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김정은-322화 (322/470)

#322

북벌 다음은 남정(南征)(6)

미국 의회의 미일 의원연맹 소속 약 100여 명의 상하 양원 의원들은 이때 온갖 결의안으로 한국의 일본 침공을 규탄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미국 내 정치,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친일 인사들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한국을 응징하라는 서한을 무더기로 보냈고, 언론 등을 통해서는 그 부당함을

설파하는데 열변을 토했다.

거기에 더해서 지금 백악관 앞에는 한국의 일본 침공 항의 시위가 극렬하게 열렸으며,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미국 각지에서도 항의 시위가 연달아 열리고 있었다.

그렇게 미국 내의 여론이 한국에 불리하게 흘러가자 이에 대응해 친한파 의원들과 친한 인사들 그리고 한국 교민들도 맞불 성격의 여러 대응을 벌였지만, 자금력으로도 인력에서도 아무래도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결의안은 통과가 아니라 제출되는 것 자체도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현 상황에서는 우리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자네는 한국이 일본을 점령하면, 우리 미국이 예전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것으로 생각하나?”

“오키나와 본섬을 영구 할양받아 옛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영구히 봉쇄해 버린다면 훨씬 더 이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쟁 중 파괴되는 일본의 재건에 우리가 참여하고, 알짜

일본 기업을 그 과정에서 우리가 저렴하게 인수하는 등도 하며, 우리 미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 기업 등도 우리가 그렇게 가질 수만 있다면, 그리고 대일본 무역적자를 완전히 흑자로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우리 미국에 더 이익이······.”

“그렇게만 된다면야 뭐 지금보다 손해 볼 것은 없겠지만, 옛 중국 이제는 초나라가 과연 한중전쟁 이전 같은 국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한국이 그러도록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미국도 그러도록 절대 그냥 있지만은 않을 것이니까 말이야.”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그들은 신중국 건국 70년 만에 G2 국가가 된 저력이 있는 민족이니 후일은 알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오키나와 본섬을 할양받아 두는 것은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금 오키나와 주민들은 우리 미군의 철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실정이니 말입니다. 하나 우리가 할양받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고, 그럼

우리는 더 완벽하게 옛 중국을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건 그렇겠지.”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저 백악관 앞과 전국의 반한 시위대, 언론에 나와서 한국을 응징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자들은 적절히 경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러면 여론이 일본

편으로 완전히 기울 수도 있습니다.”

“그건 자네가 해봐. 적절하게. 그러나 아주 비밀스럽게. 어느 정도 여론의 균형을 맞춰보게. 할 수 있겠나?”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안보보좌관 에이브럼스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때 국군 1군단 1기갑사단 1연대 1대대 1중대만이 아니라 사단 전체가 일본 육상자위대 중부방면대 총감 오가와

육장과 13여단이 박살이 난 곳에 도착해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수색했지만, 도망친 13여단장 요시다와 300여 명의 병력은 찾을 수가 없었다.

“1, 2, 3연대 순서로 야마구치시(山口市)로 진격한다. 각 곳에 잔적이 있을지 모르니 정찰을 철저하게 하고, 공군과 협력해서 작전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해. 다들 알았나.”

“예, 사단장님.”

“좋아. 그럼 1연대부터 출발.”

국군 1군단 1기갑사단장 서준석은 한중전쟁 때부터 여전히 1기갑사단을 맡고 있었다.

비록 한중전쟁 때보다는 1기갑사단 전력이 다소 줄어들었다는 평가는 있었지만, 서준석은 자신의 1기갑사단이 여전히 국군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 1군단 1기갑사단이 기어이 시모노세키를 벗어나 야마구치시(山口市)로 진격하는 찰나 1군단의 다른 부대 즉 5, 6, 30기계화보병사단과 3, 25, 28기동보병사단 등도

동경을 바라고 서서히 동진을 시작했다.

그때 북한 인민군 8군단은 일본 서해안 달리 말해 우리가 볼 때는 동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야마구치현 나가토시(長門市)로 진군하고 있었고, 남북한의 특전사령부는 각자 목표로

정해둔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한국 해병대는 우베를 완벽히 평정하고 있었다.

“빨리빨리 내려! 뭘 꾸물거리나!”

국군 1군단과 인민군 8군단 등이 동경을 바라고 동진과 북진을 시작하자 그 뒤를 받칠 전력으로 국군 6군단 37, 39보병사단이 이미 시모노세키에 들어와 있었지만, 그들만으로는

현지의 한국화 작업과 치안 유지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국군 3군단 52, 55, 56보병사단이 수송기와 민간 여객기를 이용해서 부대별로 우베 공항에 내리고 있었다.

이들 3군단 대다수 장병은 한중전쟁 참전 경험이 없었지만, 각 사단장을 포함해서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등의 지휘관은 거의 참전 경험이 있는 1, 2, 5군단 출신이었기에 현지화

작업에 크게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였다.

“중대장님, 일본에 발을 디딘 기분이 어떻습니까?”

“좋다. 여기 야마구치에 여행은 왔었지만, 이렇게 총 들고 올 줄은 몰랐는데, 하여튼 그래도 좋다. 1소대장은 기분이 어떤데?”

“저는 여기 야마구치보다는 지난 한중전쟁에서 북경에 진입했을 때가 더 좋았습니다. 물론 여기 야마구치를 완벽하게 점령해 우리나라 점령지로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나도 그래. 지난 역사의 복수를 한다는 것도 좋고, 그동안 쪽발이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갚아 줄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말이야. 안 그래?”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아베 그놈이 총리를 하면서 우리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가끔 치가 떨리니까 말입니다.”

