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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0화 (20/251)

< 조금 특별한 F랭크 헌터(1) >

어쩌면,

처음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주인공 사냥꾼 Lv.2가 발동되었습니다.]

[사냥에 성공한 주인공의 재능 및 스킬 목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올렌>

*재능

[마법 D] [침착 F] [암기 A]

[망상 S+] [지력 F] [몰염치 A-]

[매력 B] [언변 F] [학습 E]

[기타···.]

*스킬

[망상회귀 (SSS+)]

[내 머릿속 도서관(S)]

[개정판 아라셀리 식 9클래스 전문 마도서 (SSS)]

[아라셀리 식 마나 써클링 MK-40 (SS)]

[아라셀리 식 마력 이형전환 (A+)]

[기타···.]

그렇다. 피올렌은 마법의 천재가 아니었다.

서담에게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건 마법의 재능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70레벨의 주인공을 사냥하였습니다.]

[레벨이 5단계 상승합니다.]

[수명이 700일 지급됩니다.]

[당신의 수명: 2075일 11시간 47분]

[주인공 피올렌의 스킬 ‘아라셀리 식 마나 써클링 MK-40 (SS)’을 흡수하였습니다.]

죄다 ‘아라셀리’로 도배되어있는, 조금은 무섭게 느껴질 정도의 스킬창에서 피올렌이 가장 처음으로 선보였던 스킬을 얻었다.

이왕 얻을 거, SSS랭크의 9클래스 마도서인지 뭔지를 받았으면 참 좋으련만. 서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이 스킬만 하더라도 상당히, 아니 어마어마하게 좋았으니까.

지구에 현존하는 가장 좋은 ‘기력 연공법’의 등급은 C에 불과하다. 서담은 비록 기력은 아니다만, 무려 마력을 갈고닦는 SS랭크의 연공법을 획득한 것이다!

아라셀리 식 마나 써클링, 그 40번째 결과물.

일반인조차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손쉽게 마나를 모을 수 있는 이 스킬은 상단전(뇌), 중단전(심장), 하단전(하복부)의 모든 공간을 마력으로 가득 채워서 전신에 마나를 돌릴 수 있다는, 사기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아라셀리는 대륙의 마도학을 몇백 년 이상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은 희대의 천재입니다.>

<그녀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아라셀리 식 마나 써클링’으로 인해 20년 뒤의 미래에는 모든 이들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미래에는 무려 9클래스라는 대마법사가 될 예정인 아라셀리가 만든 연공법이니, 충분히 그럴만 했다. 아마 그녀의 재능을 굳이 수치로 표기한다면 [마법 SSS]가 아닐까 싶다. 그 정도로 아라셀리는 너무나도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망상회귀라.’

무려 SSS+랭크의 이 스킬이 바로 피올렌이라는 주인공을 과거로 회귀할 수 있도록 해준 스킬이었다. 단 1회 사용이 가능하며, 자신이 가장 절실히 원하고 망상했던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개사기 스킬. 아마도 서담이 이걸 얻으면 획득이 취소될 게 뻔했지만 그는 영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는 교무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던전에서 피올렌에게 ‘흑마법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고서 죽인 이후로 하루가 지났고.

서담은 지구로 돌아가는 걸 보류한 채 여전히 아카데미에 머물고 있었다.

마법.

마법을 단 하나라도 성공해보기 위해서였다.

바닥에 복잡한 마법진 하나를 그려놓고서, 그 앞에 꿇어앉은 그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이 마법진은 겉으로 보기에는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비비안타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보면 코웃음을 칠 정도로 기초적이고 가장 쉬운 마법이었다. 지구로 비교하자면, 조금 어려운 고등학교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선행 교육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으며, 공부 또한 ‘재능’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거의 2달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꾸준히 공부를 했음에도 공식을 이해하긴커녕 그저 암기를 해서 어거지로 마법을 흉내 내는 정도에 불과했으니.

그래. 어쨌건 흉내는 낼 수 있다.

서담은 마법진을 향해 손을 뻗은 채 눈을 감았다. 심장에서부터 미지의 에너지가 활활 불타오르더니 이내 머리를 거쳐 다시 한번 심장을 관통한 뒤 하복부까지 순식간에 도달하는 것이 느껴졌다.

여태까지 서담이 마력을 다뤄왔던 건 나무젓가락으로 모래사장의 모래 알갱이를 집는 행위에 불과했다. 틀림없이 마력이라는 존재를 눈으로 보고 인지할 수는 있지만, 젓가락으로 모래 알갱이를 퍼담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SS랭크의 아라셀리 식 연공법은 포크레인이었다.

