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 협상(9)
김여성과 이슬주를 포함해 원판 김정은의 가족을 모두 스위스로 보내기 위한 작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고구려와 남북한이 통일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전에 정치에서 완전히 떼어놓은 다음 그곳으로 보내서 터전을 잡고 살도록 만들어주어야 했다.
그들이 통일된 이 땅에 살아봐야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이니 이것도 내가 그들에게 해주어야 할 최소한의 도리 같았다.
“그럼 총비서 동지, 죽을 각오를 하고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니, 총리. 총리가 무슨 죽을 각오까지 하고 나에게 물을 것이 있소. 그러니 그냥 아무것이나 물으시오. 그럼 내 허물없이 대답해줄 테니까.”
“하면 정말 묻겠습니다. 여사님과는 그럼 이혼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여사님과 자제분들만 스위스로 보낼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묻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죽을 각오까지 하고 물을 일이요. 그냥 물으면 되지.”
“절대 아닙니다. 만약 오늘 제가 총비서 동지께 이런 질문을 한 것을 다른 이들이 안다면 아마도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고 다들 저를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됐소. 됐어. 그리고 이 일은 우리 둘만 아는데, 또 누가 안다는 말이오. 그리고 이혼하는 것이 아무래도 그 사람이나 애들을 위해서는 더 좋지 않겠소? 안 그러고 스위스로 가면,
세간의 시선은 물론 여러 가지로 문제가 돌출되어 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니 이혼하고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총리 생각은 어떻소?”
“정말 총비서 동지가 여사님과 이혼하실 생각이시면, 그것이 아무래도 더 좋을 것입니다. 아니고 그냥 이대로 가시면, 찌라시 같은 서방 언론들부터 시작해서 여러 호사가의 입방아에
편치 않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김여성 위원과 그 가족도 있으니 더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거기다가 반공화국 세력들이 기회를 잡았다고 그 사람과 애들은 물론 김여성과 그 가족까지 이용하려 들면, 더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김여성 위원과 그 가족은 스위스로 보내기 전에 확실하게 교육하고 보내야 할 것입니다. 안 그러면, 총비서 동지께서 말씀하신 반공화국 세력이 그들을
이용하려들 때 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 문제는 내게 맡겨놓으시오. 내가 확실하게 교육한 다음에야 스위스로 보낼 것이니까.”
“이 공화국에서 김여성 위원을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은 총비서 동지뿐이니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나 이외에 북한에서 누가 백두혈통인 김여성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스위스로 보내기 전에 내가 나서서 확실하게 교육해야 했다.
그래야 찌라시 같은 언론이나 북한에 반대하는 이제는 남북한과 고구려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이 이용하려 들어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아니, 그런 세력에게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니까.
그 김여성과는 달리 그 남편과 자식은 내가 아니라도 호위사령부에서 철저하게 교육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에게 맡겨놓으시오. 그리고 이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2차 대중국전쟁에서 승전하고 온 공화국과 고구려는 물론 한국까지 그 승리에 열광하고 있을 때 조용히 처리하고
싶은데, 되겠소?”
“물론입니다. 그러나 인민재판소 소장에게는 총비서 동지께서 조용히 처리하라고 언질만 주십시오.”
“그건 알았소. 하면, 이제 술이나 더 마십시다. 그리고 노파심에 이야기하는데, 오늘 내가 말한 것은 우리 둘만 알고 있는 겁니다.”
“믿어주십시오.”
북한의 경우 부부가 이혼하기로 하면, 당사자들의 합의로 이혼 서류를 작성해 판사로부터 확인서를 받는 협의 이혼 제도도 있고, 또 협의 이혼할 수 없을 때 부부 중 이혼을 희망하는
한쪽이 이혼 재판을 청구하는 재판상 이혼 절차를 거치는 때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지 않고, 당사자 합의에 따른 협의 이혼이든 이혼 청구 소송이든 뭐든 간에 부부가 갈라서려면 반드시 재판소의 판결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재판으로 이혼이 결정될 경우, 양육권이나 재산 분할은 부부간 합의가 가능하나 세 살 미만의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 한 어머니가 양육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래서 협의나 이런 경우가 안 된다고 하면 결국 영유아 같은 경우는 어머니가 양육을 맡게 되고, 자녀 숫자에 따라서 월수입의 10%에서 30% 정도에 범위 내에서 재판소가 양육비를
정한다.
