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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9화 (9/251)

< 지망생들의 데뷔전(3) >

모든 헌터 지망생들은 반드시 ‘데뷔전’이라는 절차를 거쳐야만 프로 헌터가 될 수 있다.

말이 데뷔전이지, 사실상 그저 프로 헌터 한 명과 함께 F~C랭크의 이상 사태를 해결하고 자격증을 얻는 게 고작이나 데뷔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 빠른 랭크 상승 및 좋은 길드의 가입에도 상당히 긍정적이었기에 여러모로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데뷔전은 보통 적게는 둘에서 많게는 넷 정도로 치러지며, 조용히 헌터끼리 갔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몇몇 헌터 지망생들은 달랐다.

프로 헌터가 되기 전부터 주목받는 이들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

첼레스테 또한 주목받는 유망주 중 한 명이었다. 열일곱의 나이에 D랭크의 강체 능력자이며, 동시에 SS랭크의 헌터 살바토레 코스탄티니의 장녀인 데다가 거기에 심지어 그녀가 굉장한 미인이라는 점이 한몫했다.

언제나 멍하니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그 푸른색 눈동자에, 항상 뒤로 말총머리로 땋아서 내린 금색의 찬란한 머리카락. 남녀노소 누구라도 그녀를 한번 보면 그대로 시선이 빼앗겨버릴 정도였으니 사람들이 주목할 만도 했다.

훌륭한 후임을 인도할 경우, 그 선임 역시 좋은 평가를 받기에 금강 체육관에는 첼레스테의 데뷔전을 자신들의 손으로 치르고 싶어 하는 프로 헌터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첼레스테 코스탄티니가 헌터 협회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으로 “나는 귀국하지 않고, 한국에서 데뷔전을 치르겠다.”라고 말해버린 탓이었다.

이태리에서 찾아온 자도 있었고, 현역 A랭크의 헌터도 있었으며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알법한 유명 길드의 헌터들이 몰려온 적도 있었기에 김관장은 난데없이 그들을 상대하며 식은땀을 빼야만 했다.

그러나 첼레스테는 그들의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얌전한 인상을 가진 채로 첼레스테는 “배울 점이 없는 헌터와는 가지 않겠다.”라고 독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것. 얌전할 뿐이지, 소심한 것은 아니라는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는  헌터 지망생들은 반드시 ‘데뷔전’이라는 절차를 거쳐야만 프로 헌터가 될 수 있다.

“하긴, 아버지가 SS랭크의 헌터인데 그럴만 하지.”

“그럼 아빠랑 같이 갈 것이지 왜 한국에서 저런대?”

“듣자 하니 아버지가 저 아이보고 알아서 선임 헌터를 구하라고 했대.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라고 인터뷰에서 그러던데.”

금강 체육관에는 인맥 없는 헌터 지망생들이 많았는데, 첼레스테 덕분에 프로 헌터들과 눈도장을 찍을 수 있어서 여러모로 좋은 점이 있었다. 게다가 심지어 몇몇 지망생은 첼레스테를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프로 헌터의 눈에 잘 들어서 훌륭한 헌터와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으니 이 또한 긍정적인 효과이리라.

“(허. 첼레스테, 기사까지 났수다.)”

김관장은 관장실 구석에 멍하니 앉아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보는 첼레스테에게 뉴스를 가리켰다.

-첼레스테, 이탈리아보다 한국의 헌터 문화가 더 마음에 들다!

-코스탄티니 가문의 장녀, 이종수 헌터에게 “배울 게 없다.” 발언

-그녀가 한국에 반한 이유는?

···등등. 대부분은 쓸데없는 기사였다. 아무래도 지구상에 37명밖에 없는 SS랭크 헌터의 장녀의 데뷔이다 보니 언론도 굉장히 떠들썩한 모양.

김관장의 말에 그녀는 가만히 TV를 쳐다보더니 다시 스마트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가요.)”

“(언론에 별 관심은 없어 보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가 뭐만 하면 저렇게 떠들어댔거든요. 이번에도 똑같아요.)”

하긴. 스타의 자식인데 이런 게 익숙할 법도 했다.

문득 김관장은 저런 어마어마한 거물의 딸이 자신의 이런 초라한 체육관의 관장실에 앉아있는 게 퍽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게 전부 유서담의 덕택이란 말이지······.’

애초에 김관장이 살바토레에게 강체의 컨트롤을 가르치게 된 계기도, 유서담의 덕이 한몫했다. 당시의 유서담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헌팅을 하며, 수많은 헌터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고 살바토레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당시 자신의 성취도가 막혀 끙끙대는 살바토레를 보며 한국에 강체의 컨트롤으로 유명한 헌터랍시고 유서담이 자신을 소개해버렸고, 그 인연이 지금 이렇게까지 이어져 온 것.

다만, 첼레스테는 도무지 금강 체육관에 관심이 없어서 적당히 시간만 떼우다가 돌아가 버릴 줄 알았는데 석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녀는 도무지 돌아갈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아니, 심지어는 데뷔전을 한국에서 치르겠다니 말 다 했다.

