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서막(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자신도 아는 사람이라는 말에 수진은 뭔가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바로 집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합참의장 김태호가 비서관을 부르더니 뭐라고 하는 것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 아직 밥 안 먹었는데요. 그리고 남자친구는 필요 없고, 군인은 더더욱 싫습니다.”
“강 비서관도 잘 아는 사람이오.”
“그럼 더더욱 밥부터 먹어야겠군요.”
수진이 이러니 합참의장 김태호는 누군가를 부르려다가 그만두고 진짜 밥부터 먹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수진의 마음을 돌리려고 한참을 노력하고는 그 누군가를 기어이 불렀다.
“충성! 특수전사령부 707특임단 중위 서민재. 의장님의 부름 받고 왔습니다.”
“강 비서관에게는 인사 안 해!”
“의장님, 제게 부탁하신 일 다 없었던 것으로 하시죠.”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강 비서관!”
“제가 저번에 청와대를 방문한 특전사령관님에게 분명히 이 서 중위가 북한에서 살아 돌아오면, 병사들처럼 영창에 보내달라고 하니 영창 제도는 이미 폐지됐고, 영창 제도가 있어도 장교는 영창에 보내지 않는다더군요. 그래서 그럼 군기 교육이라도 제대로 시켜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군이 제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네요. 그런데 저도 굳이 군의 부탁을 들어줄 필요가 있을까요.”
“강 비서관, 그것이 아니라 이건 대통령님의 명령과 국방부 장관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뿐이니 강 비서관이 너그럽게 이해해주시오. 그리고 이 서 중위가 또 강 비서관을 좋아한다고, 같이 북한에 다녀온 공필영 대령이······.”
“오호! 그러고 보니 이 일을 꾸민 것이 결국 그 공필영 대령이군요. 소속이 아마도 합참 작전처죠. 잘됐네요. 그 공 대령은 의장님이 군기 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이 서 중위는 특전사령관에게 명령해 군기 교육을 제대로 하세요. 아주 제대로요. 아시겠죠. 아니면, 그 부탁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수진이 이렇게 나오자 합참의장 김태호는 수진과 서민재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가 기어이는 안절부절못했다.
민재인 대통령이 나서도 성사될까 말까 한 사안들을 수진은 그동안 어려움 없이 해냈고, 이번 일도 분명히 성사해낼 것으로 믿었는데 갑자기 이런 반응이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공필영 대령에게 듣기로 이미 평양과 보현사 등에서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고, 그래서 그에게 추천을 받아 직접 서민재 중위를 만나 그간의 사정도 알아본 다음 수진에게 소개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두 사람 군기 교육은 제대로 할 테니까 그 일은 꼭 좀 부탁하오. 그리고 이 서 중위는 그럼 보낼까?”
“중위 서민재,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뭔가.”
“의장님이 아니라 강수진 비서관님에게 한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쓸데없는 소리면,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에요. 내가 그 군복 책임지고 벗겨버릴 수도 있으니까.”
“각오하고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강수진 비서관님, 그동안 보고 싶었습니다.”
“의장님, 보세요. 저런데 군기 교육 제대로 안 하고 되겠어요. 그렇죠?”
“하하하! 내 반드시 군기 교육 제대로 할 테니까 우선 앉아서 밥이나 먹으라고 합시다. 강 비서관.”
서민재는 그렇게 일단 자리에는 앉았다.
그러나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앞에는 대한민국 현역 군인 중 최고 계급인 합참의장이 앉아 있고, 옆에는 도무지 그 마음을 알 수 없는 수진이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조금 호감이 있는 것도 같고, 매몰차게 하다가도 이렇게 앉아서 밥은 먹게 하는 알 수 없는 그 수진이 말이다.
“그런데 용케 살아 돌아왔네요. 민은정 소장에게 죽여 버리라고 부탁했는데.”
“강 비서관님은 무슨 그런 무시무시한 말씀을 눈도 안 깜빡이고 하십니까?”
“어떻게 안 죽고 살아왔느냐고요?”
“그 민은정 소장님의 배려 덕분입니다.”
“헐!”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비서이자 호위총국의 그 민은정 소장?”
“예, 의장님. 그 민은정 소장님이 편지도 보내게 해주고, 여타 여러 가지로 살펴준 덕분에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식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장님, 이 서민재 중위 이번에 또 북한 보내세요. 그럼 이번에는 민은정 소장이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에게 직접 부탁해서 죽여 버리라고 할 테니까.”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아주 무미건조한 얼굴로 이런 무시무시한 말을 하는 수진을 보노라니 서민재는 자신이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사람이 어떻게 단 일 점의 감정변화도 없이 사람을 죽여 버린다고 하는지.
혹 사람이 아니라 인조인간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래도 합참의장 김태호가 편을 들어 주기는 주었다.
“이번 그 일에는 이 서민재 중위가 어울리지 않으니 다음에 그보다 더 어려운 임무에는 반드시 보내겠소. 그래서 개마고원에서 북한군과 합동훈련을 하고 온 것이니까 말이오. 하니 오늘은 밥이라도 편히 먹게 합시다.”
“서 중위, 불편해요?”
“아, 아닙니다. 아주 편합니다.”
