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김정은-345화 (345/470)

동경 입성(5)

북한 인민군 8군단장 박수일과 국군 1군단 1기갑사단장 서준석이 나고야 시내를 장악한 다음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다음 인민군 8군단장 박수일은 자기 말을 실천에 옮기려고 각 예하 부대에 오늘 안으로 동경 인근까지 진격하지 못하면 부대장들을 즉결처분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결과 인민군 8군단 예하 부대들은 거의 시속 50km 이상으로 전장을 내달렸고, 그날이 다 가기 전에 1기갑사단을 제외한 국군 1군단 본부와 여타 부대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때 북한 인민군 특전사령부 예하 항공육전여단과 정찰여단, 해상저격여단, 경보병여단은 8군단과 함께 움직이지 않았고, 해안선을 따라서 후쿠이, 이시카와, 도야마현으로 북상하고

있었다.

“제3사단 비상 편대부터 이륙을 허가한다. 비상 편대 이륙하라!”

동경 하네다 공항을 접수한 지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아침 그 활주로를 박차고 다시 날아오른 것은 한국 공군 제3전투기사단의 F-35A 전투기 2개 편대 8대와 제1전투지원사단의

EA-18G 그라울러 전자전 공격기 2개 편대 역시 8대 그리고 피스아이 공중조기경보통제기 1대였다.

그리고 이때 이 동경 하네다 공항에는 대한민국 공군 거의 모든 시설이 밤사이 옮겨와 있었으니 한중전쟁과 한일전쟁을 치르면서 한국군도 기동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렇게 이륙한 F-35A 전투기 2개 편대 8대와 EA-18G 그라울러 전자전 공격기 2개 편대 8대는 동경 시내 상공을 비행하면서 혹 아직도 남아있는 일본의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과 여타 군사시설을 찾았다.

그러나 한국 공군에 위협이 될만한 지대공 미사일 포대는 남아있는 것이 없었고, 여타 군사시설도 남아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랬기에 F-35A 전투기와 EA-18G 그라울러 전자전 공격기 16대가 저공비행으로 동경 상공을 날아다니다가 다시 하네다 공항으로 돌아갈 때까지 지상으로부터의 어떤 위협도 받지

않았다.

그 대신에 동경의 일본인들은 전투기의 굉음에 혼비백산해서 이리저리 방공호나 대피소를 찾아 뛰어다니기 바빴으나 발에 걸리는 것이 사람 즉 피난민들이라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이때 남북한과 고구려군에 의해 야마구치현 인구 150만 명과 후쿠오카현 인구 510만 명 중에서 거의 300만 명 이상이 일본 이리저리로 흩어졌는데, 그중 가장 많은 이들이

동경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때 정부 구실을 하지 못했으니 이들 피난민은 예전 중국 피난민들처럼 유리걸식하는 이들이 대다수였고, 일부는 폭도 또는 도둑, 강도로 돌변해서 일본 사회를

뿌리부터 와해시키고 있었다.

그래도 남북한과 고구려군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남은 인구와 함께 규슈 전 지역의 인구도 일본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려고 하고 있었으니 일본의 혼란은 더 가중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

대한민국 해병대는 이때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까지 진격해 있었는데, 이 요코스카에는 다름이 아닌 일본 해상자위대 요코스카 지방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 총감부 건물과 여타 지방대 시설은 남북한군의 탄도미사일에 1차 공격을 받았고, 공군 전투기들에 의해 2차 공격을 당해 온전히 남은 건물이 없었다.

또한, 이곳 지방대 소속의 만재 4,000톤급 아사기리급 호위함 DD-152 야마기리함과 DD-153 유우기리함, DD-154 아마기리함 등은 이미 해전에서 모두 격침당한

이후였기에 남은 전투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해상자위대 소속 쇄빙선 AGB-5003 시라세함이 정박하고 있었고, 그것을 본 해병대 사령관 강민철이 득달같이 이렇게 명령했다.

“당장 저 쇄빙선부터 나포해!”

