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김정은-85화 (85/470)

〈 85화 〉 석탄과 석유(7)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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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 총리 박봉구의 말처럼 사성전자가 개성공단에 투자만 해준다면 보증서가 문젤까.

공장 앞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유로운 운영을 보증한다는 내 이름으로 된 비석이라도 세워줄 수 있었고, 세계만방이 아니라 온 우주에도 약속해줄 수 있었다.

“그래도 믿음이 생기지 않으니 이는 그동안 귀국이 한 행동 때문일 겁니다.”

“우리 공화국 때문이 아니라 제 마음대로 문을 닫은 한국의 전임 박근애 정권 때문이고, 이제 그럴 일은 남에서도 공화국에서도 없으니 안심하시고 투자해도 됩니다.”

“그래도 역시 믿음이 가지 않는군요.”

“사성전자 베트남 공장 근로자들 월급이 그동안 많이 올라 약 50~60만 원이죠. 거기에다가 교육비 등 제반 경비를 더 하면 근 75만 원, 그래도 언어가 잘 통하지 않고, 민족적인 정서가 달라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한국 공장보다는 현저한 생산성의 차이. 맞죠? 그러나 우리 공화국 노동자들은 한국 노동자들보다 더 근면 성실하고, 언어도 통할뿐 아니라 민족적인 정서도 같습니다. 또한, 곧 경의선, 경원선, 동해선을 따라 공단에서 생산한 제품을 바로 유럽으로 수출할 수도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생산해 유럽으로 보내려면 물류비 등이 얼마나 듭니까? 공화국에서 열차로 보내는 것보다 저렴합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경비를 더 하면 과연 인건비가 올라 중국에서 다시 동남아로 공장을 이전한 효과가 있을까요?”

북한 내각 총리 박봉구가 이렇게 열변을 토하면서 개성 공단 투자를 요청하자 사성전자만이 아니라 한대 자동차 사장 등도 관심 어린 눈으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모든 것보다는 정치적 안정이 문제가 되니······.”

“공화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정치적 안정기에 들어 있으며, 북남 관계, 북미 관계, 북·중 관계, 나아가서는 러시아와의 관계도 좋습니다. 그러니 그 말은 변명으로 들릴 뿐입니다. 또 귀 그룹의 사성건설도 지금 공화국 철도와 도로 건설에 참여하고 있으니 그렇게만 들립니다. 하니 귀 그룹의 모든 결정권을 쥔 이 부회장께 말씀드려 언제 공화국에 한번 오시라고 전해주십시오. 그럼 위원장 동지께서 국빈으로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일 보고 드리면서 말씀은 드리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날짜를 정하지 않은 초청장이니 결심이 서면 거기 적힌 메일로 바로 연락 주십시오. 하면 위원장 동지께서 직접 답장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이 메일이 혹 김정은 위원장의······.”

“위원장님 특별비서의 메일이니 위원장님의 메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그럼 그 민은정 대좌의 메일?”

민은정은 경의선 복원을 알리는 광고에 출연한 이후 한국에서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고 있었기에 사성전자 사장 임찬규까지 이렇게 관심을 보였다.

“그건 유구무언!”

“맞는군요. 총리님, 혹시 우리 회사 광고 모델로 민은정 대좌를 기용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면······.”

“그런 메일은 답장이 안 올 겁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개성공단에 투자하시면, 제가 민은정 대좌에게 부탁해보겠습니다.”

자사의 광고에 민은정만 모델로 쓸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용의가 있었던 임찬규는 그 말에 기가 죽고 말았다.

개성공단 투자는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까.

어떻든 북한 내각 총리 박봉구는 전경련에서 10대 그룹 사장단을 만나 개성 공단 투자를 요청했으나 응하는 대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러나 중소기업 특히 섬유 쪽 기업은 이때 투자할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었는데, 박봉구가 전경련에 이어서 중소기업을 위한 투자설명회도 개최하자 10여 개 기업이 급히 관심을 보이면서 일이 급진전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신발 생산을 하는 중견기업 하나도 투자에 관심을 보여 박봉구의 투자설명회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

21대 국회의원 사전 투표가 끝나고, 선거일을 3일 앞둔 2020년 4월 12일 오전 10시 내가 박수를 받으면서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민재인 대통령이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오시오. 김 위원장!”

“내가 좀 늦었습니까?”

“내가 좀 빨리 왔소이다.”

이렇게 민재인 대통령의 환대를 받으면서 붉은 카펫이 깔린 길을 잠시 걷자 남측과 북측 그리고 미, 중, 러, 일 등에서 온 외교 사절들이 줄줄이 서 있기에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 중국 외교부장 왕화, 주한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일본 외무상 에사키 등과 일일이 인사한 다음 테이프 커팅을 위해서 자리를 잡고 섰다.

