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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9화 (19/251)

< 회귀자를 상대하는 방법(2) >

마엘카 던전대 출발 당일.

나는 아라셀리와 한 조가 되어, 검은색 홀의 입구에 섰다.

마엘카 던전대의 입구는 총 열여섯 개가 있었는데, 하나의 입구에 2인 1조가 들어서게 되어 한번에 총 16개 조, 32인이 참여하며 어떤 조가 더 효율적이고 능숙하고 빠르게 던전을 공략하는지 겨루게 된다.

물론, ‘첫 번째 던전대’는 아주 특별한 이벤트이니만큼 참가자가 아주 독특했다.

무려 교수진이 상위 16위권 학생들과 함께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다.

1, 2, 3등으로 입학한 세 명의 조연은 물론 피올렌 역시 1차 시험 때 상위권을 기록하여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던 피올렌은 대체 어떤 수를 썼는진 몰라도 던전의 입장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솔직히 당연한 결과였기에 놀랍지도 않았다.

이 세계의 주인공이,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메인 이벤트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를 않았으니까. 분명히 어떻게든 개연성과 클리셰가 비틀리고 비틀렸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피올렌은 어떤 20대 후반 여자 교수를 꼬셔서 함께 했다고 했던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여자가 그렇게도 좋냐.

“저···. 감사해요. 사실 요새 교수님들이 저를 별로 좋게 봐주시질 않아서, 누구에게 던전대를 부탁할지 고민이었거든요.”

“나야 고맙지. 여기에 올 수 있게 해줬으니까.”

“네? 그런가요?”

그녀는 이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꼭 좋은 성적을 거둘 거예요!”

파이팅 넘치는 아라셀리를 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삐리릭-

허공에 검은색의 요정 세 마리가 불현듯 나타났다. 저 요정들이 아마 영상의 송출을 담당하는 패밀리어였던가. 기계가 아닌 요정을 이용한다는 관점에서 과연 마법사들의 세계라는 느낌이 들었다.

던전의 공략 현장은 영상으로 생중계가 되어 아카데미는 물론이요, 이곳에 찾아온 귀족 및 마탑 및 관계자들에게 전부 생중계가 된다. 학생들에게 있어, 아니 주인공에게 있어 이 이벤트가 얼마나 커다란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잠시 뒤, 요정들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분 뒤 던전대가 시작됩니다.

1분은 빠르게 흘러갔고, 요정의 입에서 ‘던전 공략을 출발하여주십시오.’라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는 메가 슈터를 꺼내들었다.

“그 커다란 건······?”

“내 지팡이.”

철컥!

*

던전의 공략은 내게 있어서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늘 하던 일이기도 했고, 애초에 학생들을 상정해서 만든 탓인지 크게 위험하고 어려울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함정이 나타난다->부순다.

몬스터가 나타난다->부순다.

그냥 모조리 때려 부수면 그만이었다.

초음파 탐지기는 마법적 함정조차 걸러낼 수 있었고, 에테르 화기는 이곳의 몬스터에게도 아주 효과적이었다.

마법사들이 만든 던전이라길래 솔직히 조금 쫄았는데, 괜히 쫄았다.

“와아···. 대단하시네요.”

이게 장비빨이란 걸까.

솔직히 검을 사용하고는 싶었지만, 아무래도 마법사들의 세계인 만큼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사용하는 탄환 하나하나에 천금같은 돈이 나가고는 있었지만 나는 이 던전을 끝까지 돌파할 때까지 ‘마법사’라는 컨셉을 유지해야만 했기 때문.

“다음으로 넘어가자.”

스테이지는 총 세 개였고, 첫 번째 스테이지에서 여덟 팀이 탈락하고 두 번째 스테이지에서 네 팀이 탈락하게 되는 구조였다.

먼저 도착하는 팀이 더 많은 스테이지를 공략할 수 있다는 의미. 최종적으로, ‘보스 룸’에서는 네 팀만이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서둘러서 아라셀리와 함께 이동하려는데, 갑작스레 벽에서 붉은빛이 나오더니 뜨거운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깜짝아···!”

서둘러 팔목을 들어, 배리어를 형성해 방어하자 내구도가 50%나 깎였다.

