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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7화 (17/251)

< 마법고 마법천재가 되었다(4) >

비비안타 마도 아카데미에서 한 달간 머물며, 알아낸 놀라운 사실 하나.

그것은 밥이 끝내주게 맛있다는 점이었다.

점심, 비비안타의 식당 한켠에 자리를 잡은 나는 식판 세 개를 죽 늘어놓았다. 남들은 식판 하나에다가 조금씩 음식을 담아서 먹는 모양이다만, 걔들은 귀족이라서 그런 거다. 이 세계로 따지고 따지면 나는 평민이었고, 귀족들이 먹는 음식이 상당히 낯설면서도 입에는 또 더럽게 잘 맞았다.

기름진 통닭구이, 미디엄 웰던으로 적당히 자글자글 익은 스테이크, 입에 넣는 순간 고소함에 취해버리는 치즈 베이크까지. 비비안타의 식당은 뷔페식이었고 원하는 음식을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다지만, 나처럼 무식하게 가져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보통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밥을 먹는 편이었다. 워낙 많이 먹어서 그렇다.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을 꽉꽉 채워서 식판을 일곱 개나 갈아치우고 돌아가려고 할 때쯤, 뒤늦게 밥을 먹으러 오는 학생 한 명이 보였다.

아라셀리 라인칼. 수석으로 입학을 했던 기대주였건만, 사사건건 피올렌에게 트집이 잡혀서 지금은 교수마저도 등을 돌려버린 비운의 학생이었다. 그녀는 잔뜩 수척해진 표정이었는데, 동작마저도 느릿느릿해서 과연 한 달 전의 그 아이가 맞나 싶었다.

“마법사님. 지금 시간이 끝나서······.”

“아···.”

음식을 치우고 있는 쉐프의 말에 아라셀리가 짧게 탄식을 했다. 식사 시간의 규정을 어긴 건 어쨌든 그녀였으므로, 할 말은 없을 터. 그녀는 힘없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몸을 돌렸다.

“음······.”

그녀에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째선지 그냥 좀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는 주인공의 피해자였으니까.

“아라셀리.”

“···네?”

내 부름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살짝이지만 놀랐다. 그 눈빛에는 여전히 총명함이 숨어있었기 때문. 하긴, 한 달 사이에 사람이 폐인이 되지는 않으려나. 자신감이 많이 죽긴 했어도 여전히 아라셀리는 아라셀리였다. 미래의 대마법사가 될 인재.

“내가 실수로 밥을 하나 더 퍼놨는데, 이거라도 먹어라.”

손에 들려있는 식판 하나를 건넸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너무 과하게 많이 먹으려고 열 판 넘게 가져왔다가, 일곱 판밖에 못 먹은 참이었으니까.

“아···.”

이게 저 아이의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다만, 뭐 쫄쫄 굶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녀가 식판을 받아들고서 머뭇거리자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일전에 네가 쓴 ‘일리 있는 여섯 가지 회로이론’ 괜찮았어. 조금만 더 다듬으면 예쁜 논문이 될 거다.”

말하고 보니 조금 이상하다. 논문에 ‘예쁜’이라는 단어가 적절하던가? 게다가 사실, 나는 저 이론이 뭔지도 모른다. 다만 <‘일리 있는 여섯 가지 회로이론’은 조연 아라셀리가 3개월 뒤에 완성할 예정입니다.> 라는 메세지를 따라서 읽었을 뿐이다.

“감···사합니다.”

“그래. 든든하게 먹고 공부해야지. 그럼 난 간다.”

그렇게 아라셀리를 뒤로하고서 식당을 빠져나왔다.

어쩐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

내 수업 시간에 주로 가르치는 건 전투 마법이었고, 이론 수업보다는 실전이 더 많았다. 왜냐고?

내가 이론을 모르니까.

하지만 마법 생도들도 결국 사람은 사람이었기에, 지긋지긋하게 책만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실전 수업을 더 좋아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꽤 인기가 많은 교수였다. 마치 초등학교 때 체육 선생님이 제일 인기가 많았던 것과 비슷한 이유라고 추정한다.

“교수님! 웨일번이 드디어 마력샷을 완성했어요!”

“미친.”

강의를 하다보면 가끔가다 나를 놀라게 만드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과학을 마법으로 구현하는 놈들이 나올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는 에테르 디스펜서 또한 과학이면서 동시에 마법처럼 보일 때가 있는 것처럼, 마법으로도 얼마든지 과학을 흉내낼 수가 있던 것.

