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카메라 치우라고(1) >
주인공의 정의가 무엇이던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정의를 내리자면 온 세상의 축복을 혼자서 독식해 처먹으면서 성장하는 이기적인 놈들을 일컫는다.
게다가 21세기 스타일로 변질되면서, 주인공 놈들의 앞에는 절대로 ‘위기’라는 게 없다. 옛날의 주인공들이야 가끔가다 여자친구도 죽고 가족도 죽고 친구도 죽고 동료도 죽으면서 각성의 기회가 있는데 요새는? 절대로 그런 거 없다.
그냥 주인공들은 뭐든 다 알고 있으며, 주변 지인을 절대 위기에 처하지 않게 하고, 악당이 가진 힘보다 한층 더 강력한 파워로 모든 것을 박살내버린다.
다만, 여태까지 내가 사냥했던 두 명의 주인공은 주인공 치고 상당히 약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한 명은 ‘초반부’였으며, 한 명은 본체가 무력한 시기를 내가 운이 좋게도 잘 노렸기 때문.
그렇다면.
이제 막 ‘프롤로그’를 시작한 이번 주인공은 어떨까?
[2···1···0]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눈 덮인 오동나무의 갈림길’을 공략하기 위해 찾아온 헌터입니다.]
[주인공 이연준의 레벨은 ‘63’입니다.]
“미친······.”
던전에 입장한 직후, 내 표정이 썩어들어가자 첼레스테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냐. 브리핑이나 들어.)”
생각해보자.
처음 사냥했던 길리텐더의 레벨은 33. 강체라고 할 것도 없지만, 그의 움직임이나 컨트롤은 생전 그것을 처음 접하는 나를 현혹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최소 A랭크 이상의 컨트롤을 보여주며 칼춤을 췄던 놈이지만, 실질적으로 능력의 출력을 생각한다면 어떨까?
고작해야 D급에서 정말 많이 쳐줘봐야 마력 랭크로 따져서 C급이다.
그러나 놈은 ‘보법’으로 스피드를 커버했으며 ‘초식’으로 힘을 메웠고 ‘심법’으로 결투의 리듬을 제어했다. 그 모든 것들이 아우러져, 고작해야 D급의 힘으로 단순무식하게 힘을 휘두를 뿐인 지구의 A랭크 초능력자와 비견될 수준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이연준은?
지구에서 태어나 지구에서 자란 과연 이연준이 보법과 초식, 심법 등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C랭크라고는 하지만, 각성한 지 고작 며칠밖에 되지 않은 그에게 완벽한 강체 컨트롤이 존재할 것인가?
일전에 B랭크의 폭주 능력자를 제압하긴 했다. 그러나, 놈은 출력만 B랭크였을 뿐 움직임이 단순무식했으며 심지어 별다른 능력도 없어서 조심할 필요조차 없었다. 즉, 그저 잡몹이다. 주인공급 C랭크 능력자와는 다르다는 의미.
그래, 어떻게든 죽인다고 치자. 그러나 문제 하나 더 있었다.
대체 놈을 무슨 핑계로 죽이냐는 것.
지금도 뒤에서는 카메라맨 세 명이 따라오고 있었고 하늘에는 드론 일곱 대가 날아다니고 있다. 그것들 각각 하나하나가 지망생의 얼굴을 비추고 있을 건데 무슨 수로 몰래 살인을 한단 말인가? 게다가 이연준은 장현석과 계속 함께 다닐 텐데, 그는 S랭크의 초능력자.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장비로 상대하면 100%의 확률로 내가 패배한다.
진짜 미치겠다.
“그럼, 출발하도록 합시다.”
잠깐 고민하는 사이 브리핑이 끝났고, 장현석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파티가 던전의 초입부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
열넷의 헌터와 헌터 지망생. 이 인원들을 다루는 리더는 다름 아닌 장현석이었다. S랭크의 헌터이기도 했고, 능력이 원거리 계열인 점도 있었으며, 가장 인지도가 높은 헌터이기도 했다.
