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망생들의 데뷔전(4) >
유서담은 뭐든 열심히 하는 편이다. 하다못해 길고양이와 놀아주는 일마저도 열심히 하는 그가 심지어 ‘보수’를 받는다면, 필사적으로 임하게 된다.
“(2급 공방의 장비 3개를 준다고?)”
“(네.)”
이번 건수는 첼레스테의 선임 헌터로서 그녀를 무사히 데뷔시키는 일이었고, 그에 합당한 보수로서 무려 2급의 장비 세 개를 주겠노라고 말했다.
“(허.)”
첼레스테는 유서담에 대해 충분히 조사했고, 그래서 알고 있다.
그가 에테르 디스펜서에 어마어마한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그래서 은근슬쩍, 우연을 가장하여 마침 있었다는 것처럼 서담이 원하는 선물을 딱 준비한 것. 서담의 능률이 올라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말 오전.
금강 체육관에서 모인 서담과 첼레스테는 나란히 아무도 쓰지 않는 운동기구에 앉아서 터치패드를 쳐다보았다. 이게 상당한 비매너란 것은 알지만, 어차피 주말엔 사람이 없다. 쇠질에 날짜는 없다지만 최근 지망생들이 데뷔전 건으로 상당히 바쁜 모양.
첼레스테는 체육관이 아닌 카페 등에서 만나 차분히 대화를 나누길 원한 것 같았지만, 서담에게는 다분히 귀찮은 일이었다.
그녀가 헌터로서 데뷔할 무대는 ‘눈 덮인 오동나무의 갈림길’. 무려 C랭크의 던전이었다.
“(근데 너 존나 대책 없는 거 알지? 무슨 깡으로 C랭크의 던전을 신청했냐?)”
서담은 슬슬 첼레스테를 대하는 데에 상당히 편해졌고, 말을 아무렇게나 막 던지는 경향이 있었으나 그녀는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담이 자신을 편하게 대해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 정도 되는 지망생에게는 흔한 일이에요.)”
“(아니, 그건 알지.)”
보통의 헌터 지망생들은 E에서 높아봐야 D랭크의 던전 및 게이트를 공략한다. 하지만 아주 간혹 초 엘리트 지망생들은 C랭크의 던전을 공략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첼레스테가 딱 그짝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선임 헌터가 최소 A랭크의 헌터일 경우에나 가능한 이야기.
“(너, 지망생은 인원으로 안 쳐줘서 데뷔전은 결국 선임 헌터의 ‘솔로’ 공략 판정받는 건 알고 있지?)”
즉, 유서담과 첼레스테가 둘이 함께 던전으로 들어가면 유서담의 솔로 공략 판정이 된다는 말. 그 자체는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솔로 공략’에는 어마어마한 제약이 뒤따르게 된다.
던전은 솔로 입장이 형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특히 동랭크의 던전은 절대로 입장할 수 없으며 반드시 자신보다 한두 단계 낮은 던전에, 그것도 특수 허가를 받아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F랭크의 헌터는 F랭크의 던전에 홀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
다만, 어디서나 예외는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
1. A랭크의 헌터이며 3년 이상의 경력자일 경우.
2. 태평양 중심부에 위치한 ‘헬 게이트’ 내의 탐험에서 생환에 성공한 헌터일 경우.
3.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일 경우.
위의 경우에 하나라도 해당이 된다면 동급의 던전에 솔로 입장이 가능했다.
“(그래도 다행인 게, 이번 던전은 ‘대형’이라 다른 지망생들과 함께 공략할 예정이거든. 총 여섯 팀이 더 오기로 했으니까 입구컷 당할 일은 없을 거다. 운 좋은 줄 알아.)”
“(······.)”
그러나.
첼레스테는 사전 조사를 꼼꼼하게 하는 편이었고, 당연히도 솔로잉 입장 제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국제 헌터 연맹 공식 홈페이지에 가면 원하는 헌터를 검색하여 ‘정보 공개’가 되어있을 경우 신상을 열람할 수 있었는데, 그녀는 유서담의 미리 조사해본 참이었다.
[F랭크 헌터 유서담]
[해당 헌터는 SSS랭크의 던전까지의 솔로 입장이 허가되어있습니다.]
즉, 서담에게는 현존하는 가장 끔찍하고 난해한 던전마저도 혼자서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 그 말은 전 세계에 몇 명 가지고 있지 않은 ‘던전 프리패스’의 소유권자라는 뜻이 되겠다.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하긴 했다.
유서담은 F랭크인데, 어떻게 던전 프리패스권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무척이나 궁금해졌지만, 서담이 그에 대한 설명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으므로 굳이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여기 등장하는 몬스터로는······. 스프링 울프, 갈고리 킬러, 로프레이지 등등인가.)”
