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김정은-456화 (456/470)

항복 협상(8)

이 김여성을 포함해서 원판 김정은 아내 이슬주와 자식들도 이때에는 그냥 조용히 죽은 듯이 살고 있었으나 생활은 전혀 궁핍하지 않았다.

하나 호위사령부가 이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으니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답답할 것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세요.”

“그래,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그리고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를 위한다면서 스위스로 가라.”

“맞아. 고구려와 우리 조선 그리고 나아가서 한국과 통일되기 전에 그리로 가서 조용히 자리를 잡고 살아. 그러면 이후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안 나올 것이다.”

“불미스러운 이야기라뇨?”

“그동안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와 반민족 범죄 등등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러니 지금 그리로 가서 조용히 자리를 잡고 살라는 말이다.”

김여성만이 아니라 이슬주와 김정은의 자식들도 모두 스위스로 보내려는 생각을 이즈음 하고 있었기에 이런 말을 꺼낸 것이다.

그럼 그들만은 그곳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북한이 고구려와 통일하고, 한국과도 통일되면 그때 조용히 스위스로 가거나 나를 받아주는 나라로 가서 살고 싶었다.

그것이 김정은으로 환생한 나의 숙명일 것이다.

중국과 일본을 주저앉히고 통일까지 완성했지만, 그 이후의 삶은 영 순탄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 그런 것 말이다.

그래도 잘 되겠지.

앞에 언급한 공(功)이 있으니 지난 시절 내가 아닌 원판 김정은이 저지른 반인도적, 반민족적 범죄에서 어느 정도 공과(功過)를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김정은이 한 것이잖아.

“······.”

“왜 대답이 없어?”

“정말 고구려가 주도하는 통일까지 생각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왜 고구려를 세웠겠냐. 그리고 그 방법이 가장 불협화음이 적은 방법이야. 아니면 북남은 통일되어도 지난 70여 년 반목과 대결의 역사 때문에 쉽게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기 어려울 거다. 그럼 내가 앞에 말한 그런 이야기가 자연 나올 것이고, 하면 그 책임 소재를 따져보면 결국 우리 가족은······. 그러니 이 기회에 스위스로 가라. 가서

조용히 살아.”

“그럼 통일하지 마세요.”

“솔직히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아니, 있다. 이 좋은 권력을 왜 나 스스로 놓고 싶겠냐. 하지만 이즈음 인민들의 얼굴을 한번 봐라. 이제 배곯을 일도 없고, 전기 나갈

걱정도 없고, 땔감 걱정도 없고, 내 욕을 했다고 해서 예전처럼 무조건 잡혀갈 일도 없는 등등 그리고 중국과 일본을 주저앉히고 얻은 자부심까지 가득한 이즈음 인민들의 얼굴을. 그런

그들의 얼굴에 내 권력 유지를 위해서 다시 그림자를 드리워야겠냐. 내가 무슨 권리로.”

“인민들은 예전이 아닌 지금처럼 잘 먹고 잘살라고 하세요. 그러나 총비서 동지의 권력만은 놓지 않으면 될 것 아닙니까. 옛 중국의 습근평처럼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리고 그 말은 곧 또 통일하지 말라는 소리 아니냐.”

“예전엔 최고 존엄. 최고 존엄 그렇게 주장하시던······.”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이민 준비를 해. 알았어.”

김여성에게 이민을 거의 통보하고, 돌아서서 민은정에게 가노라니 그녀가 눈을 세모로 뜨고 째려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나무를 심었다.

아니, 그녀를 포함해 김정은 가족을 모조리 스위스로 보내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나을 것이다.

이 땅에 있어 봐야 그들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니까.

“민은정, 그것도 금각사에서 온 나무야?”

“예, 총비서 동지.”

“총리가 심는 나무는 어디서 온 것이요?”

“제가 심는 것은 오사카 니시노마루에서 온 것입니다. 총비서 동지.”

옛 일본 금각사(金閣寺)는 물론 해락원(偕?園), 겸육원(兼六園), 후락원(後?園)도 모자라서 오사카 니시노마루에서 온 나무까지 나를 비롯해 총참모장 김진성, 인민무력상 박영석,

호위사령관 이만철 그리고 새로운 내각 총리 김덕훈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이무영, 외무상 노주철 등 북한의 주요 권력자와 김여성 등 내 가족이 참가해 식수절 나무 심기 행사를

가졌다.

물론 제법 많은 인민도 참가했고, 대일본전쟁 참전 유공자 일부도 나와서 행사의 의미를 더한 그날의 행사가 끝나고, 승전기념공원을 보노라니 김일성 광장 일부를 완전히 잠식하고

있었기에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진행 중인 2차 한중전쟁이 끝나면, 옛 중국에서 더 많은 나무를 다시 뽑아와 승전기념공원을 더 넓히면 자연 김일성 광장이라기보다는 승전기념공원으로 불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원하고 있었고, 그래야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점점 지울 수 있었으니까.

어떻든 그날 식수절 행사가 끝나고, 참가자들과 만찬까지 마치고는 내각 총리 김덕훈과 단둘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총리, 이제 우리 조선 노동자들의 월급은 거의 현실화했지만, 당과 군과 내각 등 쉽게 말해 각 분야 공무원들의 임금은 아직 현실화한 것 같지 않으니 이 기회에 모든 것을

현실화시킵시다. 총리와 내 월급도 포함해서 말이요.”