30년 전, 몬스터들이 최초로 등장했을 때에는 공적을 세운 헌터들이 유명세를 얻고는 하였다. 그들은 인류에게 있어서 희망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잘 생기고, 화려한 능력을 가진 헌터가 유명세를 얻는다. 비록 그들이 실제로 하는 것이라곤 TV에 출현하는 것밖에 없더라도, 사람들은 그들을 영웅으로 칭송한다.
원래 다 그런 세상이다.
C랭크의 던전 오동나무의 갈림길은 현재 전 세계로 생중계가 되고 있었는데, 꽤 이슈몰이를 했던 신입 두 명이 모여있는 바람에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었다.
17의 나이에 무려 D랭크의 초능력을 각성한 코스탄티니 가의 장녀.
평생을 무능력자로 살아왔지만 노력과 근성을 통해 C랭크의 초능력을 각성한 이연준.
19세 이상으로 등록된 시청자들은 라이브 방송으로 들어와, 1번부터 7번까지의 캠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곳을 눌러서 볼 수 있었는데 누가 뭐래도 이연준과 첼레스테의 시청률이 가장 높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연준이 세계 최초로 소화율 0%의 일반인으로서 초능력을 각성했기 때문이며.
첼레스테가 어지간한 연예인 저리가라 할 정도로 화려한 외모를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7인의 생도 중에서 첼레스테의 능력이 가장 평범했다.
어린 나이에 각성을 했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을 뿐, 다른 이들도 20대라는 나이에 D급의 초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심지어 꽤 화려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물질을 통과하는 초능력을 구사하며 몬스터를 사냥하였고, 어떤 이는 초고속으로 달리기도 했으며 어떤 이는 그 희귀하다는 염력을 부리기도 했다. 5인의 초능력자들이 모두 화려한 능력을 가진 데에 비해, 이연준과 첼레스테만이 오로지 평범한 신체 강화 능력자였다.
‘흐음. 역시. 우리 1번 캠에 관계자들이 많이 모였군.’
장현석은 팔목의 얇은 패드에 떠오르는 숫자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었다.
일반인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사실 일반인 채널과 ‘헌터 관계자’ 채널이 따로라는 사실. 고작 생도들의 데뷔전임에도 불구하고 수십만 명이 모인 일반인들의 채널이 아닌, 관계자 채널은 그 숫자가 따로 집계되었는데 이연준과 장현석의 채널에 가장 많은 숫자가 모여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간에는 그저 ‘노력’으로 해결했다고 알려진 무능력자가 초능력을 각성한 비밀에 대해 헌터 업계에서 어떻게든 파헤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관계자 시청자 중에서는 유명한 헌터도 있었고, 길드 마스터도 있었으며 정치가나 광고주도 있었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은 골고루 시청자들이 분배된 데에 비해, 관계자들이 일방적으로 이연준의 1번 캠에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싶었다.
그러나······.
-장현석 저거 왜 저렇게 나댐?
-아니 생도 어케 싸우나 보려고 왔더니 본인이 제일 신났네?
-아 ㅈㄴ꼴불견
-왜요ㅠㅠ 우리오빠 멋있기만 하구만ㅠ
장현석은 언제나 명성이 고팠고, 본인이 솔로 헌팅을 할 때에도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은 무척이나 드물었다. 사실상 랭크만 높지 경험은 적었던 장현석 또한 다른 생도와 마찬가지로 흥분하고 말았고, 생도를 보조해야만 하는 역할인 선임 헌터인 주제에 제멋대로 능력을 사용하기 일쑤였다.
그의 능력은 ‘광선 채찍’으로, 양손바닥에서 에테르로 이루어진 붉은색의 채찍을 자유자재로 휘둘러 적을 단번에 베어내는 무시무시한 초능력이었는데 다른 A급에서 D급의 능력자가 모인 이 자리에서는 충분히 제일 주목을 받을만하긴 했으나, 관계자들에게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본인이 S랭크이거나, 혹은 S랭크의 헌터를 매일같이 마주하는 사람들이었다. 랭킹 순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장현석의 능력 따위, 관심도 없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이연준 한 명 뿐이었는데 말이다.