“전쟁이 나지도 않았는데, 미국으로 도망친 그 아베와 몇몇 놈들을 전범으로 넘겨달라고 고구려 민재인 위원장님이 미국 대통령 바이든에게 요청했다니 곧 그놈들은 잡혀 올 거야. 그럼

그놈들이 한 짓에 대해 정당한 심판을 할 수 있겠지.”

“그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미국이 그들을 잡아서 우리에게 넘겨줄까요?”

“넘겨주지 않고는 안될걸. 하여튼 나는 그렇게 믿어. 그건 그렇고 중대원들 다 내렸으면 집결 장소로 가자고.”

“예, 중대장님.”

한중전쟁때는 국군 2군단으로 참전 경험이 있는 국군 3군단 52사단 1연대 1대대 1중대장 정창수와 1소대장 박경우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베 공항에 모두 내린 중대원들을 이끌고

대대 집결 장소로 이동했다.

그렇게 일본의 후방을 책임질 국군 3군단 52, 55, 56보병사단에 더해서 6군단 37, 39보병사단까지 일본으로 건너오자 이제 일본으로 건너올 국군은 2군단의 일부

부대뿐이었다.

그때 일본 육상자위대 북부방면대 생존 병력과 중부방면대 3사단과 10사단, 14여단의 생존 병력 일부를 모두 끌어모아 다가오는 한국군을 막을 방어진지를 구축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죽은 중부방면대 총감 오가와 육장이 아니라 북부방면대 총감 가마모토였다.

그리고 그가 방어진지를 구축한 곳은 주고쿠 산지에서 발원해 히로시마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니시키가와강을 앞에 둔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 야산 일대였다.

처음 이들은 주일미군과 해상자위대 항공대가 주둔했던 이와쿠니 기지를 방어 거점으로 삼으려다가 그곳에 주둔하던 미군은 벌써 떠나고 없고, 해상자위대 항공대마저 사분오열되어 남은

전력이라고는 도움이 안 되는 패잔병들뿐이었다.

그 바람에 니시키가와강은 앞에 두고, 야산은 등 뒤에 두고 방어진지를 구축한 다음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니 한마디로 자기들 딴에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총감, 한국군이 진격해 옵니다.”

“그래서 다시 도망이라도 가자는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 방어 대책을 더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어떻게 더 방어 대책을 마련한다는 말인가.”

지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구축한 방어진지를 두고 일본 육상자위대 북부방면대 총감 가마모토와 북부방면대 2사단 본부의 야스다 일등육좌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 마침

한국 공군의 F-1 삼족오 전투기 편대가 정찰을 위해 이와쿠니 일대를 정찰하는 모습이 그들의 감시 장비에 잡혔다.

그러나 한국 공군의 F-1 삼족오 전투기 편대는 이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와쿠니 공항을 한 바퀴 돌아보고는 사라졌다.

“적기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전 부대 은폐와 엄폐를 더 철저하게 하라!”

지금도 항공 정찰에 잡히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위장하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더 위장을 점검하는 이 일본 패잔병들에게는 74식, 10식, 90식 전차까지 다수 있었는데, 이들은

북부방면대 2사단 소속이었다.

저 먼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 주둔하다가 시모노세키 해안 방어를 위해 왔지만, 막강한 남북한의 포격과 폭격에 밀려 이곳까지 후퇴해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으나 이들 앞으로는 국군

1군단의 5, 6, 30기계화보병사단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아니 남북한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하면 일대 타격을 가할 줄 알았던 자위대의 M270 MLRS 다연장로켓발사시스템 16대도 보였다.

“군단장 동지, 정찰여단의 보고에 의하면 일본 육상자위대 연대 규모 부대가 있다고 합네다. 거기다가 전차와 장갑차 등까지 있다는데, 이대로 진격합네까?”

“전차까지 있다고 하네.”

“그렇습네다.”

“그럼 정찰여단에 적의 좌표부터 보내라고 해. 하면 300mm와 400mm 벼락-1과 벼락-2 방사포와 남조선에서 넘겨받은 K-55A1 자주포로 날려버린다. 그리고는 8기갑사단의

K1A2 전차로 뭉개버리고 말이야. 알간!”

“즉각 정찰여단에 통보하갔습네다.”

일본 육상자위대 북부방면대 총감 가마모토가 지휘하는 2사단이 주축이 된 부대가 국군 1군단과 먼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북한 인민군 8군단의 전초를 맡은 정찰여단에 먼저

발각된 일본 자위대가 먼저 8군단과 만날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 부대는 일본 육상자위대 중부방면대 3사단과 10사단, 14여단의 소대 또는 중대 규모의 극소수 병력과 여타 중부방면대의 살아남은 마지막 부대 등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죽은 총감 오가와 육장과는 달리 해안선을 따라서 이곳 즉 야마구치현 나가토시(長門市) 초입까지 밀려왔다.

그리고는 결국 이 야산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그 구성이 중부방면대 4시설단, 8고사특과군, 통신군, 후방지원대, 중부방면 회계대, 음악대, 위생대 등의 패잔병들이었다.

그래도 용하게 3사단 3전차대대의 살아남은 90식 전차 11대와 73식 장갑차도 몇 대 있었고, 93식 지대공 미사일도 있었으며, 또 하나 주목할만한 점은 자위대 예비군 일부와

나가토시(長門市) 시민 일부, 항공자위대와 해상보안청 소속 일부도 그 속에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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