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입성(12)
일본 아이치현 니시오시 산가네 산 중턱에 조성된 이 순국칠사묘(殉國七士廟)는 2차 세계대전 전범 7명의 명부와 위패만 있는 야스쿠니 신사보다 더 신성시되는 곳으로 일본 우익의 진짜
성역이었다.
그 이유는 이곳에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 도이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시로, 기무라 헤이타로, 마쓰이 이와네, 무토 아키라, 히로타 고키 이렇게 7명의 유골을
모아 묘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묘비에 순국칠사묘(殉國七士廟)라고 쓴 자는 바로 아베의 외할아버지이자 역시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다.
“뭐해. 저 순국칠사묘라는 비석부터 파괴해!”
국군 6군단 6특공여단 1대대 1중대장 도원희의 명령에 1소대 K-808 장갑차의 K-4 40mm 고속유탄기관총이 불을 뿜었고, 기시 노부스케가 쓴 묘비는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 중대원 중 굴착기 면허가 있는 정시영 병장이 노획해서 그곳까지 끌고 온 굴착기가 전범들의 유골이 들어있는 묘를 파헤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야, 정 병장, 여기 전부를 연못이 아니라 그냥 썩은 물이 고인 물웅덩이로 만든다. 그리고 유골은 아예 찾을 수 없도록 완전히 파헤쳐버려. 알았나.”
“예, 중대장님.”
“1소대장, 너는 저기 비행 제67전대, 기포병 제4연대 등 전투부대별 위령비 100여 개도 모조리 파괴해. 그리고 2소대장, 너도 여타 기념비와 기념물을 모조리 파괴해 버려.
3소대장, 너는 저 쪽발이들 쫓아버려. 심하게 반항하면 사살해도 좋다.”
이 순국칠사묘역에는 A급 전범 7명의 유골만 묻혀있는 것이 아니라 비행 제67전대, 기포병 제4연대 등 전투부대별 위령비 100여 개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하여 해마다 4월 29일 바로 태평양전쟁의 진정한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히로히토 일왕의 생일이 되면, 전국의 우익세력이 모여 참배를 했다.
그랬기에 중대장 도원희가 그 모든 것을 파괴하라고 지시하고, 이 6군단 6특공여단 1대대 1중대가 굴착기까지 이곳으로 끌고 오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따라온 일본인들까지 쫓아내라고
한 것이다.
“탕! 타타탕!”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기어이 총성이 울리고, 몇 명의 일본인이 쓰러졌다.
그들에게는 성역일지 모르겠지만, 한국군에게는 그냥 A급 전범을 묻어놓은 묘지일 뿐인 순국칠사묘를 파헤치는 것에 거칠게 항의하다가 총에 맞아 쓰러진 것이다.
그 이후 한 번 더 총성이 울리자 항의하던 일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흩어져 도망치고 말았다.
그런 얼마 후, 순국칠사묘는 흔적도 없이 파괴됐고, 파헤쳐져서 그냥 구덩이로 변하고 말았다.
그리고 인근도 모조리 파헤쳐져 이제 비만 오면 이곳은 물구덩이로 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러나 1중대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이곳으로 오르는 길도 모조리 파헤쳐서 다시는 차량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한 다음에야 그곳을 떠났으니 일본 우익의 대표적인 성역인 순국칠사묘는
그렇게 끝장이 나고 말았다.
“중대장님, 이 정도면 된 것 같습니다.”
“1소대장이 보기에도 이제 비만 오면 여기가 온통 흙탕물 구덩이가 될 것 같아?”
“그렇습니다. 유골은 아예 찾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비석도 다시 모아서 복구하지 못할 정도로 파괴했으니까요.”
“그래도 뭔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러니 더 파헤쳐버려. 아예 아무도 올라오지 못하게. 그리고 올라와도 찾을 것이 단 하나도 없게. 그것이 저 전범 새끼들에게는 어울리는
벌(罰)이다. 벌!”
“잘 알겠습니다.”
중대장 도원희의 명령에 1소대장 우상기는 굴착기를 운전하는 정시영 병장에게 다시 한번 주변을 파헤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렇게 순국칠사묘와 그 인근이 파헤쳐지는 순간 대한민국 해병대 사령관 강민철의 귀로 이런 소리가 파고들었다.