던전이 발생하면 미리 탐사형 드론을 보내 초입부를 파악하여 미리 정보를 브리핑하는 건 이미 10년도 더 전부터 시행되었다.
“(아마 네 데뷔전은 UTV 등에서 생중계가 될 거야. 알고는 있지?)”
C랭크 던전 오동나무의 갈림길에는 총 7명의 선임 헌터와 7명의 헌터 지망생이 참여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대형 길드에 속해있었으며 아직 데뷔하기도 전부터 이름이 인터넷에 꽤나 알려진 놈들이었다. 이렇듯 주목받는 데뷔전의 경우 여러 플랫폼에서 방송을 생중계하고는 했는데, 이런 곳에서 점수를 한 번에 따놓아야 한다고 서담이 말했다.
“(다른 데뷔전의 경우에는 선임 헌터 한두 명이 열명 가량의 지망생을 데리고서, 영상을 기록해두는 것으로 데뷔전을 치르거든. 그래서 걔들한테는 사실상 몸값을 올릴 기회가 거의 없어. 그런 놈들 영상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솔직히 귀찮잖아?)”
하지만 첼레스테처럼 슈퍼 루키들의 데뷔전은 차원이 다르다. 무려, 방송을 통해 수많은 네티즌 앞에서 투명하게 노출이 되니까.
“(이게 다 너네 몸값 올리려고 벌이는 짓이거든.)”
같은 랭크의 능력자라도 누구는 수천만 달러의 몸값을 받고 계약하고, 누구는 월급 간신히 받으면서 입에 풀칠을 한다. 그러한 몸값을 최초로 정하는 무대가 바로 데뷔전. 대전쟁 이후, 모든 게 안정화된 시대에서 헌터로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무대였다.
“(여기서 네가 눈에 띄기 위해서는, 다른 지망생들과 차별되는 무언가를 보여줘야 돼.)”
서담은 익숙한 듯, 데뷔전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법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마치 수능 일주일 전 기출 문제를 짚어주는 족집게 강사처럼. 서담의 말에 첼레스테는 저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생도를 많이 인도해보신 건가요?)”
“(외국에서 그랬지. 음, 미카엘론이라고 아냐? 걔랑 하지성이랑 토셉이랑······.)”
“(네, 네에?!)”
유명한 이름이 서담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자 첼레스테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경악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S랭크로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슈퍼 스타급의 헌터였기 때문이다.
“(그땐 짐꾼 필요해서 데리고 다니던 거였는데, 그게 어쩌다 보니 데뷔전이라는 형태로 바뀌게 됐더라고.)”
다른 헌터들이 사냥하는 법을 가르칠 때, 서담은 그들에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다. 애초부터 재능이 있던 그들은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았고, 자기 스스로 유명해졌을 뿐이다.
당연하지만 그들은 이제 서담보다 더 강하고 뛰어나다. 어떤 무기를 들어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어쩐지 자신과 함께했다가 이제는 멀어진 이들을 떠올리며 서담음 피식 웃었다.
“(어지간한 D랭크는 너 혼자 잡을 수 없어. 하지만 우선··· 스프링 울프부터 볼까. 얘는 패턴이 존나 단순하거든. 네가 서 있던 자리를 향해서 정확히 돌진하면서 네 개의 팔을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할퀴는 공격을 하는데, 돌진이라고 해서 옆으로 피해봐야 반격이 불가능해. 차라리 뒷걸음질을 쳐.)”
“(돌진인데 뒷걸음질을 치나요?)”
“(맞아. 스프링 울프가 특이한 게, 한 번 정한 목적지까지 도달하면 재차 점프하기까지 딜레이가 있거든. 그래서······.)”
심지어 거기에 더해 서담은 자신이 직접 목검을 들고 괴물들의 패턴을 시연해주기도 했다. 그뿐이랴, 탐사 드론이 채 발견하지 못한 몬스터까지도 예상하여 그들의 특징을 알려주기도 했으며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상당히 독특한 공략법을 가르쳐주었다.
살면서 싸우는 방법을 숱하게 배워왔던 첼레스테다. 엘리트 중의 초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그녀였기에 ‘정석’이 뇌리에 단단히 틀어박혀 있었다.
하지만, 서담의 방식은 달랐다. 굳이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야매’였다.
“(얘가 병신이라 바닥에 자빠지면 못 보거든? 그때 가랑이를 걷어차라고.)”
“(아, 아하······.)”
보통의 헌터는 알 필요가 없는, 아주 사소한 것들.
그러나 F랭크의 헌터로서 살아남기 위해, 알 수밖에 없는 것들.
