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을 잡아라(12)
동경 항구로 그동안 남북한군과 고구려군을 일본 본토에 상륙시킨 한대자동차 소속 자동차 운반선 20척과 여타 해운 회사 소속 자동차 운반선 30척, 각종 화물선 100척, 건설장비
등을 전문적으로 수송하는 한대글로버스에서 동원한 수송선 20척이 입항했다.
“빨리빨리 내려!”
고구려군 육군 사령관 전 인민군 대장 정기영은 한중전쟁 때 북한 인민군 군단장으로 참전했다가 전쟁이 끝나자 고구려군으로 입대해서 육군 사령관이 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드디어 동경 항구로 일본 본토에 들어왔으니 그 혼자만이 아니라 민재인 위원장이 항공모함 고구려함 강제절단식에서 말한 그 고구려 3개 기동여단과 함께였다.
즉 그가 지금 일본 본토에서 싸우는 고구려 1기동여단과 이 3개의 기동여단 전체를 지휘하려고 직접 온 것이다.
그리고 이세연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때 말한 한일전쟁을 대비해서 모집, 징집, 자원입대한 병력은 전원 국군 6군단으로 배치되어 지금 부산항에서 배를 이용해 일본 본토로 오는 병력,
비행기를 이용해서 오는 병력 등으로 나뉘어 오고 있었으니 한국군과 고구려군은 이미 일본 점령 이후를 대비하고 있었다.
물론 북한군 1개 군단도 경의선 열차를 이용해 전원 부산에 들어와 있었기에 일본 본토에 상륙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2여단장, 병력 다 내렸으면 속히 미쓰비시 본사를 점령하라!”
“예, 사령관님.”
“3여단장도 병력 다 내리면 파나소닉으로 간다. 알았나. 그리고 4여단장은 일본은행 본점으로 간다. 역시 알았나.”
고구려 육군은 지금 일본에서 열심히 싸우는 1기동여단과 이 2, 3, 4기동여단 그리고 본토에서 훈련받는 5기동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을 통합 지휘하는 것은 고구려 육군
사령관 정기영이었다.
그러나 곧 이들 5개 여단으로 고구려 최초의 1군단이 창설될 예정이었으니 육군 사령관이 직접 각 기동여단을 지휘하는 것은 임시라고 해야 했다.
어떻든 고구려군은 동경 항구에 내리자마자 바로 실전에 투입되어 미쓰비시 본사와 파나소닉 그리고 일본 은행 본점으로 직행했다.
그러자 정기영 자신도 호위 부대로 따라온 고구려군 최초의 특수부대이자 장차 고구려 육군 특수전사령부의 모태가 될 대대 규모의 병력만을 데리고, 1기동여단과 합류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때 동경 하네다 국제공항 활주로에는 고구려가 러시아에서 도입한 수송기 An-74 C(COREA) 10대가 완전무장 한국군 6군단 병력 500명과 각종 보급품을 싣고 착륙했다.
그 뒤를 따라서는 민간 여객기들이 줄줄이 한국군 6군단 병력을 토해냈으니 고구려군에 이어서 한국군까지 착착 일본 본토로 증원되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까지 포로로 잡혔는데도 일본 왕궁으로 들어왔던 각 부대는 여전히 남아있는 자위대 패잔병과 민병 등을 소탕한다고 한동안 더 전투를 계속해야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저항하던 일본 자위대 패잔병과 민병 등은 모조리 소탕되어 일본 왕궁은 한국군의 손아귀에 온전히 떨어졌다.
“야, 명 하사. 기름은 가다가 아무 주유소에서나 넣으면 되니까 탄약만 빨리빨리 보충해. 빨리빨리.”
일본 왕궁으로 들어와 전투를 벌인 부대들은 왕궁이 정리되자 동경 각 곳으로 흩어져 진격하려고 했는데, 그중 가장 빠른 것은 역시 국군 1군단 5기계화보병사단 1연대였다.
