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김정은-384화 (384/470)

군정 통치(8)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일본 총리 이시바 등의 항복을 받는 항복 의식 이후 가진 만찬에서 나와 민재인 위원장 그리고 다시 이세연 대통령까지 합세해서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바람에 남북한과 고구려의 다른 참가자들은 우리 눈치를 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어우러져서 술도 마시고, 노래고 부르고, 서로서로 축하도 하면서 제법 시끌벅적한 만찬을

밤늦도록 이어갔다.

그러나 다음날 오전 7시도 되지 않아서 동경 국제공항에서는 남북한과 고구려의 전용기와 전세기들이 날아올랐고, 나와 민재인 위원장 그리고 이세연 대통령이 탄 전용기는 오전 7시

정각에 역시 날아올라 한국 서울공항으로 직행했다.

“강수진 수석과 서한국 중사하고는 이야기 많이 했어?”

“예, 총비서 동지. 그리고 서한국 중사는 하수정 중사와 이미 결혼하기로 약속까지 했답니다.”

“진짜야?”

“예, 둘이 벌써 그렇고 그런 관계로······.”

“젊음이 좋긴 좋네.”

“그래도 너무 빠른 것 같지 않습니까?”

“빠르기는 뭐가 빨라. 어떻든 둘이 잘되도록 지원 많이 해줘.”

“물론입니다. 팍팍 밀어주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공화국에서의 항복 의식은 준비 잘되고 있지?”

“대대적인 준비를 하고 있으니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성대할 것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야. 민 중장, 그 일본 왕궁에 예쁜 소나무와 정원수가 제법 많던데, 오지용 사령관에게 연락해서 공화국으로 좀 보내라고 해. 그럼 주석님 광장과 대동문 광장 한편에

심어서 승전 기념공원을 만들게 말이야.”

“승전 기념공원이라 그거 아주 좋겠습니다. 총비서 동지. 그것도 일본 왕궁의 소나무와 정원수를 가져와서 조성한 공원이라니 말입니다. 즉각 연락하고, 북경에도 연락해서 시진핑 전

주석 등이 살던 중남해의 나무도 몇 그루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옛 일본과 중국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나무로 승전 기념공원을 멋지게 가꾸면, 정말 보기가 좋을 것이야. 인민들도 그 나무를 보면 공화국 인민이라는 자부심도 생길

것이고 말이야.”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민은정과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내 전용기이자 옛 중국에서 노획해서 개조한 보잉 787-8I가 이세연 대통령의 역시 같은 기종에 이어서 두 번째로 서울공항 활주로에

내렸다.

그런 다음 민재인 위원장을 태운 전용기가 아닌 고구려 항공 전세기가 착륙했다.

이어서는 대한민국 정부 전용기와 북한 정부 전용기, 고구려위원회 전세기 등이 내려앉아 서울공항은 일대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대한민국 대통령을 태운 전용차와 나와 민재인 위원장의 차량과 우리와 같이 온 남북한과 고구려의 인물들이 탄 승용차와 전세버스들, 그리고 이를 경호하는 경찰차와

경호원들의 차량에 서울공항과 오늘의 목적지인 광화문 광장까지의 도로는 모두 통제됐다.

어떻든 일본의 항복 의식에 참석했던 거의 모든 남북한과 고구려의 요인들이 한국 광화문 광장에 도착한 것은 10시가 좀 안 된 시간이었다.

그때 광화문에는 약 100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모여서 이미 끌려 나온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전 총리와 부총리 니시가와, 전 부총리 아소, 외무상

에사키, 전 외무상 도테기, 방위대신 마사요시, 전 방위상 고노 이상 10명을 향해서 물병을 던지고, 물을 뿌리고, 달걀에 밀가루도 던지고, 욕설도 퍼붓고 있었다.

