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 협상(10)
북한 인민군 8군단 21기계화보병사단 기갑수색대대장 이관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대대 흑표전차들이 정찰여단의 C-22 장갑차들 앞으로 치고 나가면서 일제히 주포를 발사했다.
그러자 정찰여단 1대대장 이상철 상좌가 아닌 여단장 방완수는 전장을 한번 살펴본 다음 싸우는 부하들을 돌려서 황하로 계속 진격하라고 명령했다.
이미 원정군 사령관 박수일에게는 상황을 전파했고, 21기계화보병사단 기갑수색대대에 이어서 1연대 1대대까지 전투지역에 곧 도착한다는 것은 물론 한국 육군의 아파치 공격헬기들도 다시
지원을 온다는 것을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이 인민군 정찰여단과 여타 인민군 초나라 원정군을 지원하려고 파견된 한국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예하의 아파치 공격헬기는 총 36대였는데, 이들은 6대씩 나뉘어 각 부대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앞에서 정찰여단을 지원했던 6대의 아파치 이외 다른 6대가 다시 이들을 지원하려고 날아오는 중이었다.
“야, 1대대장. 날래 대대원들을 빼서 황하로 진격해. 여긴 저 21사단 아새끼들에게 맡기고. 알간!”
“예, 여단장 동지.”
여단장 방완수의 명령을 받은 1대대장 이상철 상좌가 초나라군 및 민병들과 전투를 벌이는 대대를 뒤로 물려 황하로 내달리려는 순간 한국 육군의 아파치 공격헬기보다 먼저 A-1 흑룡
무인공격기 4대가 날아왔다.
“쿠콰쾅!”
A-1 흑룡 무인공격기의 GBU-39 SDB 활강유도항공폭탄이 초나라 민병들이 숨어서 총을 쏘던 건물더미에 떨어져서 폭발하자 이런 폭음과 함께 민병들이 그대로 날아갔다.
그러나 무인기는 1대만이 아니라 총 4대였고, 그 4대가 천검 대전차 미사일 각 4발과 역시 GBU-39 SDB 활강유도항공폭탄을 투하하고는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21기계화보병사단 기갑수색대대의 흑표전차가 주포를 발사했고, 그 주포가 목표물에 맞아 폭발하는 순간 요란한 로터 블레이드 소리와 함께 아파치 공격헬기 6대가
추가로 나타났다.
“아파치가 공격하게 뒤로 물러나! 대대 후퇴!”
21기계화보병사단 기갑수색대대장 이관우의 명령에 그의 대대원들이 흑표전차를 뒤로 빼자 아파치 공격헬기들이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으니 초나라 패잔병과 민병 약 500여 명 중 그때까지
살아있던 자들도 그 공격에 하나씩 죽어 나갔다.
그러나 그 공격만이 아니라 뒤로 물러난 이관우 대대의 흑표전차들도 아파치의 공격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살아남을 자는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저 한국 아파치들이 다 쓸어버리면 우리 몫은 하나도 없겠네. 쩝!”
“여기까지 오면서 벌써 몇 번이나 초나라 아새끼들이 튀어나와서 우리를 공격했으니 저 아새끼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몫은 있을 겁네다. 대대장 동지.”
“그렇겠지. 그래야 우리도 뭔가 내세울 전공을 세울 것이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 그래야 우리도 전공을 세우고······.”
이관우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아파치 공격헬기들이 공격을 마치고 물러나자 그가 대대에 다시 진격을 명령했다.
그리고는 그 공격에도 살아남은 초나라 패잔병과 민병들을 그야말로 학살에 가깝게 사살하고는 다시 정찰여단의 뒤를 따라 황하로 내달렸다.
“정찰여단이 황하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몇 번이나 공격을 당하고 있으니 21기계화보병사단을 더 독촉해서 그들을 지원하라고 해. 그리고 무인공격기 전부를 동원해서라도 공중 지원도
아까지 마. 알간.”
“알갔습네다. 군단장 동지.”
