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김정은-2화 (2/470)

〈 2화 〉 내가 김정은(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쏴본 적 없는 권총이었지만, 백두산 부대에서 현역으로 군 복무까지 하고, 군사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내게 권총 발사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김정은이 사격한 기억도 있었기에 더 쉬운 일이었다.

하여튼 그렇게 권총 탄환을 모조리 벽에 박아버려도 울화는 가라앉지 않았으나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그럴수록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일단 김정은으로 살아남아야지만, 다시 강백호로 돌아갈 어떤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도 죽어버리면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나고 말짱 도루묵이 된다. 그리고 나를 김정은으로 환생시킨 어떤 누군가에게 이 지랄 같은 현실로 엿을 먹이려면, 강백호가 김정은으로 환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살아남아야 가능하다. 그래, 일단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자. 살자.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러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총 맞아 뒈지거나 쿠데타로 정권을 잃어 뒈지거나 미군 폭격을 맞아 뒈지는 수가 있으니 조심조심하면서 분위기 파악부터 한 다음 내가 알던 그리고 지금 내 머릿속으로 강제로 이식된 김정은의 기억이 그대로라면, 차근차근 권력을 더 확고하게 틀어쥐어 무슨 일이 있어도 총 맞아 뒈지지는 말아야 한다.”

이렇게 자기합리화, 강백호가 죽어서 김정은으로 환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합리화한다고 한동안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나니 갑자기 아니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기회에 남북통일이나 시도해볼까. 남북통일, 남북통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했는데······. 아니야. 너무 성급하면 먹다가 체하는 수가 있으니 일단 분위기부터 파악해보자. 그리고 확신이 서면 그때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번 시도해보는 거지 뭐. 급진적인 통일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그래야 나도 살아남지. 아니면 독재자라고 거리로 끌러나가 총 맞아 죽는 수가 있으니까.”

김정은으로 환생한 시간이 출근 시간, 그리고 기어이 이런 생각을 한 시간은 점심때가 훨씬 지난 오후 5시경이었다.

그 시간까지 김영철은 물론이고 누구도 방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니 일단 호위사령부 부하들에게는 총 맞아 뒈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아까 내가 지랄발광을 할 때 보인 그의 눈빛에는 일체의 동요도 없었으며, 오직 경외와 충성 등의 그런 것만 보였으니 말이다.

‘급변사태니 붕괴니 남조선 아니 남한 아니 대한민국 강경파들이 아무리 그렇게 떠들어도 그 김영철의 눈빛만 봐서는 이 김정은이 권력을 그런대로 확실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 더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겠지. 하나 강경파는 어디나 있는 법이니 일단 조심조심하면서 때를 보고, 기회를 보면서 실태부터 정확하게 파악하자. 그리고 확실하게 권력이 김정은에게 있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는 내 마음대로 하는 거지. 뭐!’

이런 생각마저 하게 된 것은 시간이 좀 더 흐른 오후 6시경이었다.

무엇보다 강백호로 살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다음 김정은으로 다시 살아났으니 이제 다시는 죽지 말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소시민적인 자기 합리화(?)를 한다고, 그 모든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남북통일이라는 거대한 대의도 생각했고, 동생 수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꼬르륵꼬르륵!”

죽음 그리고 환생이라는 큰 사건을 겪었는데도 배꼽시계는 변함없이 울렸다.

이게 소시민적 삶인가.

아니면 죽지 말라고 몸이 신호를 주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이 몸뚱이의 저주인가.

“일단, 뭐 좀 먹자. 먹자. 그리고 살자. 살자. 그래야 이 빌어먹을 현실을 타개할 방법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고, 잘 적응해서 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한 다음 침대에서 일어나 김영철이 가져다 놓은 음식 중에서 사과부터 한입 베어 물자 달콤한 과즙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고작 사과 한입으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니 이게 현실 적응인가. 어떤 놈이 인간은 어떤 환경이든 적응할 수 있다더니 나도 그런가 보네. 참, 나. 강백호 정신 차려. 인마, 정신 차려야 해! 안 그럼 총 맞아 죽을 수도 있어!”