요코스카 주둔 미군은 한일전쟁 개전 이전 모두 철수했기에 미군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요코스카 지방대 소속의 일부 해상자위대원들이 이 기지에 남아있다가 그런 해병대를 향해서 소총을 발사하는 것으로 잠시간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흑표전차는 뭐 하는 거야. 모조리 밀어버리지 않고!”

총격전이 벌어지자 강민철이 이렇게 명령했고, 그 결과 K-2 흑표전차 수십 대가 자위대원들을 향해 쇄도하면서 각종 무장을 발사하는 것으로 상황은 금방 정리됐다.

그 결과 자위대의 쇄빙선 시라세함은 대한민국 해병대의 전리품으로 전락했고, 그때부터 해병대는 요코스카시에 대한 점령 작전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야, 저 새끼 칼 들고 우리에게 덤비려는 것 같지 않냐?”

“칼도 그냥 부엌칼 정도가 아니라 일본도고, 그럴 모양인데. 그냥 쏴 버려!”

“진짜 쏴 버릴까?”

“그래, 인마. 그냥 쏴!”

대한민국 해병대 1여단 1대대 1중대 1소대 소속의 조정식과 고치용은 훈련소 동기로 자대 배치도 같이 받아 함께 생활하다가 이번 한일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일본에 상륙한 이후 그동안의 전투에서 나름으로 열심히 싸웠고, 이번 요코스카에 입성해서는 미카사공원(三笠公園)에서 일본인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 30대 남자가 일본도를 들고 마치 미카사함을 보호하려는 듯한 행동도 모자라서 자기들을 위협하려고 하자 고치용이 이렇게 말했고, 조정식이 기어이 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탕!”

단 한 발의 총성에 30대 남자는 쓰러졌고, 더는 칼 들고 설치는 일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1여단 소속 K-2 흑표전차 1대가 나타나더니 그 미카사함을 향해서 느닷없이 주포를 발사하는 것이었다.

“쾅!”

이 요코스카 미카사공원에 전시된 미카사함은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제국 해군 연합함대의 기함이었고, 1905년 5월에 발트함대를 맞아 싸운 쓰시마 해전에서도 기함으로 활약한

함정이다.

그 이후 탄약고 폭발사고로 말미암은 침몰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다가 지금은 이곳 요코스카에서 미카사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보존 중이었다.

하나 우리 처지에서는 이 미카사함에 좋은 감정이 있을 리 만무했으니 이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전함으로써 일본의 조선 강점은 더 가속화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미카사함을 향해 두말할 것도 없이 주포를 발사한 해병대 1여단 소속의 K-2 흑표전차 전차장 이정수 중위는 연달아 몇 발을 더 발사한 다음 눈살을 찌푸리다가는

떠나버렸다.

하나 전차 주포를 몇 발 얻어맞는다고 전함이 침몰하겠는가.

그래도 일제가 우리 민족을 침략하고, 그 침략 과정에서 숨긴 각종 자료 특히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용, 강제 징병, 밀정 자료, 문화재 수탈과 자원 수탈 등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자료 등을 찾고 있는 일제의 한반도침략조사위원회는 이 미카사함을 그대로 보존할 생각이 없었다.

“야, 저 미카사함이 정확하게 무엇을 한 함정이었기에 저렇게 주포까지 발사해.”

“러일전쟁 당시 일본제국 해군 연합함대 도고 헤이하치로가 탄 연합함대의 기함이 저 미카사함이다.”

“도고 헤이하치로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쓰시마 해전에서의 승리 이후 기자가‘당신은 일본의 이순신이다.’라고 하자 ‘어디 감히 나 같은 자를 바다의 신 이순신에게 비교하느냐! 그건 이순신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했다는

일화로 유명해. 하지만 그건 다 지어낸 이야기 즉 낭설일 확률이 100%야.”

“그래, 맞다. 그놈이 이순신 장군님을 가장 존경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다 낭설이라고?”

“그럴 확률이 100%야.”

“진짜야?”

