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 항복 그리고 고구려위원회(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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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부가 몸을 숨기고 있던 중경 핵 벙커에서의 작지만 중대한 의미가 있는 쿠데타가 성공한 이후 리커창 총리를 필두로 한 항복 파들은 그 즉시 한국군에게 항복 의사를 타전했다.
그리고 그 소식은 곧장 대한민국 합참의장 김태호에게 보고됐다.
“의장님, 항복하겠답니다. 중국이 드디어 항복하겠답니다.”
“진짜야?”
“그렇습니다. 책임자는 리커창 총리라고 하고, 시진핑 등 이 전쟁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모두 체포해서 가뒀으니 당장 폭격과 함께 장쑤 성과 영하회족자치구 등에서의 군사작전을 멈추어 달라고 합니다.”
“대통령님에게 보고할 테니까 그사이에 더 자세하게 알아봐!”
“예, 의장님.”
중국이 이렇게 항복함으로써 공군의 폭격과 남북한의 유도탄 공격도 멈추었고, 북위 37도를 경계로 간쑤 성과 영하회족자치구에서의 작전도 멈추었으며, 장쑤 성에서의 남진도 일단 멈추었다.
그러니 이제 남은 일은 여전히 해남도와 위구르 등에서의 중국인 소개뿐이었다.
“항복조건에 더 추가하고 싶은 내용은 없소.”
“전쟁배상금이 얼마라고 했습니까?”
“남북한에 각각 한화 2,000조 원, 동북 3성과 내몽골, 위구르 등의 강제 점령과 그동안의 착취에 관한 배상금 5,000조 원, 그리고 남북의 전사자와 민간인 사망자 한 사람당 배상금 30억 원, 중상으로 말미암아 장애를 입은 개인당 20억 원, 그 이외에 부상해 개전 이후 지금까지 치료를 받는 개인당 1억 원,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 부상자는 각 3,000만 원이오.”
“그럼 총액이 얼마입니까. 일단 9,000조 원에 공화국 전사자와 민간인 사망자가 어제까지 1만 1,375명이었으니······. 34조 1,250억, 부상자도 그 정도 금액이라고 치고, 남조선의 사망자와 부상자도 그 정도 금액으로 치면 총액은 약 9,136조 원이네. 좀 적은데요.”
“우리 전사자와 부상자는 그보다 훨씬 적으니 금액은 더 적소.”
“내 이럴 줄 알았다. 장비도 부실한 우리 공화국의 불쌍한 애들을 앞세워서 총알받이 만든 다음 남조선 애들이 진격하니까 이런 일이 벌어졌지. 안 그렇습니까?”
“김 위원장, 남북의 아까운 젊은이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소. 그런데 김 위원장이 그러면 전사한 장병들이 저승에서 뭐라고 하겠소. 그러니 그런 억지는 그만 부리시오. 그리고 김 위원장이 그런 억지를 부리면 부릴수록 앞으로의 논공행상은 물론 고구려위원회도 개판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오.”
“그럼 고구려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으십시오. 하면 억지 부리지 않고 깔끔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는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뭐라고요.”
민재인 대통령이 잔머리로 나를 이기기는 어렵다.
중국이 항복한 이후 항복조건 협상이 제법 길게 이어졌고, 나와 민재인 위원장은 그 항복조건 협상에 관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구려위원회 구성에 매달렸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흘리는 말로 민재인 대통령에게 초대 고구려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으라고 하니 일단 거부를 했다.
그래서 기어이 이런 잔머리로 그 자리를 맡도록 유도했으니 안 맡고는 안 될 것이 자명했다.
“다 들었으면서 모른 척하지 마시고, 고구려위원회 초대 위원장 맡으세요. 그리고 중국의 항복문서를 받기 전에 남조선의 다음 대통령선거 출마 후보들과 내가 만날 수 있도록 자리도 만들어 주시고요. 그래야 이후에 이상한 소리 나오지 않도록 단단히 못을 박죠.”
“고구려위원회 위원장은 김 위원장이 맡는 것이 어떻소. 그리고 우리 대통령 후보들에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시오.”
“나는 공화국 국무위원장 자리로도 만족입니다. 그러니 대신 맡으시고요. 남조선 대통령 후보들에게는 대통령에 당선되거나 혹 탈락해도 이상한 소리, 이상한 짓 못하도록 철석같은 약조를 받아내야지요.”
“허허! 그것참!”
“아니면 말씀 그대로 모든 것이 개판이 될 수 있으니까 아시겠죠. 그리고 고구려위원회에 강수진 비서관은 꼭 데리고 가십시오. 그래서 이번에는 장관 자리 정도는 주십시오. 이것도 아시겠죠.”
“강수진 비서관에게는 이미 고구려위원회 남북 협력국 부국장 자리를 맡으라고 해놓았소. 그리고 나는 퇴임하자마자 양산으로 내려가서 농사나 지으면서 조용히 살고 싶은데, 고구려위원회 위원장이라니······.”
“농사는 북경에서 지어도 되니 그냥 위원장 맡으십시오. 그리고 협력국 부국장 자리라······. 그 자리보다는 장관직은 아니지만, 그냥 고구려위원회 위원장 비서실 남북협력관으로 데리고 계십시오. 비록 차관이지만, 위원장이라는 뒷배가 있으니 지금처럼 편안하게 생활하면서 남북과 고구려의 협력을 위해서 일하게 말입니다.”