근데, 마법밖에 없는 이 세계에 과학을 흩뿌려도 문제는 없는 건가?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주인공이 해치는 세계의 흐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그러냐. 그럼 다행이고.

하긴 반대로 나도 마법을 훔쳐 갈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되면 오히려 곤란하다. 어차피 여기에 내가 다시 올 것도 아니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구석에서 각자 마법을 연습하고 있는 학생 네 명을 바라보았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아라셀리, 구릿테, 마젤론, 피올렌은 모두 같은 시간에 내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이 강의 시간은 내가 가장 긴장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피올렌의 전투 능력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격은 역시 불가능하겠군.’

피올렌의 심장에는 벌써부터 4써클이라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잠재되어있었는데, 4써클 이상의 마법사들은 ‘캐스트 매직’이라는 기묘한 기술을 통해 즉시 발동이 가능한 마법 하나를 준비해둔다고 했다.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마법을 ‘장전’한다고 말하는 게 옳겠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방어계열 마법을 캐스팅해놓는 편이었고, 만약 충격을 받으면 그 즉시 발동된다고 한다. 내 저격으로 저 방어를 뚫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건드는 건 힘들다.

만약 한 번에 죽이는 데에 실패할 경우 70레벨의 마법사와 정면 대결을 해야만 했는데, 절대로 이길 수 없을뿐더러 피올렌은 온갖 교수 및 여학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어서 혼자서 그들 모두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피올렌은 여학생들의 사이에 껴 있었다.

“써클릿 스파이럴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어멋···!”

은근슬쩍 여학우의 팔을 잡은 피올렌이 무덤덤한 척 마력을 불어넣자, 그 여학우의 뺨이 발그레 물든다. 쟤들은 정말 저런 놈이 좋은 건가? 이해를 할 수는 없었지만, 이게 다 주인공의 법칙이라는데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저 여학생들이 나를 적대할 경우 어떻게 죽일지를 상정하고는 있었지만.

피올렌은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조금만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으면 곧장 달려가 미래의 지식으로 가르침을 주고는 하였다. 그래서 사실 이 강의는 내가 아니라 피올렌의 독주라고 봐도 좋았다.

물론, 피올렌은 여자만 가르친다. 그것도 예쁜 여자만.

참 저렇게 보면 정말 천재처럼 보이기는 했다. 열일곱의 나이에 어지간한 교수들도 어려워하는 마법을 다루고는 있으니까. 심지어 미래의 지식을 몇몇 조합해서, 현재에는 없는 마법을 마치 본인이 창조해낸 것처럼 흉내까지 낸다.

피올렌은 항상 특출나게 뛰어났고, 이제는 자연스레 아라셀리와 비교가 되곤 했다.

아라셀리가 50m 전방을 향해 손가락 끝으로 새하얀 화살을 한 발을 생성하여 발사하자, 주변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워낙 빠르고 정확하게 조준이 되었기 때문.

그러나, 피올렌이 그보다 더욱 커다란 화살 세 발을 생성하여 연달아 쏘자 관심이 저절로 그에게 향했다.

“역시 피올렌이 더 대단한 것 같은데?”

“파괴력도 더 강했잖아. 세 발이나 한 번에 만들다니.”

아라셀리의 표정이 어두워진 건 당연한 일.

평소라면 끼어들지 않았겠으나,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불쌍해서? 그래서 편을 들어주기 위해?

그럴 리가.

슬슬 사냥감의 관찰이 끝났다.

나는 이제부터, 사냥을 위한 ‘빌드 업’을 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방법으로.

붕 떠올랐던 피올렌의 이미지와 자신감을 추락시킬 필요가 있었다.

“피올렌. 전투 시 마력을 그렇게 낭비할 셈이냐?”

“네?”

설마 지적이 들어올 줄은 몰랐는지 피올렌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러더니 표정을 굳혔다. 놈은 한 달 내내 나를 경계하곤 했었는데, 회귀 전 자신의 기억 속에 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20년이나 지난 미래에서 온 탓에 모든 교수를 기억할 수는 없으므로 나를 존재감이 없는 교수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지만.

“고작 1의 힘을 가진 표적을 제거하겠다고 10의 마력을 사용했구나. 그건 힘의 과시가 아니면 뭐지? 넌 실전에서도 적에게 내 마법이 이렇게 대단하다고 과시를 할 셈이냐?”

