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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정은-212화 (212/470)

〈 212화 〉 요하를 건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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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원판 김정은도 자기 아버지인 그 김정일이 죽자 역시 금수산 태양궁전에 시신을 모셨으니 아비와 자식이 같이 죽은 아비의 시신을 이용해서 자신의 통치에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내가 김일성이 원한 것처럼, 그의 시신 조각 몇 개라도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안장해 준 것이다.

사실 이것도 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명목상 나는 김정은이었으니 어쩌겠는가.

그러니 그 시신 조각들은 이제 제자리를 찾아간 것이고, 김정일과 김정은이 자신의 통치에 이용한 그 금수산 태양궁전이라는 우상화의 장소는 향후 내가 다른 목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하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이제 그 금수산 태양궁전이 없어도 내가 북한을 통치하는 데 아무 걸림이 없다는 그것이었다.

즉 이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배경과 영향력 등등이 없어도 내가 내 마음대로 북한을 통치할 수 있다는 바로 그것 말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그림자를 북한에서 온전히 걷어내고, 북한을 내 마음대로 즉 내가 원하는 것처럼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북한의 절대 군주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야 변화의 바람이 지금보다 더 불 것이니 말이다.

“쿠콰콰쾅!”

그때 북한 항공군 제1전투기사단 소속 노윤식 중좌의 전-1 삼족오 전투기 편대가 쏜 탄두 중량 480kg, 사정거리 500km, 최대 6m의 강화 콘크리트를 관통할 수 있는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 4발 중 1발은 북경 천안문 광장 모택동 기념관에 떨어져서 이런 폭발음을 냈다.

그리고 또 1발은 천안문광장 국기 게양대, 나머지 2발은 지금 시진핑이 숨어있는 북경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북서쪽으로 20km 거리에 있는 시산(西山) 국립공원 내 중앙군사위원회 통합전투사령부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 통합전투사령부 벙커는 평균 두께가 1km에 이르는 두껍고 단단한 암석으로 덮여 있어 핵 공격에 견디도록 설계되었기에 타우러스 미사일이 아무리 직격을 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이건 복수의 의미였으니 중국이 금수산 태양궁전과 노동당 본청과 김일성 광장 정중앙, 만수대 언덕을 공격한 그 복수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때 북경은 그야말로 대공황에 빠져있었다.

이미 남북의 탄도탄과 순항 미사일과 타우러스 미사일의 연이은 공습에 공장들은 쑥대밭이 된 지 오래였고, 중국의 실리콘밸리라는 중관춘(中關村) 과학단지도 불타고 있었다.

거기다가 천안문 광장 서쪽에 자리한 인민대회당, 중국 국방부, 중국 외교부, 중국 과학기술부, 국가안전부, CCTV 사옥, 신화통신, 환구시보는 물론 중국 유수의 기업들도 공격을 받아 멀쩡한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남북한군이 요하를 건넜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너나 할 것 없이 보따리를 사 들고 피난길에 올랐으니 북경이 어찌 공황에 빠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거기에 더해서 중국의 상징인 천안문광장 국기게양대와 모택동 기념관까지 이제 공습을 받았으니 그 공황은 더 심해졌으면 졌지 가라앉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많은 중국의 젊은이들이 조국을 지켜야 한다면서 군에 자원입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급될 무기라는 것이 앞에서도 말했듯 모두가 구닥다리뿐이었다.

“저거 짱깨 비행기 아냐. 야, 쏴!”

랴오둥 반도로 진격하던 국군 21사단 백두산부대 65연대 3대대 12중대 1소대장 원은철이 자신들을 향해 유유히 날아오는 비행체를 보고는 소대에 이렇게 명령했다.

그러자 K-808 장갑차 위에 달려있던 신궁 휴대용 지대공미사일과 K-6 12.7mm 기관총이 불을 뿜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이 중대 중대장 손수명의 긴급 무전이 날아왔다.

“1소대, 쏘지 마. 우리 공군 기체다.”

“뭐라고요?”

“우리 공군의 KA-1이니 쏘지 말라고.”

KA-1은 KT-1 웅비 초등훈련기를 기초로 개발한 전선통제기 겸 경공격기다.