“바, 방금 뭐였죠?”

“그러게.”

아무래도 학생들과 함께 하는 던전인 이상, 이렇게까지 위험한 함정을 집어넣지는 않는다.

즉, 이건 그거였다.

[에피소드 ‘마엘카 원정대의 지옥마수(3)’가 당신에게 적대감을 표시합니다.]

슬슬 세계가 주인공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증거.

그에, 나는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리며 허공을 쳐다보았다.

세 마리밖에 없었던 검은색의 동그란 요정은 어느덧 수십 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저것들이 많을수록, 시청자가 많다고 보면 좋았다.

아무래도 내가 ‘특이한 마법’을 구사하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던전을 돌파하다 보니, 시선이 몰리는 모양.

“흠흠.”

목을 가다듬은 뒤, 요정들을 향해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전투 마도학 교수 유서담입니다.”

뜬금없는 내 행동에 아라셀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뭐 하세요?”

“시청자 민심 관리.”

“네?”

시끄럽다 꼬마야. 네가 뭘 알겠냐.

아카데미의 모든 교수와 학생들은 귀족이었고, 그들이 이런 자존심 낮추는 행위 따위를 할 리 없다. 즉, 이쪽 세계에서는 아마도 내가 최초일 것이다.

“여러분, 지금부터 저와 함께 이 던전의 의문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죠.”

라이브 던전 공략 방송은 말이다.

*

피올렌은 차분히 자신이 지나온 던전을 가늠하였다.

첫 번째 스테이지, 함정 및 몬스터 격퇴.

비록 20년 전의 기억이지만 피올렌의 머릿속에는 이곳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단 하루도 잊지 않았다.

이곳은, 평민 마법사로서 처음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장소였으니까.

전 세계에서 찾아온 마탑회의 관리자들이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 수많은 귀족들이, 그리고 교수들이 이곳을 지켜본다.

유례없이 등장한, 평민 천재 마법사 피올렌을 보기 위해서!

그런데······.

‘영상 요정이 왜 적은 것 같지?’

그의 기억 속 검은색의 영상 요정은 훨씬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20년 전의 자신은 단 한 개의 기본 영상 요정만을 배치받았지만 아라셀리는 수십에서 수백 마리의 영상 요정이 달라붙었었으니까.

즉, 자신에게도 그만큼이 붙어야 정상이라는 의미.

하지만 지금 시야에 들어오는 영상 요정은 기껏해야 스무 마리 남짓이었다.

‘···어째서?’

[주인공 피올렌에게 위기가 감지됩니다.]

쿠구궁···!

갑작스레 어디선가 진동이 울려 퍼진다. 하지만 피올렌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격렬하게 싸우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기억상 아직 지옥마수의 부활 징조는 나타나지 않아.’

두 번째 스테이지, 복합적 마법회로에 의한 미로 통과.

전투능력 및 임기응변에 대한 테스트를 하는 첫 번째 스테이지에서는 어째서인지 자신보다 빠른 팀이 하나 있는 듯싶었으나, 두 번째 스테이지는 절대로 뒤처질 수가 없는 구조였다.

마법으로 가로막힌 길을 마법적으로 구조를 파악하고 해석한 뒤 출구로 통하는 단 하나의 길을 찾아내야만 했는데, 이 과정을 수십 번이나 반복해야만 했기 때문. 하지만, 피올렌에게 이곳은 그다지 어려울 부분이 없었다.

이미 길을 전부 꿰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회로를 푸는 시늉만 대충대충 하면서 지름길로 빠르게 빠져나와, 결과적으로 두 번째 스테이지의 압도적 1등!

그런데······.

‘왜 아직도 영상 요정이 적은 거같지?’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드디어 대망의 세 번째 스테이지의 입구에 도달한 피올렌은 천천히 광장의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저, 피올렌. 역시 대단하구나. 근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여교수님이 놀라면서도 의문어린 목소리를 낸다. 원래 2스테이지의 미로는 교수와 학생이 함께 공략해야만 하는 구간이거늘. 피올렌은 독보적으로 혼자 돌파해버렸다.

피올렌은 그저 웃으며 답했다.