“저깁니다. 사령관님!”
대한민국 해병대 1여단과 함께 움직이던 해병대 사령관 강민철은 1여단장 오경수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고도 시큰둥했다.
지난 한중전쟁에서만 하더라도 해병대는 대련과 해남도, 지금의 해서도(옛 산동성) 등등을 점령하고, 혁혁한 전공을 세워서 승리의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런 해병대가 이제는 3개 여단으로 규모가 줄어든 것도 모자라서 이 한일전쟁에는 고작 2개 여단만이 참전해서 이럴 다할 전공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동경 포위 공략 작전에서도 기세 좋게 진격했지만, 이어서 내려온 명령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었다.
“일본 왕궁과 일왕과 상왕과 왕족 등은 특전사령부가 맡기로 했고, 일본 방위성은 북한 인민군 8군단이 맡기로 했으니 해병대는 일본의 신흥종교단체인 생장의 집과 일본회의 등의
우익단체를 와해시켜라! 이건 대통령님의 명령이다.”
동경으로 진격하자마자 합참의장에게서 내려온 이 명령에 대한민국 해병대는 일본 왕궁도 일본 방위성 장악도 아닌 고작 신흥종교단체인 생장의 집과 일본회의 등 우익단체를 와해시키는 것이
주된 임무가 됐다.
“공 사령관님, 보고 싶습니다.”
자신이 작전 차장이었을 때 사령관이자 한중전쟁에서도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이제는 고구려 안보실장으로 간 전임 대한민국 해병대 사령관 공경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면서 지금의
해병대가 아니라 그때의 해병대를 그리워하던 강민철의 귀로 다시 이런 보고가 들어왔다.
“민병이 거세게 저항한다고 합니다. 사령관님.”
“개새끼들! 당장 싹 쓸어버려!”
안 그래도 해병대가 처한 지금의 상황에 앞이 막막하던 참에 민병이 거세게 저항한다는 보고를 받자 강민철이 벌컥 화를 내면서 이렇게 명령했다.
그러자 해병대 1여단 1대대 1중대의 K-2 흑표전차 8대가 앞으로 나가 주포를 발사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동경 시부야 구에 있는 생장의 집 본부 건물이었다.
“쾅! 쾅!”
흑표전차의 120mm 55구경장 활강포 8발을 얻어맞은 생장의 집 본부 5층 건물이 군데군데 무너지는 찰나 각 층과 옥상 그리고 인근에서 해병대가 나타나자마자 거칠게 저항했던
민병이 마지막이라는 듯 더 거칠게 저항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무모한 짓일 뿐이었다.
다시 한번 흑표전차 8대가 주포를 발사하자 건물의 거의 50% 이상이 무너졌고, 한 번 더 주포를 발사하자 더는 건물에서 저항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뭐해. 봐주지 말고 더 쏴버려!”
강민철이 흑표전차들이 주포를 두 번 발사하고는 멈칫거리자 이렇게 독촉했고, 그러자 다시 주포가 두 번 더 발사됐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K-21 보병전투장갑차 4대가 나서서 40mm 기관포까지 무차별로 발사했다.
“인근에 있는 놈들도 모조리 처리해! 당장!”
또 이어진 강민철의 이 독촉에 인근에서 저항하던 민병을 향해서는 차륜형 자주대공포의 30mm 기관포가 가장 먼저 불을 뿜었고, 이어서는 K-21 보병전투장갑차의 40mm 기관포
그리고 흑표전차의 120mm 주포까지 진짜 무차별 발사됐다.
그러니 기껏해야 소총과 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는 민병이 그 공격을 어찌 견디겠는가.
그 바람에 하나둘 죽어 나가자 K-21 보병전투장갑차들이 쇄도하면서 40mm 기관포를 연달아 발사하고, 흑표전차들도 접근하면서 주포와 함께 12.7mm 기관총을 쉼 없이 발사했다.
그런 막강한 화력 앞에 달랑 총 한 자루 들고 나선 민병의 저항은 점점 잦아들더니 곧 잠잠해졌다.
“수색한다.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놈은 모조리 사살해!”
