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이 내가 된다(3) >
[10···9···8···.]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세상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가 재구성되었을 땐.
나는 어느샌가 거대한 신전의 앞에 서있었다.
“여긴···.”
[당신은 ‘바라젯타 신전’으로 찾아온 모험가가 되었습니다.]
문득, 주변에서 왁자지껄 말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자 웬 중세 유럽풍의 도시가 저 멀리까지 펼쳐졌다.
아름답게 벽돌로 포장된 거리, 생기가 넘치는 사람들, 드높이 솟은 성벽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묘한 비행정과 자그마한 익룡들. 날아다니는 양탄자 위에는 사람들이 드러누워서 바캉스를 즐기고 있었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수정구에서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친.”
완전히 새로운 세상.
다른 차원의 문명.
그것을 처음 맞닥뜨린 나의 반응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푸른 수정이 달린 말 없는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자, 마차가 지나갔다.
“길 막고 서서 뭐 하는 짓이야!”
“······.”
마차는 금방 사라졌다.
“···축제인가?”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꽃가루가 휘날리고 있었는데 무엇을 위한 축제인지는 모르겠다.
“저번에도 그렇고, 말을 어떻게 알아들은 거지?”
<스킬 ‘주인공 사냥꾼’의 효과입니다.>
<해당 스킬에는 낯선 세계의 언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의 장벽(B)’과 낯선 생태계에서 어느 정도 생존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피지컬 테라포밍(S)’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뭐?”
S랭크의 스킬이라고? 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서 입을 쩌억 벌렸다.
평생 E랭크의 초능력 하나라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대뜸 B랭크와 S랭크의 스킬을 보유 중이라는 말을 들어도 솔직히 감흥이 잘 오지 않았다.
“그나저나, 주인공은 어디에 있는 거야?”
저번에는 주인공이 바로 코앞에 있었는데 말이다.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서는, 그 운명의 흐름에 편승해야만 합니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대뜸 끊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이야기의 등장인물이되, 그 이야기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등장인물입니다.>
“오호······.”
하긴, 잘 보고있던 만화의 주인공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어서 완결이 나면 나도 어처구니가 없을 것 같긴 하다. 모든 주인공의 죽음에는 반드시 이유가 필요한 법.
이전에는 운이 좋게 토너먼트의 도전자가 되어 바로 마주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저 모험가가 된 모양이었다.
“주인공 위치 알리미 어플이나, 뭐 그런 거 없어?”
<없습니다.>
“쓸모없는 놈.”
<······.>
하는 수 없이 직접 찾으려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웬 근육질의 사내가 기이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전 수호경비대의 마킬론이다. 수상쩍은 사내가 얼쩡거린다 해서 와봤는데, 너는 모험가인가?”
“···일단은?”
“흠. 확실히 촌스러운 복장을 보니 머나먼 타지에서 왔나보군. 그러나 신전 주변에서 얼쩡거리지는 말도록 해라.”
“왜?”
“지금은 ‘신성한 황제의 의식’이 진행중이니까. 다음 대의 황제를 선출하기 위해, 수많은 전사가 지금 이 신전에서 도전을 하고있다.”
“오호라.”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내가 모험가라 잘 몰라서 묻는데, 그 의식이 뭐야?”
“허! 진짜로 촌놈이군. 제국에 살면서 황제의 의식을 모르다니!”
그러면서 그는 신전을 가리켰다. 하늘을 꿰뚫을 듯 드높은 신전은, 마치 축구 경기장을 연상케 했다.
“저 안에 ‘성검’이 꽂혀있다. 그리고 ‘성검의 수호자’가 중앙에 서서, 그것을 지키고 있지.”
“성검···?”
“그래. 성검 바라젯타. 그것을 뽑는 자가 케빌던 제국의 황제가 될 수 있지!”
오.
그건 좀 신박하다.
내가 아는 황제라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선출방식이었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귀족, 노예, 평민, 상인? 남자, 여자, 노인, 유아? 아무나 좋다. 와서 수호자를 쓰러뜨리기만 하면!”
마킬론은 손가락으로 이 성 전체를 가리켰다.
“이 도시를 포함하여, 세상을 거머쥘 수 있다.”
*
즉시, 나는 ‘도전자’가 되었다.
수호자의 인정을 받기 위한 의식은 현 황제가 황제를 그만둘 때만 발생하는 이벤트였는데, 덕분에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전사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검을 뽑는 자, 황제가 될지어니!
성검 바라젯타는 천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나타나 자격이 있는 자의 손에 들어가 그에게 무적의 힘을 부여하여 황제로 만들어주었고 그 역사는 지금까지 대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바라젯타가 가진 대표적인 능력 중 하나는 그 어떤 자라도, 그 누구라도. 검을 쥘 수만 있다면, 그 사람에게 쏙 걸맞는 검의 형태로 변환되어 최고의 검술을 부여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의 정체는 알 수 없었으나 내 군침을 돌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저 성검은 뭘 잘못했는데?”