나무젓가락으로 깨작깨작 모래를 푸던 그가 포크레인으로 시원스레 모래를 헤집는 것이다!

휘이이잉······!!

서서히, 마법진에 시동이 걸리기 시작하였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폭발적인 마력의 움직임에 처음으로 ‘마법’이 응답해준 것.

마법,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로운 학문. 지구의 헌터들이 그저 본능적으로 에테르, 즉 기(氣)에 형(形)을 불어넣는 것이 초능력의 형태였다면 마법은 그 형태를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일궈내는 것이다.

즉 누구나 공부만 하면, 초능력과 비슷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의미.

그 증거로.

지금 서담의 앞에 놓여있던 종이가,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바람이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툭, 이내 바람은 힘을 잃고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 과했다. 서담은 지금 당장이라도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초능력에 대한 재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둔재인 자신이, 이능력의 구현에 성공했으니까!

이것으로 확실하다.

초능력이 없는 자신이라도 마법을 배우고, 또 사용할 수 있다.

고작 종이 한 장을 들어 올렸을 뿐이지만, 서담은 세상을 전부 가진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뜨거운 감정을 천재들은 절대로 모를 것이다.

“후우······.”

이윽고, 서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다 휘청, 순간 다리가 풀릴 뻔하자 그는 다급히 책상을 잡아서 몸을 지탱하였다.

고작 종이 한 장을 손 안 대고 들었다고, 이 정도의 후유증이라니. 아무래도 SS랭크의 마력 연공법의 버프를 받아서 망정이지, 그조차도 아니었다면 아예 마법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탈진했을지도 모르겠다.

마법의 사용까지 확인했으니.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서 서담은 연구사무실을 정리하였다. 2개월 가까이 함께했던 공간이기에 어쩐지 정이 살짝 들었지만, 이제 이곳으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똑똑!

“······?”

돌아갈 준비를 끝냈을 무렵,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냥 돌아가도 되겠다만, 그는 어쩐지 누군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누구야.”

-교수님, 저 아라셀리입니다.

“···음? 들어와.”

문이 열리며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아라셀리가 조심스레 들어왔다. 그녀는 어쩐지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자신감을 완전히 되찾지 못한 채였는데 서담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피올렌은 죽었다.

억지로 날개를 달았던 그 이미지와 함께, 나락까지 추락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라셀리의 이미지가 갑자기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지난 2개월간 아라셀리는 끊임없이 실패하는 모습만을 보여왔으니까.

“무슨 일이야?”

“그···.”

그녀는 완전 무장을 한 서담의 복장을 보더니 연구사무실을 슬쩍 둘러보았다.

“···떠나시는 것 같아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어떻게 알았어?”

“그냥, 느낌이 그랬어요.”

서담은 누구에게도 자신이 떠난다고 말하지 않았다. 교수들과 대화를 트게 되었지만 친해지지 않았다. 이곳을 떠나면 영영 만날 수 없는 이들이라고 생각했기에. 마찬가지로 학부생들과도 친해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쭉, 그럴 생각이다.

그는 수많은 세상을 떠돌아다녀야만 할 것이며, 수많은 인연을 만날 터. 그러나 그때마다 정을 준다면 마음이 버티질 못할 것이다. 그는 이미 수많은 인연을 잃어보았고, 닳을 대로 닳은 상태였으니까.

“가시기 전에, 감사 인사를 꼭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감사? 뭐가 고마운데?”

“그냥······. 모든 게, 전부 다. 고마워서요···.”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사실, 서담도 안다.

아라셀리가 어느 부분에서 자신에게 고마움을 느끼는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에 대해 서담이 알아낸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녀가 어마어마한 유리멘탈이라는 점. 실제로 아라셀리는 피올렌에게 공개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면서 아예 마법을 그만둘까,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고작 2개월 괴롭힘 좀 받았다고 흔들릴 정도의 멘탈이라니. 그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라셀리는 능력치만 따로 놓고 보자면 거의 주인공급이었는데, 멘탈에 하자가 상당히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교수님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어요. 이제는 다시 마법을 자신 있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떠나시기 전에 감사 인사를 꼭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아라셀리는 ‘조연’이다. 주인공에게 모든 업적을 빼앗기게 되는 조연. 그럼, 왜 주인공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걸까? 혹시 먼 미래에 악역이 되는 걸까?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건 하나였다.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먼 미래에 대마법사가 된다.

아마도 천재라고 봐도 좋을 ‘자신감’의 재능과 함께 마법이라는 학문을 이 세상에 찬란하게 꽃피우게 만들, 그런 대마법사가.

