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폭풍전야(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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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강일수 소장이 장난삼아 농담으로 꺼낸 말이 이제 점점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니 기정사실로 되는 것 같아 서민재 중위는 곤혹스러웠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판을 엎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기에 묵묵히 진행되는 이야기만 들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반대하면 일은 모두 헛일이 되거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기에 말이다.
“대원들이 다들 이렇게 응원하니 좋습니다. 묘향산으로 같이 가게 되면, 제가 강수진 비서관님에게 서민재 중위를 소개하겠습니다.”
“하하하! 좋소. 좋아. 자, 다들 강수진 비서관과 여기 서 중위를 위하여 잔을 드시오. 두 사람을 위하여!”
“위하여!”
내 동생 수진을 놓고 그들이 그럴 때 진작 그 수진은 나와의 저녁을 끝내고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하다가 이제는 결정을 내리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
“묘향산 관광이 어려울 것 같으면 일단 보현사 복원부터 하셔도 됩니다. 사성그룹과 LJ그룹에서도 보현사 복원에 성의를 보일 것 같았으니까 위원장님이 결정하시면 각자 10억씩은 내놓을 겁니다. 그럼 한국 돈 40억이니 대충 복원은 되지 않겠습니까?”
“강 비서관, 복원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대충 해서 되겠어. 하여튼 자꾸 그러니 하고 싶으면 보현사 복원부터 해. 그러면 나도 10억 원을 내놓지. 하면 소실된 전각들 다 복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한국의 사찰 건축과 사찰 복원 전문가는 강 비서관이 데려오든 납치해오든 해. 그래서 우리 전문가들과 상의해서 제대로 복원하도록 하고 말이야.”
“이미 문화재청에 이야기해서 보현사 복원을 도와줄 전문가들 물색해 두었습니다.”
“진짜?”
“예, 그러니 위원장님께서는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지시나 내려주십시오.”
“나 이거야 참.”
수진은 원래 이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아니지 내가 알던 그 어린 수진과 이제 어른이 다 된 수진, 그것도 사회생활을 하는 수진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간 환경의 변화도 고려하면 이 낯선 수진이 진짜 수진의 참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묘향산 보현사 복원은 결정됐다.
그 다음 날 아침, 다시 옥류관에서 만난 한국 특수부대원들과 북한 총참모부 작전총국의 강일수 소장 등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는 북한 총참모부에서 준비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는 혹독한 훈련이 기다리는 개마고원을 향해 북상하기 시작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민은정 소장과 수진이 탄 벤츠 마이바흐 S600과 호위총국 경호 차량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는 너나 할 것 없이 휘파람을 불면서 서민재 중위를 연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는 평양과 자강도 희천시를 잇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청천강이 옆으로 흐르는 평안남도 개천의 어느 식당에 도착했다.
“다들 점심 먹고 가자우!”
강일수 소장이 아닌 총참모부에서 나온 인솔자가 이렇게 말하는 바람에 남북의 특수부대원들은 모두 버스에서 내려 막 승용차에서 내린 민은정과 수진의 뒤를 따라 쭈뼛거리면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니 이미 연락이 되어있었는지 아니면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불고기였다.
“우리가 안 먹으니까 저 사람들도 안 먹는 것을 보니 역시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비서이자 호위총국 민은정 소장님의 권력은 역시 대단해. 대단해! 그리고 좀 전에 보니까 같은 소장인데도 강일수 소장이 꼼짝을 못하는 것은 물론 존댓말까지 하는 것으로 봐서는 더 그렇고 말이야.”
“한국 특수부대원들이 안 먹는 것은 강수진 비서관님의 파워 때문이고요.”
“저 사람들은 장군님 미모에 반해서 그런 것이죠.”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죄다 강 비서관님을 보고 있습니다.”
“장군님을 본다니까요.”
“강 비서관님을 보니까 이런 이야기 그만하고 먹자. 그래야 저 사람들도 먹지.”
