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쌀과 핵(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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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으나 여기서 멈출 수도 속도를 조절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갈 데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디선가 제동이 걸리겠지.
“지난해에도 신년사, 평창 올림픽 단일팀, 응원단, 남북에서의 공연, 실무회담, 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비핵화 논의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으니 올해도 그리 빠르다고 할 수는 없죠. 그리고 남북 사이에는 지난 70년의 세월이 강물처럼 놓여있으니 또 빠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말에 일절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오. 북이 늘 왔듯 앞으로는 대화공세를 하고, 뒤로는 뒤통수를 치는 그런 일 말이오.”
“제가 말한 핵은 반드시 드릴 겁니다. 제법 많은 이들이 반대했지만, 그들의 반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2018년에 이미 약속한 것과 북한 인민들의 배고픔 해결이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더 믿어보겠소. 그리고 쌀 문제는 좀 더 기다려보시오.”
“축구 보러 갈 때까지 기다리면 될까요?”
“좀 더.”
“대통령님, 핵은 공화국의 생명수이자 자존심이자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어주겠다는 것이 얼마나 큰 모험인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지 아십니까?”
“북한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 아니오. 그리고 작년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미 김 위원장이 그 입으로······.”
“그때도 공화국에 가해진 제재와 경제 지원 등등······. 아무튼, 잘 부탁합니다. 저도 숙고해서 자존심 버리고, 목숨을 담보로 추진한 일이니까요. 하면 저는 호텔에 가서 좀 쉬다가 축구 보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제 진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니 믿어주십시오.”
그렇게 청와대를 나왔다.
김정은으로 환생했을 때 그냥 총 안 맞아 죽고, 잘 처먹고 잘살고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도 않은 이 시점에서 내가 왜 이렇게 급격히 변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나는 변해 버렸다.
속도를 조절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되지 않을 만큼 너무나 급격한 변화였다.
그러니 나는 지금 남북과 미국, 중국에 일본과 러시아까지 낄 거대한 역사의 변혁 속에 스스로 발을 들이민 것이다.
그것도 너무 급격하게, 과연 나 잘할 수 있을까.
그래서 통일 한국이 진정한 동아시아의 강자로 거듭나서 지난 오욕의 역사를 완전히 씻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나, 이렇게까지는 민족주의자가 아닌 것 같았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환생의 저주, 아니면 환생으로 내 의식도 바뀌었나.
하여튼 내가 그렇게 청와대를 나와 호텔로 가는 시간 민재인 대통령은 임종식 비서실장과 백종규 안보실장에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 여당 대표까지 불러 안가에서 격론을 벌였다.
정보가 밖으로 새는 것을 방지하려고 안가에서 격론을 벌였지만,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아니, 도무지 믿지 못한다는 것이 옳았다.
그랬는지 국방부 장관 서진성이 격론 끝에 기어이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님, 저는 핵탄두를 준다는 김정은의 말을 죽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나도 믿을 수가 없지만, 당사자가 준다는데 어쩌겠소.”
“그럼 대통령님, 서로 간에 믿음이 생기도록 비밀리에 하나를 먼저 달라고 하십시오.”
“먼저 하나를 달라고 한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미국을 불러서 같이 확인을 해보시죠. 그럼 미국과의 문제도 자동으로 풀릴 것입니다.”
이 말에 민재인 대통령이 좌중을 둘러봤다.
그러자 가장 먼저 국정원장 서정훈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다음으로는 백종규 안보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민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결정하듯 말했다.
“좋소. 하면 그렇게 하겠으니 이 일은 그때까지 비밀이오.”
여당 대표 김원식, 국정원장 서정훈, 국방부 장관 서진성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일단 일을 그렇게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말한 것 중 통일 한국, 통일 등은 그 격론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즉 민재인 대통령이 임종식 비서실장, 백종규 안보실장 즉 나와 함께 이야기한 사람들 이외에 여당 대표 김원식, 국정원장 서정훈, 국방부 장관 서진성에게도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다.
“임 비서실장이 웬일이오?”
“모시러 왔습니다.”
“벌써 축구 보러 갈 시간이 됐소?”
호텔에서 오랜만에 보는 서울 풍광을 구경하고 있는데, 임종식 비서실장이 이렇게 나를 찾아왔다.
그러나 아직 이른 감이 있어서 이렇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김 위원장님께서 핵탄두를 준다는 말을 아무도 믿지 못합니다. 하여 서로 간에 믿음이 생기도록 비밀리에 하나를 먼저 주십시오. 그럼 그 자리에 미국 애들도 불러서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지원은 그 이후의 문제고요.”
“좋소. 하지만 내가 이미 구매한 돼지 4만 마리를 먼저 보내시오. 또 핵탄두만 받고, 한국과 미국이 나 몰라라 할지도 모르니까 우선 쌀 1만 톤과 소고기와 돼지고기 각 500톤, 합쳐서 1,000톤도 준비해서 서로 맞교환합시다.”
“그 정도 조건이라면 대통령님께 말씀드리고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이렇게 합의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 월드컵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바로 경평 축구를 관람하려고 말이다.
그러나 엄연한 의미에서 오늘 열리는 축구는 경평축구가 아니라 남북 국가대항전이었다.
경평전과 같이 남북을 대표하는 서울과 평양 간의 정기적 경기는 아직 부활하지 못한 것이고, 지난 1990년 10월 11일 평양, 10월 23일에는 서울, 2002년 9월 5일, 8일에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 축구경기라는 이름으로 열린 축구 대표팀 간의 경기가 재개된 것이라고 보면 됐으니까.
“국민 여러분. 축구팬 여러분. 지금 민재인 대통령님과 김정은 위원장께서 경기장으로 들어오십니다. 많은 박수 부탁합니다.”