“총비서 동지의 지시로 당과 군과 내각의 동무들 월급도 이제 거의 현실화했습니다. 총비서 동지. 그러나 총비서 동지의 월급을 제가 감히 어떻게 책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말씀을

거두어주십시오.”

“그럼 내 월급은 총리보다 조금만 더 주시오.”

“그건 안될 말입니다. 총비서 동지.”

“그러지 말고, 그렇게 하시오. 그리고 이번에도 총리가 책임지고 내 월급을 포함해서 공화국의 모든 월급쟁이의 월급을 현실에 맞게 새로 한번 살펴보고, 나에게 보고하시오. 그럼 내

살펴보고, 그대로 추진할 테니까.”

“다른 동무들의 월급은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총비서 동지의 월급은 아무리 그래도 제가 정할 수 없음을 헤아려주십시오.”

“그럼 한국 대통령 연봉이 한 2억 4천 정도니 나도 그 정도만 주시오. 단, 업무추진비 등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경비만 좀 더 책정해주고. 그럼 되겠소?”

“공화국의 자존심도 있으니 남조선 대통령보다야 총비서 동지의 연봉이 더 많아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지 않아도 업무추진비와 품위유지비 등의 수당은 당연히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면 올해 내 연봉은 2억 5천으로 합시다. 단 수당은 좀 더 챙겨주시오. 그럼 되겠소?”

북한 내각 총리 김덕훈이 내 월급은 자기가 책정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만약, 내 월급을 자기 마음대로 책정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말 그대로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고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니까.

그래서 한국 대통령 연봉보다 조금만 더 달라고 했다.

지금 고구려 위원회 민재인 위원장도 한국 대통령 연봉에 따라서 월급을 받았으니 나도 그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았다.

비록 북한의 경제력이 한국과 고구려에 비해 못하지만, 국가의 자존심도 있고, 아직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최고 존엄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아무리 내각 총리 김덕훈이라도 내 앞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는 것도 북한의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북한 월급쟁이들의 월급은 내 지시로 이미 현실화했고, 모두 한국 돈 즉 원화로 지급되었는데, 최저가 월 150만 원 선이었으니 한국의 최저임금보다는 못해도 예전

북한의 월급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낄만한 수준이었다.

“총비서 동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각종 수당은 넉넉히 책정하겠으니 심려하지 마십시오.”

“좋소. 그리고 월급을 현실화했으니 세금도 현실화하고,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더 철저하게 세무조사를 하시오. 특히 돈주들을. 이것도 아시겠소?”

“예, 총비서 동지.”

“아, 그리고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는데······.”

“무엇입니까?”

“총리는 스위스 연방 부통령과 인연이 있죠?”

“예, 총비서 동지. 그런데 그 사람은 왜?”

“총리,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나와 총리 단둘만 아는 비밀로 해야 하오. 할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그럼 총리를 믿고 내 말 하겠소. 내 동생 김여성과 그 가족을 스위스로 보내주시오.”

내 말을 들은 내각 총리 김덕훈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으니 놀라기는 놀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김여성이 내 의도에 의해서 일선 요직에서 대부분 물러나 거의 허수아비처럼 지내지만,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등의 직책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김여성은 김정은과 같은 백두혈통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각 총리 김덕훈이라도 그녀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내 김여성에게는 아까 나무 심으면서 스위스에 이민을 준비하라고 했소.”

“그렇게 한다고 대답은 했습니까?”

“대답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가야만 할 것이오. 그러니 총리께서 비밀리에 스위스와 그 협의를 좀 해주시오.”

“김여성 위원 가족만 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선 김여성과 그 가족을 보내고, 그 이후에는 내 전 가족을 모두 보낼 것이니 총리께서 그 부분도 좀 알아봐 주시오.”

“그 말씀은 여사님과 자제분들도 모두 보낸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렇소. 그러니 내가 이렇게 총리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요.”

내각 총리 김덕훈의 얼굴이 더 굳어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김여성은 물론 이슬주와 김정은의 자식인 김주영 등까지 다 스위스로 보낸다는 그 말에 말이다.

그러나 내 처지에서도 이들은 스위스로 보내야 했다.

내가 김정은으로 환생한 이후 이슬주와는 단 한 번도 동침하지 않았고, 같은 집에 살지도 않았다.

그것이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 같아서 말이다.

그랬으니 북한 내부에는 이미 알게 모르게 나와 이슬주가 이혼했다는 또는 이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니 이슬주를 더 북한에 두는 것은 그녀를 위해서도 좋지 않았다.

김정은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짜 아빠인 나보다는 진짜 엄마를 따라가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고, 북한보다는 스위스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사는 것이 그 애들을 위해서도 더 좋을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여사님과 자제분들을 다 보내시면 총비서 동지께서는···.”

“총리도 내가 애들 엄마와 안 사는 것을 아시면서 그러시오.”

“저는 총비서 동지의 소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들리더라도 바로 흘려버립니다.”

“그럴 필요 없소. 그러니 김여성 가족부터 스위스로 보내고, 이어서 그들도 모두 보낼 것이니 총리가 이 부분까지 좀 살펴주시오.”

“저에게 지시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시가 아니라 부탁하는 것이요. 단, 이 부탁은 우리 둘만 알아야 함은 명심해주시오.”

“물론입니다. 소문이 나서 좋을 것이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럼 나는 총리만 믿겠소. 그런데 그 스위스 연방 부통령과는 진짜 절친하오?”

“예, 제법 친하고, 제가 부탁하면 반드시 이번 일을 들어줄 것입니다.”

“좋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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