“그리고 거기에 공군의 F-1 삼족오 전투기들도 정찰여단을 공중 지원토록 독촉해. 도대체 한국의 아파치 공격 직승기들 도움만 받아서야 하겠어. 안 되겠어.”
“조처하갔습네다.”
“확실히 조처해. 그리고 우리 원정군 휘하에 배치된 항공작전사령부의 청룡과 적룡 공격 직승기들은 도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기에 적시에 공중 지원을 못 하는 거네?”
“그 동무들은 타 군단을 지원하고 있기에······.”
“날래 일개 대대라도 불러. 우리래 공격 직승기는 다른 곳에 가 있고, 그 덕분에 우리의 선봉인 정찰여단은 한국의 아파치 공격 직승기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 모양이 웃기지
않네. 그러니 당장 일개 대대라도 불러. 날래.”
초나라 원정군 사령관이자 북한 인민군 8군단장 박수일이 참모장 진성준 소장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북한 공군 전투기들도 항공작전사령부의 각종 공격헬기도 원정군 사령관인 그의 휘하에 배속되어 있었기에 그의 명령 한마디면 당장 동원이 가능했다.
어떻든 박수일의 명령에 8군단의 선두로 나선 정찰여단은 21기계화보병사단의 지원과 무인공격기 그리고 F-1 삼족오 전투기는 물론 한국군 항공작전사령부의 아파차 공격헬기에 더해서
북한 인민군 항공작전사령부의 AH-1 청룡과 AH-2 적룡 공격헬기의 공중지원도 받게 됐다.
***
초나라 외교부장 조옥성은 고구려 부위원장 김명남이 자신과의 통화를 자꾸만 뒤로 미루자 애간장이 타는 기분이었다.
고구려가 제시한 두 가지 조건 즉 지금 초나라가 사용하는 간체자를 버리고 고구려와 남북한이 사용하는 전통 한자 정체자 사용과 한국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것, 그 두 가지 조건을
들어준다고 하고 김명남에게 항복 조건에 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아내야만 했다.
그런데 김명남은 자신과의 통화를 자꾸만 미루고 있었다.
그 한 번의 통화가 미루어질 때마다 1차 한중전쟁에서도 살아남은 공장 하나가 고구려가 쏘는 탄도미사일에 날아갔다.
두 번 통화가 안 될 때는 공장 두 개가 날아갔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초나라에 남은 산업시설이란 산업시설은 모조리 파괴되어 남아날 것이 없을 것 같았고, 그럼 초나라는 어떻게 될까.
1차 한중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은 공장과 그사이 재건한 공장에서 그래도 제품을 생산해 수출에 전력투구한 덕분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는 간신히 유지했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전쟁 때문에 파괴된 산업시설로 말미암아 10위권으로 추락했는데, 다시 전쟁으로 대규모 산업시설이 파괴되면 20위권은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럼 당장 잃어버린 국토에서 밀려온 피난민들에게 지급해줄 식량마저 구매할 비용을 마련할 수 없을 것이고, 하면 지금도 진행되는 폭동이 대규모라는 말이 무색한 폭동으로 번질 것이다.
하나 식량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먹는 것만큼, 사는 집 즉 주택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하면 폭동이 아니라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하면 통일된 나라가 다시 분열할 수도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이 소설의 첫머리를‘천하는 오랫동안 나뉘어 있으면 반드시 합쳐지고, 오랫동안 합쳐져 있으면 반드시
나누어지게 된다.(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라고 서술했듯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중원은 원, 명, 청 그리고 중국을 거치면서 너무나 오랫동안 합쳐져 있었다.
물론 그 교체기에 수년에서 수십 년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쟁투가 있었지만, 그건 나뉘어 있었다고 부를 수 없는 짧은 기간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패하고, 산업시설까지 다 파괴되어 국민의 의식주를 국가가 책임져 주지 못하면 초나라는 분열되어 말 그대로 두 개의 초나라, 세 개의 초나라가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초나라 외교부장 조옥성도 그것을 가장 우려했다.
“아, 여보세요. 부위원장님이십니까?”