환생인지 뭔지 모를 이 저주스러운 현실에 울화가 치민 것도 몇 시간이 지나자 이렇게 자기 합리화가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 사과 하나를 다 먹어치웠다.

그러나 사과 하나로는 140kg은 넘을 것 같은 이 육체의 허기짐을 온전히 달랠 수는 없어서 김영철이 가져다 놓은 음식 중에서 이번에는 치즈를 집어 들었다.

“에멘탈 치즈!”

김정은이 이 에멘탈 치즈를 좋아해서 너무 많이 먹어 돼지 새끼가 되는데 일조했다는 바로 그 치즈였다.

그러나 나는 치즈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먹지를 않았기에 던져버리고, 다시 사과 하나를 더 먹고, 물을 마시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 이 현실을 받아들여 잘 처먹고 잘살아야 한다고 다시 자기합리화에 열중했다.

그래도 이 현실에 대한 울화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고, 빌어먹을 몸뚱이는 더 많은 음식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이 돼지 새끼!”

이렇게 나 자신에게 욕을 하면서 침대 머리맡에 놓인 가운을 입고, 방을 나가니 김영철이 얼른 다가와서는 이렇게 물었다.

“위원장 동지, 무슨 지시라도 있으십니까?”

“동무, 저녁이나 같이합시다.”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동무 것과 저 동무들 것도 준비하시오.”

거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위 병력 것까지 준비하라고 하자 김영철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고, 말도 존대였기 때문이다.

기실 김정은의 말투는 자기 마음대로였다.

기분이 나쁘면 아까 내가 한 것처럼 반말이나 욕이었고, 기분이 좋으면 평대, 기쁜 일이 있으면 가끔 존대도 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 이외에 식사를 같이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기분이 좋아 맞담배질은 허용해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식사는 같이하지 않았다.

단 술은 가끔 같이 마실 때가 있었다.

그런데 밥을 같이 먹자고 하니 김영철의 눈이 동그래진 것이다.

어떻든 그렇게 지시한 다음 내가 어지럽혀 놓은 방도 치우라고 하고는 한동안 기다리니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위원장 동지, 준비되었습니다.”

김영철의 말에 그를 따라서 식당으로 가니 거대하고 고급스러운 대리석 식탁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고, 큰 케이크도 하나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김정은 생일이었다.

내 생일도 오늘, 김정은 생일도 오늘, 내 제삿날도 오늘, 원판 김정은도 죽었다면 그 제삿날도 오늘, 이 빌어먹을 우연에 한바탕 큰소리로 웃은 다음 촛불을 끄고는 수저를 들려고 했다.

“위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 영도자이시자 국무위원회와 노동당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대의 최고 사령관이신 원수님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만수무강하십시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이런 낯간지러운 인사에 김영철 등을 한번 둘러보고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렇게 화답했다.

“그럴 테니까 다들 앉아. 그리고 어서 먹자우!”

그러나 김영철 등은 식탁에 앉기는 앉았지만, 수저는 들지 않았다.

그리고는 황송한 표정(?), 그런 것을 짓고 있기에 여기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라 북한 김씨 왕조는 왕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로 나는 고려나 조선의 왕이 아니라 북한 김씨 왕조의 왕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어쩌면 세종대왕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으로 말이다.

왜냐하면, 저들의 얼굴을 보아서 내가 뭔 짓을 해도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까.

“전하,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통촉하여 주십시오. 아니 되옵니다.”

이러면서 세종대왕의 조처에 반대한 신하들같이 반대하는 신하는 아무도 없을 것 같은 것 말이다.

하여 느긋하게 다시 수저를 들라고 권하고, 그들 뒤에 늘어서 있는 이곳의 요리사들과 요리장 김임순을 한번 쳐다본 다음에는 이렇게 말했다.

