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변화(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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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이럴까 싶어 민재인 대통령은 다시 뜯어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으나 역시 꾹 참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완전한 비핵화 약속 이행은 받아내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지난 2018년에 있었던 회담보다는 더 많은 것을 얻어낸 것 같아 민재인 대통령은 나름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당장 인도주의적 식량 지원을 해주겠다는 확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어떻든 박철현의 민재인 대통령 예방 회담은 그렇게 끝이 나고, 북의 원길우 체육성 부상 등은 남한의 조명견 통일부 장관, 조종환 문화체육부 장관 등과 실무 회담을 했다.
“자 하나씩 물으시오. 먼저 KBC!”
다음날 오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박철현이 기자회견을 열어서 남한 기자들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해주었으니 그건 대북 식량 지원을 위한 한국의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그 노력의 일환 중 화룡점정은 그날 저녁 8시 JBC 뉴스에 출연해 손석기 앵커와 대담한 바로 그것이었다.
“그럼 이산가족 상봉, 서신 교환, 우발적 충동방지를 위한 남북 국방부 장관 회담, 체육 교류, 문화교류, 경평 축구도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대한민국에서 반대만 하지 않으면 그럴 겁니다.”
남이나 남쪽, 남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그대로 호칭하는 박철현을 한번 쳐다본 손석기 앵커가 이렇게 물었다.
“모두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입니까?”
“북남의 평화를 바라는 모든 민족의 염원이겠지요.”
“그렇다면 지난 남북과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약속 이행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 문제는 따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죠.”
박철현이 대한민국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그때 청와대 관저에서는 민재인 대통령과 임종식 비서실장이 심각한 얼굴로 마주 보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가 보낸 친서 때문이었다.
‘친애하는 민재인 대통령님께. 안녕하십니까. 김정은입니다. 이렇게 서신으로 다시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그리고 박철현 상임위원장의 이산가족 상봉과 서신 교환, 우발적 충동방지를 위한 남북 국방부 장관 회담, 체육교류, 문화교류, 경평 축구 제안은 잘 받았는지요. 그렇다면 굶주리는 북 인민을 위해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의 식량 지원을 부탁합니다. 식량 무상지원이 힘들다면, 박철현 상임위원장에게 이미 말씀 들었는지는 몰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보관하는 공공 비축미와 시장 격리곡을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저렴한 가격에 공화국에 판매하십시오. 그럼 또 만나 비핵화를 다시 논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를 기다리면서 평양에서 김정은 드림.’
추신: 강원도 춘천시 온의동 롯데 아파트 104동 000호에 사는 강수진이라는 이번에 20살이 되는 여대생이 있습니다. 작년에 부모님을 잃고, 올해는 오빠를 잃어 지금 실의에 빠져 있을 것이니······.
친서 내용은 이랬으나 그래도 내가 직접 친필로 쓴 것이었다.
“임 실장이 보기에는 이 친서가 어떻소? 그리고 이 강수진이라는 학생을 김정은이 어떻게 알기에 이런 부탁을 할까요? 그것도 손 글씨로 말입니다.”
“위의 내용은 획기적인 면이 있습니다만, 이 강수진에 대해서는 저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대통령님.”
“그럼 강원도 최 지사에게 전화해 입단속을 지시하고, 정말 이 여대생이 있는지. 이 내용이 사실인지. 당장 확인해서 보고 좀 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임종식 비서실장이 강원도지사에게 전화를 거는 사이 민재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친서를 읽었으나 도무지 이해할 수도 그 저의를 알 수도 없어서 그만 고개를 젓고 말았다.
그때 JBC 뉴스 손석기 앵커는 박철현에게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이산가족 상봉은 물론 이런 회담을 제의하는 것이 식량 지원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인도주의적인 식량 지원 요청을 대통령님께 했으니 그렇습니다.”
“지원해 준다고 하던가요?”
“미국 등 국제사회는 물론 정치권과도 상의한 다음 결과를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핵 개발과 실전배치에 따른 국제 사회의 제재로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럼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무슨 방법이요?”
“대한민국 정부가 보관하는 공공 비축미가 2017년 기준 351만 톤에 달하고, 쌀값 안정을 위해 매입하는 시장 격리곡도 37만 톤이 되며, 그에 따른 보관료가 연간 2,000억이 넘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정부 공공 비축미와 시장 격리곡을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저렴한 가격에 공화국에 넘기는 방법 말입니다. 그럼 대한민국은 썩어가는 공공 비축미와 시장 격리곡 보관료를 아끼는 것이 되고, 공화국은 굶주린 인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들은 손석기가 놀라서 즉시 되물었다.
“저도 모른 것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습니다. 아니, 인터넷에서 찾은 것입니다. 하하하!”
“그런가요. 그런데 정말 그 공공 비축미와 시장 격리곡을 사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인도주의적인 지원이 없으면, 그 방법 말고 달리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없기는 하겠네요. 그런데 그래도 굶주린 북한 주민에게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군량미로 전용된다고 안 팔 것 같은데요.”
“아, 그 문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한민국 정부 관계자와 언론, 그리고 원한다면 여야 국회의원들도 입회하에 주민들에게 배급할 것입니다. 손 사장님께서도 그때 한번 오시지요. 그래서 직접 보시고, 공화국에서 생중계로 방송도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박철현의 거침없는 발언에 손석기만이 아니라 그 인터뷰를 지켜보던 JBC의 작가와 PD, 촬영기사, 방송관계자 등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만이 아니라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실시간으로 인터넷과 SNS에 박철현 인터뷰에 관한 댓글을 달았는데, 긍정적인 반응이 약 60%나 되어서 박철현은 일단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때 강원도지사 최무순은 막 집에 들어왔다가 임종식 비서실장의 전화를 받고, 곧 대통령 민재인과도 통화를 하게 됐다.