장현석의 과도한 행각에 의해, 관계자들은 자연스레 다른 헌터의 상태를 살펴보게 되었는데.
그때, 눈에 띄는 헌터가 한 명 있었다.
바로 첼레스테였다.
첼레스테는 관계자 시청률이 7명 중에서 가장 낮은 편이었는데, 그녀는 어차피 코스탄티니의 살바토레와 함께 활동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범한 강체 능력자인 그녀를 분석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재능이 출중한 헌터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녀만큼 대단한 헌터는 그들의 눈에 차고 넘쳤으니까.
그러니, 그들이 주목한 점은 첼레스테의 초능력이 아닌 순수한 ‘대처 능력’이었다.
-오호라. 저거 보게?
누군가가 관계자 채팅창에 글을 올린다.
-스프링 울프를 저런 식으로 대처하다니.
스프링 울프. 네 개의 팔을 할퀴며 전방으로 재빠르게 돌진하는 그 공격은 인간의 반응속도로 대응하기가 어려워, 횡으로 크게 회피하여 후딜레이를 노리는 것이 정석이었다.
다른 지망생들 또한 선임 헌터에게 사전에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정석적으로 몬스터의 패턴을 파훼했으나, 스프링 울프 또한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어 빈틈을 노린다는 게 어려운 건 당연한 사실.
하지만, 첼레스테는 횡으로 피하는 것이 아닌 백스텝을 사용하고 있었다.
돌진기를 사용하는 몬스터를 대상으로 백스텝을 한다? 보통이라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허나, 놀랍게도 첼레스테는 스프링 울프의 돌진 사거리를 정확하게 꿰고 있었고 고작 한두 걸음만으로 그 돌진을 피해내어 버려지는 시간 하나 없이 곧바로 검을 휘둘러 목을 떨궈버렸다.
D랭크의 초능력자가 혼자서 D랭크의 스프링 울프를 제압한 것도 놀라운데, 그 과정이 굉장히 안정적이어서 충분히 감탄사가 나올만 했다.
그러나 조금 놀랐을 뿐이다. 거기까지는 재능이 있고, 사전에 공부를 철저하게 했다면 충분히 그럴법 했다. 하지만, 이후로 등장하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 또한 숱한 헌터들을 놀라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허어. 저걸 저렇게 상대한다고? 특이하군.
-흐음···. 방법은 그렇다 치는데, 정말 어지간한 깡이 아닌데. 자신이 있는 건가?
이연준&장현석 콤비와는 다르게, 첼레스테&유서담 콤비는 오로지 첼레스테에게 분량을 몰아주고 있었다. 사실상 유서담은 에테르 블레이드의 칼날을 사출하기만 했지, 에테르 코팅을 활성화하지도 않은 채 그저 권총 한 자루를 왼손에 들고서 가끔가다 한 번씩 견제사격을 해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러한 유서담의 서포트 역시 그저 예쁘다는 이유로 첼레스테를 시청하던 몇몇 눈썰미 좋은 일반인 시청자들의 눈에 띄게 되었다.
-엥? 저사람 뭐임? 사격솜씨 장난아니네
-헌터하려면 저정도는 해야지
-ㄹㅇㅋㅋ
-위에 너네 총쏴봤냐?
-아니 미친놈들아 그게아니라 절묘한 타이밍에만 쏜다니까?
그 시청자의 말마따나, 서담은 절대 아무 때나 권총을 쏘지 않았다. 아무리 파괴력이 약한 권총이라도 맞으면 소형종 몬스터는 밀려날 수밖에 없었는데, 몬스터가 첼레스테를 때리기 직전이라던가 몬스터가 슬금슬금 두세 마리씩 모이기 시작했다거나, 위기에 직면했다던가의 순간에만 권총이 발사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위험한 순간이 아니라면, 그의 권총은 잠잠했다. 맞을 것 같으면서도 첼레스테가 임기응변을 통해 어떻게든 적에게 대응을 성공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분명히 권총을 쏴야만 할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첼레스테가 성공적으로 막아낼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유서담은 잠자코 있는 것이다.