“김임순 동무는 이 밥 가져가서 반을 들어내라. 그리고 내일부터는 아예 이 밥그릇의 절반 이하만 담아. 또 저 치즈는 다시 식탁에 올리지 말고, 이 특각에 보관하고 있는 것까지 모두 밖에서 근무하는 위급 군관들에게 나누어 주라. 알간?”

“위원장 동지!”

“그렇게 해! 그리고 다른 특각에 있는 것도 모조리 다 위급 군관들에게 나누어 주고, 김영철 동지는 아예 저 치즈를 다시는 수입하지 말라고 통보해. 그 돈으로 인민들 회충약이나 쌀 사 먹이게 말이야.”

나를 호위하는 호위사령부 병력에는 병사가 없었고, 모두가 장교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위급 군관은 가장 하급자들로서 이 추위에도 밖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하여 그들에게 에멘탈 치즈를 나누어주라고 하자 모두가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누구 하나‘통촉하여 주십시오. 아니 되옵니다.’외치는 이가 없었으니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어떻든 그런 우여곡절 끝에 이 북한에서 첫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벌러덩 누워 또 자기합리화와 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나는 이제 강백호가 아니라 김정은이다. 내가 김정은이다. 김정은이다. 그러니 김정은으로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김정은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 이 현실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온갖 생각을 하다가 잠을 청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몇 잔 마셔도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고뇌와 번민으로 밤을 보내다가 아침을 맞았고, 그렇게 다시 식탁에 앉았다.

“김임순 동무, 이 밥도 너무 많으니 더 줄이라. 그리고 앞으로 식단도 고단백 저열량 위주로 잘 좀 짜봐. 이거 살이 너무 쪄서 불편하기 그지없으니까 말이야.”

금 식기에 담긴 밥은 여전히 머슴 밥 같이 많아 이렇게 말하고는 식단도 다시 짜라고 하니 또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나도 어젯밤 내내 배가 고팠다.

140kg은 나갈 것 같은 이 몸뚱이가 어제 먹은 저녁만으로는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돼지처럼 처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일단 살려면 아니 건강하게 살려면 첫째도 둘째도 살을 빼야 했다.

또 담배와 술도 끊어야 했다.

그러나 다행으로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술도 회식이나 모임이 아니면 잘 마시지 않았기에 그건 쉬운 일이었으나 역시 이 돼지 같은 몸이 끊임없이 음식을 요구하니 그것이 문제였다.

“알겠습니다. 위원장 동지.”

“좋아. 그럼 다들 먹자우!”

그렇게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김영철과 마주 앉아 차를 한잔 마시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래 당분간 여기 있을 테니까 귀찮은 일이 없도록 동지가 잘 처리하라. 그리고 지하 창고에 있는 술도 모두 꺼내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라. 또 치즈와 더불어서 내가 마시는 술 수입도 모두 금지해 버려. 알겠소?”

“위원장 동지.”

“그대로 실행하고, 그 돈으로 어제 말한 회충약이나 쌀을 사서 인민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지시하시오.”

“인민을 이렇게 생각하시는 위원장 동지를 둔 인민들은 만대에 걸쳐······.”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김영철이 차마 듣기 거북한 칭송을 늘어놓기에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린 다음 거실을 나가니 찬바람이 귀를 때렸다.

그리고 보니 여기는 내가 살던 춘천보다 더 추운 평양이었으나 공기는 춘천보다 훨씬 깨끗해서 그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 찬바람을 맞으면서 평양 북쪽 자모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이 특각, 정확하게 말하면 자모산 특각에 붙여서 작년 2018년에 새로 건축한 신 자모산 특각 정원을 거닐었다.

원래 자모산 특각 지하에는 집무실과 최고 사령부 지하 벙커가 있어서 미군의 벙커버스터는 물론 핵 공격에도 견딜 수 있었고, 지하 통로를 통해서는 순안비행장은 물론 평양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어떻든 그 자모산 특각에 붙여서 새로 지은 이 신 자모산 특각에서 나는 그렇게 김정은으로 환생해서 죽지 않고 하루를 살아냈으며, 내 권력이 조금은 확고하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희미한 미소를 연신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