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과 고구려(6)
고구려 1기동군단에 의해서 홋카이도가 완전히 점령된 것은 그때쯤이었다.
홋카이도는 주민을 소개할 필요가 없었기에 고구려 1기동군단은 왜 군정사령부의 요청에 따른 조처만 취하고는 안정화 그리고 식민지화 작업을 개시하면서 일시나마 그곳에 주둔했다.
그와 반대로 오키나와는 주민을 소개해야 했기에 아직 완전히 점령되지는 않았지만, 나하 항구에는 옛 일본에서 동원한 각종 여객선과 화물선 수백 척이 줄을 서서 오키나와 주민을 태우고
있었다.
이들은 각각 시코쿠와 혼슈 등으로 수송될 예정이었는데, 그곳에는 이들 오키나와 주민을 수용하거나 정착시키거나 할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즉 이들은 배에서 내리는 순간 노숙자가 되거나 가진 돈으로 숙소를 마련하거나 해야 했으니 그것이 바로 왜 군정사령부가 원하는 것이었다.
이 바람에 야마구치와 후쿠오카 그리고 규슈 나머지 지역 등의 피난민까지 옛 일본 전역을 떠돌아다닐 것이니 사회불안은 더 가중될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가진 돈으로 정착지를 구한 이들도 제법 되었으니 노숙자로 전락할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옛 일본의 적십자 등 민간단체들이 또한 이들을 돕고 있었으니 유리걸식할
이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주석, 내 이 남경으로 오면서 보니까 아직도 모택동 얼굴이 그려진 위안화가 돌아다니던데, 초나라 유통 화폐를 원화로 바꾸라고 지시한 것이 언제인데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오.
그리고 길거리에 우리 한글로 된 간판도 별로 보이지 않고, 우리말로 물어도 대답하는 자도 별로 없고, 한국어 교육은 제대로 하는 것이오?”
“부위원장님, 개인이 가진 위안화를 모조리 회수할 방법이 없어서 일부 유통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항복 조건 15항에 따라서 초중고대학에서 남북한이 제공하는 역사 서적으로 남북한의
역사를 주 2시간 가르치고, 한국어는 제1외국어로 지정해서 주 6시간 이상 가르치고 있습니다.”
“개인이 가진 위안화는 통용을 금지하고, 각 은행에서 원화로 바꿔주면 될 일 아니오. 그리고 주 6시간 이상 가르치는데, 간단한 우리말도 못 알아듣는 학생들은 뭐요?”
“개인의 위안화 통용은 당장 중단시키고, 은행을 통해서 원화로 환전해주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어 교육을 더 늘리고, 거리의 간판과 안내판도 전부 새로 정비하겠습니다.”
초나라로 오자마자 주석 이극강(리커창)을 만난 고구려위원회 부위원장 김명남은 이렇게 쏘아붙였다.
이때 초나라에서도 한국 원화가 대대적으로 유통되고 있었는데, 한국 본토에서 통용되는 지폐와 다른 점은 지폐의 초상 인물이 다르다는 것뿐이었다.
즉 한국에서는 1,000원, 5,000원, 1만 원, 5만 원권 초상 인물이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인데, 초나라 아니 고구려와 북한, 위구르, 홍콩 곧이어서는
옛 일본에서도 통용될 원화의 지폐 초상 인물은 1,000원권은 대조영, 5,000원권은 동명성왕, 1만 원권은 그대로 세종대왕, 5만 원권은 광개토태왕, 10만 원권은
단군왕검이었다.
이 인물 선정에는 고구려의 강력한 주장과 북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우선 고구려는 지금의 고구려 영토가 예전부터 우리 민족의 고토라는 것을 증명할 인물로 단군왕검과 동명성왕,
광개토태왕, 대조영을 내세워서 지폐 초상 인물로 그 위인들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북한은 김일성을 지우기 위한 작업 즉 북한 화폐의 초상 인물이 김일성이기에 내가 그 목적으로 강력하게 이 화폐를 고집했다.
비록 다수의 반대가 있었지만, 나는 누구의 반대도 극복하고 내 뜻을 관철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대로 밀어붙여서 이 한화(韓貨)가 북한에서 전면적으로 유통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남북한과 고구려는 이미 화폐가 통일된 것이다.
거기다가 위구르와 홍콩도 이 화폐를 쓰고 있었고, 지금은 초나라까지 이 화폐를 쓰도록 압박을 가하는 중이었으며, 곧 옛 일본도 엔화 대신 이 화폐를 쓸 것이니 이 동북아에서는 이
한화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것이다.
“당장 그렇게 하시오. 그리고 프랑스산 물품의 전면 수입 중단과 초나라인들의 프랑스 관광 전면 중단, 초나라에서 영업 중인 모든 프랑스 기업의 영업 중단, 프랑스 투자 금지와 투자
자산 회수 등의 조처는 철저하게 이행 중이오.”
“그 조처들은 철저하게 이행 중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놈들이 우리와 한번 해보자고 나오니 한번 놀아주어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초나라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하오.”
“물론입니다. 더 철저하게 조처하겠습니다.”
“좋소. 그리고 또 주석이 해주어야 할 일이 있소.”
