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쌀과 핵(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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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수, 채용해, 김진성, 박영석, 박철현, 오지용 등이 나선 이후에도 설왕설래는 한동안 이어졌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켜보기만 하다가 이제 나설 때가 된 것 같아서 이렇게 선언했다.
“내 조처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서시오. 어서!”
“......,”
“아,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니 불만이 있는 사람은 나서시오!”
“......,”
“마지막으로 묻겠소. 불만 있는 사람 앞으로 나서시오.”
누가 나서겠는가.
내가 이 북한의 왕 김정은인데 말이다.
즉 누구든 그의 생사여탈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절대군주 김정은 말이다.
그랬으니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하여 이렇게 못을 박았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으니 구식 고물 핵폭탄 10기를 남조선에 주고 쌀, 소, 돼지, 중장비, 양수기 등을 지원받아 공화국의 만성적인 식량난을 완전히 해결하겠소. 그러니 동지들은 그렇게 아시오.”
“위원장 동지 만세!”
“만만세!”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만세를 부르는 황병수, 채용해 등을 한번 쳐다본 다음에는 덧붙였다.
“이병철 동지는 구식 고물 핵폭탄의 탄두를 분리해 준비해 놓으시오. 그리고 더 많은 신형 핵폭탄을 만들어서 여기 불안해하는 동지들의 우려를 일순간에 불식시켜주시오. 알겠소?”
“심려하지 마십시오. 위원장 동지.”
“믿소.”
“물론입니다.”
북한 미사일 개발의 주역 이병철이 대답하는 것으로 그날의 모임은 끝이 났다.
물론 그냥 끝난 것이 아니라 술판을 벌여 모두 취하도록 마시게 하고, 중국에서 사 온 한국의 삼성과 LG전자 최신 가전제품도 선물로 안기는 등 하고 말이다.
그 바람에 나도 김정은으로 환생한 이후 처음으로 맥주 몇 잔을 마셨다.
그것도 대동강 맥주를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검열위원장 홍인법과 국가안전보위성 부상 오영재를 불러서 이렇게 지시했다.
“내 어제도 지시했지만, 오늘부터 공화국 내의 모든 부정부패를 일소할 것이오. 그리고 이에는 지위고하가 없소. 그러니 두 분은 공화국 내의 모든 부정부패 세력을 처단하시오. 하다못해 장마당의 깡패 새끼들도 모두 잡아들이라는 말이오. 알겠소?”
“예, 위원장 동지.”
“친하다고 봐주면 안 되오.”
“물론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렇게 2019년 2월 17일 일요일 오후부터 북한에는 사정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광풍에 줄줄이 떨어져 나가는 부정부패 세력을 보면서 느긋하게 권총 사격 연습을 하고 있는데, 불현듯 이슬주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여기는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왔어?”
“내일 남조선을 같이 가려고요.”
“뭐라고?”
“남조선에 같이 가려고요.”
그러고 보니 내일이 경평 축구도 보고, 정상회담도 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같이 갈 마음이 없는데, 이렇게 나타나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냥 여기 있어. 그리고 답답하면 묘향산이나 백두산이나 아무 곳에나 가 있어.”
“위원장 동지는 좀 변한 것 같아요.”
“내래 변했지. 안 변하면 어케 굶주리는 인민을 먹여 살리겠네.”
“인민만 보이고, 우리 가족은 안 보이세요?”
“가족이 어때서. 이 세상 누구보다 잘 먹고 잘사는데, 뭔 불평불만이야. 그리고 얼마 전까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인민도 있었는데, 그들을 생각해 보라. 그런 배부른 소리가 나오는지.”
“당신은 정말 변했어요. 혹 마음에 드는 만족조 에미나이라도······.”
“못하는 말이 없군. 이만 온천별장으로 가라우. 그리고 다시 부를 때까지 오지 마라. 알겠어?”
아.
무소불위의 절대군주인 나에게도 골치 아픈 존재가 있었으니 그 첫째는 이 이슬주, 둘째는 이즈음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는 김여성이었다.
하나는 마누라, 하나는 여동생, 그러나 내 마누라 여동생이 아니라 김정은 마누라이자 여동생인 두 사람. 어떻게 하지. 확 숙청해버려. 아니야. 그건 패착이 될 수도 있어.
그럼 이슬주가 거론한 것처럼 만족조 중에서 가장 내 스타일에 맞는 처녀를 하나 골라 같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뒷방으로 물러나게 할까.
이슬주는 그런다고 해도 김여성은?
골치가 아프다.
그런데 진짜 기쁨조 중에서도 만족조 애들은 다 예쁘더라.
그것도 모두 남자 경험이 없는 숫처녀라니 흐흐흐.
“몰랐어요.”
“뭐라고?”
“흥!”
이게 실화일까.
이슬주가 절대군주인 김정은에게 저렇게 했단 말인가.
혹시 내 환생으로 역사가 뒤틀려서 이슬주도 저렇게 변했나.
하여튼 모를 일이었지만, 이슬주는 그렇게 나가버렸다.
진짜 만족조 중에 20살이라던 그 아이랑 살아버려!
그러나 진짜 그럴 수는 없어서 이슬주 문제는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았다.
수신제가 다음이 치국평천하 아닌가 말이다.
어떻든 이 문제들 말고는 나를 괴롭히는 문제는 현재 없었다.
그리고 내일은 서울에서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도 하고, 서울 구경도 하고, 진짜 동생 수진도 먼발치에서 보고 해야 했다.
