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 협상(11)
대대장 강재석이 아무래도 스트레스에 피로까지 겹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장종국 하사는 달리 다른 말은 더하지 않고, 그때부터 분위기만 맞춰주었다.
대대장과 같은 전차에 타기가 어찌 쉽겠는가마는 그래도 강재석 중령은 그렇게 까칠하거나 권위적이거나 꼰대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자신이 아니라 조종수 이연호 병장과도 스스럼없이 농담도 하고, 같이 담배도 나눠 피우는 등 그렇게 격식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이 전쟁에 스트레스 안 받는 병사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전쟁의 승리가 이제 정말 눈에 들어오는 시점이었으니 스트레스에도 참고 또 참는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 더 중요했으니까.
“타타타타타탕!”
분위기를 맞춰주고 있던 장종국 하사가 기관총 소리에 얼른 조준경에 눈을 가지고 가니 자신과 이야기하던 강재석이 발사하는 전차장용 12.7mm 기관총이 어느 무너진 건물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몇 명의 초나라 민병이 고개를 내밀다가 다시 얼른 고개를 처박는 것이 보였다.
“대탄 한발 먹입니다.”
“그······.”
강재석이 뭐라고 하려다가 말기에 장종국 하사는 얼른 그 무너진 건물 즉 초나라 민병이 숨은 곳을 향해 대전차고폭탄 한 발을 발사했다.
그런데 그 사격이 신호인 듯 연달아 주포 발사 소리가 들렸고, 수백 명의 초나라 민병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나타나 다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래서 강재석이 짱깨들을 싫어한다고 한 것 같아 장종국 하사는 연신 주포를 발사해 초나라 민병들을 날려버렸다.
그렇게 대한민국 국군 1군단 1기갑사단 기갑수색대대가 다시 전투에 돌입했을 때 초나라 외교부장 조옥성은 고구려 부위원장 김명남이 아니라 외교국장 한태일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김명남과의 통화가 어렵게 되자 차선으로 한태일에게 전화해 통화를 했으니 한마디로 꿩 대신 닭이었으나 그는 항복에 관한 실권이 없었다.
“국장님, 국장님께서 다시 한번만 더 부위원장님과 제가 통화를 하도록 선처해주시면 정말 그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조 부장, 마음이 조급하시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래 보여서 말이오. 어떻든 부위원장님은 위원장님과 회의 중이시니 회의가 끝나면 내 말씀은 드려보겠소.”
“꼭 좀 부탁드립니다.”
“내 말씀드린다니까. 그건 그렇고 부위원장님이 제시한 두 가지 조건은 어떻게 할 것이요?”
“저희 초나라의 항복만 받아주신다면 즉각 그 두 가지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진심이오?”
“항복만 받아주시고, 다른 요구사항이 더 없으시면···.”
“하하하! 결국 그 두 가지 조건만으로 항복하겠다.”
“그것이 아니라···.”
초나라 외교부장 조옥성이 왜 그리도 김명남 부위원장을 찾는지 그 이유를 훤히 알고 있는 고구려 외교국장 한태일은 그가 이렇게 말끝을 흐리자 고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응대했다.
“그것이 아니기는 뭐가 아니요. 외교부장의 그 말만 들어도 다 알겠는데, 그리고 그 두 가지 조건으로 되겠소. 그동안 초나라가 아니 중국이 우리에게 한 짓을 생각해보면 말이요.”
“저희 중국이 아니 초나라가 예전에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 정중하게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걸 진정 몰라서 물으시오. 그리고 몰라서 묻는다면 잘 들으시오. 명과 청나라 등 그 이전의 역사는 빼고, 중국 건국 이후만 열거할 테니까.”
“귀를 열고 듣겠으니 말씀해 주십시오.”