“저에게는 다 방법이 있거든요.”

그는 절대로 자신이 회귀했다는 ‘비밀’을 밝히고 싶지 않았고, 평생 비밀로 간직하다가 죽을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천재성이 돋보일 테니까. 미래에서 왔다고 밝혀버리면, 그 점이 팍 식어버리잖아? 피올렌은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한두 명씩 두 번째 스테이지의 광장에 도달했다.

두 번째 스테이지를 통과할 수 있는 팀은 네 팀이 전부.

예상대로 2등, 3등으로 입학한 구릿테와 마젤론이 2등, 3등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라셀리가 보이질 않았다.

‘이상한데. 원래의 아라셀리는 교수와 협력하여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2스테이지를······.’

그렇게 생각하는데, 간신히 4등으로 아라셀리가 도착하였다. 그녀는 어쩐지 진이 빠진 표정이었다.

“으으. 교수님···. 저한테 혼자 맡기시다니······.”

“네 능력을 보고 싶었거든.”

유서담은 능청맞게 거짓말을 했다. 사실, 두 번째 스테이지에서 서담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미래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서 그저 오답이 아닌 길만을 간신히 찾을 수 있었을 뿐.

덕분에 아라셀리는 학생의 힘으로 미로를 돌파해내고야 마는 기염을 토했다. 낑낑거리면서도 고급 공식을 구사해가며 간신히 정답을 찾아내는, 그런 아찔함과 스릴까지 보여주면서 말이다!

“너는 방송인 체질이야.”

“네?”

아라셀리는 서담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순 없었지만 어쩐지 칭찬같았기에 기분 좋은 듯 씨익 웃었다.

-4개의 팀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럼, 대망의 보스룸을 공개하겠습니다!

보스룸이라고 해봐야, 진짜 몬스터를 가져다 쓰지는 않는다. 일전에 만났던 몬스터들 또한 생명마도학으로 만들어진 인조 생명체였을 뿐이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보스인 만큼, 쓰러뜨리는 방법도 단순히 때리고 부수는 게 아니었다.

보스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보스 몬스터가 사용하는 난해한 패턴과 기믹을 모두 이해하고 분석해야만 했으며, 최종적으로는 해답을 찾아내어야만 했다.

그리고.

피올렌은 이 보스 몬스터가 사실 페이크라는 사실 또한 안다.

거짓으로 준비된 보스 몬스터. 그것을 쓰러뜨리면,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마수 ‘헬즈핑크스’라는 괴물이 튀어나오게 된다.

그때부터가 진짜 하이라이트였다.

-보스룸에 입장합니다.

4명의 교수, 4명의 학부생.

엘리트로 구성된 이들의 힘이 합쳐지니, 이벤트성으로 준비된 보스 몬스터는 스프링을 타고 통통 튀어 다니다가 순식간에 힘을 잃기 시작했다. 애초에 평범한 학생들을 겨냥해 만든 기믹은, 교수와 1, 2, 3등의 학부생 앞에서는 무력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여기서 피올렌은 일부러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뻥 터뜨리기 위해서.

-보스 몬스터가 쓰러졌습니다!

마침내 이벤트 보스 몬스터가 쓰러졌고. 모두가 보스 몬스터의 전리품을 회수하기 위해 다가가려는 순간.

피올렌은 자신의 파트너로 데리고 온 여교수의 팔목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느낌이 이상해요.”

“응? 무슨 느낌?”

느낌? 그런 거 없다.

그냥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어쩐지······.”

피올렌이 일부러 말끝을 흐린 그 순간.

갑작스레, 이벤트 보스의 시체가 터져나가더니.

사방이 붉게 물들면서 어떤 기이한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죽음을 먹고 자라는 마법.

바로, 마법사들의 세계에서 철저하게 금지된 ‘흑마법’이었다. 피올렌은 저 마법을 사용한 자가 누군지 알고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중요치 않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위한 무대장치가 되어줄 뿐이니까.

헬즈핑크스. 지옥에서 올라온 마수에다가, 최소 흑마력 보유량이 150을 넘어가는 무지막지한 괴물! 싸움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교수진과 학부생이 쓰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다.

