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한중전쟁의 서막(9)
2022년 12월 초, 기어이 오키나와를 미국에 할양하려고 남북한과 고구려의 외교를 총책임진 고구려 외교국장 한태일과 미국 국무부장관 버핏이 오키나와 나하 공항 인근에 마련된 임시
남북한과 고구려군 주둔지에서 마주 앉았다.
그리고 이렇게 할양 조건이 담긴 오키나와 할양에 관한 조약 제1조와 제2조에 이어서 제3조도 고구려 외교국장 한태일이 설명했다.
“제3조 할양된 영토라도 자연 유산과 역사문화 유산은 남북한과 고구려의 소유이므로 미합중국은 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고, 할양된 영토 이내에서도 이를 관광 등 영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제4조 제3조의 할양된 영토 내의 자연 유산과 역사문화 유산에 대해 남북한과 고구려는 관광 등에 이용할 수 있고, 미합중국은 이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하며, 만약
이를 지키지 않을 시에도 남북한과 고구려는 할양을 취소할 수도 있다. 제5조 할양된 영토가 아닌 남북한과 고구려의 영토에서 저지른 미군과 미국인의 범죄는 남북한과 고구려 법에
따라서 처리하며, 남북한과 고구려 영토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미합중국 영토로 도망친 미군과 미국인은 즉시 남북한과 고구려로 송환해야 한다. 만약 미합중국이 이를 어길 시에도 남북한과
고구려는 할양을 취소할 수 있다. 제6조 남북한과 고구려와 미합중국은 이견이 없는 한 할양 기간을 10년 더 연장할 수 있고, 다시 기한을 더 갱신할 수도 있다.”
고구려 외교국장 한태일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처음 이야기가 된 것과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방적으로 미국에 불리한 내용이 있는 것 같아서 미 국무장관 버핏이
이렇게 말하고 나왔다.
“한 국장, 이 조건은 우리 미합중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 아니오.”
“뭐가 귀국에 불리합니까?”
“아니, 남북한과 고구려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개발하지 못하며, 남북한과 고구려의 환경규제를 엄격하게 지킨다. 만약 이를 어길 때는 그 환경회복 비용을 미합중국이 충당하고,
남북한과 고구려는 할양을 취소할 수도 있다. 우리 미군과 미국인이 저지르는 범죄는 남북한과 고구려 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것이 뭐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오. 그리고 그 정도 조건은 자주독립 국가인 남북한과 고구려가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오.”
“그래도 남북한과 고구려의 허락 없이는 집 한 채도 지을 수 없다는 것 아니오. 그런데 뭐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 아니오. 그리고 예전 한국에 주둔하던 주한미군이 범죄를
저지르면······.”
“됐소. 그리고 그 조건이 마음에 안 들면 할양은 없던 일로 합시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려고 기어이 할양까지 해주려고 해도 당신네가 싫다면 뭐 없던 일로 해야지.”
“뭐라고요.”
“할양 없던 일로 하자고요. 그리고 예전 춘천 캠프 페이지는 물론 주한미군 용산 기지 등의 미군 주둔지의 기름 오염 등 환경 오염에 대해 미국이 돈 한 푼 낸 적 있소. 그 정화
비용 결국 누가 다 냈소? 또 주한미군이 범죄를 저지르고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적이 있소? 또한, 용산 기지 내에 있던 우리 역사문화유적을 제대로 보호해준 적은 있소? 그래서
우리 고구려는 그런 전철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니 정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면, 할양 없던 일로 합시다.”
고구려 외교국장 한태일이 이 말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미 국무장관 버핏이 황당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러나 한태일은 미련도 없이 회담장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니 다급해진 것은 오히려 버핏이었기에 얼른 일어나서 떠나는 한태일을 따라간 다음 옷깃을 붙잡고 늘어졌다.
한일전쟁 개전 전에는 오키나와 본섬 전체를 할양할 것같이 했다.
그래서 주일미군이 일본 본토에서 철수해 오키나와로 옮겨온 지도 몰랐고, 한일전쟁 개전에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런데 남북한과 고구려가 일방적으로 한일전쟁에서 승전한 뒤에는 고작 오키나와 중간 지점의 남북 약 42km 구간만 할양해 줄 것같이 했다.