<과도한 ‘빙의’입니다.>
<해당 주인공은 역대 황제로 선출된 자의 몸을 빌려서 자신이 독차지하고서, 죽을 때까지 사용하다가 질리면 버리는 행위를 반복해왔습니다.>
<현재는 전대 황제가 노화하여 모든 능력을 잃은 채라 성검 역시 능력치가 상당히 봉인된 채입니다.>
“오호라······. 봉인돼서 40레벨인가?”
그것만해도 어마어마하긴 하네.
요 며칠 지켜본 결과, 생각보다 도전자가 많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수호자는 도전에 실패한 도전자를 가차없이 죽여버렸기 때문.
“끄아악, 제, 제발 살···!”
퍼걱!
어떤 도전자의 목이 끊어져서 날아간다.
기이잉, 철컥!
직후 제자리로 돌아가는 수호자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에잉, 이번 도전자는 무슨 깡으로 온 거야?”
“그러게나 말이다. 자살하려면 딴 데 가서 하던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나 싶었더니.”
수호자의 키는 거의 5m에 육박했으며, 은색의 갑주를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는 ‘골렘’의 일종이었는데, 핵이 갑주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사실상 무력화를 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주 뛰어난 마법사와 뛰어난 전사의 콤비가 이루어지면 죽이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전은 반드시 혼자 이루어져야만 했기에 불가능.
마법사는 일대일에 약하고, 전사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기에 수호자의 갑주를 벗길 수 없다.
‘마법사라······.’
이 세상에는 마법이라는 것도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곳에 며칠간 머무르면서 관람석(놀랍게도 10만 석 이상이 준비되어 있다)에 앉아 도전자들을 구경하였는데, 하나같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실력자였다.
헌터 랭크로 굳이 따지자면 평균적으로 B에서 A의 실력자들. 아주 간혹가다 S랭크에 맞먹는 전사가 오기도 했으나 드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막 엄청나게 뛰어난 능력치를 지닌 건 아니었다. 당장 지구의 S랭크 능력자들이 차라리 더 강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능력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바로 ‘컨트롤’이었다. 강체와 비슷한 능력을 사용하는 전사들은 자신의 한계를 극한까지 다룰 줄 알았으며, 또한 어떤 무기든간에 현대의 지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다루었다.
검을 휘두르면 꽃이 휘날리고, 단풍이 지고, 물보라가 친다.
상상이나 묘사가 아니다.
실제로 그런 환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현대 지구의 검술은 투박하기 그지없어, 그저 최적의 루트로 붕붕 휘두를 뿐이었는데 저들은 마치 춤이라도 추듯 훨훨 나비처럼 날아다니며 유연하게 검을 휘두르고 거기에 환상마저도 보인다.
또한 마법은 어떠한가.
마치 지구에는 존재할 수 없다는 ‘다중능력자’라도 되는 마냥, 불이나 물 그리고 얼음과 바람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었으며 마력의 컨트롤을 극한까지 하여 에테르 실드따위 없이도 보호막을 만들어 신체를 보호하는가 하면 대상에게 마킹을 하여 디버프나 홀딩마저도 혼자서 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만약 지구였다면 최소 셋에서 다섯의 초능력자가 가능한 일을 마법사는 혼자서 해내는 것이다.
“진짜로 미쳤는데.”
여태까지 지구에서 보아왔던 모든 헌팅이 그저 병신처럼만 느껴졌다. 지구인들은 이세계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무식하게 휘두를 줄만 알았지 전혀 컨트롤을 할 줄 몰랐다.
마법.
정말 배우고 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이 세계의 언어를 이해할 수는 있으나, 글자를 읽을 수는 없었다. 또한 이곳에서 얻은 물건을 노획해서 돌아가는 건 현재까지는 불가능. 즉 마법서를 훔칠 수도 없다.
게다가 수소문에 수소문을 해보니, 저 정도의 마법사가 되려면 머리 좋은 사람이 최소 20~30년을 수련해야만 한다니 현재의 나로서는 솔직히 힘들다고 봐야했다.
애초에 남은 수명이 1년도 되지 않는 상황에 여기서 죽치고 눌러앉아 마법을 배울 수도 없었고.
‘그래도 기회는 많아.’
조급해하지 말자.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관은 충분히 차고 넘쳤다. 나는 언제든 그곳으로 향할 수 있고, 운이 좋다면 마법을 빼앗을 수도 있다. 마법의 장점을 알아버렸으니, 나는 이것을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주인공을 죽이는 데에만 집중해야겠지.’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저격총을 갈겨 성검을 쏴버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충격의 여파 때문인지 관중석과 결투장의 사이에는 겹겹이 반투명한 마력의 보호막이 세워져 있었다. 아마도 내 허접한 장비로는 꿰뚫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문제없다.
