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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정은-265화 (265/470)

〈 265화 〉 항복 그리고 고구려위원회(9)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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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전쟁을 앞두고 조종사 재입대 프로그램에 따라서 전쟁이 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입대해 조국을 위해 싸운 예비역 공군 조종사들은 이렇게 다수가 제대했다.

하나 일부는 현역으로 그대로 남는 바람에 대한민국 공군은 한중전쟁이 끝난 이후 육군과 해군보다 먼저 개편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 즉시 모든 전투비행단은 일단 해체됐고, 그 대신으로 대한민국 공군 제1, 2, 3, 5, 6전투비행사단이 창설됐다.

그중 제1, 2전투비행사단은 한반도에 주둔했고, 두 사단의 기종은 다름 아닌 F-2 삼족오 스텔스 전투기 각 200대, 총 400대였다.

제3전투기사단은 F-1 삼족오 전투기 100대와 F-35A 스텔스 전투기 76대를 보유하게 됐고, 주둔지는 북경, 천진, 내몽골 호화호특 등이었다.

제5전투기사단은 F-1 삼족오 전투기 100대와 F-35A 스텔스 전투기 77대를 보유하게 됐고, 주둔지는 허베이 성과 산둥 성 등 일대였다.

제6전투기사단은 F-1 삼족오 전투기 100대와 F-16 76대, F-15K 20대를 보유하게 됐고, 주둔지는 위구르와 간쑤 성 북부와 영하회족자치구, 내몽골 일부 등이었다.

이렇게 대한민국 공군은 5개 전투비행사단에 F-1 삼족오 전투기 300대, F-2 삼족오 스텔스 전투기 400대, F-35A 스텔스 전투기 153대, F-16 76대, F-15K 20대, 총 949대의 전투기를 배치했다.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들이 이렇게 5개 비행사단에 나누어 배치되자 그 이외의 나머지 기체인 FA-50 44대와 EA-18G 그라울러 45대, 공중급유기,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정찰기, 수송기, 훈련기 등등은 공군 제1, 2전투지원사단을 만들어서 나누어 배치했다.

그리고 공군의 각종 사령부와 자질구레한 전대 등도 모두 통폐합해서 공군 제1, 2전투지원사단에 부속됐다.

대한민국 공군은 이렇게 6개의 전투비행사단과 2개의 전투지원사단, 그리고 방공, 교육, 군수 사령부 등만 남게 됐다.

“좋습니다. 대대장님과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환영입니다.”

“하하하! 그럼 가자고. 우리 참전용사는 북경에 주택도 30년간 무상임대해준다니까 월급이 좀 적어도 어떻겠는가.”

“맞습니다. 그리고 월급과 참전수당과 무공수당까지 제법 받았으니 그 돈으로는 그럼 땅이나 살까요?”

“좋지. 우리가 잠시 주둔해있던 내몽골의 초원이나 사자고. 그래서 은퇴하면 말과 양이나 키우면서 초원을 바람처럼 달려보자고. 하하하!”

“좋습니다. 하하하!”

내몽골 바오터우 공항에서 출격해서 최후까지 시진핑 등이 숨어 있던 충칭의 벙커를 타격한 공군 제20전투비행단 1대대장 예비역 중령 강영석과 조용호 예비역 대위는 그렇게 웃으면서 군을 떠나 곧장 고구려 북경으로 갔다.

그건 그렇고 이때 옛 중국이 항복조건에 따라서 보유 외환 3조 3,000억 달러, 금 2,000톤, 미국 국채 1조 2,230억 달러와 여타 자금을 합쳐서 5조 달러를 먼저 남북한에 전쟁배상금으로 내놓자 남북한은 각각 2,000조 원씩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 돈으로 참전 용사들의 참전수당과 무공수당부터 지급했고, 이어서는 남북한의 전사자와 중국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한 민간인에게 각 30억 원, 중상으로 말미암아 장애를 입은 이에게는 20억 원, 3개월 이상 부상 치료를 받는 이에게는 1억 원,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 부상자에게는 각 3,000만 원을 보상금 형식으로 지급했다.

그렇게 전사자와 사망자, 장애를 입은 이에게 각각 30억 원과 20억 원이라는 큰돈이 지급되었지만, 가족을 잃은 남은 가족의 슬픔과 그들의 희생이 어찌 그 돈으로 치료되겠는가.

그러나 거기다가 고구려 주택을 50년간 무상으로 임대하고, 토지 우선매수권도 주는 등등 남북한은 조국을 위해 싸운 이들을 그렇게나마 예우했다.

그 반대로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갔거나 가려고 하다가 체포됐거나 입영해야 함에도 외국에서 입국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기소되어 새로 제정된 법률에 따라서 최장 10년 이상의 징역형과 재산몰수형까지 처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먼저 1심에 이어서 2심 판결까지 나온 것은 한중전쟁이 개시되기도 전에 공항에서 외국으로 도망치려다가 잡힌 국회의원으로 그는 2심에서 징역 10년에 전 재산 98억 원 전액을 몰수당했다.

“나머지 배상금 약 5조 달러는 각국에 있는 자산을 매각하고, 국민 성금을 거두어서라도 반드시 올해 안에 내겠으니 그때까지만 시간을 달라는 리커창 총리의 서한입니다. 장관님.”

“대통령님께 전달하겠소. 대사.”

“아무쪼록 잘 좀 부탁합니다. 그리고 총리가 국호는 초(楚)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는데, 장관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초나라라면, 예전에 있었던 나라가 아니오.”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 수도로 정한 남경이 예전 초나라 땅이었으니 국호를 다시 초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렇다면 대통령님께 말씀드려 보겠소.”

“역시 잘 좀 부탁하겠습니다. 장관님.”

