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 협상(5)
중화(中華)가 무엇인가.
바로 중원에 한족 왕조가 등장할 때마다 펼친 자문화 중심주의 사상으로 골자는 중화 문명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적 역량은 어떤 다른 문명보다도 우수하다고 믿으며, 다른 문명을 오랑캐로 낮잡아보는 것으로 신중국이 건국된 이후에도 꾸준히 그런 내용을 교육해왔다.
그 결과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한 9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이들은 더욱더 그 중화사상에 심취해 1차 한중전쟁이 일어나기 전만 하더라도 남북한을 거의 속국 또는 변방으로 취급했다.
거기다가 동북공정도 모자라서 문화공정까지 펼치며, 한민족의 문화까지 자국의 문화로 편입하는 등의 만행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그러나 1차 한중전쟁 패배 이후 그 중화사상은 사실상 강제로 폐기처분당했으나 여전히 그 중화에 심취해서 깨어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오늘도 총 한 자루 메고 민병으로 참전해 싸우는
이가 수만 명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제 자신들이 사용하는 글자마저 바꾸고, 한국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면 어떻게 될까.
지난 항복 조건 15항 ···영구히 동북공정 서북공정 등의 역사 왜곡을 금지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초중고대학에서 남북한이 제공하는 역사 서적으로 남북한의 역사를 주 2시간
가르치고, 한국어는 제1외국어로 지정해서 주 6시간 이상 가르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
“왜 대답이 없으시오? 아니, 그렇게 못하겠소?”
“아닙니다. 부위원장님. 다만, 이 문제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잠시.”
“그럼 이극강 주석과 상의해서 다시 전화하시오.”
“하면 그 두 가지 조건만 받아들이면, 우리 초나라의 항복을 받아주시는 것입니까?”
“나도 그 문제는 내가 결정할 수 없소. 내가 가진 권한은 말 그대로 협상에 관한 전권이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권은 아니기 때문이오.”
“하면······.”
“초나라가 그 두 가지 조건을 받아들이면, 일단 우리 위원장님에게 보고한 다음 북남과 상의하고, 그렇게 결정이 날 것이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면 저도 일단 저희 주석과 상의한 다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초나라에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리라 생각하오.”
“물론입니다. 부위원장님.”
초나라 외교부장 조옥성과 고구려 부위원장 김명남의 통화는 일단 이렇게 끝이 났다.
하나 그것은 항복 협상을 위한 시작일뿐이었고, 고구려는 이렇게 두 가지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두 가지 요구사항을 초나라가 즉각 수용하더라도 이 전쟁은 계속되리라는 것이었다.
“또 명중입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드디어 180번째 적을 저격했습니다.”
“벌써?”
“예, 그리고 초나라 민병들이 하도 많아서 오늘 안으로 200번째 저격에 성공할지도 모릅니다.”
“그 대답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한데.”
“기분이 이상할 것 뭐가 있습니까. 어, 그런데 또 민병입니다. 11시 방향. 거리 720m, 전봇대 뒤, 보이십니까?”
“소총 들고 있는 놈?”
“맞습니다. 쏘십시오.”
국군 1군단 저격대대 서한국 상사의 K-14 저격소총이 그 순간 다시 불을 뿜었고, 그가 1차 한중과 한일 그리고 이 2차 한중전쟁을 치르면서 총 181번째 저격에 그렇게
성공했다.
서한국 상사는 강소성 남통시 통주구 동사진에 있었고, 그곳에는 이제 초나라군보다는 민병이 더 많았고, 그들은 죽음도 불사하고 악착같이 한국군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니 서한국 상사는 오늘이 다 가기도 전에 200번째 저격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명중. 181번째 저격에 성공했습니다.”
“다른 표적은?”
“금방 찾아드리겠습니다. 그래야 200번째 저격까지 성공하고, 잠시 휴식이라도 취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입니다.”
“피곤하면 지금이라도 쉬지. 왜 200번째 저격까지 하고 쉬어야 하는데.”
“여긴 위치가 기가 막힌 곳 아닙니까. 그러니 이런 곳에 자리를 잡은 김에 기록을 더 쌓아야지 어디서 기록을 더 쌓겠습니까.”
“하긴 근처에 이곳보다 더 높은 건물이라고는 없고, 저 앞 도로도 한눈에 들어오니 좋은 곳은 좋은 곳이지만, 그래도 박 중사가 피곤하면 쉬어야지. 기록이 문제야?”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물론. 그러니 쉬고 싶으면 쉬어. 커피도 한잔 마시고. 그런데 커피 있어?”
“캔 있습니다. 드릴까요?”
5층 건물 옥상, 그것도 주위에 그보다 높은 건물이 없는 기가 막힌 곳에 자리를 잡은 서한국 상사와 박인철 중사는 전쟁터 한가운데서 느긋하게 캔커피를 따서 마시면서 잠시의 휴식을
취했다.
초나라군과 민병들이 발악적으로 저항하는 바람에 잠은 고사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싸우고 있었다.
그러니 잠시지만, 커피 한 캔을 마시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할까.
“그런데 서 상사님, 이제 상해 앞 숭명도 등으로 상륙해 북상하는 해병대 애들이 우리 앞에 나타날 때가 된 것 아닙니까?”
“곧 나타나겠지.”
“그 애들이 나타나면 이 전쟁 끝날까요?”
“그 애들 나타나면 이 강소성만 우리에게 장악된 것이니 전쟁 끝날 일은 없지. 인민군이 아직 산서성을 점령하지 못했으니까.”