그에 첼레스테의 채널을 잠시 훑어보던 관계자 시청자들 또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은 고작해야 C랭크의 던전. 평상시라면 신경조차 쓰지 않을 최하급의 던전이다. 그러나, ‘몬스터 도감’에조차 등록되지 않은 사소한 특징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싸우는 헌터 지망생이 있다면? 자연스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자그마한 흥미였다. 그저 특이한 것을 본 것에 대한 흥미.
-갈고리 킬러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오호라. 저건 묽은 트레일로의 피가 아니던가. 저게 로프레이지의 후각을 교란시키는군.
분명, D급 몬스터의 지식 따위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S랭크의 초능력자라면 그저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해치울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니까.
-아니? 스프링 울프의 36방계 점프는 랜덤으로 튀어 오르는 게 아니던가?
-위치를 어떻게 알고 쏘는 거지?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총구를 겨누고 있는데.
그러나, 한두 마리가 아닌 던전에 나오는 ‘모든’ 몬스터의 특징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파악하고 있다면? 그것도 그 대상이 15년 차의 베테랑 헌터라면?
15년 동안 초능력 하나 없이, 맨몸으로 전장에서 뒹굴었던 헌터는 대체 어떻게 전장에서 싸워왔는가. 별다른 힘없이 강대한 힘에게 맞서기 위해서, 과연 초능력이 없는 헌터는 대체 무슨 방법을 사용했는가.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모인 14+3명의 인원 중에서, 유서담의 신체 능력이 가장 뒤떨어졌다. 왜냐하면 초능력자를 뒤쫓기 위한 세 명의 카메라맨 마저도 E랭크의 강체 능력자였으니까.
하지만, 관계 시청자들은 감히 말할 수 있었다. 그 어떤 초능력자보다도 유서담의 움직임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아주 가끔가다 그는 에테르 블레이드에 에너지를 불어넣어서 휘둘렀는데, 분명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놈들을 오차 하나 없이 단 일격에 썰어버리는가 하면 어지간한 베테랑들은 취급조차 해주지 않는 3급 권총 따위로 적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봉쇄해버리기도 했다.
너무 단순하게 움직여서 화려함은 없었다. 그러나 화려하지 않은 그 단조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숨어있었다.
-저 남자······. 유서담이로군.
-들어본 적 있다.
-F랭크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헌터라고 했나?
-허, 그럼 저게 F랭크의 움직임이라고?
일반인들은 최근 영상으로 유서담을 접한 게 전부일지 몰라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유서담이라는 헌터를 알고있는 사람이 아주 소수지만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F랭크라고 해서 별로 주목할 가치조차 못 느꼈는데, 이번 영상을 계기로 그들은 생각을 살짝 전환하게 되었다.
초능력이 아예 없는 F랭크로 15년 동안 살아남은 유일한 헌터라면.
-아, 기억났다. 저 남자 ‘헬 게이트’를 무려 3년이나 탐험하다 생환해온 헌터야.
그것도 어지간한 S랭크의 헌터조차 엄두를 못내는 업적을 달성했던 헌터라면.
시청자들이 서서히 유동하기 시작했다. 일반인 시청자들은 여전히 이연준에게 집중되어있었지만, 헌터 관계자들이 첼레스테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
“뭐야 이건.”
자신의 팔목에 비치는 시청자의 숫자를 보며 유서담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몇몇 생도를 인도했던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땐 이런 식으로 생중계를 하지는 않았기에 이런 시스템이 상당히 낯설었던 것이다. 서서히 첼레스테를 보는 ‘관계자’들의 숫자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서담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변화는 이연준에게 찾아왔다.
갑작스레 힘을 과격하게 쓰지를 않나, 몬스터들의 한복판에 뛰어들지를 않나. 생도로서 보이기에는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행동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뭐지 저 새끼? 돌았나?’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주인공 이연준이 스킬 ‘관심력(A)’를 습득하였습니다.]
[주인공 이연준에게 새로운 해시 태그 ‘#인방’이 추가됩니다.]
[주인공 이연준의 요약 해시 태그가 수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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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 뭔데 시발?’
< 아 카메라 치우라고(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