“중국은 지난 70여 년간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을 방해하고, 또 방해했으며, 남북한을 마치 속국처럼 대했소. 그것이 중국의 가장 큰 죄요. 두 번째 죄는 우리의 고유 영토인 지금의
요동도를 불법으로 강점하고, 돌려주지 않은 죄요. 세 번째는 역사와 문화 동북공정으로 우리의 고유 영토와 역사는 물론 문화까지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강제로 편입하고, 훔쳐 간
죄요. 네 번째는···.”
고구려 외교국장 한태일이 중국이 저지른 죄라면서 열거하는 것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초나라 외교부장 조옥성은 묵묵히 들었다.
지금은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말이다.
만약 여기서 그것이 왜 중국의 죄가 되느냐고 따지고 들었다가는 낭패를 볼 가능성이 아주 컸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이 우리 남북한에 저지른 잘못을 알겠소?”
“예, 국장님. 그러니 부위원장님과 제가 통화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선처해주십시오.”
“중국의 잘못을 알았다면 됐소. 그리고 조 부장, 그 두 가지 조건으로는 부위원장님이 항복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니 혹 통화가 되더라도 달리 제시할 조건을 가지고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요.”
“달리 제시할 조건이라면···.”
“고작 지금 초나라가 사용하는 간체자를 버리고 고구려와 남북한이 사용하는 전통 한자 정체자 사용과 한국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것, 그 두 가지로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 하지 말라는
말이오.”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불민(不敏)하여 국장님께 조금만 힌트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옛 중국이 사용하던 위안화를 모두 버리고, 우리의 한화(韓貨)를 전면 통용하고 있소? 그리고 국제결제에 우리 한화를 사용하오? 소문으로는 아직 전면 통용하지도 않고, 완전히
우리 한화로 결제하지도 않는다던데.”
“아닙니다. 국장님, 지금 우리 초나라 전국 각지 은행에서 위안화를 원화로 교환하고 있으며, 수출입 모두에 원화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곧 위안화가 아니라
원화가 통용화폐가 될 것입니다.”
초나라 외교부장 조옥성의 말처럼 이때 초나라는 원화가 기존 위안화를 대체해 나가는 중이었다.
그랬으니 곧 원화가 통용화폐가 되리라는 말은 맞았다.
그리고 초나라만이 아니라 가까운 위구르는 원화가 통용화폐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으며, 홍콩은 원화와 영국 파운드화가 공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왜 즉 옛 일본은 말할 것도 없이 원화가 기존 엔화를 완전히 대체해버렸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없어진 것처럼 통화발행권도 없었다.
그러니 한국은행이 남북한과 고구려, 위구르, 홍콩은 물론 일본에 이어서 이제 곧 초나라까지의 통화발행권을 쥘 것이라고 보면 됐다.
그랬기에 고구려 외교국장 한태일이 이 말을 꺼낸 것이다.
즉 초나라의 통화발행권까지 완전히 뺏어버리려고 말이다.
“조 부장, 우리 원화가 통용화폐를 넘어 영원히 초나라의 화폐로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고, 초나라는 자체적으로 화폐 발행을 할 수 없어야 할 것이오. 이것도 알겠소?”
“우리 초나라가 자체적으로 화폐 발행을 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우리 원화가 통용화폐가 되는데, 당연한 이야기 아니요.”
“그래도 그것은···.”
“그 정도도 각오하지 않고, 감히 항복 조건을 입에 담는 것이오. 그리고 내 알기로 이건 약과요. 약과.”
“뭐가 또 있습니까? 국장님.”
“나머지는 부위원장님과 논의하시오.”
“국장님, 그러시지 마시고 조금의 힌트라도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조옥성이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지만, 한태일은 자신이 할 말은 다 했다면서 통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초나라의 통화발행권 박탈은 조옥성에게 충격이었다.
하나 고구려로서는 어차피 원화를 한국은행에서 발행해 초나라에 공급할 것이기에 초나라 자체에서의 발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원화 즉 화폐 발행에 더는 모든 비용도 초나라에 부담시킬 것이니 더 안될 말이었다.