한화(韓貨)의 전면 통용, 한국어 교육, 프랑스산 물품의 수입 중단, 프랑스 관광 중단, 프랑스 기업 영업 중단, 프랑스 투자 금지와 투자 자산 회수 등의 조처에 이어서
고구려위원회 부위원장 김명남이 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초나라 주석 이극강(리커창)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Y-20 제트 전략 수송기와 창정 로켓과 인공위성 등 모든 항공 우주기술과 기술자들을 우리 고구려에 내어주는 것이오. 또한, 동풍 미사일 관련 기술과 레이저
무기, 무인기 기술도 모두 내주시고, 그 기술자도 모두 내주시오. 아울러서 대련조선소에서 일할 조선 기술자 특히 항공모함 건조와 구축함 건조 경험이 있는 기술자 1만 명도
내주어야겠소. 그래야 우리 고구려와 북남이 건조하는 모든 함정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안에 다 건조할 것이 아니겠소. 아시겠소.”
“이미 대련조선소에는 우리 기술자들 2,000명이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시 1만 명이라고요. 그리고 Y-20 제트 전략 수송기와 창정 로켓과 인공위성 기술 등의 모든
항공 우주기술과 동풍 미사일 관련 기술과 레이저 무기, 무인기 기술도 이미 모두 내주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나머지 기술자들은 전쟁 중에 뿔뿔이 흩어져서 우리도 찾을 수
없는······.”
“하하하! 주석, 전쟁 중에 뿔뿔이 흩어져 찾을 수 없다니 농담이 지나치시오. 그러니 사흘 안에 모두 찾아 놓으시오. 그사이 우리는 요즘 고구려와 북남에 대한 시위가 빈발한다는 이
남경과 상해를 살펴보고, 우리와의 항복 조건에 어긋나는 행위가 없는지 철저하게 살펴보고 올 테니까 말이오.”
“부위원장님, 남경과 상해는······.”
“주석, 내 눈으로 직접 초나라가 과연 항복 조건을 지키는지 아닌지 확인하려는데, 왜 그러시오? 혹 주석이 뒤에서 고구려와 북남 반대 시위를 조종하시오. 아니라면 그냥 있으시오.”
이때 고구려 국방과학연구소 대련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항공모함 고구려함과 여타 구축함 등의 건조에 투입된 초나라 기술자만 해도 총 2,000명이었는데, 이들은 하루에 16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각 함정을 건조했다.
그리고 고구려와 남북한의 기술자들은 일일 3교대로 일하면서 그들을 관리, 감독, 감시까지 했으니 각 함은 24시간 쉬지 않고 건조되고 있었다.
그런데 초나라를 방문한 고구려위원회 부위원장 김명남은 다시 1만 명의 초나라 기술자들을 더 요구한 다음 남경과 상해까지 방문하겠다면서 이렇게 말한 다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구려위원회 부위원장 김명남이 이렇게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을 한마디로 간단하게 정리하면, 초나라에 미끼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일단 이렇게 미끼를 던졌으니 이제부터는 꼬투리까지 잡아야 했으므로 초나라 주석 이극강과 더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남경과 상해를 둘러보는 것이 더 좋았기에 김명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특히 이즈음 반고구려와 남북한 집회가 연일 벌어지는 현장을 둘러보면 꼬투리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국방국장은 이제부터 초나라 자위대를 살펴보시고, 산업국장은 정말 초나라가 프랑스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행하는지부터 좀 살펴보시오.”
“예, 부위원장님.”
“국방국장은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니 잘 좀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 확실하게 꼬투리를 잡아서 초나라가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니까요.”
고구려위원회 부위원장 김명남은 한중전쟁 당시 북한 호위사령부 예하 91수도군단장이었고, 고구려 국방국장 서진성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위치가 역전되어 한 명은 부위원장, 또 한 명은 국방국장이었으나 둘은 남북한이 아닌 고구려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종국에는 남북한과 고구려의 공동 이익을 위해서 알력
없이 이렇게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초나라 항복 조건 1항은 중화와 중국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가 들어간 국호를 영원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중화 민족, 중국이라는 이름까지 사용하지 못하고, 그런
내용을 교육하지도 못한다는 것이었기에 국명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초(楚)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이 1항이 단지 자존심의 문제라면, 항복 조건 2항부터는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이었으니 우선 2항은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핵무기 등 대량파괴무기를 연구, 생산,
보유, 배치하지 못하고, 레이저 무기, 레일건 등 신무기도 연구, 생산, 보유, 배치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사찰을 받는다.
3항은 탄도 미사일의 연구, 생산, 보유, 배치를 금지한다. 그리고 탄도 미사일로 전용될 소지가 있는 로켓의 연구, 생산, 발사, 보유를 금지하고, 기타 순항 미사일, 대공미사일,
대함미사일 등등 여타 모든 미사일의 사거리는 50km, 탄두 중량도 50kg 이하로 제한하며, 생산량과 보유, 배치 수량은 각 미사일 당 200발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허가를 받아야 생산, 보유, 배치한다. 또한, 과학, 항법, 기상, 탐사, 통신, 군사 등 어떤 형태의 위성이든 연구, 생산, 발사, 보유도 금지한다. 단,
민간용 통신위성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허가를 받아 임대하여 사용할 수 있다.
4항은 어떤 형태든 핵 추진 함정을 연구, 생산, 보유, 배치하지 못한다.
5항은 5세대 이상의 전투기와 폭격기, 무인기 기타 항공기를 연구, 생산, 보유, 배치하지 못한다는 이런 내용이었기에 고구려 국방국장 서진성이 사찰해서 꼬투리를 잡을 것은 얼마든지
널려있었다.
그리고 항복 조건에는 초나라가 분명하게 남북한에 사찰을 받는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기에 고구려 국방국장 서진성은 얼마든지 초나라의 아무 곳이나 사찰해서 그런 군사용 무기를 연구,
생산, 보유, 배치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꼬투리를 잡는 것은 사실상 그의 마음에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