즉 KT-1 훈련기에 무장 포드 및 정찰 장비를 장착하고, 육군의 작전을 지원하고 전선항공통제와 경공격기 임무를 수행하려고 개발된 기체로 최고 속도는 350KTS(시속 약 648km), 무장으로는 70mm(2.75 인치) 7연장 로켓 포드 2개와 400발을 장탄한 12.7mm 기관총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드디어 이 KA-1까지 이 전쟁에 투입됐다는 그것이었다.

그동안 전선 통제는 E-8 조인트 스타스(Joint STARS) 지상조기경보통제기 8대가 하고 있었으나 전선이 요서와 랴오둥 반도로 나뉘자 기어이 이 KA-1까지 동원된 것이다.

“진짜 우리 공군기라고요?”

“그래, 인마. KA-1이다. 그리고 잠시 멈춰서 10분간 휴식이다. 55km 전방에 적 기계화사단급 부대가 진을 치고 있어서 곧 공군이 공중폭격을 한다니까.”

“기계화사단급 부대라면 인민군 제24 해상저격여단에 맡기지 뭔 공군까지 부른답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잠시 휴식해. 애들 힘들다.”

“예, 중대장님도 푹 쉬십시오. 충성.”

1소대장 원은철은 ROTC 말년 중위라서 그런지 빤질빤질했다.

그랬으니 중대장이 아니라 대대장에게도 가끔 따지고 들었고, 군기는 개판이었으나 싸움은 잘했고, 소대 지휘도 잘해 압록강 공방전에서 소대원 누구도 사상당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소대원들도 군기는 개판이었지만, 그런 소대장을 잘 따랐고, 중대의 다른 소대보다 전투력도 높았다.

그리고 이 12중대는 보병대대 중화기중대였는데, 예전처럼 들고 다니는 81mm 박격포와 90mm 무반동총이 없는 대신 K-281A1 81mm 자주 박격포 장갑차 3대와 K-6 중기관총과 K-4 고속유탄기관총, 신궁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등 무장을 덕지덕지 탑재한 K-808 장갑차 2대, 이렇게 총 5대의 장갑차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각 K-808 장갑차 2대에 탑승하는 소대원 각 5명이 현궁 대전차 미사일과 판처파우스트-3, M72 LAW 대전차 로켓 등을 운용했으니 화력은 막강했다.

“소대장님, 중대장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푹 쉬랍니다. 그러면 공군이 와서 짱깨들 머리 위에 폭탄 떨어뜨린답니다. 아, 그리고 아까 그 비행기 우리 공군의 KA-1 이랍니다.”

“그랬군요.”

“예, 그러니 쉬시죠.”

부소대장이자 역시 고참 중사인 이철수와 이런 말을 나눈 원은철은 담배를 하나 빼 물었다.

그리고 그가 담배를 두 모금 빨았을까 굉음이 울리면서 F-1 삼족오 전투기와 F-15K, F-16 130대가 날아갔고, 그 뒤를 따라서 해병대 항공대대의 AH-64 아파치 공격 헬기 20대와 AH-1W 슈퍼 코브라 공격 헬기 36대, 참매 소형무장 헬기 12대와 21사단 항공대대의 참매 36대도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저 정도면 짱깨 기계화사단급 부대도 박살이 나겠죠?”

“중국군 기계화사단이 있답니까?”

“예, 55km 정도 떨어져 있답니다.”

“55km라면 천무다연장로켓 사거리 안 아닙니까.”

“공군 폭격과 공격 헬기들이 공격하고 나면 그 애들도 포격하겠죠.”

이때 랴오둥 반도 대련 인근에는 중국군 기계화사단급 부대가 아니라 거기에 더해서 보병 2개 사단 정도의 패잔병과 저번 대규모 상륙작전에서 남북한 공군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상륙에 성공한 병력과 북부 전구 해군 일부와 대련에서 자원입대한 병력까지 합쳐서 약 10만여 명의 병력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 중국군 10만여 병력이 지금 대한민국 해병대와 국군 21사단 그리고 북한 제24 해상저격여단을 기다리고 있다가 한국 공군의 폭격과 공격 헬기들의 공격에 우수수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떻든 2021년 12월 25일 오후 5시 35분인 이때 랴오둥 반도에서는 그렇게 한국 공군 등이 중국군을 폭격했다.