민은정이 이렇게 말하면서 젓가락을 들자 수진도 젓가락을 들었다.
그러자 남북 특수부대원들도 모두 수저를 들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조금은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을 먹은 수진이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공필영 대령이 진짜 어색한 표정으로 와서는 이렇게 말했는데, 그 모습을 남북 특수부대원들은 물론 강일수 소장까지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비서관님.”
“왜 그러시죠?”
“혹시 저희 대원들도 보현사에 잠깐 들리면 안 되겠습니까? 대원 중 불교 신자도 있고, 오늘 개마고원으로 가면 언제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 개마고원에서 바로 작전에 투입되어 생사를 가늠할 수 없을지도 몰라서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불공이라도 드린 다음 가고 싶습니다.”
“잠깐만요. 민 장군님, 보현사에 대원들 머물만한 숙소도 마련되어 있습니까?”
“마련하라고 할까?”
“그러면 대원들이 좋아하겠죠. 민 장군님!”
“알았습니다. 강 비서관님.”
민은정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자마자 남북 특수부대원들이 식당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지르는 바람에 두 여자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때였다.
“민은정! 민은정! 민은정!”
“강수진! 강수진! 강수진!”
“서민재! 서민재! 서민재!”
이 예기치 않은 환호성과 난생처음 듣는 서민재라는 이름에 두 여자는 다시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곧바로 대원들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민은정 소장이 안색을 바로 하고는 강일수 소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강일수 소장님, 이게 무슨 의미죠? 아니, 무슨 반응이죠?”
“민은정 소장님 이름은 여기 남조선 대원들이 외친 것이고, 강수진 비서관 이름은 우리 대원들이 외친 것입니다. 그리고 서민재는 여기 남조선 특수부대원으로······."
“서민재 대원이 누구죠?”
“접니다.”
“그런데 왜 북남의 대원들이 공동으로 이름을 연호하죠. 이유가 뭐죠?”
“장군님 때문이 아니니 이상한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럼 이상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말씀드린 것처럼 장군님 때문이 아니라 강수진 비서관님 때문입니다.”
민은정은 이런 경우를 많이 당해봐서 이번에도 특수부대원들이 자신을 희롱하거나 그와 유사한 뜻으로 연호하는 줄 알았으나 이 뜻밖의 말에 서민재를 한번, 수진을 한번 쳐다봤다.
자신을 쳐다보는 민은정의 그런 눈빛을 뒤로하고 수진이 나선 것은 그때였다.
“나 때문이라니, 자세하게 사정을 말해요. 그전에 소속은?”
“707특임단 중위 서민재입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말해요. 이 차 한 잔의 여유를 망쳐놓고,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이유가 도대체 뭔지 알아야겠으니까. 그리고 이상한 이유면, 귀관은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귀관들을 인솔하고 온 책임자로서 대통령님의 특별 지시를 수행하러 온 비서관으로서 국방부 장관님과 합참의장님 그리고 공군 부의장님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려고 온 사람으로서 경고하는 겁니다.”
“각오 단단히 하고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문에 강 비서관님이 합참은 물론 공군에서도 잘 생긴 총각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고 했다는데, 저는 어떻습니까?”
“뭐라고요?”
“저는 어떤지 물었습니다.”
강일수 소장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연결 고리를 만들고, 그에 공필영 대령이 보현사에서 수진에게 서민재를 소개하려고 한 계획은 서민재가 이렇게 말하는 바람에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어갔다.
“다시 한 번 말 해봐요. 뭐라고 했죠?”
“합참과 공군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못 찾았다면, 특전사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전사가 우리나라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는 어떻습니까?”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장난이 아닙니다.”
“지금 장난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을 것인데, 이런 장난이나 치고. 다들 실망이에요.”
“절대 장난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제는 몰랐는데, 아니, 어제까지는 이럴 마음이 아니었는데, 오늘 다시 강 비서관님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습니다.”
