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 통치(10)
오지용이 이렇게 8군단장이자 일본 원정군사령관인 박수일, 특전사령관 장인재 그리고 자신이 데려온 믿을만한 일꾼들을 조용히 불러서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 그 실행에 들어갔다.
그 결과 일본이 또다시 요동을 치려는 시점, 대한민국 광화문광장에서는 일본의 항복 의식과 사과의식이 끝났다.
그리고는 진정한 사과와 배상도 받지 못하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 징병과 강제 징용 피해자를 위한 추모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런 추모제가 경건한 가운데 끝나자 이번에는 일본의 항복을 축하하는 축하공연이 열렸고, 그 공연은 끝없이 이어져서 그날 해가 지자마자 불꽃축제로까지 다시 이어졌다.
그 불꽃축제를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은 지난 100여 년 일본에 당한 설움과 울분과 분노와 치욕을 어느 정도까지는 달랠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일본에 대한 복수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든 서울에서의 그런 한마당축제가 끝나자 이번 항복 의식 차례는 당연히 북한 평양이었다.
대한민국 서울 광화문광장에서의 항복 의식 다음 날 오전 10시,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는 약 180만 명의 북한 주민이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한국과 고구려에서 온
요인들을 반기는 가운데 일본의 항복 의식이 열렸다.
그들 180만 명이 지르는 환호성에 대한민국과 고구려에서 온 이들은 우선 귀가 먹먹해지는 경험부터 하고는 그 숫자의 군중에 질려서 벌어진 입을 좀처럼 닫지를 못했다.
그런 가운데 항복 의식을 위해 끌려 나온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전 총리 등도 군중의 환호성에 질린 표정으로 단상 앞에 꿇어앉아 있었다.
“경애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과 인민군 장병 여러분, 대한민국과 고구려에서 오신 내외빈 여러분, 지금부터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전 총리와 부총리
니시가와, 전 부총리 아소, 외무상 에사키, 전 외무상 도테기, 방위대신 마사요시, 전 방위상 고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식으로 항복하는 항복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오늘의 사회를 맡은 호위사령부 민은정 중장입니다. 그럼 가장 먼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총비서 김정은 동지님과 대한민국 이세연 대통령님과 민재인 고구려위원회 위원장님이
입장하겠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 동원피해자와 그 유족이 입장하겠습니다. 역시 우레와 같은
박수 부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0명, 강제 동원피해자 100명 그리고 사망하신 분의 유족 100명이 사과를 받았다면, 북한에서는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 7명과 강제 징용피해자
23명, 강제 징병 피해자 11명과 먼저 하늘나라로 간 피해자들의 유족 100명이 이 항복 의식에 참석했다.
“그럼 식순에 따라서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전 총리 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항복하는 위대한 항복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항복 의식은 이미 동경과
서울에서 한 것과 같은 구배구고두례(九拜九叩頭禮)의 예로 진행되겠습니다.”
평양에서도 항복 의식 식순에 따라 궤와 일배(一拜)까지 민은정이 말했지만, 역시 일왕 나루히토 등은 순순히 절을 하지 않았으나 역시 강제로 절을 해야 했고, 이마로 땅을 세차게
찍어야 했다.
그리고 재배(再拜), 삼배(三拜), 사배(四拜), 오배(五拜), 육배(六拜), 칠배(七拜), 팔배(八拜), 구배(九拜)까지의 순서가 이어졌고, 기(起)의 순서에 따라서 일왕
나루히토 등을 일으켜 세우는 것으로 옛 일본 동경과 서울에 이어서 평양에서도 항복 의식을 마쳤다.
그러나 곧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 동원피해자 그리고 유족에 사과하는 사과의식이 진행됐다.
그렇게 의식이 대충 끝나자마자 평양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또 울려 퍼졌고, 그 소리에 내 귀도 먹먹해질 판이었는데, 민재인 위원장이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인원을 얼마나 동원한 거요?”
“동원하다니요. 다 자발적으로 나온 자랑스러운 인민입니다. 그리고 서울 시민도 약 100만 명이 모였는데, 우리 공화국 인민이 이 정도도 안 모이면 되겠습니까.”