그러자 이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늘 2020년 4월 12일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드디어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이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난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지난 분단 67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엽니다. 영구히 이 땅을 수놓을 평화를 말입니다. 그럼 남북의 지도자가 손을 맞잡고 그 평화의 시대를 여는 테이프 커팅을 거행하겠습니다.”

안내방송의 이런 거창한 설명에 힘입어 쑥스럽게 민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테이프 커팅을 위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는 손을 놓고 나와 민재인 대통령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과 방송 카메라를 향해 손을 한번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민재인 대통령도 나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튼 그런 따라쟁이 민재인 대통령과 함께 드디어 판문점 일대를 묶어 새롭게 조성한 평화공원 개장을 알리는 테이프 커팅을 했다.

바로 그랬다.

오늘이 판문점 일대의 남북 시설물을 하나로 묶어 만든 평화공원의 개장일이었다.

남측 자유의 집도 지난 2018년 4월 27일 열린 민재인 대통령과 내가 아닌 진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만찬장으로 사용된 평화의 집도 북측의 판문각과 통일각도 모두 묶어 만든 평화공원의 개장일 말이다.

그랬으니 미, 중, 러, 일에서도 외교 사절이 왔고, 지금 이 장면은 대한민국과 북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그대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만 따라 하고 이제 자르시죠.”

“내가 뭘 따라 했다고 그러시오.”

“뭘 안 따라 했습니까. 늘 따라 하면서, 하여튼 자르시죠.”

민재인 대통령에게 이렇게 핀잔을 주고 바로 테이프를 커팅하자 폭죽이 터지고, 꽃가루가 날리고, 비둘기와 풍선도 날아올랐다.

그리고 국군 군악대의 팡파르도 울려 퍼졌으며, 카메라도 연신 터져 일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영구히 기록될 역사의 한 장면 속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흡족한 기분도 들었고, 어깨에 불쑥 힘이 들어가는 것도 같았다.

그랬다.

나는 환생한 이후 수많은 역사적인 일을 만들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물이 아니라 나 스스로 역사를 만들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나는 역사가 기록하는 기록한 인물이 아니라 나 스스로 역사를 기록하는 만드는 인물이자 이 순간의 설계자이자 주인공이었다.

“김 위원장, 무슨 생각을 그리하시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손이나 잡고 한번 흔듭시다.”

뿌듯한 상념을 깨고 들린 민재인 대통령의 말에 응대해주고, 또 같이 손을 잡고 흔들어도 주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터지는데, 가만히 보니 이 역사를 기록하는 만드는 인물이자 이 순간의 설계자이자 주인공은 나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 이 순간은 내가 단독 주연인 그런 장면이 아니라 민재인 대통령과의 공동주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여튼!’

그 생각에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 얼른 손을 놓고 속으로 이런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환하게 웃으면서 여전히 한 손은 흔들자 눈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민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김 위원장, 이만하면 된 것 같으니까 이제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으니까요.”

“헐!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고도 안 받았습니까?”

“김 위원장은 받았소?”

“다른 건 몰라도 공원 입장료를 반반 나눈다는 보고는 받았으니 그건 어기지 마십시오. 아니면 공원 폐쇄해버릴 테니까.”

“하하하! 알았소. 알았어.”

테이프 커팅을 그렇게 마치고, 때마침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남북의 끊어진 길을 다시 이어 만든 문산~ 개성 간 국도 그리고 곧 문산~ 개성 간 고속도로도 옆으로 지나갈 그 판문점 옆에 만든 평화공원의 출입문으로 들어섰다.

남측에서 보면 판문점의 우측이었고, 북측에서 보면 좌측에 만든 그 출입문 앞은 주차장이었고, 남북의 차들은 그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 남북이 만든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검문소만 통과하면 판문점 평화공원 안에서는 어떤 검문도 없었고, 마음대로 군사분계선도 넘어 공원 안의 모든 건물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러니 한국 사람들은 예전 민재인 대통령과 진짜 김정은 위원장이 만난 그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판문각, 통일각, 예전 북한 경비병 막사 등도 마음대로 가볼 수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북한 사람들도 남측 자유의 집, 평화의 집, 경비병 막사 등을 마음대로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에게는 없고, 한국 사람들과 외국인 관광객에게만 있는 또 하나의 특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이것이었다.

“김 위원장, 우리 국민과 외국인 관광객은 여기서 나가 북측 관광버스를 타면 곧장 개성관광을 할 수 있는데, 북측 사람들은 마음대로 서울을 관광할 수 없으니 이 기회에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형평에 맞지 않을까 하는데 어떻소?”

“공화국 인민들이 서울 관광을 하는 것은 아직 무리이니 그런 무리한 말씀은 하지 마시고, 이 기회에 금강산 관광이나 재개하시죠?”

“이거 혹 떼려다가 혹 붙인 격이군.”

“그래서 할 겁니까? 말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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