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2화 (2/251)

< 첫 번째 사냥 의뢰(1) >

“1억입니다.”

책상 위에 툭, 놓이는 통장 하나.

내 퇴직금이자 사망 보험료였다.

1억이라. 어처구니가 없다. 암으로 죽어도 저거보단 많이 주겠다.

“마스터께서 유서담 헌터의 은퇴에 유감을 표하셨습니다.”

“말로만? 그럼 돈이나 조금 더 넣어주시지 그랬습니까.”

“죄송하지만 그건 제 권한이 아닙니다.”

그래, 나도 안다. 내 가치가 1억이라서 그렇게 넣어줬다는걸.

무려 15년 동안 최전선에서 괴수와 사투를 벌여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베테랑 헌터.

그러나 초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나는 고작해야 F랭크의 헌터로서, 길드 내에서의 입지는 그저 조금 오래 사용한 일회용 젓가락이나 같은 가치였다. 헌터로서 데뷔 3년차부터 길드의 설립부터 부흥까지의 12년을 모두 함께했건만, 돌아오는 게 고작 1억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해는 간다.

나는 누구보다 노력했지만, 세상은 노력하는 자보다는 가치 있는 자를 원한다. 나는 가치가 없는 그저 젓가락이었으므로 젓가락에게 걸맞는 은퇴라고 생각은··· 한다.

지금만 봐도 1억을 건네주러 온 저 여자, 본 적도 없다. 누구누구의 부하의 부하의 부하쯤 되는 위치겠지. 뭐, 나보단 낫나.

“그럼 남은 시간 부디 잘 보내시기를.”

돌아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병실의 침대에 등을 기대었다.

“하하. 젠장.”

불치병이란다.

심장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이상한 게 났다는데, 자기들도 이게 뭔지를 도통 모르겠단다. 아마 올해를 버티기 힘들 거라는 의사의 말에도 나는 썩 무덤덤했다.

15년이라. F랭크 헌터 중에서도 최장수라지? 무능력자 헌터들의 평균 활동 시간이 1년에서 2년 남짓인 것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

이렇듯 언제 죽을지 모르는 헌터는 보험을 들기가 힘들었고, 그 역할을 길드에서 하는 형국이었는데 헌터가 사망을 할 경우 보험처럼 가족에게 돈이 돌아간다.

그런데, 나는 가족이 없다.

그래서 저 사망 보험금 비스무리한 돈이 곧 죽을 예정인 나한테 온 거다. 누가 뭐라고 불평할 사람도 없으니 꼴랑 1억이겠지. 이미 몇 년도 더 전에 죽어서 은퇴한 F랭크 헌터들의 가족에게는 최소 몇십억씩 돌아갔다는데 말이다.

조금 더 빨리 죽을 걸 그랬나?

-속보입니다. 국내 109위의 A랭크 헌터 유지원의 사망 소식에 국민들이······.

TV에서는 며칠 전 알려진 A랭크 헌터의 사망 소식에 뉴스가 활활 불타오른다. 듣기로 유지원의 가족에게는 수천억이 돌아갔다는데. 어차피 죽으면 1억이든 천억이든 전부 끝이라지만 기분이 썩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래 살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는데.

“씨발······.”

처참한 기분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전장에서 괴수에게 숨통이 끊겨, 시체조차 남지 않았더라면 이런 기분을 느낄 새도 없었을 텐데. 내가 뭐 명예를 챙기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비참한 죽음보다는 괴물에게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무어라 항의라도 해보고 싶다.

당장 길드 마스터에게 달려가 날 이따위로 내칠 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로스트 데이’의 길드 마스터는 냉혈한이었고,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조용히 침묵하다가 일을 정리할 것이다. 나는 오늘내일하는 시한부 인생. 게다가 시한부가 아니었더라도, 일반 헌터 혼자서 대기업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침대에 머리를 기대며, 한숨을 내쉰다.

“1억이라. 처음으로 큰돈 만져보네. 이걸로 내일 맛있는 거나 사 먹어야지······.”

*

퇴원까지의 절차는 어렵지 않았다.

진통제를 얼마나 챙겨 먹어라, 아프면 팔찌의 버튼을 눌러라, 죽으면 센서가 반응하여 뒤처리는 병원 측에서 알아서 해줄 것이다 등등.

30년 전 괴수의 출현으로 인해 세상이 변하면서 나처럼 죽을 둥 살 둥하는 환자를 퇴원시키는 경우는 흔하진 않지만 왕왕 있었다. 병실에는 자리가 부족했고, 굳이 죽을 위기의 헌터가 병원 밖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겠다는데 말릴 사람은 없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없어진 이야기였지만, 당시의 시스템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5층짜리 낡은 빌라. 이미 50년도 더 이전에 세워진 다 쓰러져가는 건물이 내가 사는 집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점.

“젠장······.”

반년 전부터 심장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옥죄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과격한 활동을 아예 할 수 없게 되었다. 조금만 거친 활동을 하면 쇼크가 발생하여 그대로 기절. 심장에 폭탄을 달고 산다는 말이다.

즉, 5층짜리 빌라에서도 고작 4층에 위치한 내 집에 가기 위해 나는 계단에서 수십 번도 더 쉬어야만 했다.

‘이거 원, 체력 때문에 제대로 돈 써보지도 못하겠는데.’