또 재산 분할의 경우에는 개별 재산은 당사자의 협의로 나눠 가질 수 있는데 협의가 안 되면 재판소가 결정하지만, 북한 현실상 대부분 사유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재산 분할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없었다.
그러나 내가 김정은으로 환생한 이후 일정 부분 사유 재산을 인정해주었기에 지금은 재산 분할까지 재판소에서 판결했다.
그러니 나도 이슬주와 이혼하고, 양육권과 재산 분할 등을 처리하려면, 재판소 즉 인민재판소의 판결을 받아야만 했기에 내각 총리 김덕훈이 재판 소장에게 조용히 처리하라고 언질을
주라고 한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이혼이 처리되고, 양육권은 이슬주에게 주고, 일정 부분 즉 그녀와 김정은 자식들이 스위스에 가서도 평생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재산도 나눠줄 것이니까.
어떻든 나는 이렇게 이슬주와의 이혼을 준비했다.
아마도 이것은 내가 김정은으로 환생한 그때부터 예정된 일이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말이다.
***
북한 인민군 초나라 원정군의 선두이자 8군단의 선두인 특수전사령부 예하 정찰여단 1대대 1중대장 조용호 소좌는 그때 초나라 산서성 운성시 북쪽에서 황하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서 초나라 민병 300여 명에게 공격당했고, 그 바람에 그의 중대만이 아니라 1대대까지 진격을 멈추고는 민병들과 전투에 돌입했다.
“도대체 정찰기와 정찰 무인기와 정찰 직승기들은 무얼 하기에 저따위 민병 놈들이 아직도 우리의 앞길을 막아! 야, 7호 발사관 든 놈부터 사살해. 날래!”
민병들의 공격에 조용호 소좌가 아니라 1대대장 이상철 상좌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그의 대대원들은 정찰여단 아니랄까 봐 69식 화전통(RPG-7)을 든 민병들부터 사살하고
있었다.
그다음은 당연히 기관총을 든 민병이었으나 말 그대로 그들은 민병들이라 무장이 그렇게 막강하거나 좋지 못했다.
그래도 그중 가장 정찰여단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무기는 69식 화전통이었으나 그 사수들은 1대대원들이 탄 C-22식 장갑차의 40mm 기관포부터 시작해서 온갖 무장 때문에 가장
먼저 사살당했다.
비록 도로 옆 주택과 상가 등에 숨어있은 덕분에 이상철 상좌의 외침처럼, 인민군이 운용하는 정찰기와 정찰 무인기와 정찰 직승기들에게는 발각되지 않아 기습 공격은 가했지만,
그것뿐이었다.
“날래날래, 7호 발사관 든 놈부터 사살하란 말 안 들리네.”
“7호 발사관 든 놈들은 다 사살했습네다. 대대장 동지.”
“저놈은 뭐네?”
이상철 상좌가 누군가를 가리키며 이렇게 묻는 순간 그 누군가 즉 69식 화전통을 든 초나라 민병은 말 그대로 터져나갔으니 바로 조용호 소좌가 탄 C-22식 장갑차의 기관포를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어······. 사살됐습니다. 대대장 동지.”
“참 좋겠다. 그리고 7호 발사관 가진 아새끼들 다 날려버렸으면, 이제 우리가 밀어붙여. 날래!”
69식 화전통을 든 민병이 더 보이지 않고, 장갑차에 위협적인 14.5mm 단관 고사기창 즉 중기관총도 보이지 않자 이상철 상좌가 이렇게 명령했다.