“알겠소. 그런데 언제 새로운 주석을 뽑고, 국호를 정하는 등 할 것이오?”

“곧 전국인민대표 회의가 열리고 거기서 주석이 뽑히고, 국호가 결정될 것입니다. 장관님.”

“아무쪼록 빈틈이 없기를 바라고, 모든 핵무기는 남북한 최고 사령부와 고구려위원회의 감독하에 인수되도록 조처해주시오. 아니면 바로 남경을 다시 폭격하는 사태가 빚어질 것이니 정말 빈틈이 없어야 하오.”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 강영화와 신임 주한 옛 중국 대사 청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때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도 난상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공군에 이어서 육군과 해군의 개편으로 대한민국 국군은 다시 한 번 국방 개혁을 이루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어떻든 그런 난상토론이 한동안 진행됐고, 어느 정도 의견이 나오고, 이어서 결론이 나자 합참의장 김태호가 나서서 못을 박듯 이렇게 말했다.

“자자, 그럼 해군부터 마무리 지읍시다. 그러니까 지금의 3개 함대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7기동전단의 전력을 다수 빼고, 지금 건조 중인 한국형 방공구축함 5척과 대구급 호위함 5척, 윤영하급 고속정 5척 등을 보태 4함대와 5함대를 창설하고, 7기동전단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규모를 축소해서 제주도에 둔다. 그리고 6항공전단에 F-1 삼족오 전투기 40대를 보유한 전투비행전대를 두고, 이 전대를 해남도에 배치하여 해남도와 파라셀 제도 등 남중국해를 담당한다. 지금까지 나온 안건은 이렇소. 다들 동의하시오.”

“동의합니다. 그래서 4함대는 우리가 점령한 옛 중국 본토 중 가장 남쪽인 장쑤 성 롄윈강을 모항으로 하고, 5함대는 전투비행전대와 함께 해남도 싼야를 모항으로 해서 해남도와 파라셀 제도 그리고 남중국해를 담당해야 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북한 해군은 어디에 배치할 예정입니까?”

“북한 해군 중에서 쓸만한 전력을 뽑아 랴오둥반도 대련에 배치할 생각이오. 다른 의견은 없소?”

“의장님, 해병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 해병대는 대통령님의 특별지시로 총 3개 여단으로 재편해서 1여단은 포항, 2여단은 해남도, 3여단은 장쑤 성 롄윈강에 배치할 것이오. 규모가 축소되었다고 해서 그렇게 실망하지는 마시오. 대신 전부 최신 전차와 장갑차로 무장한 기갑여단으로 전력이 증강될 것이니까.”

“저야 이제 전역해야 하니까 별 상관은 없겠지만, 사단장들은 여단장으로 강등될 것이니 섭섭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계급을 소장에서 준장으로 강등하지는 않으니까 공경호 사령관 이하 해병대 사단장들은 너무 섭섭해 하지 마시오.”

합참의장 김태호가 이렇게 말했어도 해병대 사령관 공경호와 사단장들은 그래도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해병대는 한중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래도 국방개혁 또는 군구조 개편에 따라서 행해지는 국가 중대사인 해병대 축소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 해병대가 상륙작전을 벌여야 할 인근의 적대적 국가는 솔직히 말해서 일본뿐이었다.

옛 중국은 이제 상륙작전이 아니라 육지 작전으로도 견제할 수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이때 건조 중인 해군 함정은 말한 것처럼 동명성왕급 한국형 방공구축함 5척과 대구급 호위함 5척, 윤영하급 고속함 5척이었고, 이 함정들의 건조는 한중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시작되어 동원령 하에서 그동안 밤낮없이 건조에 매달린 관계로 근 5개월 만에도 99% 건조된 상태였다.

“그래도 섭섭한 것은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 일차 국방개혁으로 한중전쟁에서 승리했듯 이제 이차 국방개혁으로 우리의 이 자랑스러운 승리를 영원히 수성하는 데 해병대가 앞장서지 않으면 또 누가 앞장서겠습니까. 그러니 마음대로 개혁하십시오. 단, 그래도 대한민국 해병대가 한중전쟁에서 거둔 자랑스러운 승리는 영원히 잊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물론이오. 대한민국 해병대가 한중전쟁에서 랴오둥반도와 산둥반도, 저 해남도와 파라셀 제도를 정벌했음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고, 전사(戰史)에도 병사 한 명 한 명의 이름까지 다 분명하게 기록하여 남길 것이오. 그러니 그것은 걱정하지 마시오.”

“감사합니다. 의장님, 그럼 계속하십시오.”

“자, 여러분. 우리 그동안 고생한 해병대 공경호 사령관과 여러 사단장과 해병대 장병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한번 보내고, 마무리 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합참의장 김태호의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국방개혁에 참가한 각급 부대 지휘관들이 열렬하게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 해병대 사령관 공경호는 이제 자신이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때임을 알았다.

아니, 벌써 사라졌어야 했으나 민재인 대통령의 배려로 한중전쟁에 참가해서 랴오둥반도 점령, 하북 성 점령, 산둥반도 점령, 장쑤 성 롄윈강 점령 그리고 해남도와 저 파라셀 제도를 점령하는 전무후무한 전과를 올렸으니 진짜 전사에 찬란하게 그 전과가 기록될 것이었다.

그럼 된 것이다.

수백 년 후 후손들까지 위대한 해병대 사령관 공경호 중장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주면 더 좋겠지만, 아니더라도 역사와 전사에는 그 이름이 찬연하게 남을 것이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 회의가 이어진 결과 해군은 1, 2, 3함대에 이어서 4, 5함대를 창설했고, 전투비행단은 아니었지만, 드디어 F-1 삼족오 전투기 40대를 가진 전투비행전대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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