“고구려군은 황하 북쪽을 다 장악했고, 우리도 이 강소성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데, 인민군 애들은 뭐 한다고 아직도 산서성을 다 장악하지 못한 걸까요?”
“우리는 반쪽짜리 강소성을 장악하는 것이고, 고구려군은 전체면적의 반의반도 안 되는 황하 이북의 하남성만을 장악하는 것이지만, 인민군은 산서성을 100% 다 장악하는 것이니 당연히
시간이 걸리지. 그리고 그곳은 산이 많아 더 쉽지 않을 것이야.”
“그 말씀을 들으니 또 그렇겠네요. 커피 하나 더 드릴까요?”
“초코파이와 같이 달달한 것은 없어?”
커피에 이어 초코파이까지 먹은 서한국과 박인철이 다시 초나라군과 민병을 찾는 시간 그 초나라 주석 이극강은 외교부장 조옥성의 보고를 받고는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주석, 그 두 가지 제안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겠죠?”
“······.”
“하면 그 두 가지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고구려에 통보하겠습니다.”
“잠깐.”
“왜 그러십니까?”
“우리의 글도 모자라서 말까지 버리면, 과연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주석, 우리글을 버리는 것도 아니고, 고구려가 쓰는 한자도 우리 것입니다. 또한, 우리말도 버리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한국어를 우리말과 동등한 위치로 올려놓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우리의 인민들이 한국어를 배우겠습니까?”
“인민들은 배우지 않더라도 학생들은 필수로 배워야 할 것이고, 사회 전반에서 한국어를 우리말과 동등하게 사용해야 하니 인민들도 자연 배울 수밖에 없을 것이네.”
“학생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고구려와 남북한에 쌓인 원한이 얼마나 많은데 인민들이 한국어를 배우겠습니까.”
“그래도 그건 모르는 일이야.”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항복하지 않고, 계속 가다가는 우리의 산업시설 전체가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그럼 당장 수많은 인민이 굶어 죽을 겁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우리의
산업시설이 다 파괴되면, 산서와 강소성 등 그들이 이번에 새로 강점하는 우리 영토의 인민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피난 와서는 당장 의식주 문제부터 직면할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 지금은 그런대로 식량은 지원해주기에 폭동도 소규모 폭동에 그치지만, 그 산업시설이 다 파괴되어 식량을 사들일 자금을 구하지 못하면, 그 폭동이······.”
1차 한중전쟁에서 파괴되고 고구려에 뺏긴 산업시설 등을 제외하고, 남은 산업시설만으로도 초나라는 이때 세계 10위권 안에는 드는 경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식량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그랬으니 고구려가 강점한 영토에서 피난 온 수많은 피난민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나마 남은 산업시설이 이번 2차 한중전쟁으로 다 파괴되어 말 그대로 경제가 폭삭 망하면, 인간의 원초적 본능 중에서 가장 큰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 먹는 문제를 해결해줄
방법이 없었다.
동북 3성과 하북, 산서, 강소, 내몽골 등을 고구려에 뺏기는 바람에 자체 생산하는 식량으로는 그 많은 인민을 다 먹여 살릴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만약 그렇게 식량문제까지 해결해주지 못하면, 지금 초나라 각지에서 벌어지는 폭동은 말 그대로 초나라를 집어서 삼킬만한 대규모로 발전해서 초나라는 스스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피난민들에게 의식주 중에서 식량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하면, 폭동은 더 거칠어지고, 규모가 커져 감당할 수준을 벗어나겠지. 그리고 고구려와 남북한은 그것을 더 부추길
것이고.”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 두 가지 조건을 들어주고 항복하시죠.”
“그러나 우리가 양보해야 할 것이 과연 그 두 가지뿐일까. 내가 고구려에 항복 조건만을 타진해보라고 했는데도 조 부장은 그 두 가지의 어려운 문제를 가져와서 내 앞에 던져주었으니
만약 우리가 진짜 항복 조건을 협상하면, 또 어떤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조건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말이야.”
“그렇기는 합니다만, 우리는 이미 1차 전쟁 패배 이후 맺은 항복 협정에서 거의 모든 것을 양보했기에 그 두 가지 요구조건을 더 들어준다고 해서 뭐 달리 달라지는 것이 더
있겠습니까.”
“그 두 가지만이 아닐 것이니 내가 이러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산업시설이 다 파괴되어 인민들의 의식주 중에서 어느 하나도 해결해주지 못하면 그때는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주석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알아. 그리고 지금 이 시각에도 고구려와 남북한은 우리의 산업시설 그중에서도 수출기업들과 자국과의 경쟁적 관계에 있는 산업시설들을 먼저 공격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나는
그 이후가 걱정돼. 과연 그들이 우리에게 내놓을 조건에 과연 무엇이 더 있을지.”
“하면 그 두 가지 요구조건을 들어준다고 흘린 다음 또 어떤 요구를 더 하는지 알아볼까요?”
“당장 우리가 항복해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니 현재로써는 그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겠지.”
“그럼 다시 전화해서 그 두 가지 조건을 들어준다고 하고, 고구려가 또 어떤 요구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주석!”
“그렇게 해. 단, 너무 비굴하게 하지는 마. 마지막 자존심은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하니까.”
“물론입니다.”
초나라 외교부장 조옥성은 주석 이극강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이후 고구려 부위원장 김명남에게 다시 통화를 요청했으나 그 통화는 쉽사리 연결되지 않았다.
또 하고 또 통화를 연결했으나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비굴하게 하지 말라던 주석 이극강의 말과는 달리 조옥성은 점점 더 비굴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