“김 위원장 지금 강수진 비서관 때문에 혹시 나에게 고구려위원회 위원장 자리 맡으라고 그 잘난 잔머리로 협박하는 것 아니요?”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그리고 대통령 후보들 만나게 주선해 주시고, 위원장 자리 수락하시고, 전쟁 배상금은 더 올리시고, 강수진 비서관은 데리고 계시는 줄 믿고 이만 끊습니다.”
민재인 대통령과 이렇게 전화 통화를 마치고, 북한 몫 전쟁배상금 한국 돈 2,000조 원으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우선 북한 인구 2,550만 명 중 고구려로 550만 명 정도 이주시키고, 남은 2,000만 명을 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잘 먹여 살리려면,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산업이 아니라 중국이 강점을 보여 한국을 추월한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기에 정찰총국 등에 이미 그런 중국의 산업기술을 무차별적으로 획득하라고 지시까지 했고, 일부 그런 기술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우선하여 부산과 서울, 평양을 거쳐서 고구려위원회가 들어설 북경까지(처음 고구려위원회는 심양에 터를 잡으려고 했으나 남북한군이 북경을 점령한 관계로 심양에서 북경으로 장소가 바뀌었음.) 직통으로 갈 수 있게끔 지금 한국 건설업체들에서 하는 개성 평양 간 고속도로 확장 공사가 아닌 그 북쪽 평양 안주 구간 고속도로부터 확장해야 했다.
그리고 안주에서부터 신의주까지 고속도로를 놓는 한편 그사이에 안주 신의주 간 국도도 확장해야 했다.
철도 경의선 신의주까지의 구간은 공사 중이었으니 그건 논외로 하고 말이다.
그럼 열차로는 부산에서 서울, 평양, 북경을 거쳐서 저 위구르 우루무치나 카스를 거쳐서 유럽까지 갈 수 있었고, 도로를 이용해서도 각 곳으로 바로 갈 수도 있었으니 북한의 산업 발전을 더 앞당길 수 있었다.
하여튼 내가 이런 구상에 빠져있는 사이 중국의 조건 없는 항복을 위한 협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었고, 그 협상이 종결된 얼마 후 항복협상의 첫 번째 결과를 세상에 내놓을 날짜인 2022년 3월 11일 금요일이 왔다.
그리고 이날이 바로 항복협상의 결과로 중국이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남북한에 정식으로 항복하는 항복의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2022년 3월 11일 오전 10시, 북경에 주둔한 국군 1군단 장병들과 인민군 호위사령부 장병들이 삼엄한 경계를 하는 북경 천안문 광장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열띤 취재경쟁과 이 항복의식을 보려는 남북한 국민의 열기로 아직은 약간 쌀쌀한 3월 초순의 북경 날씨를 단번에 녹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천안문 광장 중앙에는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고, 지금 그곳에는 나와 민재인 대통령 그리고 남북한의 주요 인사들과 군 수뇌부 등이 앉아서 곧 거행될 이 항복의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사회자의 낭랑한 음성이 북경 천안문 광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단기 4355년 음력 2월 9일, 서기 2022년 3월 11일 오늘은 지난 2021년 12월 11일부터 시작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리고 옛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전쟁에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정식으로 승전한 날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옛 중화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식으로 항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옛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시진핑, 부주석 쉬치량, 부주석 장여우샤, 총리 리커창, 국방부장 웨이펑허, 연합참모부 참모장 리쭤청, 외교부장 왕이가 대한민국 민재인 대통령님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님께 그 옛날 조선의 인조대왕이 삼전도에서 청나라 홍타이지(숭덕제)에게 한 것처럼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의 예로 항복하는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 또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는 청나라 황제를 만났을 때 머리를 조아려서 절하는 예법이었으나 우리에게는 삼전도에서 조선 인조가 청나라 홍타이지(숭덕제)에게 한 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로서 항복한 그 치욕적인 장면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그런 역사적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한민족이라면, 이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라는 말을 들으면 곧 인조의 그 치욕적인 항복을 떠올릴 것이다.
하여 중국과의 항복조건 협상에서 내가 중국에 이 삼궤구고두례의 예로 항복하라는 조건을 끝까지 강요해서 기어이 수락을 받아낸 것이다.
그랬으니 이제 이 삼궤구고두례라는 말을 들으면, 인조의 치욕적인 삼전도 항복이 아니라 시진핑 등 중국의 주요 인사들이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이 의식으로 나와 민재인 대통령에게 치욕적으로 항복한 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내가 원한 것은 그것이었다.
중국과 중화라는 자존심을 확실하게 꺾어버리려면, 사실 이것보다 더한 항복의식을 연출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이 의식을 강요한 것은 우리 역사의 치욕적인 한 장면을 이제 그대로 되돌려줄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끝까지 이 항복의식을 강요한 것이다.
하고 내가 처음 이 삼궤구고두례로 중국의 항복을 받자고 하자 남북한에서 다소 반대가 있었지만, 강력하게 밀어붙여 이 항복의식을 고집했고, 기어이 이렇게 수락을 받은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항복의식에서 중국을 옛 중화인민공화국이라 칭하는 것도 항복조건에 중화나 중국이라는 국호를 영원히 사용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중국은 국호를 무엇으로 고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든 이렇게 만들어진 항복의식은 대한민국은 물론 북한 나아가서는 온 세계로 생중계됐고, 남북한 국민은 그 모습을 보면서 환호성을 질렀지만, 이 낯선 항복의식과 조선 인조의 이야기를 모르는 세계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항복의식을 지켜봤다.
“궤(跪)! 모두 무릎을 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