입추의 여지 없이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꽉 들어찬 관중의 환호를 받으면서 나는 민재인 대통령과 그렇게 경기장에 들어가 관중에게 손을 흔들어준 다음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내 동생 수진부터 찾았다.
그러자 귀빈석 한쪽에 친구 은주와 함께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식, 잘 지냈어?’
당장에라도 뛰어가서 오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난리가 날 것 같아서 일단 참으면서 힐끔힐끔만 쳐다만 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선수들을 격려하려고 운동장으로 내려가야 했다.
“동무, 반드시 이기라. 아니면 아오지 탄광행이야! 알지?”
“예, 위원장 동지.”
“농담이야. 농담. 그러니 온 힘만 다하라!”
내가 이렇게 말하자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황지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하여간에 그렇게 북한 선수들 격려도 해주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수진을 잠시 보다가 진짜 치킨을 먹고, 맥주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경기를 관람했다.
그러니 민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임 비서실장에게 이야기 들었소.”
“그럼 이미 돈 주고 산 돼지 4만 마리부터 먼저 보내세요. 그리고 쌀 1만 톤과 소고기와 돼지고기 각 500톤은 모레까지 준비해서 서로 맞교환하시죠.”
“최대한 준비해보겠소.”
“믿습니다. 그리고 핵탄두가 맞으면 나머지 쌀 등은 지원해주는 겁니다.”
“맞는다면, 국내 정치권과는 물론 미국, 유엔 등과 협의하여 최대한 가능하도록 해 보겠소.”
이런 합의가 끝나자마자 민재인 대통령은 임종식 비서실장을 불러 준비를 지시했다.
그러자 그 시간부터 청와대는 물론 농림축산식품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건 그렇고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는 한국이 2-0 완승하는 것으로 끝이 났고, 나는 수진과 단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그대로 호텔로 돌아와서 호위사령관 이만철과 총참모장 김진성과 통화했다.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노동당 비서 오지용이 저번 1,000만 달러 주고 사들인 돼지 중 나머지가 경의선 육로를 통해 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으나 그 일은 하루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
어떻든 그러는 사이 민재인 대통령은 어제에 이어서 오늘 아침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이견을 조율해 기어이 진짜 북한이 핵탄두를 준다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기로 잠정 합의를 끌어냈다.
그날 점심에는 여야 4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한 민재인 대통령이 자세한 사항을 언급한 다음 협조를 구했고, 외교부는 유엔 안보리에 관련 사항을 통보했다.
그러는 사이 경기 북부지역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공공 비축미들이 25톤 트럭 100대에 우선 실렸고, 소와 돼지고기 100톤도 전국 유통업체들에서 트럭에 실리기 시작했으며, 굴착기 20대도 운반용 트레일러에 실려 북으로 떠날 준비를 마친 가운데, 판문점 북측 판문각에서는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청와대 국가 안보실 2차장 이경호고, 이쪽은 국방과학 연구소 부소장 안경학과 5연구본부 소속 핵무기 전문가, 국정원에서 파견된 핵무기 전문가, 여기는 미 CIA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반갑소. 내래 호위사령관 이만철이오.”
“물건은?”
“건물 밖 트럭에 실려 있소. 그러나 남조선에서 주기로 한 쌀과 고기 등이 공화국으로 오지 않으면, 넘겨주지 말라는 위원장 동지의 엄명이 있었으니 그것부터 확인합세다.”
“물건부터 확인하고 나서 내가 전화하면 쌀과 고기 등을 실은 트럭이 즉시 북으로 넘어갈 것이오. 그러니 물건 확인부터 먼저.”
“거짓말이면 재미없소.”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요.”
약간의 그런 실랑이 끝에 국가 안보실 2차장 이경호와 남과 미국 측 인사들은 판문각 뒤로 가서 호위사령부 병력의 삼엄한 경호를 받으면서 서 있는 트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그곳에 실린 화성-15형 탄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차장님, 맞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철저하게 확인하세요.”
그러나 확인에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핵탄두가 맞는다고 하자 이경호는 그 즉시 청와대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자 미 CIA 요원들도 어디론가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약 45분 후 청와대에서는 여야 4당 대표 회동을 끝낸 민재인 대통령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지금 서울에 와 있는 김정은 위원장이 어제 청와대 정상회담에서 충격적인 제안을 해와 정부는 그 제안을 확인하려고 어제와 오늘 바쁘게 움직이다가 기어이 지금 이 시간 그 사실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국민 여러분께 가장 먼저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럼 어제 김정은 위원장의 충격적인 제안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공공 비축미와 시장 격리곡 대금으로 화성-15형 핵탄두 2기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 1만두, 굴착기 100대, 불도저 100대, 25톤 덤프트럭 100대, 양수기 1만 대를 지원해주면 역시 그 대가로 핵탄두 2기를 더 주겠다고 했습니다.”
민재인 대통령의 긴급 기자회견에 여야 4당 대표 회동에 관한 내용만 있을 줄 알고,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각 언론사 기자들은 이때부터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그 기자회견을 TV로 시청하던 일부 국민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여 정부는 미국과 긴밀한 협의 끝에 이 제안이 사실이라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에 지원을 해주기로 잠정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제안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급히 마련한 공공 비축미 2,500톤, 소와 돼지고기 100톤, 굴착기 20대를 우선 북으로 보내고, 그 대가로 핵탄두 1기를 먼저 받기로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이점 이해해주시고, 핵탄두는 안전한 곳에서 정부가 책임지고 관리할 것이니 역시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민재인 대통령의 기자 회견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청와대 기자 회견장은 그 순간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