“그렇다니까. 그건 그렇고 뭐 좋은 것 없냐? 한중전쟁에서는 제법 좋은 것 많이 챙겨서 고구려에 땅도 사고, 집도 사고 했다는데 말이야.”

“나도 그 이야기는 들었다. 한중전쟁에 참전한 선임 중 대다수가 제법 챙겨서 전역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래, 그러니까 우리도 이번에 제법 챙겨서 고구려가 아니라 이곳에 집도 사고, 땅도 사자. 규슈가 고구려 땅이 되면 그곳에다가 말이다.”

“규슈 어디?”

“오이타 유후인 같은 온천 휴양지나 후쿠오카 같은 관광지에 말이다.”

“유후인 말고 벳푸에도 온천 많지 않아?”

“많지. 그러니 좀 챙기자. 그래서 벳푸나 유후인 같은 곳에 좋은 곳 장만하면, 이 전쟁에 목숨 걸고 참전해 쪽발이들 물리친 보상 제대로 받는 거다. 알겠지.”

“알았으니까 너나 잘해라.”

“나는 잘하지 인마.”

이렇게 대한민국 해병대가 요코스카를 정리하는 시간 나고야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됐고, 그 덕분에 국군 1기갑사단도 북한 인민군 8군단의 뒤를 따라서 동경으로의 진격을 서둘렀다.

그리고 또 한 곳 일본 야마나시현 고슈시(甲州市)에서 10식 전차 100여 대를 물리친 국군 1군단 5기계화보병사단도 동경으로의 진격을 서둘렀다.

국군 2군단 2기갑사단도 시즈오카현 고텐바시(御殿場市) 후지 학교에 나타난 10식 전차 등을 모조리 격파하고 역시 동경으로의 진격을 서둘렀다.

그런 와중에 2022년 9월 5일 월요일 아침 8시가 왔다.

추석을 5일 앞둔 시점 드디어 국군 1군단장 이철영과 2군단 부군단장 이용기 소장, 특전사령관 강대호, 해병대 사령관 강민철, 육군 항공작전사령관 조영호, 고구려 1기동여단장

정영진, 인민군 8군단장 박수일, 일본 파병 공군 전체를 지휘하는 한국 공군 작전차장 이영진과 역시 일본 파병 해군 전체를 지휘하려고 온 해군 작전차장 임영호, 그리고 북한 해군을

총지휘하는 북한 해군 부사령관 임철상, 북한 제7전투기사단장 감인호 등이 동경 하네다 공항에 모여서 동경을 공략할 작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내래 여기서 가장 선임인 것 같으니까 먼저 한마디 하갔소. 우리 고속정이 동경 항구를 점령하고, 스미다 강과 아라카와 강, 에도 강을 따라서 동경 시내로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공격에 나서갔소. 그러니 다들 그렇게 아시오.”

“부사령관께서 그러기를 원한다면, 우리 해군 고속정도 참가시키겠으니 그렇게 하십시오.”

“고맙소. 작전차장.”

북한 해군 부사령관 임철상의 계급은 대장이었다.

그리고 한국 해군 작전차장 임영호의 계급은 중장, 공군 작전차장 이영진도 중장, 1군단장 이철영도 중장, 해병대와 특전사령관 강민철과 강대호의 계급도 중장, 육군 항공작전사령관

조영호도 중장이었으니 사실상 그가 가장 선임은 맞았고, 나이도 가장 많았다.

그러나 이 자리의 사실상 주인공은 국군 1군단장 이철영 중장이었으나 그는 두 해군의 부사령관과 작전차장의 말에 일언반구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해군이 항구를 점령하고, 강을 따라서 동경을 공략하겠다면, 우리 특전사는 헬기를 이용해서 일본 왕궁부터 장악하고, 일왕을 사로잡아 항복을 받아내겠으니 그 작전은 우리에게

맡겨주시오.”

“우리 해병대도 그냥 있을 수만은 없으니 우리도 가장 선봉에 서서 동경을 공략해야겠으니 다들 그렇게 알아주기를 바라겠소.”

“동경 공략의 선봉은 그동안 거의 후방만 맡은 우리 2군단이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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