***
2019년 2월 23일 오전 10시 판문점에는 수많은 외신기자가 진을 치고, 내가 군사분계선을 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있으리라.
그리고 내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귀를 쫑긋 세우며 들으리라.
어떻든 북한 지역 판문각에 들러 차를 한잔 마신 다음 그곳 병사들을 격려하고, 천천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겠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어서 군사분계선 앞에 서서 기자들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준 다음 이렇게 한마디를 했다.
“북남이 오늘로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러고는 군사분계선을 넘자 통일부 장관 조명견이 나를 반기기에 그와 악수한 다음 준비된 차에 올랐다.
그러니 한국군 헌병이 줄줄이 호위로 따라붙었고, 내가 탄 차는 곧장 서울로 향했다.
그렇게 자유로를 달리는데, 자욱하게 눈발이 날리는 것이 아닌가.
한없이 날리는 그 눈발을 보면서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예감에 창문을 내리고 한 송이를 잡아 보려고 했으나 그건 되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김 위원장!”
판문점에서 곧장 청와대로 가니 우선 달라진 내 위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강백호였으면, 여기 와볼 수나 있었을까.
그것도 대통령과 동등한 관계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민재인 대통령이 나와 이렇게 나를 반기기에 악수하면서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그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는 매스컴에서 보던 것보다 김정은의 기억에 남아 있는 지난번 정상회담에서보다 더 온화한 것 같았다.
하여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응대했다.
“진짜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훨씬 더 미남이 되셨습니다. 대통령님!”
“하하하! 그런가요. 김 위원장도 저번보다는 훨씬 날씬한데요.”
“요즘 다이어트도 하고, 운동도 한 덕분에 최근 17kg 감량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겠지요.”
“오, 그래요.”
“예, 그리고 술도 줄이고, 담배도 끊었더니 뭐 더 그런 것도 같고요.”
이런 덕담과 사진 촬영 시간을 가진 다음 곧장 비공개 정식 회담이 열렸고, 살짝살짝 간을 보던 민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물어왔다.
“그런데 쌀값으로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파격적인 제안이란 도대체 뭡니까?”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미리 걱정입니다. 과연 대통령님이 제 제안을 받을 수 있을지. 그리고 받아도 지킬 수 있을지. 미국에 굴복해서 다 털릴지 그런 것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러십니까?”
“아주 파격적인 것. 그전에 강수진 양을 돌봐 준 것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강수진 양과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사이기에 김 위원장이 이렇게 신경을 쓰는지 도무지 알 수가······.”
“그 문제는 저만의 비밀이니 양해해 주시고, 잘 좀 부탁합니다. 또 간첩 아니니 너무 감시하지는 마시고요. 그리고 북남이 아니 남북이 이제는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서로 총부리를 겨누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서울에 온 것입니다. 이 파격적인 제안을 가지고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파격적인 제안이 도대체 무엇이오?”
어지간히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직설적으로 이렇게 물으면서 나에게 간 그만 보라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하면 과연 받을 수 있을까.
한국이나 미국이나 북한의 비핵화가 목표이니 어쩌면 받을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전술 핵무장을 하자는 국민도 많으니 핵을 지켜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절대 장담할 수는 없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그건 바로······.”
“바로······.”
“핵무기입니다.”
“뭐라고요?”
“핵무기를 쌀값으로 드리겠다는 말입니다. 핵무기요.”
내 말을 들은 민재인 대통령은 물론 없는 것처럼 조용히 배석해 있던 임종식 비서실장과 백종규 안보실장이 놀라서 사레가 들린 것처럼 기침을 해댔다.
아마도 놀랐을 것이다.
이런 제안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니 말이다.
“김 위원장, 지금은 농담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농담이 아니라 이곳에 오기 전에 화성-15형 탄두를 해체해 놓으라고 지시하고 왔습니다. 그러니 쌀값으로 2기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소 1만두, 굴착기 100대, 불도저 100대, 25톤 덤프트럭 100대, 양수기 1만 대에 핵탄두 2기를 더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
이 말을 들은 민재인 대통령 등은 이제 아예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놀라서 내 입을 한번, 눈을 한번, 서로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기에 또 이렇게 덧붙였다.
“대통령님이나 미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북의 비핵화가 목표 아닙니까. 그러니 지금 그 기회의 일단을 잡으시지요. 사실 저는 대통령님이 핵무기를 받아 폐기하지 않고, 한국의 핵무기로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중국이든 일본이든 누구를 상대하던 큰소리를 칠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김 위원장, 지금 한 말이 진짜 진심이고, 정말 핵탄두를 우리에게 주겠다는 것이 사실이오?”
“남아일언 중천금, 그러니 절대 두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제가 말한 것을 꼭 좀 지원해주십시오. 군사용으로 전용하지 않고, 모두 식량 자급자족을 위한 저수지 축조, 목장 건설, 제방 복구 등의 사업에 쓸 것입니다. 대통령님도 저와 북의 지도층은 몰라도 일반 주민이 굶어 죽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김 위원장이 갑자기 너무나 변해 저번 그 김 위원장 같지 않아서 말이오.”
“제가 그사이에 좀 변하기는 변했죠. 하하하!”
많이 변했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지.
강백호에서 김정은으로 변했으니까.
만약 내가 김정은이 아니라 아직도 강백호였다면, 아마 저도 대통령님 찍었습니다. 존경합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사인 한 장 해주십시오. 셀카 찍어도 되죠. 이니 시계 하나만 주시면 안 됩니까.
이러면서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