“우와!”
“우우!”
어제만 하더라도 자신보다 직책이 높고, 정치하는 수진이 싫다고 하더니 오늘은 이렇게 첫눈에 반했다고 서민재가 태도를 돌변하자 한국 특수부대원들과 북측 인사들이 이렇게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러자 민은정 소장이 나서서 그런 대원들을 진정시키고는 수진을 빤히 쳐다봤다.
“특전사 707특임단 서민재 중위! 그 이름 기억해 놓죠. 그러나 훈련 끝나고 자대로 복귀하는 즉시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각오는 이미 되어 있습니다.”
“각오가 되어 있다니 그럼 이만 갑시다. 마음 같아서는 보현사에 들르지 말고, 곧장 개마고원을 가라고 하고 싶으나 그랬다가는 나만 속 좁은 사람이 될 것 같으니까 그건 그만두죠.”
이렇게 이상하고 엉뚱한 전개가 진행된 점심시간은 끝나고 일행은 묘향산 보현사를 향해 달려갔고, 그 내내 민은정이 수진을 놀린 것은 당연했다.
“그 서민재 중위 잘 생기는 잘 생겼더라.”
“장군님, 그래서요?”
“그래서는 너 아직 남자친구가 없으니까 친하게 지내라는 말이지. 그러다 보면 혹시 알아 진짜 남자친구가 될지.”
“그러지 말고 장군님이 사귀는 것은 어때요?”
“내가 아니라 너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했잖아.”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 보현사는 한국 5대 사찰 중의 하나로 꼽히며 서기 968년(고려 광종 19년)에 창건됐고, 1042년에 중건한 이후 여러 차례의 화재로 보수, 중건됐다.
주요 건물로는 조계문, 해탈문, 천왕문, 만세루, 대웅전, 관음전, 영산전, 수충사가 있고, 고려 당시의 유물로는 8각 13층 석탑이 있다.
북한에서 보현사는 가장 큰 절일 뿐 아니라 북한 불교의 총림(叢林)으로 한국으로 치면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에 삼보사찰인 송광사와 해인사를 합친 것과 같은 위상을 가진 사찰이다.
“여기 좋다. 그리고 진짜 묘향산이란 이름처럼 향기가 나는 것 같아.”
“그렇지.”
“응, 그리고 진짜 여기를 잘 정비하고, 소실된 전각을 다 복원하고 나면 한국 관광객이 못 와도 일 년에 일백만 명은 오겠다. 그럼 이 근처에 사는 북한 동포들에게 제법 많은 도움이 될 텐데 말이야.”
“그래서 강 비서관님이 여기까지 온 것 아닙니까.”
“그건 맞아. 그리고 여기 불교역사박물관이 있다면서 가보자. 불경 목판 원판과 해인사 팔만대장경 목판 인쇄본 완질 1,159권 등 총 5,430점이 있다고 하던데.”
“네, 강 비서관님. 그런데 저 서 중위 자꾸 따라온다. 호호호!”
“자꾸 놀릴래.”
“놀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러지 말고 불러서 같이 다니자. 저 대원들 개마고원으로 가면 우리 특수부대원들과 함께 죽을 만큼 고된 훈련을 해야 해요. 그러다가 유사시에 적진에 침투하면, 가장 어려운 작전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럼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고로 오늘이 저 서 중위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강 비서관님.”
수진도 특수부대원들이 왜 북한에 왔는지 대충 알았다.
그랬기에 민은정의 말이 귀에 박혀 떠나지를 않았다.
그 바람에 서민재 중위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따라오는 것을 제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서민재 중위보다는 보현사 불교역사박물관 등 여러 문화재를 살펴보고, 사진 찍고, 촬영하는데 더 신경을 기울였다.
지금은 남녀 간의 일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아름다운 사찰이 소실되기 이전의 원형 그대로 잘 복원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자기가 어떤 역할, 무슨 일을 해야 할까를 더 고민해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