20년 전의 과거에도 많은 피해자를 낸 뒤, 아라셀리가 간신히 헬즈핑크스가 가진 비밀을 찾아내어 뒤늦게 던전에 진입한 프로 배틀 메이지들과 함께 공략하는 데에 성공했었다.

당시 아라셀리는 ‘S랭크의 지옥마수’를 처치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며 온 세상이 주목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주목은 이제 자신의 차지가 된다.

“으아악!”

“제, 젠장 뭐야!”

-긴급상황! 긴급상황!

붉게 물든 불길한 세상 속, 7명의 마법사들이 당황하여 거리를 벌리는 와중 피올렌만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린가!”

“야! 피올렌! 평민 주제에 헛소리 할래!”

“···일단은 들어보도록 하죠.”

꼭 저런 부류가 한 명씩 있다.

한마디를 하면 의문을 토하는 자와, 평민이라고 무시하면서 말도 안 되는 억지 고구마를 먹이려는 자, 그리고 긍정을 표하는 자. 애초에 피올렌은 학부생따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기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헬즈핑크스는 방금 우리가 상대했던 이벤트 보스와 똑같이 ‘퀴즈’와 ‘기믹’을 통해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자네는 어찌 그런 사실을 아는가?”

“예전에 도감을 읽다가 본 적이 있습니다. 설마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지만요.”

이윽고 피올렌은 침착하게 기믹을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유서담을 바라보았다.

사사건건 귀찮게 꼬투리나 잡고 늘어지는 망할 교수. 미래에는 저런 놈의 기억, 존재하지도 않는다. 즉, 평생 존재감이 희미하게 살다가 그저 그렇게 죽을 엑스트라였다는 의미. 그런 엑스트라 주제에 자신에게 대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는 오늘 죽어라.’

피올렌은 일부러 기믹과 관계없이 위험한 자리에 유서담을 배치했다.

헬즈핑크스의 공략은 정말 우연찮게도 여덟 명이 있어야만 가능했고, 각자가 위치에서 발판을 밟거나 그려지는 마법진을 수정하면서 구슬을 헬즈핑크스에게 굴리는 등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만 했다.

쿠오오···!!

던전 내에 헬즈핑크스의 괴성이 울려 퍼지는 것을 신호로, 피올렌이 외쳤다.

“지금입니다!”

피올렌의 지시는 완벽했다.

지금 이 순간만을 끊임없이 그리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그런 생각.

아, 그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이렇게 해서 더 완벽한 공략을 내세울 수 있었을 텐데. 피올렌은 회귀를 하기 전부터도 과거에 아라셀리가 이루었던 업적을 끊임없이 ‘내가 했었으면 어떨까?’하고 상상을 해왔고,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아라셀리의 것을 베껴올 수 있었다.

‘즉, 이건 내 노력의 결과물이야!’

무려 S랭크의 지옥마수다. 작은 도시에 풀어졌다가는 그 도시 자체가 지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을 정도로 강력한 괴물.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피올렌의 지휘하에 모든 마법사와 교수들이 완벽하게 움직이며 S랭크의 지옥마수를 공략하고 있었다.

단 한 명의 피해조차 없이.

마치, 계획된 것처럼.

나무랄 데 없는 깔끔하고 완벽한 레이드.

쿠웅!!

이윽고 헬즈핑크스가 쓰러지는 그 순간···. 피올렌은 천천히 하늘을 쳐다보며 심호흡을 하였다.

짜릿하다.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그 상쾌한 쾌락이 뇌를 지배하였다.

끊임없이 상상해왔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고. 필사적으로 생각해왔던 나날의 첫 번째 시작점을 바로 이곳에서 찍은 것이다.

S랭크의 지옥마수를 피해 없이 완벽히 공략해낸 1학년의 학부생.

이제부터, 피올렌이라는 이름은 전설이 된다.

······그래야만 했을 터인데.

‘···어째서, 영상 요정이······?’

이상하다. 자신은 이곳의 지휘자였고, 그 누구보다도 주목을 받기 쉬운 위치에서 활약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왜 영상 요정이 더욱 줄어들었냔 말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유서담을 바라보자.