“김 총비서가 자주 하는 말 한마디 해야겠소.”
“무슨 말이요?”
“헐!”
“하하하!”
항복 의식과 사과 의식이 끝나자마자 진짜 북한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들이 펼쳐졌고, 이어서는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그 축하공연을 좀 보다가 자리를 옥류관으로 옮겨서 민재인 위원장, 이세연 대통령과 조촐한 만찬을 가졌으니 동경, 서울에 이어서 벌써 세 번째 만찬이었다.
“각국의 해군과 합동해군 구성과 전력 증강은 이미 합의되었으니 공군은 어떻게 할 겁니까?”
“김 총비서는 이 좋은 자리 특히 이세연 대통령은 처음으로 옥류관에 왔다는데, 냉면이 목에 넘어가지도 않게 무슨 그런 말부터 하시오.”
“냉면 드시면서 말 들으면 되죠.”
“또 이 말이 나오네. 헐!”
“진짜 그럴 겁니까.”
“두 분은 또 싸우십니까?”
“싸우기는 누가 싸웁니까. 그러니 이 대통령님은 냉면이나 드십시오. 그리고 공군도 합동공군을 구성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대한민국 이세연 대통령 때문에 내가 이렇게 말하고, 이어서 묻자 민재인 고구려위원회 위원장이 이렇게 대답했다.
“합동공군이든 각국 개별 공군이든 고구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새로 나올 F-1 삼족오 전투기의 개량형인 F-1A 또는 F-1B 삼족오 전투기를 보고 결정합시다. 육군도 지금 나온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공격헬기 등의 성능을 보고 결정하고 말입니다. 또한, 일본에서 획득한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미쓰비시 F-3 스텔스기 기술 등도 있으니 더 새로운 기종이
탄생하지 않겠소. 그러니 공군도 그때 보고 또 전력을 어떻게 운용할지 결정하면 되지 않겠소.”
“뭐 그러면 될 것도 같네요. 이 대통령님은 민재인 위원장님의 이 제안 어떻습니까?”
“이번에 얻은 일본 전투기 기술까지 더해서 삼족오 성능을 개량하면, 그 기체를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육군도 마찬가지고요.”
“두 분이 그렇다면 나도 알았습니다. 그럼 이제 술이나 마시죠. 민재인 위원장님이 잘 운영하는 고구려에서의 항복 의식은 내일이 아닌 모레니까. 자, 한잔 드십시오. 우리도 오늘은
진짜 축하주를 한번 마셔 보게 말입니다.”
평양 옥류관에서 나와 민재인 위원장 그리고 이세연 대통령은 사흘 동안 3번의 만찬을 가지면서 일본의 항복을 축하하고,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강 수석님, 많이 드세요.”
“민 장군님도 많이 드셔요. 그런데 속 안 쓰려?”
“술 별로 안 마셨는데, 강 수석은 속 쓰려?”
“나는 조금. 일본에서는 서한국 때문에 술 많이 마시는 바람에 어제는 좀 고생했는데, 오늘은 괜찮네.”
“한국 동생은 뭐래?”
“뭐라기는 그놈의 수정 씨! 수정 씨! 그게 다야.”
“호호호! 좋아하기는 좋아하는가 보다.”
“완전히 맛이 갔어. 그러니 이 누나는 안 보이고, 하는 말마다 수정 씨! 수정 씨! 그것뿐이야.”
“그런 한국 동생이 솔직히 부럽지?”
“뭐.”
“그러니 강 수석도 그 서 대위랑 잘 해봐.”
나와 민재인 위원장, 이세연 대통령이 만찬을 즐기는 한쪽에서는 민은정과 수진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전(前)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전 총리 등은 평양 시내를 끌려다니고 있었고, 이를 본 평양시민은 밀가루를 뿌리고, 달걀을 던지고, 물을 뿌리면서 있는
욕 없는 욕을 해댔다.