이들 10명은 오늘 새벽 군용수송기 편으로 서울공항으로 들어와서는 이곳 광화문 광장으로 끌려왔으니 역시 일본 왕궁 앞에서의 항복 의식에 이어서 대한민국 광화문광장에서도 항복 의식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음은 평양 김일성 광장이었고, 마지막으로는 고구려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항복 의식을 해야 했으니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등은 총 4번이나 항복 의식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 남북한과 고구려 국민의 가슴에 쌓인 응어리가 조금은 풀어질 것이라는 나와 민재인 위원장 그리고 이세연 대통령의 생각 때문이었다.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오늘 항복 의식의 사회를 맡은 청와대 대변인 이지연입니다. 지금부터 전(前)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등의 항복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세연 대한민국 대통령님과 민재인 위원장님, 김정은 총비서님이 입장하겠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부탁합니다.”

이런 소개를 받고 광화문 앞에 마련된 단상에 올라가니 끝도 없이 이어진 약 100만 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나를 보고 지르는 것이 아니라 이세연 대통령과 민재인 위원장을 보고 지르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세연 대통령님과 민재인 위원장님 그리고 김정은 총비서님 등 내빈이 자리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진정 이 항복 의식의 주인공이어야 하는 분들을 모시겠습니다. 박수 부탁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강제 동원피해자와 그 유족분들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다시 한번 더 부탁합니다.”

사회자 청와대 대변인 이지연이 이렇게 말하자마자 생존해 계신 대한민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10명과 강제 동원피해자 100명 그리고 사망하신 분들의 유족 100명이 박수를

받으면서 단상으로 올라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으니 바로 내 앞이었다.

이건 내가 이미 지시해서 북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 동원피해자와 그 유족도 항복 의식에 참석하도록 조처해 놓았는데, 한국이 선수를 친 것이었으나 그러면 어떻겠는가.

남이든 북이든 이들은 일본의 사과를 받아야 했고, 보상도 받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 전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등이 대한민국에 항복하는 위대한 항복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항복 의식은 이미 동경에서 한 것과 같은

구배구고두례(九拜九叩頭禮)의 예로 진행되겠습니다. 그럼 식순에 따라서 먼저 애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애국가 제창에 이어서 항복 의식 식순에 따라 궤(?)와 일배(一拜)까지 사회자가 말했지만, 역시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등은 순순히 절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역시 그들 옆에 붙어서 있던 군사경찰들이 강제로 절을 시킨 다음 이마가 땅을 세차게 찍도록 내리눌러버렸다.

그리고 재배(再拜), 삼배(三拜), 사배(四拜) 이어서 오배(五拜), 육배(六拜), 칠배(七拜), 팔배(八拜), 구배(九拜)까지의 순서가 이어지고, 마지막 기(起)의 순서에 따라서

일왕 나루히토 등을 일으켜 세웠다.

이것으로 일본 동경에 이어서 서울에서도 구배구고두례로 즉 아홉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새로운 항복 의식을 마쳤다.

그러자 진짜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광화문광장에 울려서 퍼졌으니 그것은 약 100만 대한민국 국민이 내지르는 일본에 대한 그간의 울분과 분노와 승전과 항복에 대한 기쁨과 희열 등의

복잡다단한 감정의 표현이었으리라.

“이것으로 항복 의식은 마쳤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전 총리 등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 동원피해자 그리고 사망하신 분들의

유족에게 난생처음으로 사과하는 사과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전 총리 등이 일배(一拜)를 하고,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다시

재배(再拜)하고,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이렇게 총 구배(九拜)를 하고,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이렇게 피해자와 유족분들에게 사죄하겠습니다. 일배(一拜)!”

그렇게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총리 이시바, 전 총리 등은 또 강제로 9번을 절하고, 강제로 9번‘진심으로 사죄합니다.’라는 강압으로 겨우 외운 말을 토해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피해자들에게는 충분하지 못한 사과였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안은 될 것 같았다.