그리고 그 순간 북경에서 동북 방향으로 약 250km 떨어져 있고, 옛 지명은 열하(熱河)지만, 지금은 청더(承德)라 부르는 곳으로도 남북한군 제3진공로의 북한 호위사령부 예하 91수도군단과 105전차사단, 101, 102, 103, 104, 105기계화사단, 제1기갑여단과 7, 8, 12군단이 진격해 들어갔다.

이들 부대는 요하를 건너자마자 거의 220km를 진격해서 이곳 청더까지 왔으니 아무리 기계화 또는 자동차화 부대라 하더라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아니, 어젯밤부터 한숨도 못 자고 싸우고 또 싸우면서 이곳까지 진격해왔다.

그 때문에 청더에 도착하자마자 91수도군단장 김명남이 전군에 휴식을 명령하고, 자신은 군단 사령부 외곽을 경계하는 장병들을 둘러봤다.

“춥지 않갔슴메?”

“남조선 동무들이 지원해준 텐트와 침낭, 전기장판까지 있으니 충분히 견딜 수 있습네다. 군단장 동지.”

“기래, 발전기는 잘 돌아가네?”

“물론입네다.”

“그럼 수고하라.”

91수도군단장 김명남이 그렇게 장병들을 둘러본 다음 중국인들이 모두 도망친 어느 주택으로 들어가서 피곤한 몸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만이 아니라 외곽을 경계하는 병력 이외 인민군 대부분은 청더 시내 중국인들이 도망친 빈집에서 온종일 지친 몸을 내려놓았고, 일부 인민군 부대는 그 유명한 피서산장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조선 시대인 서기 1780년(정조 4년) 연암 박지원도 청나라 황제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연(七旬宴)을 축하하기 위해 온 조선사신단에 끼어 있었고, 그가 요동과 북경 그리고 이곳 열하까지 여행하고 돌아간 다음 쓴 여행기가 바로 그 유명한 열하일기(熱河日記)다.

그런데 만약 그가 살아서 지금 북한 인민군이 요하를 건너와 그 피서산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는 과연 그 장면을 열하일기에 뭐라고 적을지 참 궁금했다.

어떻든 북한 인민군들은 요하를 건너 이 청더까지 약 220km를 왔고, 앞으로 이 거리만큼만 더 가면 그곳이 바로 북경이었다.

“이곳은 피난민들이 없는데, 다른 곳은 어떤지 알아봤음메?”

“G45 다광 고속공로 등 북경으로 이어진 모든 도로가 피난민들이 탄 차로 꽉 막혔습네다. 군단장 동지.”

“그럼 우리의 진격도 막히겠군.”

“그럴 것입네다.”

“모조리 죽여버릴 수도 없으니 큰일이군.”

제3진공로의 북한 호위사령부 예하 91수도군단 등의 부대는 요하를 건너 이곳까지 오면서 온종일 전투에 시달린 것은 물론 앞을 막는 피난민들 때문에 종종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그 피난민들을 모조리 죽여버릴 수도 없었으니 더 진격에 어려움이 많았고, 진짜 그 이유로 더 빨리 진격하지 않고, 이곳 청더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군단장 동지의 말씀처럼 모조리 죽여버릴 수도 없으니 빨리 피난하라고 더더욱 재촉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네다.”

“그럼 공군에 연락해서 피난민들 머리 위로 피난을 재촉하는 전단을 한 번 더 살포하라고 해.”

“알갔습네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중국 동북 3성과 내몽골자치구의 중국인을 모두 추방하는 것이 남북한의 목표였지만, 죽이는 것은 목표가 아니었다.

그리고 피난민이나 비무장 중국 민간인을 죽여 봐야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만 받으면서 지금 전개하고 있는 동북 3성과 내몽골자치구를 남북한의 고토로 만들려는 공작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 뻔했다.

그랬기에 91수도군단장 김명남이 잠시 지친 몸을 쉬다가 부관을 불러서 이런 대화 끝에 피난을 재촉하는 전단을 더 살포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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