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경의선과 경원선 그리고 동해선(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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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말로는 간략하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긴 설명을 한 사회자의 말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인원들의 면면부터 먼저 한번 살펴봤다.
그러니 가장 먼저 민재인 대통령과 대한민국 국회의장 문준상, 여당대표 김원식, 1야당 대표 황무상, 국토부 장관 김혜미 등이 보였고, 미국 측에서는 국무장관 폼페이오, 주한 미국 대사 로버트, 주한 미군 사령관 게리슨 등이 보였다.
그리고 중국 국가 부주석 왕차산, 외교부장 왕화, 주한 중국대사 추국홍, 일본 외무상 에사키와 주한 일본 대사 나가미네 등도 보였으며, 러시아에서는 총리 메드베데프, 주한 러시아대사 알렉산드르, 러시아 철도공사사장 야쿠닌, 북에서는 김영남, 박봉구, 오지용, 노주철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면면을 한번 살펴본 후 단상으로 가서 자리를 잡으니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느라고 한동안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사랑하는 북과 남의 인민 여러분, 존경하는 민재인 대통령 이하 대한민국의 내빈 여러분,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에서 찾아오신 손님 여러분, 오늘 북의 신의주와 남의 서울을 잇는 나아가서는 부산까지 잇는 경의선과 경원선의 완전한 복원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역사적인 중대사이며, 민족사적으로는 위대한 성과이며, 우리 한민족에게는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극적인 순간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부산에서 경의선 열차를 타고 서울을 거쳐서 개성을 지나고 평양에 온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평양이 끝이 아닙니다. 열차는 계속 달려 신의주까지 갈 것입니다. 거기서 중국 횡단철도(TCR)로 이어져서 열차는 몽골 울란바토르, 러시아 이르쿠츠크,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러시아 첼랴빈스크, 카잔을 거쳐 모스크바, 나아가서는 유럽의 끝까지 달릴 겁니다. 여러분! 그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그 경의선만이 아닙니다. 부산에서 동해선이나 경원선을 타면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이용해서 역시 유럽의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은 해봤습니까. 꿈은 꾸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역사적인 철로 위에 서 있으니 이건 생각도 꿈도 상상도 아닌 현실입니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웅변을 해본 경험이 몇 번 있었기에 그때의 심정으로 열변을 토하면서 이런 축사를 했다.
그러자 효과가 있었는지 여기저기서 다시 카메라 셔터가 터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잠시 축사를 중단하고, 장내의 인물들을 한 번 더 살펴본 다음 이어갔다.
“우리는 지금 그 현실 위에 서서 다시 상상하고, 꿈을 꿉니다. 그 상상은 한반도 통일일 것이고, 꿈은 유라시아의 모든 물류와 교통이 한반도로 이어지는 찬란한 길 즉 뉴 실크로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그런 역사적인 철로 위에. 이 현실의 철로 위에 서 있으니 그 상상과 꿈은 다만 상상과 꿈만은 아닐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역사적인 기념식에서 선언합니다. 그런 꿈과 상상이 이루어지도록!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서 선언합니다. 족쇄처럼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는 전쟁의 그늘을 완전히 걷어내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더 아니 영구적이고 불가역적인 북남 상호불가침 조약을 완전한 완성된 조약으로 확정합시다. 또 지금 판문점 일대를 묶어 평화공원으로 조성해서 전 세계 인민이 마음대로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듭시다. 더불어서 한반도 등허리에 쇠못처럼 박혀 민족의 정기를 끊고 있는 백두대간 휴전선 철책 일부도 제거해 백두대간의 정기가 마음대로 흐르도록 하고, 생태 통로도 만듭시다.”
남북의 불가역적인 상호불가침 조약. 거기다가 판문점 일대를 묶어 평화공원으로 조성해 관광지로 만들고, 백두대간 휴전선 철책 일부도 제거해 백두대간의 정기가 마음대로 흐르도록 하며, 생태 통로도 만들자는 내 제안에 좌중은 물론 행사에 참가한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나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다시 축사를 이어갔다.
“하여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선언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고 북남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서 남에서 가장 우려하는 공화국의 장사정포와 방사포 부대를 모두 평양 이북으로 철수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여타 부대 또한 점진적으로 평양 이북으로 철수하겠습니다. 그러니 남과 세계의 인민은 내 진심을 믿으시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해주십시오. 이상입니다.”
이렇게 축사를 하고 좌중의 내빈이 아니라 기념식에 참석한 일반 대한민국 국민의 표정을 살피니 일순 멍한 상태 같았다.
그러나 그건 찰나의 순간일뿐었으니 곧 내 말이 뜻하는 바를 알아차리고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기 시작하는데, 그중에는 기립한 사람도 있었다.
해서 그들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주고는 자리로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올해 노벨 평화상은 이제 내 거다.’