특전사령관 강대호에게서 나리타 국제공항 장악을 조언받은 5기계화보병사단장 박인호의 닦달에 1연대가 쾌속 진군했기 때문이다.
그들과는 달리 이 사단 기갑수색대대는 사단장 박인호의 공치사와 더불어서 일본 왕궁에서 소비한 탄약 등을 보충받느라 약간 시간이 지체됐다.
그러자 나리타 공항에도 가장 먼저 가서 민항기 1대라도 노획하고 싶었던 진필호 중사가 기어이 명태성 하사와 김태범 병장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안 그래도 탄약만 보충하고 있습니다.”
“빨리빨리. 안 그러면 1연대 애들이 비행기 다 가로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서둘러도 K-808 장갑차 탄 애들보다야 빨리 갈 수 없지 않습니까?”
“모든 길에 차가 넘친다. 이 와중에도 피난 가는 차, 피난 가다가 버리고 간 차, 공격받아 파괴된 차, 그냥 방치된 차, 거기다가 파괴된 자위대 장갑차와 전차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K-808 장갑차들이 무슨 수로 그 많은 차량을 다 정리하면서 빨리 가겠냐.”
“그럼 우리도 빨리 가지 못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냥 밀어버리고 가면 되는데, 무슨 그딴 소리야.”
“그럼 장갑차들도 그냥 밀어버리고 가면 되지 않습니까?”
“고작 무게 16t에 420마력 엔진으로 밀기는 뭘 밀어. 가다가 기본이 700마력이 훨씬 넘는 페라리 같은 슈퍼카 만나서 오히려 밀리지나 말라고 해라. 그리고 적어도 우리처럼
1,500마력에 55t은 되어야지 제대로 밀어버리고 가지. 안 그래?”
“듣고 보니 그건 그렇겠습니다만, 그래도 페라리 같은 것에 장갑차가 밀린다는 말은 좀 너무합니다. 하나 도로에 승용차만 있는 것이 아니라 트럭도 다수 있을 것이고, 파괴된 자위대
전차라도 있으면 장갑차로는 어려움이 있겠습니다.”
“그러니 빨리 탄약만 보충해. 빨리!”
진필호 중사가 이렇게 말하는 그때 특전사령부 707 특임단은 그대로 일본 왕궁에 남아 일왕과 그 가족을 일단 감금해 놓고, 각 전각과 궁내청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 국군 1군단장 이철영과 2군단 부군단장 이용기 소장이 일본 왕궁으로 들어와 특전사령관 강대호 등과 마주 앉았다.
“우리 강습대대가 NHK를 완전 장악 통제하고, 방송 준비를 끝냈다니 일왕과 상왕을 그리로 데려가서 작전처럼 일본의 항복 방송부터 시행해야겠소.”
“그러시죠. 그런데 인민군 8군단은 아직 일본 총리 등을 잡지 못했답니까?”
“지하 벙커를 찾고 있다니 곧 찾을 수 있을 것이오. 그건 그렇고 궁내청과 저 밖의 일본 국회도서관, 국회도서관 지부 법무도서관, 법무성, 국립 공문서관 등은 정말 철저하게
수색해서 우리 문화재 또는 일제의 각종 만행을 기록한 자료들을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오.”
“이미 일제의 한반도침략조사위원회에 연락했으니 그들이 와서 정밀하게 조사할 것입니다.”
“그럼 일왕과 상왕을 NHK까지 707 특임단이 이송해주시오.”
“그러겠습니다. 하고 동경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 추석까지 전열을 정비하고, 일본 나머지 지역을 공략할 예정이시죠?”
“고구려군이 증원됐고, 우리 6군단도 들어오니까 그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병사들에게도 잠시 휴식도 줘야 하고 말입니다.”
“그럼 그러시죠.”
“그런데 일본의 방송사와 신문사, 통신사는 모두 점령됐소? NHK는 우리 강습대대가 점령했는데, 다른 곳 말이오.”
“그것이······.”
이렇게 말을 흐린 것은 2군단 부군단장 이용기 소장이었다.