일주일.
내가 도전자들과 수호자의 결투를 지켜본 시간.
지구의 F랭크 사냥꾼은 이제 충분히 준비를 끝냈다.
*
와아아아!!
유서담이 결투장에 들어서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들여왔다. 황제 또한 앉아서 무표정한 얼굴로 도전자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유서담은 그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저 남자 누구래?”
“몰라. 모험가라는데.”
“복장이 특이하군.”
사람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하자, 수호자가 나와 도전자를 맞이했다.
쿵! 쿵!
철컥.
수호자의 갑옷이 부딪치는 소리와 서담이 소지한 총기의 격철 소리가 동시에 쇠의 화음을 만들어냈다. 쇠붙이를 좋아하는 서담로서는 꽤 기분 좋은 소리다.
척! 수호자가 거대한 대검을 서게 겨누었다.
무식한 몸체, 어마어마한 파괴력. 그리고 재빠른 몸놀림까지 보유한 괴물과도 같은 존재. 그것을 마주하며, 유서담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물었다.
“수호자. 너를 쓰러뜨려야만 네 뒤에 꽂혀있는 성검을 뽑을 수 있나?”
-그렇다.
“너를 쓰러뜨리지 않고 성검을 뽑으려 하면 어떻게 되지?”
-뽑히지 않는다.
“흐음······.”
간단한 질의응답은 도전자가 내세울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자격. 지금껏 이딴 질문을 내뱉은 자는 없었기에 사방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뭐 그런 질문을 하냐!”
“좀 더 명예로운···!”
그러나 그들의 야유를 듣는 시늉도 하지 않은 채, 서담이 먼저 수호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철커덕!
샷건이 장전되며, 동시에 수호자와의 거리를 좁힌 뒤 서담이 놈의 사타구니를 향해 한 방 날렸다.
콰앙!! 작은 충격파와 함께 그 반동으로 서담 몸에 급브레이크가 걸리며, 동시에 뒤구르기를 했다. 직후 수호자의 대검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피한 서담은 포켓에서 꺼낸 검은색 공을 굴렸다. 그것은 통, 통 튀며 수호자에게 다가가더니 순식간에 열 개의 구체로 분리되어 수호자의 몸 곳곳에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기이이잉!! 조여서 죽일 것처럼 구체가 서로의 자력에 의해 끌어당겼지만, 수호자는 아랑곳않고 그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역시, 이 정도로는 이 정도의 경직이군.’
쩌엉!!
수호자의 대검이 서담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에테르 실드가 어마어마하게 파손되었다. 분명 그 휘두르기는 매서웠지만, 서담은 검을 들지 않고서도 검술 A+랭크의 재능을 활용할 줄 알게 되었다.
상대방이 검을 휘두르는 자세, 폼, 궤적만 보아도 이미 그것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가 눈에 훤히 들어온다. 그렇다면, 자신은 바로 그 다음의 수를 준비하면 된다.
대검을 피해 옆으로 구르며 오른손을 들어 붉은 버튼을 꾹 누르자, 수호자의 몸에 부착된 구체들이 순차적으로 폭발하였다.
펑, 퍼펑!!
‘지금!’
수호자에게 경직이 걸린 틈을 타 달리려는데, 그새 폭발을 버텨낸 놈이 먼저 서담에게 돌진하였다. 그 역시도 가만히 돌진을 맞아줄 생각은 없었기에 에테르 샷건을 꺼내 놈에게 연달아 발사하였다.
뻐엉, 뻥! 어깨가 움찔대고, 허벅지에 힘이 풀리면서도 수호자는 멈추지 않았다.
허나, 골렘의 동력은 무한하지 않다. 한 번의 대결에 사용할 수 있는 한도의 체력이 있었다. 서담이 하는 일은 그 체력을 빼는 것.
샷건의 탄환을 모조리 쓴 서담은 미련 없이 그것을 바닥에 내던진 뒤 옆으로 몸을 날리며,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샥! 폭죽같은 것이 권총의 끝에서 떠나, 바닥에 명중하였고.
수호자가 그 바닥을 밟는 순간.
퍼퍼퍼펑!!
땅거죽이 뒤집히며 수호자를 뒤집어 엎었다.
“무, 무슨···!”
“저게 대체 무슨 마법이지?”
“저 남자, 대체 어느 학파의 마법사야!”
“빨리 알아 와!”