그렇게 북한 주민도 지난 100여 년 일본에 맺힌 한을 다소나마 푼 이틀 후 고구려 북경 천안문 광장에는 북경시민과 고구려 국민 50만여 명이 모여서 동경, 서울, 평양에 이어서
진행된 항복 의식을 지켜봤다.
이때의 북경은 예전 중국 수도 북경의 물을 상당히 빼고, 더욱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고 있었으니 일단 모든 도로 표지판, 안내판, 간판 등등이 전부 한글이었고, 중국적인 느낌의
건물은 대부분 헐리고 그 자리에는 공원이나 작은 숲이 조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인구도 원래 북경과 천진 인구를 더하면 약 3,333만 명이었는데, 고구려 북경은 천진과 합쳐서 북경이 되었어도 인구가 800만 명이 되지 않았기에 인구 과밀로 말미암은
문제는 별로 없었다.
어떻든 그런 북경에서 일왕 나루히토,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등이 역시 구배구고두례의 예로 항복 의식을 하고, 그날로 전범으로 기소됐다.
옛 중국 시진핑 등은 전범으로 기소되어 이미 고구려 최고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상태로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일왕 나루히토 등은 이제부터 고구려에서 전범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다.
***
서울과 평양 그리고 북경에서 일본의 항복 의식이 있은 얼마 후 고구려 1기동군단이 홋카이도 점령 작전을 전격 실시했다.
이 고구려 1기동군단은 군단이 창설되고 사상 처음으로 전 예하 부대가 동원되어 기동훈련이 아니라 실전 기동을 하면서 홋카이도 점령 작전에 나선 것이다.
이전 있었던 시코쿠 점령에는 전 군단이 다 동원되지 않았으니 사실상 이것이 전 군단이 동원된 첫 번째 작전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선봉 부대인 군단 예하 강습대대가 러시아의 Mi-26(Mil Mi-26/나토 별칭 Halo) 수송 헬기에 타고 삿포로 시청 주차장 상공과 인근 홋카이도 도청
상공으로 들어왔다.
이 Mi-26 수송 헬기는 러시아 밀사가 개발한 초대형 헬리콥터로 현재까지 만들어진 군용과 상업용 중에서 가장 큰 헬리콥터로 수송량은 C-130 허큘리스 수송기와 같으며,
CH-47 치누크 헬기의 2배다.
그런 헬기 8대를 고구려가 러시아의 한일전쟁 불간섭에 대한 보답 차원으로 도입했고, 북한도 기존 4대를 운용하던 것에 더해서 역시 같은 이유로 4대를 추가 도입했으며, 한국도
8대를 도입해 주었다.
그러나 이 헬기 도입만이 아니라 남북한과 고구려는 러시아와 최대한의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었으니 비단 시베리아횡단철도, 시베리아 개발, 천연가스와 지하자원 수입뿐만이 아니라
이때에는 의료, 농업, 관광, 철도 등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어떻든 그런 Mi-26 수송 헬기 4대에 고구려 1기동군단 강습대대원 360명이 타고 왔고, 이들 강습대대를 호위하고 온 공격헬기도 있었다.
그 공격헬기는 여타 다른 기종이 아니라 옛 중국의 공격헬기 WZ-10을 고구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개량한 기종으로 AH-1 청룡이라는 제식 명칭까지 부여받은 기종이었다.
성능은 최대속도 300km/h, 순항속도 270km/h, 항속거리 800km, 상승한도 6,400m, 승무원 2명, 길이 14.15m, 로터 직경 13m, 높이 3.85m, 탑재
중량 7,000kg, 유효탑재량 1,500kg, 최대이륙중량 7,000kg, 무장으로는 30mm 기관포와 천검 대전차미사일, 철검-1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로켓 등으로 거의 원
기종인 WZ-10과 비슷하거나 같았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무장으로 30mm 기관포와 천검 대전차미사일, 철검-1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이 달리는 것부터가 달라졌다.
또한, 조잡한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남북한과 고구려가 심혈을 기울여서 개량한 기종이었고, 여러 가지 편의장치와 생존 장치도 더 추가해 성능은 더 향상된 기종이었다.
“빨리빨리 장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