 경우.
아주 간혹 나를 찾아오고는 했다.
“근데 원, 들어갈 수조차 없으니 말이야. 이 미친 또라이 새끼들, 아무래도 이번 던전도 강제로 ‘타임 오버’를 시켜서 싸울 생각인 모양이야.”
던전은 그 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부와 현실이 동기화가 된다. 하지만 만약 던전의 내부가 지구와는 전혀 다른 최악의 환경이라면? 지구의 환경이 크게 오염이 된다는 의미. 별거 아닌 평범한 동굴 형태의 던전이라면 모를까, 대부분 랭크가 높거나 기형 던전인 경우 타임 오버가 되어 동기화가 되면 생태계가 아예 파괴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즉,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인천 앞바다의 일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
“한국 정부가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 근데 어쩔 수 있겠어? 애초에 들어가질 못하는데.”
“국제 이상사태 협력 기구에서는 안 왔어? 걔들이 이런 거 전문가잖아.”
“왔지. 그 친구들도 힘 못 쓰는 중이야. 사실 이런 일 흔하잖아.”
그렇다. 기형던전은 아예 출입조차 못 하거나, 들어가더라도 함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서 클리어가 불가능한 경우가 굉장히 잦았다. 나 또한 기형던전을 몇 번 본 적은 있으나 제대로 던전을 돌파했던 적은 없었으니까.
“······솔직히, 내가 간다고 뭐가 달라질지는 모르겠는데.”
“그러게 말이다. 안 그래도 기형던전에 들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니까, 무서워서 꽁무니 내뺀 새끼들만 몰려있더라고. 어차피 안 들어갈 거 알고 얼굴도장이나 찍는 거지. 하여튼 쫄보 새끼들이 얼굴 비추는 거 짜증나서 눈 마주칠 때마다 쌍욕 박으니까 그래도 면상 들고다니진 않더라.”
“성격 지랄맞은 건 여전하네.”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기형던전. 어지간해선 나도 1급 이상의 장비를 갖추지 않는 이상은 잘 들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2급의 장비로는 A랭크의 던전도 사실 벅차다. 그건 내가 E랭크의 신체 능력을 가졌어도 마찬가지다.
오퍼레이터의 포지션을 잡는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안 그래도 이번에 메가 슈터의 탄환을 너무 낭비한 나머지 지갑이 너덜너덜해진 참.
“가서 얼굴만 비춰도 참가비는 들어올 거고, 던전도 열리면 버스타면 될 거고. 일석이조겠는데?”
손해 볼 건 없었다.
*
다음날.
서담과 테일러 나인은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꽤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했다. 30년 전 이상사태가 일어나면서 던전 하나가 터져 나와 자연이 동기화되었는데, 그 덕분에 ‘은빛 산호’라는 신비로운 존재가 들어섰기 때문.
던전이 현실과 동기화된다고 해서 모두가 나쁜 영향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주 간혹 자연을 더욱 깨끗하게 해준다거나, 아름다운 자연의 숲이 들어서기도 했는데 을왕리 역시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장소 중 하나였다.
그러나 관광명소로 발전했던 을왕리 해수욕장에는 현재 민간인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군인들이 잔뜩 들어선 을왕리의 상공에는 정찰드론 수십 대가 날아다니고 있었으며, 군용헬기도 간혹 보였다. 바닷가 근처에는 임시 막사가 지어져 있었는데, 바로 근처에 숙소가 그렇게나 많은데 굳이 저런 고퀄리티의 막사를 꼭 지어야되나 싶었다.
서담은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옷깃을 여몄다. 3급 에테르 코팅 코트는 난방이 전혀 되질 않아서 문제였는데, 그나마 2급이라 난방 기능이 달려있었다.
추위를 타는 그에 비해 테일러 나인은 굉장히 시원스러운 복장이었다.
엉덩이까지 닿을 정도로 짧은 검은색 핫팬츠에 푸른색의 펑퍼짐한 야구점퍼, 그리고 푸른색 야구 모자. 등에는 은색으로 빛나는 야구배트 하나가 매달려 있었는데, 복장만 보면 어디 동네에 야구라도 치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저 복장과 야구배트 하나하나가 전부 1급 이상의 ‘네임드’급이란 사실을 서담은 알고 있었다.
에테르 슈트의 복장은 외형이 대부분 통일화되어있지만, 간혹 네임드급의 장비는 저렇듯 평상복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마 그녀의 옷에는 서담의 것보다 몇 배는 월등한 온도 조절 기능이 달려있을 것이다. 사용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체온을 조절하는 건 S랭크의 초능력자에게 손쉬운 일이겠지만.
“충성!”
F랭크과 S랭크의 헌터자격증을 보여주자 군인들이 경례를 한다. 아무래도 서담보다는 테일러 나인 쪽으로 시선이 유독 집중되었는데, 그건 그녀가 S랭크라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녀는 굳이 초능력자가 아니더라도 빛이 나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 벌레같은 새끼들 존나 많네. 어차피 던전에 들어가지도 않을 거면서 시발거.”
헌터들의 시선이 쏠리자 테일러가 투덜거렸다. 풍선껌을 촵촵 씹으며 걷는 그녀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 차 있었는데, 현장에서는 담배를 태우지 말아 달라는 지시 탓도 있었으며 괜시리 와서 얼굴만 비추는 주제에 온갖 텃세는 다 부리는 헌터들의 탓도 있었다.
