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시간벌기(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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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이처럼 진척 없이 말싸움만 하느라고 무려 사흘이나 보냈고, 나흘째에도 마주 앉자마자 시작된 긴 말싸움 끝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기어이 이런 말을 꺼내놓았다.
“저번에 핵탄두 1기에 10억 달러라고 했는데, 그건 아직도 유효하오?”
“귀국이 굳이 돈으로 공화국 핵탄두를 사겠다면, 그건 아직도 유효한 조건이오.”
“그럼 좋소. 귀국의 모든 핵무기를 100억 달러에 넘기고 핵 시설은 폐쇄하고,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불능화도 실행하시오.”
“1기에 10억 달러요. 그러니 살려면 사고, 말려면 마시오. 우린 그 돈 없어도 여태 잘 먹고, 잘살고 있으니까.”
“한국에는 이런 억지를 부리지 않았잖소.”
“남조선은 우리에게 쌀 430만 톤을 주었소. 한국에서 쌀 1kg 소매가가 대충 2,000~3,000원이라는데, 그럼 430만 톤은 얼마겠소. 그런데 무슨 그딴 소리를 하시오.”
이렇게 협상은 또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다시 만난 채용해와 폼페이오는 또 한동안 말씨름을 했다.
그러다가 둘 다 지쳐갈 때 즈음 채용해가 이런 미끼를 던졌다.
“정 그렇다면 일단 10억 달러 내시오. 그럼 핵탄두 1기를 주겠으니 그러고 나서 다시 논의해 보는 것은 어떻소?”
“......,”
“어떻소?”
“귀국에 현금을 줄 순 없소.”
“그럼 남조선 정부에 주시오. 그럼 우리가 남조선에서 필요한 물건으로 가져오겠소. 그건 어떻소?”
“결국, 한국만 좋은 일 시키는군!”
“그동안 당신네 호구 노릇만 줄기차게 했으니 떨어지는 콩고물도 있어야지.”
“단 핵과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것은 가져가지 못하오.”
“하하하! 우리 공화국은 이미 핵과 미사일 개발이 끝났는데, 무슨 그런 것을 가져와. 그러니 당장 한국 정부에 10억 달러를 송금하시오. 그럼 판문점에서 주한미군에게 핵탄두 1기를 넘겨주겠으니까.”
핵폭탄 1기를 10억 달러에 넘겨주는 협상은 결국 이렇게 성사되었으니 당연히 내가 뒤에서 조종한 때문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북한에 필요한 것을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한해 국방비를 6,000억 달러 이상이나 사용하는 미국으로서도 1기 10억 달러, 북한 핵미사일 150기 합계 1,500억 달러면, 그렇게 큰 대가도 아니라는 판단이 작용한 거래 제안이었고, 기어이 그 거래가 성사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 미국이 다른 수단 즉 전쟁이나 공습으로 북한 핵무기를 없애려고 한다면, 1,500억 달러가 아니라 그 이상을 투입해야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미국 본토나 일본이 혹시라도 북한 핵미사일 반격을 받는다면, 1,500억 달러의 10배인 1조 5,0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도 모자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어떻든 이렇게 핵탄두 1기에 10억 달러라는 거래는 성사됐다.
어차피 2018년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북한 핵무기 폐기와 그에 따른 대북 제재 해제, 경제지원을 해주기로 했으나 그 이후 실현되지 않았으니 이 거래도 그렇게 특이한 거래는 아니었다.
아니, 전혀 새로운 모델의 비핵화 거래 또는 협상이라고 해야만 했다.
***
“위원장 동지, 남조선에서 10억 달러가 입금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크하하!”
10억 달러가 대한민국 정부에 입금됐다는 이 보고를 받자마자 한바탕 광소를 터트리니 채용해가 한동안 나를 따라 웃다가 이렇게 물었다.
“위원장 동지, 미국과 다시 협상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핵무기를 각 10억 달러에 넘길까요?”