차라리 잘됐다. 집에 콕 박혀서, 그간 못 시켜먹은 배달 음식이나 실컷 먹어야겠다. 원래 최후의 만찬이란 건 그렇게 호화롭지 않다고 했다.

지이이잉!!

집에 간신히 도착하여 현관에 머리를 기대어 쉬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류진수: 서담]

[류진수: 퇴원했다면서]

[테일러 나인: 뭐????진짜?]

[류진수: 왜 연락 안했어]

“허. 어떻게 알았대.”

총 7명이 들어와 있는 이 단톡방은 15년 전, 모두 함께 헌터로의 길을 걷기로 약속했던 일종의 동기들이라고 보면 되겠다. 나와 그들은 같은 시기에 데뷔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모두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누구는 얼굴을 알려서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었고, 누구는 S랭크의 헌터가 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누구는 대길드의 마스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쭉쭉 앞서나갈 때 나는 여전히 F랭크의 말단 헌터에 불과했다. 처참한 기분에 이 단톡방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도움을 청해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연락이 드문드문한 사이가 되기도 했고, 이들이 로스트 데이를 흔들 수 있을 정도가 될까 싶기도 했다.

원래는 이곳에 채팅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마지막인데 한 마디 정도는 하자는 생각에 답장을 눌렀다.

[유서담: 대충 문제는 없을거래]

[테일러 나인: 이 새끼야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테일러 나인: 퇴원했으니까 간만에 한국 놀러 간다]

[테일러 나인: 집 비워놔라]

은색의 똑단발이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흐릿하게 떠올린 나는 피식 웃었다.

퇴원 소식은 어찌저찌 들은 모양이지만, 나는 내 심장에 대해서 밝히기를 꺼려했기에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도 저런식으로 어떻게든 소식을 들은 옛 동료들과 많은 헌터들이 병문안을 와줬고, 또 연락을 해준다는 점이 마지막 위안이 되었다.

병실에는 내가 곧 깔끔하게 병을 치료하고 퇴원할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이 다녀가며 선물해준 꽃다발이 쌓여있었으니까.

그래도 인간관계를 내가 허투루 쌓지는 않았구나.

결국 말하긴 해야겠지. 불치병을 숨기다 죽는 비련의 주인공 역할은 나 같은 조연이 하는 게 아니니까. 대충 핸드폰을 던져놓은 나는 입원해있는 동안 와있는 우편물을 확인했다.

대부분은 월세, 수도세, 스마트폰 요금, 사냥감 정산 등으로 매달 오는 것들이었는데 유독 눈에 띄는 게 몇 개 있었다.

‘헌터 협회 초대장? 이런 게 왜 온 거지?’

나 같은 F랭크 헌터를 대체 왜······.

그런 생각으로 우편물을 확인하자, 그제야 납득이 갔다.

최소한 10년 차 이상의 베테랑 헌터를 다양하게 초대하여 헌터 업계에 대해 토론을 하려고 했는데, 무능력자로 10년 이상 살아남은 헌터가 극히 드문 것이다. 솔직히 나를 제외하더라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라는 건 알 것 같다.

‘···이런 데 가서 썩 좋은 기억은 없었는데.’

어차피 가지도 못한다. 10년 이상 살아남은 무능력자 헌터 한 명, 곧 은퇴 당할 예정이니까. 그것을 고이 접어두고 남은 우편물을 확인하던 나는 제일 최근에 온 것들 중 새하얀 봉투를 볼 수 있었다.

굉장히 특이한 재질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맨들맨들하면서 부드러운 종이를 만져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신소재인가?’

그런데 누가 보냈는지 적혀있지가 않았다. 단지 ‘To. 유서담’이라는 담백한 글자가 예쁘게 적혀있을 뿐.

천천히 봉투를 뜯어보자 안쪽에는 달랑 종이 한 장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내 시선을 강탈하는 강렬한 문구 하나.

[수명을 원하십니까?]

아무래도 이때.

나는 귀신에 홀린 게 틀림없었다.

미쳤다고 봐도 좋다.

갑작스레 나타난 그 이상한 문구에 고개를 끄덕인 건, 그 탓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종이를 천천히 뒤집자, 다른 글귀가 보인다.

[더 오래 살고 싶으십니까?]

다시 종이를 뒤집는다.

[만약 오래 살 수 있다면, 이후에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재능도, 능력도, 힘도, 돈도, 수명도 없는 인생에 지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어쩔 건데?”

그런 심정으로 종이를 한 번 더 뒤집었고.

[만약 당신을 패배자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주인공을 직접 두 손으로 사냥하여, 재능을 차지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남의 것을 빼앗아서 내 것으로 만든다.

약육강식의 시대에나 통용됐을 법한 논리였으나, 나는 어쩐지 허탈하게 웃으며 끄덕였다.

“당연하지 씨발, 내가 앞뒤 가릴 처지냐.”

그러자.

눈앞에 반투명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당신의 잔여 수명: 10일 21시간 39분 23초]

그것은 다름 아닌 내 남은 수명.

그 홀로그램은 고작해야 10일이 내게 허락된 시간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와 계약하십시오.>

<당신에게 '주인공 사냥'의 의뢰를 맡기고 싶습니다.>

저게 진짜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전.

애초에 나는 시한부에 다 죽어가는 몸.

평소에는 믿지도 않던 사이비가 와서 희망을 불어넣었어도 그대로 홀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 첫 번째 사냥 의뢰(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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