그러나 이제는 겨우 남북 12km, 동서 3~5km 구간만 할양하고, 조건도 이처럼 까다로웠다.
그래도 그 남북 12km, 동서 3~5km 구간 안에 미 해병대의 후텐마 기지와 공군의 가데나 기지가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동 지역에서의 미국의 힘을 마음껏 펼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초나라의 동진을 막을 수도 있었고, 남한국해(동중국해)와 동남아해(남중국해)와 필리핀해도 더 완벽하게 틀어쥘 수 있었으니 예전 주한미군 주둔군 지휘 협정보다 조건이 불리해도
일단 할양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차후 이 주둔군 지휘 협정을 미국에 유리하게 개정하거나 그도 아니면 독소조항을 삭제하면 되었기에 버핏은 얼른 한태일의 옷깃을 붙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한 국장, 이렇게 나가는 법이 어디 있소.”
“어디 있기는 여기 있지.”
“그러지 말고, 다시 앉아서 차근차근 이야기해 봅시다.”
“무슨 이야기를 더 합니까. 그러니 우리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없던 일로 합시다. 그리고 우리 고구려와 남북한 국민 다수는 어렵게 얻은 영토를 귀국 미국에 할양해주는
것에 반대가 극심하오. 그러나 우리는 귀국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니 그 조건에 할양하려면 하고, 말려면 진짜 마시오. 우리 고구려는 답답한 것 하나도
없으니까.”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자니까요.”
“더 이야기할 것도 없으니까 진짜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마시오. 그리고 이 협상이 결렬되는 즉시 후텐마 기지와 가데나 기지를 포함해서 오키나와 주둔 미군은 모두 철수해야 할
것이오.”
“뭐요?”
“뭘 그리 놀라시오. 그리고 그리 놀랄 시간에 속히 그 조건이나 수용하시오. 아니면 미군은 어디에도 주둔할 수 없을 것이니까.”
이때 오키나와 주민은 모두 소개됐고, 오키나와 본섬 나하 공항에는 남북한과 고구려군이 임시 주둔지를 마련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남북한과 고구려의 최초 통합군인 통합
해군이었다.
그리고 이 속에는 통합 해병대도 있었는데, 역시 주축은 한국 해병대였고, 북한 인민군의 해군육전대와 고구려 해군의 육전대 일부도 있었으나 이들 모두는 이제 남북한과 고구려 통합
해병대 1사단으로 병력은 약 5,000명 수준이었다.
또한, 이들을 지원하고 오키나와 해역과 남한국해(동중국해)와 동남아해(남중국해), 태평양 일부를 담당할 통합 해군도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아직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수준으로
한일전쟁에서 노획한 옛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수송함과 연안 초계함, 한국의 윤영하급 미사일 고속함 등이 총 전력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남북한과 고구려 합동해군에는 항공모함 3척과 전략 핵잠수함(SSBN) 9척, 단군왕검급 핵잠수함 9척, 이즈모급 강습상륙함 3척, 한국형 방공구축함 15척, 55형
난창급을 개량한 신형구축함 15척 등이 배치될 예정이었다.
그건 그렇고 고구려 외교국장 한태일과 미 국무장관 버핏의 담판은 그 이후에도 제법 이어졌으나 미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단 하나도 더 얻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오키나와의 관할권이 한국도 북한도 아닌 고구려에 귀속되는 바람에 미국은 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으니 고구려는 미국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도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구려의 강경하고 당당한 태도 덕분에 프랑스가 약탈 문화재인 직지심체요절,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檀經) 목판본 단행본, 왕오천축국전 등을 한국에 스스로 반환하면서 머리를
숙였다.
그래도 고구려는 프랑스 기업들을 연비 조작과 차별 판매금지법 위반으로 기소해서 1조 원의 벌금과 함께 재판을 받게 했다.
그리고 곧 그 1심 재판 결과가 나올 예정이었으나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재판인 관계로 보나 마나 벌금 1조 원은 확정될 것이고, 관계자와 회사 대표는 징역 3년이 선고될
것이었다.