“1기당 10억 달러에 넘겨주시오. 단 1기, 1기 따로 협상해야 하오. 그래야 시간을 질질 끌지.”
“공화국 전체 핵탄두 합계 몇억 달러가 아니라 1기당 무조건 10억 달러로 협상해야 시간을 끌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이미 10억 달러가 남조선 정부에 입금되었다니 미국은 우리가 던진 미끼를 문 것이오. 그러니 앞으로도 그렇게 협상에 나올 수밖에는 없을 것이오. 그리고 노파심에 다시 이야기하지만, 1기 1기요. 10기 합쳐서 100억 달러, 100기 합쳐서 1,000억 달러가 아니라. 알겠소?”
“물론입니다.”
“좋소. 그래야 시간을 질질 끌면서 우리의 핵무기를 미제에 다 팔아넘기는 우(愚)를 범하지 않을 것이오.”
이게 진짜 내 생각이었다.
북한의 핵무기를 몽땅 1,500억 달러 받고 미국에 팔아버리면 다른 것은 차치하고 당장 중국과 전쟁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니 대중국 전쟁 대비가 어느 정도 끝날 때까지는 1기, 1기를 따로 팔면서 그 시간을 벌어야 했다.
어떻든 채용해에게 이렇게 협상 전술을 지시하고, 석유 탐사에 매진하고 있는 오지용 부위원장 대신 내각 부총리 노주철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설명한 다음 이렇게 지시했다.
“노 동지가 남조선에 갔다 오시오. 해서 여기 적힌 물품을 남김없이 구매해 오시오. 알겠소?”
“알겠습니다. 위원장 동지.”
“아, 그리고 내 특별비서 민은정 대위와 김은주 중위도 데려가시오. 하면 그녀들이 자동차 구매 건을 책임질 것이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각 부총리 노주철과 민은정, 김은주 등등 제법 많은 북한 인사들이 핵무기 판매대금 즉 미국 돈 10억 달러로 쇼핑하려고 그렇게 서울로 내려갔다.
그러자 언론들은 조성신문과 동앙신문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폐간했음에도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촛불 시위대 취재가 아니라 그들과 민은정을 따라다니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녀가 청와대에서 민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하고 나오자마자 그때부터는 질문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비서라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
“호위사령부 대위가 맞나요?”
“......,”
“무슨 물건 가져가실 거죠?”
“......,”
“민재인 대통령과는 무슨 이야기 나누셨나요?”
“.....,”
기자들이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이런 질문을 했지만, 민은정은 그때마다 살짝살짝 웃을 뿐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더 약이 오른 기자들이 진짜 벌떼처럼 그녀만 따라다녔다.
“조 상무님, 저번에 제가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죠.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럼요. 하하하! 그리고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민 대위!”
“저도요. 그리고 오늘은 차를 사러 왔어요. 돈은 한국 정부가 줄 거예요. 호호호!”
“저도 뉴스 보고 이미 압니다. 원래는 미국 돈이고요.”
“그래요. 진짜 웃기죠.”
“웃기지만, 기자들이 많아서 솔직한 제 심정은 이야기하지 못하겠군요. 한데 무슨 차를 사시려고?”
“렉스턴 스포츠 5,000대요.”
민은정이 청와대를 나오자마자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쌍용차, 그곳에서 상무 조관철을 다시 만나서 이렇게 말하자 그가 그녀의 얼굴을 저번보다 더 빤히 쳐다봤다.
5,000대라면 기본 가격인 2,320만 원만으로만 계산해도 1,160억이었고, 중남미, 아시아, 러시아, 인도 등에 연 2만 대를 수출한다는 목표의 사 분의 일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정말 5,000대요?”
“네, 5,000대요. 단, 100대는 그냥 G4 렉스턴으로 주세요.”
“휴, 난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5,000대라. 그런데 민 대위님, 당장 5,000대를 다 드리기 힘들다는 것 정도는 아시죠?”