‘게다가 저 꼬맹이······. 계속 유서담의 영상만 돌려보고 있구먼.’

며칠 전, 세계적인 동영상 업로트 채널 유티비(UTV)에 하나의 영상이 올라오게 된다.

그것은 F랭크의 헌터가 B랭크의 폭주 능력자를 압도적으로 사살해버리는 영상으로서, 사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헌터들의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영상이었다.

다만, 몬스터와의 대전쟁 이후로 30년이 흐른 지금.

헌터는 초인, 즉 선택받은 초능력자만이 할 수 있는 일종의 영웅 같은 직업이었고 무능력자들은 바라볼 수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떡하니 등장한 무능력자가 B랭크의 파워를 보유한 초능력자를 때려잡은 것!

해당 영상은 단 며칠 만에 3천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어마어마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게다가 여타의 헌터들은 영상 속에서 번쩍번쩍 광택이 나는 슈트를 입고 등장하는 데에 비해, 이번 영상 속 주인공은 후드티에 반바지를 대충 입은 복장이라는 점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너무나도 편안한 복장이지 않은가?

-Si130: 취미로 헌터를 때려잡는 일반인이다 (좋아요: 11237개 / 싫어요: 973개)

-4Pa이온: 컨트롤로 초능력자 조져버리는 킹반인 ㄷㄷ (좋아요: 6712개 / 싫어요: 736개)

-Millo: 05:32 와 권총 반동으로 펀치 막는거 실화냐? (좋아요: 7691개 / 싫어요: 379개)

헌터가 아닌 일반인들도 안다. 헌터들이 사용하는 권총의 위력이 몬스터나 초인을 상대로 얼마나 미약한지. 그것은 그저 견제용에 불과했고, 실전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는데 초능력자도 아닌 일반 무능력자가 그것을 마치 방패처럼 다룬 것이다

그의 전투는 거의 예술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솔직히,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완벽하고 정교하게 짜여진 전투 스타일이었다. 댓글에서도 짜고 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돌 정도였는데, 폭주 능력자를 상대로 어떻게 합을 미리 맞추겠는가? 당연히 그 댓글은 묻혀버렸다.

지금도 영상의 조회수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는데, 그 원인 중 한 명으로서 첼레스테도 힘을 가담하고 있었다. 쉬지않고 계속해서 영상을 돌려보고 있는 탓.

살면서 이런 검술을 본 적이나 있던가. 첼레스테는 코스탄티니 가문에서 무수히 많은 검술 사범을 초청하였고 대괴수전 검술을 배웠으나, 그 어떤 검술보다도 서담의 것은 특이했으며 또 아름다웠다.

이제는 몇 분 몇 초에 무슨 동작이 나오는지까지 머릿속으로 그려질 정도였다.

뚝.

스마트폰을 내려놓고서 첼레스테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상은 실컷 보았으니, 이제는 실전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바로 서담의 검을 따라해보는 것.

그와의 대련은 몇 주간 여러 번 나누어봤지만, 지금껏 서담은 자신에게 저런 검술을 펼친 적이 없었다.

즉, 여태까지 그는 자신을 상대하면서 봐주고 있었다는 의미.

실상 그 사이에 서담 또한 새로운 스킬을 얻은 것이었지만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첼레스테는 저 혼자 착각하고서 목검을 들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련을 신청한 것이었는데, 자신의 수준이 한참 미달이라 배울 수가 없다니.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이런 적이 있던가?

없다.

이건 첼레스테의 앞을 처음으로 가로막는 벽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직감했다.

이 벽을 뚫고 나가면 자신의 성취가 한층 더 올라갈 것이라는 사실을.

첼레스테는 머릿속으로 영상 속 서담의 검을 떠올리며, 목검을 휘둘렀다.

마치 꽃을 그리는 것만 같은, 떨어지는 폭포를 표현하는 것만 같은, 추적추적 쏟아지는 소나기를 표현한 것만 같은, 그런 그림을 그리는 듯한 서담의 검을 상상하며.

*

139.

유서담이 받은 번호표였다.

[띵동! 129번 헌터께서는 4번 창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시에는 에테르 파워를 이용해서 쌓은 무려 130층짜리의 고층 빌딩이 존재했는데, 바로 헌터 협회 대한민국 지부의 건물이었다. 다양한 이유로 헌터들이 이곳을 찾고는 했는데 서담이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길드 등록’ 때문이었다.

헌터는 혼자서 활동을 할 수 없다. 반드시 길드에 소속되어야만 했는데, F랭크의 무능력자 헌터는 사실상 멸종이라고 봐도 좋았기에 그 어떤 길드에서도 퓨어 헌터를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다. 서담이 필사적으로 로스트 데이에 남으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포상금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우리나라의 헌터관련법이 엉성한 점을 이용했다. 바로, 1인 길드로 대충 등록만 해둬도 활동에 제약이 없다는 점. 일종의 개인 사업자 등록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는 F랭크의 헌터라서 ‘솔로 헌팅’은 거의 불가능했기에 1인 길드를 만들 생각은 없었으나, 얼마 전 국방 헌터 사령부에서 연락이 오더니 “유서담 헌터께서 길드가 존재하지 않아 포상금 지불에 문제가 있어서요···.”라는 말을 듣는 바람에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다.