“그러지 말고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자니까요.”
“더 협의해봐야 나올 것도 없소. 그리고 그 조건이 마음에 안 들면 없던 일로 합시다. 그러니 그 조건으로 귀국 바이든 대통령께 결재를 받으시오. 그럼 다 같이 웃으면서 여기서
다시 만나 협정서에 도장을 찍읍시다.”
“진짜 이것이 최선이오.”
“그렇소. 그럼 나는 진짜 이만.”
고구려 외교국장 한태일과 미 국무장관 버핏의 오키나와 일부 할양 협상은 이것으로 일단 끝이 났으나 미국의 끈질긴 요청으로 북경에서 다시 만나 2차 협상에 들어간 2022년 12월
중순 월드컵도 끝이 났다.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은 선전에도 불구하고 8강 진출이 좌절되어 한국 국민만이 아니라 고구려 국민과 북한 인민까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다음 월드컵부터는 남북한과 고구려가
공정하게 선수 선발을 하고 그렇게 단일팀을 구성해서 출전하자는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고구려도 프로축구팀을 창단하고, 거기에 북한의 축구팀을 더해서 남북한과 고구려가 단일리그로 프로축구리그를 운영하자는 제의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즈음 프랑스가 반환한 문화재와 옛 일본에서 회수한 문화재 등으로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환수 문화재 특별전은 여전히 성황이었다.
그리고 그 특별전에 민재인 위원장과 이세연 대통령 그리고 내가 참석해 기어이 2차 한중전쟁에 관한 논의를 끝내기에 이르렀다.
2차 한중전쟁에 관한 우리 세 사람의 논의가 끝나자마자 다음으로 남북한과 고구려의 실무진이 만나서 2차 한중전쟁에 관한 논의가 아닌 일본에서 회수한 문화재에 관한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좀 뜬금없는 문화재 회수에 관한 논의였지만, 이때 일본에서 회수한 문화재만도 무려 2만여 점이 넘었고, 지금도 계속 회수되고 있었기에 그 많은 문화재를 다 한국이 보관 관리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열린 논의였다.
하여 이 회의로 북한 지역에서 약탈당한 문화재는 북한이 보관 관리하고, 만주 등 고구려 지역에서 약탈당한 문화재와 옛 중국에서 약탈당한 문화재는 고구려가 보관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청장님, 저 몽유도원도는 어디에 있다가 약탈당한 것인지 정확하게 모르니까 우리 공화국이 관리하는 것이 어떨까요?”
“민은정 중장님, 저건 아마도 한양에 있다가 약탈당했을 것이니 우리 대한민국이 관리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을까요.”
“그럼 안중근 의사에 관련된 것들은요?”
“그건 우리 고구려가 가져가야지.”
“안중근 의사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니 우리 공화국이 가져가야지.”
“비록 고향은 황해도 해주이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곳은 합이빈(하얼빈)이니 당연히 우리 고구려가 가져가야지.”
“그럼 우리는 뭘 가져가라고.”
“저 고려청자는 어때? 아무리 봐도 저건 북한 지역에서 약탈당한 것 같으니까 말이야.”
“수월관음도와 고려 불화들도 공화국 개성에서 약탈당한 것이 분명할 것이니까 그럼 저것들도 우리가 다 가져간다.”
“그중에는 우리 서울에서 약탈당한 것들도 있을 것이니 그건 억지입니다.”
“그럼 우리 공화국은 도대체 뭘 가져갑니까?”
“북한 지역에서 약탈당한 것만 가져가시면 되죠.”
이 회의에는 한국을 대표해서는 문화재청장 김종명이 나와 있었고, 북한을 대표해서는 민은정 중장 그리고 고구려를 대표해서는 수진이 나와 있었다.
수진과 민은정이 문화재에 관한 전문지식은 없었지만, 각국을 대표해서 나온 문화재 전문가들과 실무진이 결정하지 못한 유물에 대한 최종적인, 즉 정치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전권
대표였기에 이렇게 유물 하나하나의 마지막 향방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