초능력 하나 없이 덜떨어진 인간의 신체 능력으로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살아남고 또 살아남기 위해 죽음과 부딪치며, 그렇게 필사적으로 살아온 베테랑 헌터의 정수.
여태 첼레스테는 유서담에게 배울 것이 검술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유서담의 검술은 그가 가진 것 중 아주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가 가진 진정한 보석은··· 바로 헌터로서 살아오며 겪은 그 무수히 많은 경험담이었다.
*
스승 된 입장에서 말하자면, 첼레스테는 아주 훌륭한 제자였다.
말 잘 듣지, 토 안 달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지.
뭐, 사실 내가 스승 짓거리를 할 정도로 대단한 헌터도 아니다만 그래도 내가 가르친 꼬맹이가 쭉쭉 잘 배워서 성장하는 걸 보니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의외로 나 선생 체질인가?
“(긴장되냐?)”
저녁 6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하는 시간, 나와 첼레스테는 일자리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첼레스테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피식 웃었다.
“(원래 처음엔 다 그래.)”
던전이 발생한 위치는 의정부 근처의 국립공원이었는데, 벌써부터 검은색 차량과 카메라 및 구경꾼들이 수두룩했다.
새삼 느끼는 건데, 요즘 것들은 조심성이 없다. 던전 제압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주변 일대가 모두 ‘이계화’ 되어 오염될 텐데, 무섭지도 않나?
현장에 7인의 선임 헌터와 7인의 지망생이 모이자 미리 UTV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 중이던 어떤 리포터가 우리들을 한곳에 모았다. 원래 나는 이런 진행에 따르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첼레스테의 얼굴 좀 알리겠답시고 온 것이니 잠자코 모였다.
“하하.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들이 모두 모였군요. 지망생 여러분들의 각오가 담긴 한마디씩 들어봐야겠죠?”
예상컨대, 저 리포터는 던전에 안 따라 들어온다. 애초에 현장에서 저렇게 나불대는 사람은 짜증나서 헌터에게 먼저 죽을 테니까.
“와우, 첼레스테 양은 정말 듣던 대로 정말 예쁘시군요. 혹시 SNS 계정 있으십니까? 팔로우를 하고 싶군요!”
아무래도 지망생의 SNS를 홍보해주려는 듯 싶었다. 특히 첼레스테의 SNS라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터. 리포터의 노련함이 드러나는 부분이었으나.
“(아뇨.)”
“헉, 저로는 안 되는군요. 죄송합니다!”
아마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쯤 리포터가 진행하는 방송의 채팅창에는 ‘ㅋㅋㅋ’따위가 올라오고 있지 않을까 싶다. 첼레스테는 살짝 당황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저 SNS계정이 없어서요······.)”
“네에? 정말입니까? 아니, 요즘 세상에 10대와 20대는 SNS 없으면 간첩 아닙니까?”
나도 없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옆에 가만히 서 있다가 스플래쉬 데미지에 타격을 입고 말았다.
그 이후로도 리포터는 한참이나 첼레스테를 붙들고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무리도 여기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압도적으로 뛰어난 비쥬얼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던 모양.
이윽고 첼레스테가 눈에 띄게 지치자 리포터는 다른 지망생에게 화살을 돌렸고, 그 사이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로스트 데이, 푸른 물방울, 레드 썬플라워 등등···.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놈들이 모였다.
그러다, 문득 어떤 문양을 보고서 나는 표정을 와락 구겼다.
‘동각제약회사’
어쩌면 로스트 데이 이상으로 나와 지독한 악연이 있는 저 회사가 이곳에 자신들의 차량을 끌고서 떡하니 와있는 것이다. 로스트 데이의 자회사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지만,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뭐지?
그러다 인터뷰 차례가 로스트 데이의 지망생에게 돌아가자 나도 고개를 돌렸다.
“이연준 헌터. 아마 여기서 제일 주목을 많이 받는 두 명 중 한 명일 겁니다. 본인도 알고 계시나요?”
“하하, 알고 있습니다.”
“예. 원래는 소화율 0%의 완전한 무능력자로 판정이 났었는데, 얼마 전 C랭크로의 각성에 성공했다고 들었습니다. 대체 그 비결이 뭡니까?”
뭐?
리포터의 인터뷰에 나는 미간을 좁히고서 이연준의 몸을 살펴보았다. 소화율 0%의 일반인이 C랭크로 각성했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근육과 호흡. 그리고 잔잔한 눈빛 속에 잠들어있는 광기.
저 새끼 뭐야?