간혹가다 그녀에게 접근하려는 헌터들이 없지는 않았다.
“안 꺼져? 개좆같은 새끼가 어디다 눈깔을 부라려?”
“넌 이 상황에서 여자한테 꼬리나 치고 싶냐? 네가 헌터야, 토끼야? 평생 그짓거리 못하게 거기를 뽑아줄까?”
“이런 쓰레빠같은 년이 누가 친한 척 내 이름 처부르래?”
···대부분은 그녀의 철벽에 가로막혀서 튕겨 나갔지만.
“어, 야 저기 깜장 콩벌레다.”
테일러의 말에 서담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로스트 데이’의 길드 마크를 단 헌터 수십 명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중 S랭크의 헌터가 무려 셋이나 됐다. S랭크 헌터라는 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나라에서 슈퍼 스타급 대우를 받건만, 그중 최고 선임 헌터인 ‘안희곤’을 콩벌레라고 부르는 테일러도 어지간했다.
“이야. 저 씹새들 이미지 실추된 거 다시 날려보겠답시고 준비 좀 했나 봐?”
최근 로스트 데이는 폭주 능력자 건에 연루되어 여간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심 고소하다고는 생각하고 있던 테일러 나인이었지만, 그들이 이미지 회복을 금세 하리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로스트 데이의 길드 마스터 ‘유하람’은 국내에 셋밖에 없는 SS랭크의 초능력자였으니까.
“저 새끼들 언젠가 전부 밟아 버려야 되는데······.”
“네가 뭘 그렇게 화내냐? 넌 피해입은 것도 없으면서.”
그러자 테일러는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면서 표정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렸다.
“저 씹새끼들이 너한테 한 짓거리가 있는데, 화가 안 나게 생겼어? 넌 화도 안 나냐?”
“아니 뭐, 존나 빡치지.”
서담도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
테일러와 함께 던전 입구까지 걷던 서담은 갑작스레 휴대폰의 진동이 울리자 꺼내서 확인하였다.
[수신 중 - 첼레스테]
“응?”
그러고 보면, 다른 세계로 건너가 있는 동안에 걸려온 통화 이력도 지구의 전파가 닿는 순간 모두 확인이 된다. 전화를 받을까 싶었던 서담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상 현상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던전의 근처에서는 그럴 수 없었으니까.
수신을 취소한 뒤, 부재중 이력을 확인하려던 서담은 문득.
이상한 걸 봤다.
[부재중 전화 - 56건]
“···뭔데?”
“왜?”
“아냐. 아무것도.”
게다가 대부분의 부재중이 첼레스테의 이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뭘 깜빡하고 안 줬던가?’
그런 건 없을 텐데. 통화를 해줘야 하나 싶다가도 이내 서담은 신경을 껐다.
던전의 입구 지척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좀···특이한데?”
던전의 입구는 생김새가 매번 다르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편이었다. 검은색의 홀처럼 생긴 입구도 있었고, 아예 던전 내부가 훤히 보이도록 공간이 갈라진 입구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아예 거대한 문짝 하나가 덜렁 놓여있는 경우는 서담조차도 처음 보았다.
“기형던전이 다 그렇잖아. 문은 나도 처음이지만. 저번에는 웬 오리배 하나만 달랑 놓여있더래니까?”
“아 거기? 너 빠져서 죽을 뻔했잖아.”
“닥쳐.”
허공에 둥실 떠서 신기루처럼 아른거리는 문짝에 다가서자 군인 및 국제 이상현상 기구의 요원들이 다가왔다.
“실례지만 용건을 알 수 있겠습니까?”
“얘가 저 문 딸 거니까 비켜.”
“야, 뭔······.”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서담이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테일러는 아랑곳않고 낄낄거렸다.
“헌터 테일러 나인이시군요. 오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어. 수고해.”
다행스럽게도 요원들은 그녀의 말이 농담이란 사실을 알아들었다.
테일러 나인은 매일같이 던전 언제 들어가냐며 윽박지르곤 했는데, 그 점 때문에 의외로 이상현상 기구의 요원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좋았다. 다른 헌터들이 던전에 들어갈지 말지 눈치만 보는 데에 비해 그녀는 당장이라도 던전을 박차고 들어가서 전부 때려부술 것처럼 굴었기 때문. S랭크의 헌터가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뭐 좀 아시겠어?”
테일러는 별 기대조차 하지 않는 목소리로 서담에게 물었다. 애초에 이런 이상현상을 전문으로 다루는 조직에서도 뭘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일개 헌터가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서담 역시도 마찬가지였기에 고개를 저으려던 그때.
<해당 세계는 ‘멸망한 줄레카 제국의 마도황성’입니다.>
메세지가 떠올랐다.
줄레카 제국? 하며 서담이 의문을 표할 때, 메세지 하나가 추가로 출력된다.
<해당 세계는 이미 ‘에필로그’가 끝났으며,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응···?”
서담은 눈을 껌뻑이며 거대한 문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기억보다는 상당히 낯설지만, 어쩐지 원리를 조금은 알 것 같은 특이한 문양.
그것은 틀림없는 마법진이었다.
< 조금 특별한 F랭크 헌터(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