“최 지사, 부탁이 있어 전화했어요.”
“대통령님, 무슨 부탁이 있기에 이 시간에 직접 전화까지 하셨습니까.”
“거두절미 말하겠소. 최 지사,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오.”
“무엇입니까. 대통령님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고맙소. 그리고 이 부탁은 최 지사와 나만의 비밀이요.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 말이오.”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말씀하십시오.”
문재인 대통령의 부탁을 받은 최무순 강원도 지사는 그 즉시 홀로 차를 몰고, 롯데 아파트로 갔다.
집에서 차로 겨우 5분 거리였기에 금방 아파트를 찾은 그는 동과 호수를 확인하고는 초인 정을 눌렀다.
“딩동!”
“......,”
“딩동! 딩동!”
“누구세요.”
“저 모르겠어요. 강원도지사 최무순인데.”
“아예, 그런데 무슨 일로······.”
다행히 자신을 알아보는 것 같아 최무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눈이 퉁퉁 부은 강수진 즉 내 동생이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세요?”
“여기서는 좀 그러니 안으로 들어가서 말씀드리겠어요.”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 최무순은 대통령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당장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이렇게 물었다.
“혹 이번에 오빠가 하늘나라로······.”
“으흐흑!”
자신의 물음에 대답 대신 눈물만 흘리는 것을 보니 더 물을 수가 없어 최무순은 조용히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오늘 여기 온 것은 민재인 대통령님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에요.”
“대통령이요?”
“예, 강수진 양이 작년에는 부모님을 잃고, 올해는 오빠를 잃어 슬퍼할 것이니 가서 위로도 좀 해주고, 여러 가지 문제도 좀 해결해 주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
강원도 지사 최무순은 그렇게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강수진 내 동생을 위로하면서 내 교통사고에 관한 문제와 상속에 관한 모든 문제 등등을 자신이 다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보탰다.
“대통령님이 강수진 양에게 전화하겠다고 했으니 전화번호 좀 알려줘요.”
“그런데 지사님, 대통령이 저를 어떻게 알고, 그런 지시까지 하셨죠?”
“그건 저도 모르니 대통령님과 통화해 봐요.”
그 순간 JBC 뉴스 손석기 앵커는 박철현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만약 정부가 예상을 깨고 공공비축미와 시장 격리곡을 판다고 하면, 그때는 현금으로 구매하실 겁니까?”
“그건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없지만, 현금이 아니라 아마도 현물일 겁니다.”
“현물이라면 혹 지하자원인가요?”
“그것까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인터뷰는 그렇게 끝나고, 민재인 대통령과 내 동생 수진의 통화도 끝이 나고, 그날은 그렇게 흘러가는 듯했으나 박철현의 인터뷰 내용 때문에 대한민국은 서서히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내가 벌인 이 모든 일을 순조롭게 풀어 가려고 생쇼를 준비했으니 그 첫 번째는 이것이었다.
“김인순 동무, 내래 분명히 밥은 반 이하로 줄이고, 상에 찌게 하나, 생선 반 토막, 김치 이렇게만 올리라고 하지 않았네. 그런데 이게 뭐이네?”
내가 분명히 그렇게 지시했는데도 아침 밥상은 진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진수성찬이었기에 아침부터 무게를 잡고,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으니 이제 완전하게는 아니어도 김정은으로 변신 중이라고 보면 됐다.
“위원장 동지, 그것이······.”
“내래 두 번 다시 말하지 않겠어. 지금부터 내 밥상에는 찌게 하나, 생선 반 토막, 김치. 이렇게만 올려. 그런데 만약 이를 어기고 더 올리면 그때는, 알갔어?”
“예, 위원장 동지.”
“좋아. 그리고 그 이외에 이곳에 있는 음식 재료도 모두 밖에서 근무하는 위급 군관들에게 나누어 주라. 당장 실행해. 또 말하지만, 인민이 굶어 죽는데, 나만 잘 먹고 잘살 수는 없는 거야. 다들 알갔어?”
김정은으로의 변신놀이를 하듯 이렇게 언성을 높이자 식탁에 올라와 있던 진수성찬과 특각의 여러 가지 음식재료들은 모두 이곳을 경비하는 가장 말단인 호위사령부 위급 군관 그러니까 소위, 중위, 상위, 대위들에게 나누어졌다.
그러자 위급 군관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나를 칭송했는데, 진짜 눈물을 흘리면서 열광적으로 가끔 조선 중앙 TV에서 보던 것 같은 그런 장면도 연출되어서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일단 이렇게 작은 밑밥을 뿌렸으니 아침을 먹은 다음에는 그다음 단계의 밑밥을 뿌려야겠지. 그래야 나는 인민을 자식같이 사랑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가 되어서 인민들의 불만을 일시에 잠재우고, 권력 기반을 더 확고하게 다질 수 있다. 그러면 군부 일부가 쿠데타를 일으켜도 걱정이 없다. 왜냐하면, 인민들이 나를 지지할 것은 물론 호위사령부만 손아귀에 꼭 쥐고 있으면 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