내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좌중의 내빈들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때 사회자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면서 나를 위해 치던 박수는 자연 사그라들었다.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 위원장님의 놀라운 축사가 있으셨습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님이신 민재인 대통령님의 축사를 듣겠습니다.”
민재인 대통령이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단상으로 걸어가더니 이렇게 축사를 시작했다.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북의 인민 여러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 찾아오신 손님 여러분, 오늘 드디어 경의선과 경원선 완전 복원 사업을 남북이 공동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씀처럼 정말 뜻깊고 역사적인 날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여 저도 이날을 축하하려고 이렇게 긴 축사를 적어왔지만, 김정은 위원장에게 선수를 뺏기는 바람에 이 축사는 이제 소용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미리 적어온 축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제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로 축사를 대신하겠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위원장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그러니 우리 함께 아니 남북이 함께 손을 잡고 상호불가침 조약을 완성합시다. 거기다가 판문점 일대를 묶어 평화공원으로 조성해서 관광지로 만들고, 백두대간 휴전선 철책 일부도 제거해서 백두대간의 정기가 마음대로 흐르도록 하고, 생태 통로도 만듭시다. 그리고 장사정포와 방사포, 여타 부대도 점진적으로 평양 이북으로 철수한다면, 대한민국군도 그에 맞춰서 불필요한 부대를 후방으로 이동 배치하겠습니다. 더불어서 경의선, 경원선, 동해선 즉 철길만이 아니라 부산~ 서울~ 개성~ 평양~ 신의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공사도 시작해서 한반도가 진정으로 유라시아 모든 물류와 교통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 되도록 합시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
순간이었다.
내 축사와는 달리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은 말이다.
그리고 보니 여기는 북이 아니라 남이었다.
그러니 민재인 대통령의 축사가 끝나자마자 그걸 들은 참석자들이 열광적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손뼉을 치지.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북한 주민을 좀 동원하는 것인데, 하여튼 이런 우리 두 사람의 축사가 끝나자마자 사회자의 말이 다시 장내에 울려 퍼졌다.
“민재인 대통령님의 멋지고 환상적인 축사에 이어서 다음은‘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 제창이 있겠습니다. 내빈께서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참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 노래를 나도 따라 부르면서 민재인 대통령을 힐끔 쳐다보니 의미 모를 웃음을 머금은 것이 아닌가.
저게 무슨 의미의 웃음일까 생각하는 그 순간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노벨 평화상을 저 양반과 공동 수상해야 하나. 진짜?’
이런 경건한 자리에서 이따위 생각이나 하는 나도 참 어이가 없는 놈이었지만, 어떻든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그렇게 기념식은 끝나고, 나와 민재인 대통령, 참가한 대부분 사람이 준비된 열차에 올랐다.
바로 이 열차가 바로 도라산역에서 개성으로 가는 첫 관광 열차이자 개성공단으로 다시 가는 화물열차이자 경의선 복원 개통의 첫 열차라는 의미가 있는 그런 열차였기에 말이다.
“김 위원장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버리면 나는 뭐 들러리요?”
“하하하! 뭘 그런 것을 같고 그러십니까. 쫀쫀하게.”
“쫀쫀하다니. 그리고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아니요. 사실!”
“미국 애들, 러시아 애들, 중국 애들, 저 쪽발이들도 듣습니다. 들어요!”
“흠흠!”
자리에 앉자마자 만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기에 내가 반격을 가하자 그제야 이런 헛기침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열차 맨 앞칸에 만든 귀빈실에 앉은 미·일 중러에서 참가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그때 열차에서 이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빵~ 본 열차는 지난 2007년 12월 11일 오전 8시 20분 우렁찬 기적을 울리며 북녘땅으로 달려간 S7303호 열차의 뒤를 이어서 오늘 2020년 2월 1일 오전 11시 서울-개성 간을 달릴 화물 열차이자 개성 관광 열차이며, 통일 열차입니다. 저는 기장 이승진으로······.”
이 방송처럼 지난 2007년 12월 11일 오전 8시 20분 문산~봉동 간 화물 열차 운행이라고 적힌 간판과 장미꽃으로 장식된 열차가 북으로 올라갔으니 그 순간이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서울~개성 운행을 마지막으로 멈춰 섰던 경의선 열차가 56년 만에 정기 운행을 재개한 순간이었다.
그때 남북 출입사무소 직원과 내외신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첫 번째 역인 판문역에 닿은 시각은 오전 8시 40분, 20분간 달린 거리는 7.3㎞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길을 달리기까지는 무려 56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열차에는 북 도로 건설에 사용할 경계석과 신발 가공 원자재가 실려 있었는데, 그것을 판문역에 내리고,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 만든 의류, 신발, 시곗줄 등을 대신 싣고, 정오 도라산역으로 돌아왔다.
특히 삼덕통상의 신발 완제품 3,000켤레를 실은 컨테이너 1대분은 한반도의 남쪽 끝인 부산진역까지 운반되었으니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