B랭크 폭주 능력자 사태 제압 정도면 거의 500만원 정도는 공돈으로 받을 텐데, 그걸 놓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보고 선임 헌터를 해달라고?)”

끄덕끄덕.

[띵동! 131번 헌터께서는 9번 창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서담은 옆자리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첼레스테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그 멍한 눈동자가 오늘따라 또렷하다.

“(곧 데뷔전이라고 했던가······.)”

가을이 되면 신참 헌터들의 데뷔전이 활발해지는 시기였다. 헌터 아카데미의 졸업이 이맘때쯤이기도 해서, 한꺼번에 데뷔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쳐도 첼레스테 쯤 되는 지망생이라면 여기저기서 함께하자고 할 텐데, 서담은 왜 굳이 그녀가 자신한테 왔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멍하니 고민을 하고있는데 첼레스테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무얼 기다리시는 건가요?)”

“(뭘 기다리긴. 나 139번이잖아. 내 차례 기다리지.)”

대답을 해줬음에도 그녀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얘 은행도 안 가봤나? 서담이 그런 생각을 하자, 첼레스테는 조금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아···. 저는 아버지랑 함께 가면 직원들이 VIP실로 데려갔었거든요···.)”

“······.”

하긴. 총질 생활 15년 차에 접어든 주제에 들어갈 길드가 없어 1인 길드나 만드는 서담의 신세가 조금 이상한 편이긴 했다.

“(나는 쥐뿔도 없는 헌터라서 대기 순번 기다려야돼.)”

그러자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쪽을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첼레스테가 워낙 눈에 띄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띵동! 135번 헌터께서는 7번 창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띵동! 136번······.]

[띵동! 137···.]

[띵동! 139번 헌터께서는 3번 창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그의 차례가 되었고, 번호표를 들고 일어서려는데 누군가가 서담의 앞을 가로막았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저 남자 로스트 데이의 그분 맞지?”

“응. S랭크의 장현석.”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서담보다 살짝 큰 키에 잘생긴 얼굴. 어깨에 박혀있는 로스트 데이의 엠블럼까지. S랭크의 초능력자 장현석이 서담의 앞에 서서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오랜만이군요, 유서담 헌터.”

“어. 근데 나 지금 좀 바쁜데.”

“잠깐이면 되니까 이야기 좀 나누시겠어요?”

장현석은 꿋꿋이 길을 막아선 채로, 그와 첼레스테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말했다.

“유서담 헌터. 역시 당신이 첼레스테 코스탄티니 양의 데뷔전을 이끌어갈 선임 헌터가 맞는 모양이군요.”

아직 아닌데. 서담이 그렇게 대답하기도 전에 장현석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첼레스테 양에게는 더 좋은 환경이 필요합니다. 솔직히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F랭크의 헌터를 선임으로 두는 것보다, S랭크인 제가 더 낫다는···.”

“야.”

순간, 유서담과 눈을 마주친 장현석은 저도 모르게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것은 본능에 기인한 감각. 마치, 짐승의 앞에 선 초식동물이 된 듯한 느낌에 장현석은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내가 F랭크한테 쫄았다고?’

서담은 뻣뻣하게 굳어버린 장현석을 슬쩍 흘겨본 뒤, 그를 지나쳤다.

“둘이 알아서 하라고. 자꾸 귀찮게 하지 말고.”

그러자 첼레스테 역시 서담을 따라서 일어섰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장현석이 다급하게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외국어를 번역해주는 값비싼 통역기에서 뻣뻣한 이탈리아어가 흘러나온다.

“어차피 당신은 상관없습니다.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도록 하죠.”

장현석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가.

“첼레스테 양, 저와 함께······.”

“(싫어요.)”

다시 닫았다.

그는 묘하게 당황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예? 그러지 마시고, 다시 생각해보시지요.”

“(당신한테는 배울 게 하나도 없어요.)”

첼레스테는 검지와 엄지를 오므렸다.

“(요만큼도.)”

그사이 서담은 3번 창구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자리에 앉았는데, 어느샌가 따라붙은 첼레스테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엥? 저 친구랑 얘기 안 해봤어?”

도리도리.

첼레스테가 고개를 젓자, 서담은 “아 그러냐.”라며 대충 넘어갔다.

장현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로 유서담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능력을 사용하기만 하면 가볍게 목을 비틀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F랭크라면 응당 그럴 터인데. 어째서인지 장현석은 자신이 이길 것 같지가 않았다.

그 또한 전장에서 몇 년이나 굴러온 베테랑이었기에 본능적으로 상대의 수준을 간파할 수 있었고, 그 본능이 지금 스스로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에게 덤비지 말라고.

결국, 장현석은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그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데뷔전 때, 두고 봅시다.”

< 지망생들의 데뷔전(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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