하지만 지금 그녀의 자신감은 상당히 닳고 닳은 상태였다. 아마 피올렌의 존재로 인해 이 세계의 미래가 살짝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녀는 본래 마엘카 던전대에서 이름을 널리 알려 수많은 마탑의 마법사들과 교류하며 더욱 뛰어난 마법을 완성했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그 출발점마저도 뒤틀리고 말았다.

굳이 오지랖을 부릴 필요는 없다.

그런데 어쩐지, 그냥 그러고 싶어서.

“헬즈핑크스를 소환한 배후는, 사실 따로 있다.”

“······네?”

“이 아카데미 내에 여전히 암약하고 있어. 그리고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상황이지.”

이 정도만 해도 된다.

그저 악역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아도, 아라셀리는 그 뛰어난 두뇌를 굴려서 흑마법사를 잡아낼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그녀는 회귀 전의 명성을 비스무리하게 얻을 수 있을 터.

“놈을 잡아.”

이유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의 아라셀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서담이 왜 이런 것을 시켰는지를. 그러나 가까운 미래라면 어쩌면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흑마법사를 사냥함으로서, 자신에게 떨어질 그 무수히 많은 기회를 보면서.

“···그럼, 이제 가시나요?”

“가야지.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아마 여기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거다.”

“그···렇군요.”

아라셀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물었다.

“······혹시, 어디로 가시나요?”

“글쎄. 네가 절대 찾아올 수 없는 곳.”

차원이동 자체는 사실 요즘 세상에 흔하디 흔하다. 당장 ‘전이’ 태그를 달고있는 주인공이나 지구에서 발생하는 던전 사태 또한 차원변이현상이었으며, 서담 또한 차원이동자였고 지구에도 몇몇 차원이동자가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그건 인간의 힘으로 발생한 결과물이 아니다.

인간은 자의적으로 차원을 다룰 수 없다. 그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우연의 일치로 발생한 일이었을 뿐.

그러니 아라셀리가 인간의 힘으로 그걸 실현시킬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웠다.

그런 이유로.

영원한 이별의 선물로, 서담은 아라셀리에게 선물을 하나 주었다.

그것은 잠깐이나마 들 뻔한 정을 완전히 떼어내는 일종의 의식이기도 했다.

“이건······.”

“총알이다.”

“총알···?”

작고, 앙증맞지만, 생명체 하나를 무참히 즉사시켜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무시무시한 물건.

“그거 줄 테니까, 너도 미련 버려라.”

“네? 그게 무슨···!”

서담은 거기까지 말하고서 거친 걸음으로 연구실의 문을 열고서 나갔다. 아라셀리는 총알을 손에 꼭 쥔 채로 곧장 교수님의 뒤를 따라서 문을 열었지만.

“어···?”

어디에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떠나간 것이다. 제대로 된 작별인사조차 없이.

그렇게, 왔을 때처럼 홀연히.

“······뭐야. 정말로, 가신 거야?”

아라셀리는 총알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입술을 깨물었다.

서담은 떠나면서 말했다. ‘네가 절대 찾아올 수 없는 곳.’이라고.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마법에······. ‘절대’라는 단어는 없어.”

모든 마법에는 절대라는 단어의 사용을 금지한다.

마법은 무엇이든 가능했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교수님의 작별인사는 모순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모순을 지적해드려야겠어.’

아라셀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아가야 할 길이 정해졌다.

이제는, 그 길을 따라 달려가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

*

어쩐지 시원섭섭한 느낌이 든다. 과연 그렇게 떠나왔어도 좋은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미련을 훌훌 털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니까.

[목표를 달성하여 원래의 세계로 귀환합니다.]

[세계의 시간배속이 정상화되었습니다.]

무중력에 들어선 듯, 붕 뜬 느낌이 드는 것도 잠시.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작디작은 나의 자취방. 30년도 더 전에 지어진 구식의 건물에서만 나는 그 특유의···맥주냄새?

나는 본능적으로 에테르 블레이드에 손을 가져다 대고서 황급히 주변을 경계하였다.

그리고.

원룸의 정중앙에 TV를 틀어놓고 속옷 바람으로 앉아서, 맥주를 들이키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테일러?”

찰랑이는 은색 똑단발을 가진,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듯한 반가운 얼굴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의 이름은 테일러 나인.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S랭크의 초능력자이자, 15년 전 나와 함께 헌터가 되었던 동기 중 한 명.

테일러는 금색의 큼지막한 눈을 껌뻑거리며 맥주를 삼키지도 못하고 줄줄 흘리더니, 이내 천천히 그것을 떼어내고선 말했다.

“뭐, 뭐여 시벌······?”

······아니. 그건 내가 할 말 같은데?

< 조금 특별한 F랭크 헌터(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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