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금강산 관광(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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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두고 내가 한 이 조처 때문에 온종일 한국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인터넷과 방송으로 보면서 민은정을 불러 이렇게 물었다.
“서울로 갈 인원은 다 선발했어?”
“예, 위원장 동지. 주방장과 주방보조에 봉사원까지 모두 선발해 두었습니다.”
“빨라서 좋군. 그런데 시간이라고는 어제 하루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선발했지?”
“어제 하루가 아니라 개성에서 돌아온 그 날 저녁 옥류관 전 직원을 모아놓고 서울 분점을 내면 갈 사람을 어제저녁까지 지원받았습니다. 그러니 하루와 한 저녁이 걸린 것입니다.”
“민 대좌의 말처럼 하루 한 저녁에 다 선발한 것을 보니 지원자가 많았는가 보지?”
“서울에 보낼 만큼은 되었습니다.”
민은정이 이렇게 말했지만, 안 봐도 지원자가 많았을 것이다.
아직도 뭔가 모르게 답답한 평양보다는 서울이 더 자유로울 것이고, 임금도 평양에서보다는 더 많이 받을 것이 자명했으니까.
“하여튼 수고했고, 모든 준비를 해놓고 있어. 그래야 장소가 확정되면 바로 내려가서 분점을 개업하지.”
“예, 위원장 동지.”
“좋아. 그리고 말이야. 민 대좌가 보기에 남조선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몇 석이나 얻을 것 같아?”
“제가 남조선 국회의원선거에 대해서 뭘 알겠습니까만, 최대 260석에서 최저 230석을 예상합니다.”
“최대 260석에서 최저 230석이라고?”
“예, 그 정도 예상합니다.”
최대 260석이라는 민은정의 예측처럼 그 정도 의석만 얻으면 민재인 대통령은 탄탄대로를 달릴 것 같았다.
야당의 반대로 그동안 추진하지 못했던 수많은 개혁 입법 제정에도 걸림이 없을 것이며, 개헌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퇴임해도 당분간 정치보복은 당하지 않으리라.
“나도 민재인 대통령이 그 정도 얻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 그리고 다시 한 번 서울 갈 인원을 점검해놓고 이만 나가 봐. 아니, 이만 퇴근해.”
민은정 등 비서들을 모두 퇴근시키고, 나는 자모산 특각으로 가서 금강산 관광에 관한 궁리를 하다가 2020년 4월 15일 아침을 맞았다.
그 즉시 한국 방송을 틀어놓고, 내가 환생한 이후 북한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부위원장 오지용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오 동지도 알다시피 곧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것이니 금강산 관광지구법 및 금강산 관광지구 출입, 체류, 거주 규정을 시대에 맞게 적절하게 손 좀 보시오. 아시겠소?”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에서 위원장 동지께서 지시하신 그런 내용을 첨부하면 되겠습니까?”
“바로 그렇소. 그리고 남조선과도 협의하여 지난 2004년 체결된 대한민국 국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입 및 체류에 대한 합의서도 시대에 맞게 손질하시오. 전권을 주겠소.”
“잘 알겠습니다. 위원장 동지.”
“그건 그렇고 오 동지가 보기에 남조선 국회의원 선거가 어떻게 될 것 같소?”
“여당이 압승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렇지요. 하면 지금 남조선과 하는 모든 사업과 교역 등에 변동이 없겠지요?”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다는 오지용의 말이 마치 남조선과 모든 것을 잘하라는 말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겠지.
여하튼 금강산 관광에 앞서 법과 규정을 대대적으로 정비해서 북한 아니 북한 인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관광으로 말미암아 인근 인민들의 삶이 더 향상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 일대에서 이미 진행 중인 복합 화력발전소 공사, 7번 국도 확장 공사에 참가한 인민은 월급으로 한국 돈 150만 원을 받아 살림살이에 제법 보탬이 되고 있었으니 관광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했다.
또 금강산 청년, 삼일포, 감호 역으로 이어지는 동해선 열차(금강산 청년선)는 지금도 제진까지 연신 석탄을 실어 날랐으니 그 철길은 금강산 관광이 정식으로 다시 시작되는 날 석탄 화물 열차만이 아니라 관광 열차도 다닐 것이었다.
그럼 또 인근 인민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 분명했다.
“그럴 것 같다. 어떻든 좋소. 그리고 오 동지, 법과 규정을 정비하면서 그 금강산 일대를 발전시킬 방안도 한번 검토해 보시오.”
“어떤 발전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친환경 관광산업을 토대로 한 인근 주민의 삶의 질 향상. 그 정도라고 하면 되겠소.”
“금강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인근 인민이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말씀이십니까?”
“하하하! 바로 그렇소!”
내가 이래서 오지용을 신임했다.
그래서 그에게 금강산 일대를 발전시킬 방안을 마련해 보도록 한 것이다.
물론 금강산의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다.
“온 힘을 다해서 위원장 동지의 심려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하여튼 방도를 한번 마련해 보시오. 그리고 관광을 재개하려면 금강산 국제 관광특별구의 모든 위락과 음식, 숙박 시설도 다시 점검해야 할 것인데, 누구에게 맡기면 되겠소?”