마법사들이 아주 난리가 났다.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마법이었다. 저런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진 마법을 캐스팅 없이 저렇게 난사하는 게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마법사들이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저 마법사를 우리의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마탑의 순위가 격변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당장이라도 결투장으로 뛰어들어서 남자를 끌어오고 싶었지만, 보호막에 의해 그럴 수도 없는 노릇.
“마치 이야기 속에나 나오던 배틀 메이지를 보는 듯하군···.”
서담이 마법을 신기해하는 것처럼, 마법사들 또한 과학을 보며 가슴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서담은 무아지경으로 전력으로 질주하였다. 달리면서 바닥에 콩알만한 마인을 깔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화악! 폭발의 연기를 걷어낸 수호자가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서담을 향해 달려오자, 센서에 반응한 마인이 수호자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공격하였다. 펑, 펑. 다리가 공격당하는 와중에도 놈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일반인보다 살짝 빠른 정도에 불과한 서담은 달리기에서 금방 따라잡혔다.
후웅!!
이윽고 거대한 대검이 그를 향해 내려치는 순간.
그 선명하게 보이는 궤적을 파악하여 옆으로 잽싸게 구르며, 대검의 예측 경로를 향해 푸른색의 소형 폭탄을 날렸다.
‘강자성화(强磁性化)’
닿은 물질을 아주 강력한 자석으로 만들어, 쇠와 닿는 순간 어마어마한 자력으로 달라붙게 만드는 전자기 폭탄.
파지지직!!!
수호자의 대검에 그것이 명중하자, 강철로 이루어진 바닥과 대검이 착 달라 붙어버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서 자성화 폭탄 하나를 수호자의 몸에 집어던지자 갑옷마저도 우그러들어 양팔과 양다리가 구겨졌다.
그그그긍!
강철로 이루어진 생명체이기에 가능한 상대법!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은 분명했다. 쓰러뜨리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 “저런 홀딩 마법이 존재한다니!”라며 소리치는 마법사들의 헛소리를 귀에 담으며, 서담은 성검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였다.
“무슨······.”
“저 남자 뭐 하는 짓이야?”
“수호자를 공격해도 모자랄 판에!”
“쓰러뜨리지 않으면 뽑을 수 없다는 걸 모르는 거야?”
그러나, 애초에 서담의 목적은 성검을 뽑는 게 아니었다.
수호자는 처음부터 쓰러뜨릴 생각도 없었고, 쓰러뜨릴 실력도 되지 못한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주인공을 사냥하는 것.
삐삐빅!
품에서 꺼낸 ‘E-4 콤포지트’를 성검에 설치한 뒤, 잽싸게 후면으로 굴러서 거리를 벌리자 그새 전자기장에서 벗어난 수호자가 서담이 있던 자리를 내려찍었다.
쿠궁···!
수호자가 흉흉한 눈으로 서담을 바라보았다.
“신성한 결투 중에···무슨 짓이지?”
그러나, 서담은 대답하지 않고서 스나이퍼를 꺼냈다. EK-49라는 이름이 붙은 이 총은, 장거리 저격에 특화되어 있으며 탄환 하나하나가 더럽게 비싸지만, 한 방의 파괴력이 어마무시한 괴물이다.
그것을 놈에게 천천히 겨누었지만 총에 대해 모르는 수호자는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
그래, 솔직히 막거나 맞더라도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서담은 수호자를 노리고 있던 게 아니었다.
“···!”
철컥!
수호자의 머리를 노리던 서담은, 순식간에 표적을 변경하여 성검을 향해 격발하였고.
직후, 뭔가를 느낀 황제가 잽싸게 뛰쳐나와 “당장 막아!”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펑······!!
어마어마한 폭발음과 함께.
[40레벨의 주인공을 사냥하였습니다.]
[레벨이 3단계 상승합니다.]
성검이 부서지며, 동시에 황제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 안돼에에에!!!”
그는 다름 아닌 황제··· 아니, 성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황제였다.
“당장, 당장 저놈을 잡아서 내 앞으로 끌고 와! 당장!”
황제가 끊어지는 의식의 끈을 간신히 부여잡고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자 십만의 관중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결투장의 통로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유서담은 여유롭게 고개를 들어 황제와 눈을 마주쳤다. 그 원망 어린 눈동자가 덜덜 떨리는 것과 동시에 그의 눈앞에서 ‘룰렛’이 돌아갔다.
성검의 재능과 스킬이 담긴 룰렛.
이윽고, 뜨는 메세지.
[주인공 ‘성검 바라젯타’의 스킬 ‘백색검법(S)’을 획득하였습니다.]
그에 유서담은 황제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며, 그렇게 말했다.
“스킬 잘 쓸게.”
이윽고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며 전사들이 결투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유서담은 안개처럼 홀연히 사라진 뒤였다.
< 검이 내가 된다(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