그러자 C-22식 장갑차들이 민병들이 매복하고 있던 주택과 상가로 돌진하면서 기관포를 갈겼으나 이미 수십 발의 기관포탄을 얻어맞은 이후였기에 더 사격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매복하고 있던 집과 상가가 수십 발의 기관포탄에 찢겨나간 것도 잠시 C-22식 장갑차의 40mm 기관포가 아닌 한국제 K-4 고속유탄기관총을 장착한 장갑차들이 그 40mm
유탄을 무차별로 발사했다.
K-4 고속유탄기관총을 장착한 C-22 장갑차들이 그렇게 발사한 KM383 고폭탄은 40mm 기관포보다 더 효과적으로 무너진 주택과 상가에서 나와 여기저기 몸을 숨기고 여전히
소총과 기관총을 난사하는 민병들을 제압하는 데 더 효과가 있었다.
“더 밀어붙여. 더!”
초나라 원정군 사령관인 박수일에게 단 10분이라도 빨리 황하로 진격하라고 독촉받는 와중에 초나라 민병의 공격을 받은 이상철 상좌는 휘하 장갑차들이 밀어붙이는 와중에도 또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슈슈슝!”
그런데 그의 목소리를 묻어버리는 로켓 발사음이 들린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언제 나타났는지 AH-64 아파치 공격헬기 6대가 나타나서는 초나라 민병들을 향해 로켓을 쏘고, 이어서는 헬파이어 대전차미사일에 30mm 기관포까지 발사했다.
“대대장님, 우리를 호위하려고 지원을 나와 있던 한국 육군 항공작전사령부의 아파치입니다.”
“나도 보고 있으니 장갑차들 뒤로 물려서 우리는 계속 진격한다.”
“하면 민병들은 저 아파치들에게 맡기는 것입네까?”
“그걸 몰라서 물어.”
자신들을 호위하려고 지원을 나와 있던 한국 육군 항공작전사령부의 AH-64 아파치 공격헬기 6대에 초나라 민병들의 뒤처리를 맡긴 이상철 상좌는 그렇게 다시 대대를 휘몰아 황하로
내달렸다.
그러나 그때는 이 초나라 민병들의 기습 공격은 이미 초나라 원정군 사령관 박수일의 귀에도 보고됐고, 그 바람에 이 정찰여단이 아닌 인민군 8군단의 선두인 21기계화보병사단의
기갑수색대대가 바람처럼 아파치 공격헬기들의 뒤를 이어서 민병들을 공격했다.
“야, 저기, 저 12시 방향 무너진 건물에 한방 더 날려!”
“예, 대대장 동지.”
1차 한중과 한일전쟁에도 참전해 제법 많은 전공을 세운 인민군 8군단 21기계화보병사단 기갑수색대대장 이관우의 명령에 그의 흑표전차 사수가 정확하게 무너진 건물 더미에 숨어있던
거의 마지막 민병을 향해서 주포를 발사했다.
“쾅!”
아파치 공격헬기 6대와 이 기갑수색대대에 의해 그때까지도 살아서 저항하던 초나라 민병은 10분도 되지 않아 모조리 소탕됐다.
그러자 아파치 공격헬기들은 유유히 사라졌고, 이관우는 대대에 이렇게 명령했다.
“날래 정찰여단 아새끼들 따라서 황하로 간다. 우리 옆의 45기동보병사단보다 우리가 먼저 가야 하니 지금부터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린다. 다들 알간!”
이 기갑수색대대 우측에는 이관우의 말처럼 45기동보병사단 1여단 1대대가 있었는데, 그들은 거의 C-22 장갑차 등으로 무장해서 자신들이 탄 흑표전차보다 더 기동력이 뛰어났다.
그래도 이관우는 대대를 휘몰아 정찰여단의 뒤를 바짝 따랐으니 그들보다 늦게 황하에 도착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표출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전투에 돌입한 정찰여단의 후미를 만나야 했으니 이번에는 초나라군과 민병 약 500여 명과 싸우고 있었다.
“날래 싹 쓸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