“부위원장님은 지금 위원장님이 주재하시는 회의에 참석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초나라 외교부장님이시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부위원장님은 언제쯤 통화가 가능하겠습니까?”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만, 회의가 끝나시면 전화가 왔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꼭 좀 부탁합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거듭거듭 꼭 좀 부탁합니다.”
또 통화가 무산됐다.
고로 한 곳의 공장이 다시 날아갈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조옥성은 가슴이 답답하기 그지없어 당장에라도 고구려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전쟁 중이었기에 사실상 갈 방법도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은 전화가 된다는 것이었지만, 전화하면 뭐 하나.
김명남과 통화를 할 수가 없는데 말이다.
이렇게 조옥성이 애간장을 태우고 있을 때 대한민국 국군 1군단 1기갑사단 기갑수색대대장 강재석은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초나라 민병들을 맞아 악전고투하다가 잠시 숨을 돌렸으니 바로
항공작전사령부의 AH-64 아파치 공격헬기 18대가 무리를 지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진즉 좀 오지.”
“대대장님, 지금 저 아파치들이 문제가 아니라 아무래도 우리가 보급부터 받아야겠습니다.”
“뭐 떨어졌는데?”
“포탄도 그렇고 연료도 그렇고 여하튼 보급받아야 다시 마음껏 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K-6는 아직 탄이 좀 남았는데······.”
“대탄 2발, 날탄 1발뿐이고, 7.62mm 기관총 탄환은 고작 50여 발 정도, 연료는 거의 바닥입니다. 대대의 다른 단차들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니 보급부터 받아야 합니다.”
“포탄이 3발뿐이라고?”
“그렇습니다.”
“진짜 빌어먹을 이네.”
자신의 전차 사수 장종국 하사의 보고에 이렇게 반응한 강재석은 그 즉시 대대의 전 전차를 현 위치에서 약간 후퇴시킨 다음 뒤에 따라오는 보급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는 이것저것 전황을 알아보는 찰나 대대 보급관과 함께 탄약, 유류 등을 실은 차들이 오자 한숨을 토해내고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젠장, 이놈의 담배부터 끊어야 하는데.’
담배를 끊어야 한다면서도 한 모금 더 빨아들인 강재석은 저 멀리 아파치 공격헬기들이 로켓탄과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충성. 포탄부터 보급하겠습니다. 대대장님.”
직접 포탄을 받아 보급하려고 했다.
그런데 보급관과 함께 온 대대원이 이 말과 함께 자신 대신 포탄을 보급하려고 전차에 오르자 강재석은 피우던 담배를 끄고 전차에서 내려 주변을 경계하면서 보급받는 대대원들을
둘러봤다.
그렇게 국군 1군단 1기갑사단 기갑수색대대는 아파치 공격헬기들이 초나라 민병들을 공격하는 틈을 이용해 보급받고, 그 아파치들이 공격을 끝내고 물러가자 다시 진격을 시작했다.
“장 하사, 이제 포탄 다 보급받았으니 짱깨들 포착하면 보고도 하지 말고 그냥 쏴버려. 알았지.”
“그래도 보고는 하고 쏴야······.”
“보고하면 정 하사 입만 아프니까 그냥 쏴. 선 조치부터 하라고.”
“선 조치하고, 후 보고 하면 그것이 그것 아닙니까?”
“후 보고 하지 말고 막 쏴. 나도 막 쏠 테니까.”
“대대장님, 혹시 스트레스가 심하십니까? 아니면 전쟁 피로 뭐 그런 것을 느끼십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짱깨들에게 짜증이 나서 그렇다. 짜증이 나서. 그리고 이 전쟁 때문에 피로하지 않은 그리고 스트레스 안 받는 대대원 있겠냐. 장 하사는 스트레스 안 받아?”
“저도 스트레스는 받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막무가내로 짜증이 나지는 않습니다.”
“나도 막무가내로 짜증이 치미는 것이 아니라 짱깨들에게만 짜증이 나는 것이고, 장 하사도 짱깨 싫어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