생장의 집은 1930년 다니구치 마사하루(谷口雅春)가 창설한 신흥 종교 단체이나 그냥 종교단체가 아니다.
이미 국군 2군단 21기동보병사단 2연대 그중에서도 3대대에 의해 폐허가 된 메이지 신궁과 함께 일본 최대 규모의 우익 결사체인 일본회의를 뒤에서 조종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미 남북한과 고구려에 의해 전범으로 기소되어 지금 미국에서 체포되어 송환날짜만을 기다리는 아베 전 일본 총리가 창립 회원인 일본회의, 그 아베 내각을 기준으로 총 20명의 각료
중 15명이 일본회의 회원이었고, 국회의원 40%도 일본회의 소속이다.
그런 일본 최대 규모의 우익 결사체인 일본회의를 뒤에서 조종하는 것이 바로 이 생장의 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본부 5층 건물이 해병대 1여단에 의해 폐허로 변해버렸고, 저항하던 자는 모두 사살되었으나 해병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움직였으니 다음 목표가 바로 그
일본회의 동경 본부였기 때문이다.
“사령관님, 이제 일본회의 동경 본부 차례입니다.”
“알았으니 속히 진격해. 그리고 여긴 1개 중대를 남겨서 살아있는 놈이 있는지 다시 한번 더 수색하고, 또 이곳으로 모이려는 우익 민병 놈들이 있으면 그놈들도 모조리 사살하라고
해.”
대한민국 해병대 사령관 강민철이 이렇게 지시하고 생장의 집 본부에서 일본회의 동경 본부로 이동하는 찰나 고구려군 1기동여단도 움직이고 있었다.
고구려 1기동여단은 K-2 흑표전차 44대로 무장한 1대대, K-21 보병전투장갑차로 무장한 2대대, K-808 장갑차로 무장한 3대대와 K-9 자주포와 K-239 천무다연장로켓
등으로 구성된 포병대대 등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그런 고구려 1기동여단이 동경 지요다구 만세이바시 경찰서를 점령하고, 막 이동하려던 찰나 이런 요청을 받았다.
“고구려 1여단! 여기는 대한민국 공군 제2전투지원사단이다. 지금 귀 여단이 있는 곳에서 약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일본 음식점이 하나 있고, 그 옆에 거대한 저택이 있다.”
“그래서?”
“우리 무인정찰기에 그 저택에 무장한 병력이 다수 있는 것이 잡혔으니 귀 여단이 확인 바란다. 이상!”
“무인공격기로 폭격해버리지 왜 우리 여단에······.”
“일본 음식점은 물론 일반 주택과 상가들이 바로 붙어있어서 폭격하면 아무 상관 없는 민간인이······.”
“아무 상관 없는 민간인이 어디 있냐. 총도 모자라서 칼까지 들고 설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여튼 알았다. 우리가 확인하겠다. 이상!”
고구려 1기동여단 작전참모 오수길 중령이 대한민국 공군 제2전투지원사단과 이렇게 통신을 끝내고, 여단장 정영진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그건 그렇고 이때 일본 민병 또는 시민군 좋은 말로 하면 남북한군과 고구려군이 쳐들어오자 불타는 애국심에 총칼 들고 싸우러 나온 일본인은 부지기수였고, 이 동경만 하더라도 근
1만여 명이 넘었다.
그러나 다들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도 아니었고, 총이라고는 쏴본 적도 없는 오합지졸이었기에 망정이지 옛 중국 북경에서처럼 민병대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예비역도 있고, 무장경찰 출신도
있는 등등 했으면, 남북한과 고구려군이 이처럼 무작정 동경 시내로 진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 북경에서처럼 시가전을 치르면서 차근차근 진입했을 것이나 일본 민병들은 그럴 수준은 아니었다.
만약, 일본 자위대가 서울로 진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도망치는 자들 빼고, 남자라는 남자는 다 총을 들고나와서 싸웠으리라.
예비역이 수두룩하니 어쩌면 일본 자위대보다 더 총을 잘 쏘는 이들도 많았을 것이나 일본 민병들은 그렇지 못했다.
“3대대에서 1개 중대를 보내서 확인해봐 도대체 어떤 놈들이 있는지 알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