“저는 어떤 적을 만나더라도 효율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연습을 했을 뿐입니다. 비록 1의 표적이었지만, 10이라고 생각했구요.”

“효율이라. 넌 네 마법이 정말로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천천히 표적을 가리켰다.

“그래. 파괴력은 강해. 근데 그 마법을 캐스팅하는데 몇 초나 걸렸나?”

“······6초가 걸렸습니다.”

충분히 빠른 속도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6초면 50m 바깥에 있던 신체 건강한 성인 남성이 네게 도달하기엔 충분하겠군. 하물며 마법사와 기사라면 어떨까. 네 목이 떨어지지 않고 남아있을까?”

“그건···.”

“아라셀리를 봐라. 마법의 캐스팅부터, 적에게 명중하기까지 단 2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서 조교 윌리스가 ‘과연, 정확도는 물론 마력의 유실률까지 아라셀리 양이 더 효율적이군요.’라고 덧붙인다. 그게 무슨 소린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맞는 말이겠지.

“전투는 쇼가 아니야. 네 화려하고 실속 없는 마법을 적이 맞아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러자 주변에서 내 말을 동조하기 시작했다.

“과연. 피올렌 학생의 마법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지는군.”

“맞는 말이오. 전투라···. 과연, 골방에 앉아서 책이나 읽고 마법진을 끄적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어쩌다보니 나는 뛰어난 배틀 메이지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데, 의도를 했든 의도치 않았든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것이 설령 거짓된 이미지라 할지라도.

이곳의 교수진들은 대부분 전투 경험이 없다시피 했고, 덕분에 대충 그럴싸한 말로 주워섬기는 게 가능했다. 실제로 내가 마법을 잘 모르긴 하지만 내 말에 틀린 점도 없다.

아라셀리의 표정이 살짝 환해진 데에 비해, 피올렌의 표정이 점차 썩어들어갔다. 새끼, 나보다 최소 여덟 살은 많을 텐데 표정 관리를 전혀 할 줄 모른다. 헛살았구나?

“···교수님의 말이 옳다고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옳거니. 그럴 줄 알았다.

자존심만 더럽게 세가지고, 절대 자기가 일궈놓은 하렘꽃밭에서 무시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겠지.

“그래. 내가 전장에서 구른 세월만 15년이다.”

“경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말이 옳은지가 중요할 뿐입니다.”

주변에서 “허, 저런. 아무리 그래도 교수의 경력을 무시하다니.”라는 반응이 돌아왔지만, 이미 내가 ‘고구마’를 주입해버린 상황에서 주인공은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따윈 없었다.

“내가 교수씩이나 돼서 너와 결투를 할 수는 없겠고······. 그럼 이번 ‘마엘카 던전대’는 어떨까?”

마엘카 던전대.

비비안타의 학생들과 교수가 팀을 먹고서 ‘던전’을 함께 공략하는 일종의 이벤트였는데, 각 마법학과와 학년간의 경쟁요소가 아주 치열한 장소였다. 던전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국가 마법사가 되거나, 마탑의 노인들에게 섭외 제의가 왔었기 때문이다.

즉, 마엘카 던전대는 연줄이 없는 마법 생도들에게 있어 일종의 오디션 무대나 마찬가지인 장소.

당연하지만 피올렌은 마엘카 던전대가 빅 이벤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곳에서 벌어질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게 될 어떤 상황’마저도 꿰차고 있을 것이다. 그는 미래에서 돌아온 회귀자였으니까.

“마엘카 던전대 말씀이십니까?”

“그래. 나는···. 그래, 이곳에서 가장 훌륭한 성적을 보인 아라셀리와 함께 하겠다.”

피올렌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그래, 그렇겠지. 나는 너를 잘 안다. 아마 참을 수 없겠지. 자신을 무시한 교수와 정당한 대결을 해서, 당당하게 승리를 쟁취해내서 엿을 먹일 생각에 잔뜩 몸이 달아올랐을 것이다.

이건 절대 회귀자로서 질 수가 없는 싸움. 던전대에서 벌어지는 일은 오로지 회귀자만이 알고 있었기에.

“좋습니다.”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피올렌을 보며, 나 역시도 웃었다.

왜냐하면.

[주인공 피올렌이 에피소드 ‘마엘카 던전대의 지옥마수(3)’에 간섭을 시작하였습니다.]

[해당 에피소드의 변화를 감지합니다.]

나에게도 그 미래가 똑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 마법고 마법천재가 되었다(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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