작년만 해도 렉스턴 스포츠 구매자는 계약 후 출고까지 최소 60일에서 최대 90일을 기다려야 했는데, 이유는 차가 인기를 끌면서 하루 생산량 130대보다 많은 하루 400대가 계약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쌍용차가 평택 조립 3공장을 확충하는 등 조처하여 하루 500대 수준으로 생산량을 끌어올렸으니 5,000대를 생산하려면 적어도 10일이 필요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죠?”
“이리저리 대리점으로 나간 차까지 다 끌어모아 보죠. 그래도 넉넉하게 잡아 10일은 걸리겠는데요.”
“열흘이라면 뭐 기다리죠.”
“어떻든 최대한 빨리 맞춰 볼게요. 그리고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가시죠. 제가 밥이라도 대접하게. 뭘 좋아해요?”
이때 김은주는 자기식 표현으로 미제의 포드 코리아에 당당하게 들어가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래 평양에서 포드 F-150 1,000대 사러 왔으니 언제까지 개성으로 배달해 줄 수 있소?”
“뭐라고요?”
“F-150 1,000대 사러 왔으니 언제까지 개성으로 배달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소.”
“정말이에요?”
“그렇소. 그러니 얼른 계약합세다. 계산은 여기 계신 기재부 국장님이 해 주실 거니까. 아, 그러고 100대는 F-150 3.5 Ecoboost V6 렙터, 또 100대는 익스플로러 3.5 리미티드. 알갔소?”
민은정과 김은주가 그렇게 차를 사는 동안 내각 부총리 노주철은 한화에 들러 태양광 패널을 구매했고, 보건성 강하국은 결핵 치료제와 기초의약품, 의료장비, 분유, 기저귀, 생리대, 여자용 속옷, 농업성 이철만은 소, 돼지, 면양, 산양, 토종닭, 각종 씨앗을 구매했으며, 국가건설감독성 권성호는 굴착기, 불도저, 덤프트럭과 단열재, 단열창문, 단열 벽지, 레미탈 등 건축자재, 식료일용공업성 조영철은 소와 돼지고기, 부탄가스, 가스버너, 초코파이, 각종 라면과 통조림, 일회용 식품 등등을 구매하러 다녔다.
미국 돈 10억 달러는 그렇게 대한민국 여기저기에 뿌려졌다.
그 바람에 자사의 상품을 팔려고 북한 관리들에게 홍보까지 하는 기업이 나왔고, 일부는 선물까지 안기면서 그들을 유혹했으나 구매 물품은 이미 내가 다 지정해주었기에 그것은 다 헛일이었다.
하여튼 대한민국에서 한바탕 쇼핑 광풍이 부는 그때 나는 평양에서 제법 떨어진 벼농사를 주로 하는 한마을 협동 농장원들을 위해 새로 지어주는 주택건설 현장을 현지 지도했다.
이곳은 올해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작년 수확량의 120% 초과 생산이 가능하다기에 10%만 세금으로 걷고, 나머지 수확물은 모두 농장원들에게 공평하게 배분하도록 지시까지 해둔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수확이 완전히 끝나자마자 농지는 공평하게 나누어서 농장원들이 원하면 10년~20년 임대하여 내년부터는 농장원 개개인이 스스로 농사짓도록 조처했으며, 그 세금 역시 10%뿐만 걷으라고 지시했다.
사실 협동농장이란 것이 말이 좋아 협동농장이지 전혀 협동스럽지도 못하고, 수확량도 개개인이 짓는 농토와 비교하면 아주 적었기에 이렇게 농지를 개개인에게 10~20년 임대할 예정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북한에서 일부 농지를 농민에게 임대했지만, 이즈음은 거의 유명무실화되었기에 내년부터는 전 협동농장을 농민 개개인에게 다시 임대할 예정이었고, 그러면 수확량이 적어도 30%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