헬즈핑크스의 모든 공격에 집중포화를 당하여 만신창이가 된 채로, 그는 허공에 떠있는 수백 마리의 영상 요정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틀림없군요. 던전 내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을 비롯하여 S랭크의 지옥마수 헬즈핑크스까지 전부.”

어?

잠깐.

“······학부생, 피올렌이 벌인 짓이라는 게 확실해졌습니다.”

이게 아닌데.

피올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방금까지 자신의 지휘를 철저하게 따라주었던 교수와 학부생들이 모두 자신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심취해서, 공략에 심취해서 몰랐다.

던전을 공략하는 내내 어떤 교수가 끊임없이 던전에서 발생하는 특이 현상에 대해 방송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왜냐하면 그건, 미래에는 벌어지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회귀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전혀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자, 잠깐. 저는 이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잖습니까.”

“······자네는 어찌 그렇게 ‘헬즈핑크스’에 대해 잘 아는가?”

어떤 교수의 물음.

그것은 사소한 의문이었다.

만약 원래였다면, 이런 의문 따위 ‘주인공 보정’의 버프로 간단하게 넘어갔을 터. 하지만 이곳에는 주인공 보정을 해칠 수 있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유서담.

그는 끊임없이 던전을 공략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어째서 안전할 터인 던전에 이런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가. 뭔가 수상쩍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던전의 상태가 이상하다.

그런 사소한 의심이 모이고 모여,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을 무렵.

하필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헬즈핑크스’가 나타나 버렸다.

그리고, 정말로 자로 대고 그린 것처럼 완벽하게 한 명의 학부생이 들어본 적도 없는 헬즈핑크스라는 지옥마수를 공략해내고야 만다.

누가 보아도, 의심스럽다.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야, 야히렌 교수님······. 저는 그저 책을···.”

피올렌은 자신의 파트너 교수에게 말을 걸었건만, 그녀 역시 덜덜 떨리는 눈빛으로 지팡이를 겨누었다.

“······지옥마수는 서적에 등록되지 않아.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지.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건 동화책 수준의······. 공략법 따윈 존재할 리도 없는 그런 책이야.”

“교수님···!”

“피올렌. ‘흑마법’을 사용한 대가는, 영혼으로 치러야 한다. ···각오는 하고 사용한 것이냐?”

“아, 아닙니다! 저는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어째서.

“헬즈핑크스에 대해서, 그리고 이 던전에 대해서. 우리 교수조차 모르는 공략법을 그렇게 완벽히 꿰차고 있었지?”

피올렌, 하며. 야히렌 교수는 그를 애타는 듯한 목소리로 불렀다.

“지금이라도 변명해봐. 제발. 나는 너를 믿고 싶어. 너는 그런 아이가 아니잖아. 응?”

그러나.

대답할 수 없었다.

회귀를 해서 알고 있어요.

20년 뒤의 미래에서 봤어요.

그렇게 말하면 되는가? 과연 그들이 믿어주는가? 설령, 믿어준다고 하더라도.

‘그럼 왜 진작 그 위험을 말하지 않았는가?’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되는가.

“자, 잠깐만요! 저는 ‘진범’을 알고 있어요. 제가 이곳에서 나가면, 증명해낼 수 있-”

타앙!!

“컥!”

피올렌이 소리를 치는 그때, 어디선가 총성이 울려 퍼졌다.

오로지 비비안타의 전투 마도학 초빙교수만이 사용하는 아주 특이한 마법.

유서담이었다.

“흑마법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총에 맞았음에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히 일어서는 피올렌을 보며.

“지금 여기서, 흑마법사를 배제하겠습니다. 배틀 메이지로서의 현장 명령입니다.”

유서담은 메가 슈터를 철컥 장전하였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피올렌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미래에 이런 헤프닝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을 텐데.

이보다 더욱 완벽한 미래는 없을 텐데.

그런데 어째서.

그때.

피올렌은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유서담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움직이며, 피올렌에게만 보이도록 입모양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미래의 정보는 이렇게 쓰는 거다, 멍청한 새끼야.’

회귀자가 미래의 정보를 통해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다면.

이제는 그 미래의 정보로 인해, 철저하게 추락할 때가 되었다.

< 회귀자를 상대하는 방법(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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