어떻든 이렇게 지금 초나라가 사용하는 간체자를 버리고 고구려와 남북한이 사용하는 전통 한자 정체자 사용과 한국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것, 그리고 자체 통화발행권 박탈이라는 항복
조건 3가지 우선 초나라에 제시됐다.
하나 이 조건이 끝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초나라와의 항복 조건에 관한 권한을 가진 고구려 부위원장 김명남은 민재인 위원장과 그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물론 나와 대한민국 이세연 대통령도 원하는 항복 조건을 이미 고구려에 전달한 상태였고 말이다.
***
국군 1군단 저격대대 서한국 상사는 여전히 강소성 남통시 통주구 동사진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기존에 싸우던 5층 건물 옥상에서 기어이 200번째 저격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다시 장소를 옮겨 5명을 더 저격했으니 그가 1차 한중전쟁과 한일전쟁, 이 2차 한중전쟁에서 저격한 적군은 모두 205명이었다.
“여긴 앞에 있던 5층 건물보다 짱깨들이 많이 없는데, 다른 곳으로 가죠.”
“지금까지 몇 명이나 저격했다 그랬지?”
“총 205명입니다.”
“그 정도면 됐으니 여기서 조금만 더 쉬자. 커피 있으면 하나만 더 줘.”
“300명은 저격해야죠.”
“됐으니까 커피나 줘.”
“서 상사님이 이러시니 뭔가 이상합니다. 혹 저 놀리려고 농담하시는 것입니까?”
“놀리기는 뭘 놀려. 그리고 아무리 전쟁이라지만 사람을 205명이나 죽였다. 그럼 된 것이지 뭘 얼마나 더 죽여야 하냐.”
“사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수인 적입니다. 적! 그리고 그런 적은 씨를 말려야지. 고작 205명 죽여서 되겠습니까.”
“그럼 박 중사가 짱깨들 씨를 말려버려. 나는 커피나 마시고 있을 테니까.”
“진짜 농담이죠?”
“······.”
자신이 물었지만, 서한국 상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커피만 마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았다.
얼마 전에는 초나라군이나 민병을 한 명이라도 더 저격하자고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던 사람이 지금은 이러니 말이다.
“커피 다 마셨으면, 이상한 농담하지 마시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시죠.”
“커피 아직 덜 마셨고, 피곤하니까 여기서 좀 더 쉬자고.”
“진짜 우리 서 상사님이 오늘 왜 이러시지.”
“뭐가?”
“그걸 몰라서 되물으십니까.”
“응.”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서한국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박인철 중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한 생각이 들어서 얼른 주변을 정밀하게 관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기어이 초나라 민병을 하나 찾아내서 이렇게 말했다.
“전방 12시 방향, 거리 890m 적 민병, 69식 화전통 들었습니다.”
“빌어먹을 짱깨들은 사람이 쉬는 꼴을 못 봐. 탕!”
“하하하! 맞습니다. 짱깨들은 사람이 쉬는 꼴을 못 봅니다.”
“박 중사도 마찬가지야. 내 말 알지?”
“모릅니다. 하하하!”
적이 나타나면 서한국 상사가 달라질 거라는 불현듯 한 생각이 들어 말 그대로 적을 찾아주니 아니나 다를까 금방 돌변해서 저격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렇지.
사람이 어디 그렇게 쉽게 변하겠는가.
이제 이 전쟁도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고, 그럼 단 한 명이라도 더 저격해 300명은 못 채워도 적어도 250명은 저격해야 어디 가서 큰소리라도 치고, 그 전공으로 진급도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모르기는 뭘 몰라. 짱깨들이나 박 중사나 내가 좀 쉬는 꼴을 못 보는 것은 똑같은데.”
“저는 서 상사님이 쉬는 꼴을 못 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짱깨가 나타나는 바람에 그런 것입니다.”
“놀고 있네.”
“커피 더 드릴까요?”
“말 돌리지 말고, 이왕 이렇게 된 것 적이나 찾아.”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