“여타 시설 점검은 2여단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고, 옥류관과 목련관 등 음식점은 위원장님 특별비서이자 이번에 서울 옥류관 분관 개점의 책임도 진 민은정 대좌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민은정 대좌라······. 그건 생각해 보겠소. 그렇지만 시설 개보수는 2여단에 맡길 것이니 오 동지는 법과 규칙을 정비하고, 관광 재개에 따른 남조선과의 협상을 맡으시오.”
“예, 위원장 동지.”
금강산 국제관광 특별구는 2002년에 북한이 금강산 관광 개방을 시행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행정구역으로 이때의 명칭은 금강산관광지구였다.
그러나 2011년에 최고 인민회의가 새로운 법령을 내세우면서 금강산 국제관광 특별구로 개정하였고, 금강읍 1개의 읍과 금천리, 금풍리, 내강리, 단풍리 등 26개의 리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이 구역에 있는 모든 시설물은 북한이 2010년 11월 12일 밤과 13일 오전에 걸쳐서 몰수하고 동결했다.
그때 몰수된 한국 정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소유했던 부동산은 이산가족면회소, 소방서, 문화회관, 온천장 등이었고, 동결된 현대아산의 시설물은 금강산관광 지구 내 식당과 판매시설인 온정각과 컨테이너 숙소인 구룡마을, 차량 정비공장,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 등이며, 에머슨 퍼시픽 소유의 골프장과 온천 리조트, 일연 인베스트먼트 소유의 금강산 패밀리비치 호텔과 고성항 횟집 등도 동결됐다.
이 투자액만 3,593억 원이지만,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북한이 몰수 동결한 것이니 한국으로서도 하루빨리 관광을 재개해 이 자산을 찾아야 했으나 그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있으니까.
아니, 일방적으로 관광을 중단한 것은 한국이었으니까.
물론 이유야 북한이 제공했다.
그래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 나가서 일 보시오.”
오지용을 그렇게 내보내고, 민은정을 호출해서 이렇게 물었다.
“옥류관 서울 분점만이 아니라 금강산 분점까지 맡아서 재개관에 준하는 증·개축을 할 수 있겠지?”
“금강산 옥류관은 지금 영업 중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증·개축을 하라고요?”
“응, 영업 중이지만, 지금 받는 중국인과 외국인 관광객과는 상대가 안 되는 남조선 관광객을 곧 받을 것이니 미리 준비해놓아야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당연히 남조선 관광객을 받을 것이고, 그럼······.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위원장 동지. 제가 가서 음식을 먹어보지도 않고, 영업 방식을 보지도 않고, 여기 앉아서 섣불리 일하기에는······.”
“오늘 남조선 국회의원 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나면 금강산으로 휴가나 가자. 그럼 되겠지?”
“준비를 지시해 놓겠습니다.”
민은정이 금강산 휴가 준비를 지시해 놓겠다면서 밖으로 나가기에 다음으로 부른 사람은 국무위원회 서기실장, 의전실장, 당 중앙위 조직지도부 부부장이었다가 이제는 당 중앙위 정치국 위원 15명에도 이름을 올린 김창선이었다.
이 사람은 한마디로 김정은의 집사로 충복이었다.
내가 환생한 이후에도 이 김창선을 유심히 지켜봤고, 그 결과 과연 내가 아닌 김정은의 심복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는 없었다.
하여 당 중앙위 정치국 위원에 올렸고, 서기실과 의전실을 총괄하게 했으나 서기실장과 의전실장이라는 명목상의 자리는 내가 뽑은 유재호와 조영길에게 넘기게 했다.
그러나 실장이라는 명목상의 자리만 넘긴 것이지 여전히 그가 서기실과 의전실을 총괄했으니 실장이 아니라 총괄실장이 된 것이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그의 자리를 조정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어떻게 됐소?”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위원장 동지.”
“그럼 좋은 날을 잡아 평양에 본점을 개설하고, 이어서 개성과 백두산, 금강산, 단천, 사리원 이렇게 지점 5곳을 먼저 개설하시오.”
“예, 그런데 진짜 남조선 원화까지 모조리 예, 적금으로 받고, 국내외 환전에 송금, 기업과 개인 대출, 카드 사업까지 하실 것입니까?”
“그렇소. 하여 중국 위안화보다는 남조선 원화가 지금보다는 공화국에 더 많이 통용되게 할 것이오. 미국 달러 통용은 지금이야 어쩔 수 없지만 말이오.”
바로 그랬다.
한국 원화의 북한 통용, 그래서 종내에는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를 대신해서 원화가 자연스레 북한 화폐로 자리 잡게 하려는 나의 복안,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은행 설립이었다.
그래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김창선을 내세워서 조선 백호 은행을 설립하게 한 것이다.
물론 자본금은 내 비자금에서 충당했으니 이건 곧 내 은행이었다.
그러니 나는 남한에서는 은행 과장이었지만, 이 북한에서는 은행 소유주가 된 것이니 이도 내 신분의 변화라면 변화였다.
“그런데 위원장 동지, 남조선 원화가 공화국에 전면적으로 통용되면, 혹시라도 공화국의 경제가 남조선에 예속되지는 않겠습니까?”
“김창선 동무, 내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공화국의 경제를 획기적으로 살리려면 어쩔 수 없이 일정 부분은 남조선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지킬 선은 확실하게 지켜야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