“비결이랄 것도 없습니다. 로스트 데이만의 아주 특별한 훈련 방식을 거쳐, 충분한 노력을 하고 나니까 정신을 차려보니 초능력을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오오. 대단합니다. 이연준 생도께서는 일전의 ‘유서담 헌터’ 이후로 일반인들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희망이 아닙니다. 그저 누구라도 노력만 한다면 저처럼 될 수 있다는 걸 꼭 알려드리고 싶군요.”
내 이름이 왜 언급되나 했더니, 일전에 떠돌아다니던 영상의 열기가 아직 덜 식은 모양이었다. 쪽팔려서 UTV에다가 내려달라고 문의는 했는데, 이미 의미는 없을 거란 말에 포기한 참이었다. 어차피 몇 개월 안에 잠잠해지기는 하겠다만······.
“역시 겸손하시군요. 여기서 지망생분들의 인터뷰로 끝내면 아쉽겠죠?”
아닌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도 사방에서 “네!!”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호응에 힘 입어, 리포터가 바로 옆으로 마이크를 돌렸다.
“이 자리를 빛내주시는 우리 S랭크의 초능력자, 장현석 헌터의 한 말씀도 듣고 싶군요!”
그러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꺄아악.
오빠 나 죽어.
날 가져요 형.
별 지랄들을 다 한다.
S랭크의 초능력자, 장현석. 로스트 데이 내에서 이미지를 팍팍 밀어줘서 그런지 팬층이 상당히 두터운 것으로 보였다. 하긴, 어느 길드에서라도 S랭크의 초능력자가 있다면 얼굴 마담으로 써먹을 것이다.
“어찌 제가 혼자 이 자리를 빛내겠습니까. 이곳에 모인 모든 헌터분들 또한 대단한 분들이고, 여러분을 위해 전장에서 싸워주시는 분들입니다.”
요새 헌터라는 직업은 사실 전사가 아니라, 연예인에 가깝지 않나 싶다. 내 기억상 저놈 예전에는 말더듬이였는데,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건지 이제는 아주 청산유수가 다 됐다.
장현석은 인터뷰를 하는 내내 나를 힐끗거렸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윽고, 짧은 인터뷰가 모두 끝났다.
슬슬 시간이 되었다. 던전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그럼, 헌터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예상대로 메인 리포터가 빠지면서 E랭크의 초능력을 각성한 카메라맨 3명이 따라붙었다. 아무래도 높으신 분들이 볼 예정인 영상인데, 제대로 된 카메라로 촬영을 할 예정인 모양이었다. 그 외에도 각자의 가슴팍에는 HTC(Hunting Cam)이 달려있어 개인 시점으로도 영상이 촬영될 예정이었으며, 오토로 조종되는 일곱 대의 드론까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선임 헌터들은 여유 가득한 표정으로, 지망생들은 긴장한 얼굴로.
한 명씩, 한 명씩 차례대로 대문짝만한 검은색의 게이트 내로 진입하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이연준까지 던전에 들어서는 순간.
갑작스레.
내 눈앞에 무수히 많은 메세지가 출력되었다.
[긴급 상황!]
[특정 세계관에서 강력한 클리셰가 발생해, 어떤 주인공의 ‘프롤로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근 세계관에 이미 다른 주인공이 존재합니다.]
[만약 주인공이 다른 주인공과 만나게 될 경우, 클리셰가 충돌하여 ‘주인공 상호불가침’이 깨질 수도 있으며 해당 세계가 곧바로 ‘에필로그’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뭐? 잠깐.”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에필로그라니. 그건 설마······.
[주인공이 억지로 이야기의 ‘완결’을 볼 경우, 세계가 꺼집니다.]
시발.
지금 눈앞의 C랭크의 던전이 문제가 아니었다.
고작해야 나 없이도 잘 굴러가는 던전을 들어가느냐 마느냐 고민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도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어떤 세계가 멸망하기 직전이라는 소리였으니까.
<이하, 헌터 유서담에게 긴급 의뢰를 제안합니다!>
<긴급 의뢰를 완수할 경우, 주인공의 재능 및 스킬을 추가로 1개 더 가져올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해시 태그를 출력합니다.>
#약빨로_강해진_S급_헌터
#퓨전 #약빰 #사이다 #개그 #폭풍성장
<의뢰를 수락하시겠습니까?>
눈앞에 뜬 해시 태그를 보고서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무나도 뻔하고, 알 것 같은 해시 태그의 나열.
방금 이연준이 사라진 던전 게이트를 힐끗 쳐다본 나는, 문득 어떠한 확신에 사로잡혔고.
본능적으로 의뢰를 수락하고 말았다.
“······의뢰를 받겠다.”
[주인공 ‘이연준’의 세계, 눈 덮인 오동나무의 갈림길로 이동합니다.]
[10···9···8···.]
< 지망생들의 데뷔전(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