“하하하! 나 때문에 불편하면, 나는 이만 자리를 피해 주겠소. 늙은이가 눈치도 없이 아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네. 그건 그렇고 강 비서관, 그 일은 잘 좀 부탁합니다.”
“대통령님의 지시가 있어야 제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아시죠?”
“물론이오. 그리고 그 일은 장관님이 내일 대통령님을 뵙고 작전보고와 함께 최종승인을 받을 것이오. 그럼 강 비서관은 그때······.”
“만약 대통령님의 지시가 있으면,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이 서민재 중위와 그 공필영 대령은 군기 교육을 제대로 하세요.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를 제게 알려 주면 좋겠는데.”
“좀 전에 본 그 보좌관을 통해서 서면으로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겠소. 그럼!”
합참의장 김태호가 이렇게 자리를 피해 주자 수진과 서민재만 덩그러니 남아 말없이 수저만 놀리다가 수진이 먼저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그 정도 얼굴이면 여자가 수도 없이 많았을 것 같은데, 왜 하필이면 나에게 찝쩍거려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임관하고는 특전사에서 훈련만 하다 보니 여자 사귈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찝쩍거리는 것이 아니라······.”
“혹 뭐 여자는 처음이다. 지금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에요.”
“그렇습니다.”
“헐!”
“수진 씨, 그동안 보고 싶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여긴 사적인 자리가 아닌 합참의장님과 가진 공적인 자리의 연장이에요. 그런데 일개 중위 따위가 어디서 감히······.”
“죄송합니다. 강수진 비서관님!”
“호호호!”
마녀 같은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서민재는 이랬다가 저랬다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수진의 말과 행동이 여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시쳇말로 혹 ‘밀당’이 아닐까 퍼뜩 그 생각이 들었다.
“웃으니까 더 예쁘십니다.”
“민은정 소장이 저보다는 훨씬 예쁘죠.”
“제가 보기에는 강 비서관님이 더 예쁘십니다.”
“그런 황당한 아부는 그만하고 이만 가죠. 좀 전에 들었겠지만, 내일 국방부 장관님이 대통령님께 보고하고, 그래서 지시가 떨어지면 다시 평양에 가서 민은정 소장을 만나야 하니까. 그때 아주 제대로 이야기해주죠.”
“무슨 이야기를······.”
“다음에 북한 오면 반드시 죽여버리라고.”
수진이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자 서민재도 따라 일어나 밖으로 나와 뭔가 말을 걸려다가 결국 이 말밖에는 꺼내놓지 못했다.
“제가 집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집 여기서 5분 거리밖에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 이만 가세요.”
“그래도······.”
“나 따라오다가는 저 국정원 경호원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으니 이만 가요.”
이 말과 함께 수진이 재빨리 사라지자 서민재는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몰차게 내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다고 자위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
2021년 7월 초, 수진은 비밀리에 다시 방북했는데, 혼자가 아니라 정보기무사령부 요원 둘을 대동한 상태였고, 이들이 중국 북부 전구를 감시 정찰할 적당한 장소를 찾을 선발대였다.
“위원장 동지의 허락은 받았어?”
“다 알면서 묻는 이유는 뭐야. 그리고 서민재 중위 여기 다시오면 진짜 죽여 버려. 지난번처럼 장난치지 말고.”
“둘이 잘 안 됐어?”
“잘되고 말고 할 것이 어디 있어.”
“나는 둘이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됐네요. 장군님. 그리고 빨리 갑시다. 먼 길이니까.”
“하여튼 둘이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열차 타고 가자니까 왜 차를 타고 간다고 우겼어.”
“내 처지에 언제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600 풀만가드를 타고 여행을 가 보겠어. 그래서 차 타고 간다고 했고, 장군님이랑 수다 떨면서 가는 것도 좋고, 가다가 경치 좋으면 언제든지 세울 수 있어서 좋고, 또 가다가 보현사에 들러서 복원 작업이 잘되고 있는지 봐야 하니까.”
“벤츠 사서 타고 다닐 만큼 부자면서 무슨 그런 말을. 그런데 나도 너랑 수다 떨면서 가는 것은 좋아. 그리고 보현사 복원은 잘 되고 있습니다요.”
“벤츠 S600 풀만가드를 사서 타고 다닐 정도의 돈은 없습니다. 벤츠 C, E 클래스 정도면 또 모를까.”
수진과 민은정은 그렇게 다시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600 풀만가드에 타고 묘향산 보현사로 먼저 달렸다.
정보기무사 요원 둘은 호위총국에서 준비한 차에 타고 그 뒤를 따랐고 말이다.
그런데 그때 북한 제2 방공포병사단 3연대에는 또다시 비상이 걸렸는데, 이 연대는 다른 곳도 아닌 백령도에서 바로 보이는 황해도 용연 반도 장산곶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도입한 HQ-16 지대공미사일 2개 포대와 번개 5호, 번개 6호, 번개 7호 지대공 미사일 포대에 사거리 450km 금성 5호 대함미사일까지 배치해놓고 있었다.
“비싼 미사일 쏘지 말고, 자주 대공포로 갈기라우! 날래 저 무인기부터 갈기라우! 그리고 다시 비상부터 걸어! 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