특전사령부는 일본 왕궁을 점령하는 것이 작전이었기에 그 일에 충실했고, 1군단은 NHK라는 일본 공영방송을 장악했으니 자신의 2군단도 적어도 한 곳이라도 일본의 방송사는 점령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당장 움직입시다. 우리 1군단이 도쿄 TV, 니혼TV, 후지TV, 아사히TV, KNTV, 교도통신사, 아시아프레스 인터네셔널을 점령하겠으니 2군단은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KDDI와 일본전신전화 주식회사부터 장악하시오.”
국군 1군단장 이철영이 이렇게 말하자 2군단 부군단장 이용기 소장이 그 즉시 대답했다.
그래도 자신이 지휘하는 2군단이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KDDI와 일본전신전화 주식회사는 장악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면 우리 특전사는······.”
“707 특임단은 따로 할 일이 있으니 대신 1여단과 3여단을 불러 이곳에서 가까운 일본 은행, 박물관, 미술관들부터 모조리 장악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내가 듣기로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데 쓴 벨기에산 브라우닝 권총 진본이 이곳 동경 헌정기념관 지하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던데 그것부터 확보하고,
일제 강점기에 반출된 황도남북양성총도는 일본 국회도서관에 소장된 것으로 아는데, 그것도 확보하고, 일본 은행들이 보유한 외화와 금괴 등도 확보하는 등등하고 말이오.”
“좋습니다. 우리 특전사가 그 일을 맡죠.”
“1, 3여단 이외 나머지 여단은 아직도 자위대 패잔병과 민병 등이 많이 설치니 그들을 소탕하는데, 투입하시고요.”
“지금도 그러고 있으나 아직 남은 자위대 패잔병과 민병들의 씨가 마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국군 1군단장 이철영이 말한 것처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쏜 권총과 총알 중 1발이 일본 헌정기념관 2층에 전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브라우닝제 권총 총번은 262336, 우덕순이 소지한 권총은 총번이 263975이라는 것까지 알려졌다.
어떻든 국군 1군단장 이철영과 2군단 부군단장 이용기 소장, 특전사령관 강대호 등은 이런 이야기를 나눈 다음 바로 자리를 정리했다.
그 즉시 1군단은 일본 왕궁 바로 앞 팰리스 호텔 도쿄에 군단 본부를 차렸고, 3, 25, 28기동보병사단에는 도쿄 TV, 니혼TV, 후지TV, 아사히TV, KNTV, 교도
통신사, 아시아프레스 인터네셔널 등과 동경에 있는 모든 방송과 통신사부터 점령하라는 군단장 이철영의 특명이 떨어졌다.
그리고 2군단은 거기서 550m 정도 떨어진 미쓰비시 빌딩에 군단 본부를 차리려고 했으나 전쟁통에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호텔과는 달리 그곳에는 전쟁통에도 남은 이들이 제법
있었다.
하고 그 일부가 저항하자 보다 못한 이용기 소장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반항하는 자는 모조리 사살해. 그리고 아무것도 가지고 나가지 못한다. 다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부군단장님.”
“좋아. 그리고 군사경찰단은 저기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도 점령해. 그리고 2특공여단과 21기동보병사단은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KDDI와
일본전신전화 주식회사부터 장악한다. 알았나.”
“잘 알겠습니다. 부군단장님.”
“아, 그리고 야후 재팬, 라이브도어 등 일본의 포털 사이트들도 다 점령해.”
2군단 부군단장 이용기 소장의 명령에 2특공여단과 21기동보병사단은 그 즉시 각 신문사와 통신사, 포털 사이트를 점령하려고 재빨리 움직였다.
대한민국 국군 1군단과 2군단이 일본 왕궁 바로 코앞에 군단 본부를 차리고, 일본의 각 방송사와 신문사, 통신사를 점령하려고 움직이는 그때 특전사령부도 일본 왕궁 궁내청과 경찰본부
등에 사령부를 차렸다.
그랬으니 일본 왕궁은 이제 한국군의 사령부가 되는 시점이라고 보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