어떻든 서울 그것도 광화문광장에서 그렇게 일본의 항복 의식과 사과의식이 진행됐다.

***

대한민국 수도 서울 그것도 광화문광장에서 이렇게 항복 의식과 사과의식이 진행되는 그때 동경 일본 왕궁 궁내청에 임시로 차려진 왜 군정사령부에서는 사령관 오지용과 인민군 8군단장이자

일본 원정군사령관 박수일, 특전사령관 장인재, 4군단장 조성호, 7군단장 박성중과 한국군 1군단장 이철영, 5군단장 손석민, 6군단장 장수용, 해병대 사령관 강민철, 특수전 사령관

강대호, 항공작전사령관 조영호, 2군단 부군단장 이용기 소장 그리고 고구려 1기동군단장 박민식과 남북한과 고구려에서 군정사령부로 파견 온 공무원 일부가 모여서 작전회의를 하고

있었다.

“자, 오늘이 정식으로 하는 첫 회의이니 먼저 내 소개부터 하겠소. 나는 앞으로 5년간 이 왜 군정사령부 사령관을 맡을 오지용이오. 다들 반갑소이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나도 다들 반갑소이다. 그리고 부사령관이신 한국군 6군단장 장수용 중장, 인민군 4군단장 조성호 상장, 고구려의 임주영 장군을 소개하겠소.”

“장수용입니다.”

“반갑습네다. 조성호 상장입네다.”

“고구려의 임주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왜 군정사령부 사령관의 임기는 4년이 아니라 5년으로 결정됐다.

그리고 사령관은 북한 출신 오지용이었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부사령관은 한국군 6군단장 장수용 중장과 인민군 4군단장 조성호 상장, 고구려의 임주영이 맡았다.

“인사는 이만하면 된 것 같으니까 먼저 고구려 박민식 중장, 시코쿠는 다 점령했소?”

시코쿠는 고구려군이 일본에 상륙하자마자 점령을 시작했기에 오지용이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박민식 고구려 1기동군단장이 다른 생각은 할 것도 없다는 듯 이렇게 대답했으니 같은 군정사령부에 소속되지 않은 남북한과 고구려군도 이때에는 서로 거리낌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예, 그곳 주둔 자위대와 저항하던 민병은 모조리 사살했고, 일부는 항복을 받아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홋카이도와 오키나와인데, 한국 해병대 강민철 사령관, 오키나와로는 언제 출발하시오?”

“이 회의가 끝나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사령관님.”

드디어 오키나와 점령 작전도 완벽하게 준비가 됐고, 일본 정벌에 나섰던 대한민국 해병 1, 2여단과 포병여단은 이미 해군의 각 함정을 타고 동경 항구에서 출발한 상태였다.

그리고 새로 창설한 해병대 4여단은 부산항에서 역시 각 수송선을 타고 출발한 상태였으니 사령관 강민철 등과 이 점령 작전의 선봉에 설 해병대 사령부 예하 특수수색대대만 오키나와로

가면 되었으나 이들은 함정이 아니라 수송기를 이용할 예정이었다.

“오키나와 점령 작전은 강민철 사령관만 믿겠소. 그리고 공화국 해상저격여단도 수송기에 탑승해 사령관과 시간을 맞추어 오키나와로 가는 것으로 아는데, 서로 잘 연락하고 협조해서

오키나와를 조속히 점령해주시오.”

“잘 알겠습니다.”

“홋카이도는 고구려군이 간다고요?”

“예, 우리 1기동군단이 갑니다.”

“잘하겠지만, 그래도 한마디 보태자면 홋카이도도 조속히 점령해주시오. 그리고 시코쿠의 고구려군이 홋카이도로 가니 인민군 7군단이 그곳을 당분간 맡는다. 규슈는 국군 5군단이

정리해주시오. 박수일 사령관은 국군 1군단과 함께 혼슈의 나머지 점령지를 조속히 정리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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