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6)

 걱정은 기우였다.

 미친 듯이 불안해 한 것과 달리 누나가 나를 대하는 방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누나의 생활패턴과 나의 생활패턴이 달랐기에 마주치는 일도 별로 없었지만. 가끔 마주친다 해도 딱히 누나의 표정이나 태도에서 예전과 다른 부분이 보이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와 나를 연결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따. 남편과 동생의 관계를 빼고서라도 남자와 남자를 그런 식으로 단숨에 연관 짓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의 목에 남긴 흔적을 발견 했을 때 누나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누나가 그 후로 가타부타 말이 없었기에 애써 지워버렸다. 어쩌면 누나는 아무 관심도 없는데 나만 괜히 과민하게 반응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나와 단지 게약 관계일 뿐 그 외엔 아무 것도 나는 적이 없다는 그의 말을 믿었다. 그리고 믿고 싶었다. 무슨 계약인지. 어째서 혼인 신고서가 계약서가 되어야 하는지는 궁금했다. 하지만 굳이 묻지 않은 것은 둘 중 누구도 내 질문에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아서 이기도 했고 또 그보다는 그와 누나 사이에 어떠한 감정도 오고가지 않는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누나의 반응에 안도했음에도 나는 한동안 관계를 맺을 때마다 극도로 불안해했다. 삽입을 거부하고 신음을 억눌렀으며 쾌감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해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 난폭해졌다. 그는 거부하는 걸 참지 못했고 누나에게 관계를 들키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를 이해하지도 달래주지도 않았따. 오히려 굳이 자신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순전히 내게 맞춰주기 위함일 뿐이라며 비밀로 만들고 싶다면 거슬리게 하지 말고 경고했다.

 차라리 집을 나가고 싶었다. 좁아도 상관없으니 누나와 상관없는 공간에서 생활하고 싶었다. 그러면 차라리 불안감은 덜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나 어머니가 그것을 허락해 줄 리가 없다는 걸 아기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서울에 올라와 생활 한지 2개월. 그와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고 깊어지기만 했다. 그리고 누나가 모르는 한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도 나도 아직 서로 끊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끝은 예상치 못한 형태로 찾아왔다.

 "말도 안 돼...."

 모니터를 보며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찾아도 같은 내용의 반복. 달라지지 않는 사실에 머리가 멍해졌다. 부정하래야 할 수가 없으리만치 모든 글들이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두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정말인가? 정말... 정말 누나가 임신한 건가? 믿을 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가 않았다.

 경기를 일으키듯 벌떡 일어나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내가 잘못 본 것이길 바라면서 세면대 위에 있던 임신테스트기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나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두 줄이었다. 심지어 흐릿한 것도 아니라 선명하게 두 줄을 나타내고 있었다. 몇 번을 다시 확인해 봐도... 똑같았다. 한참동안 그것을 노려보다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발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궁금해도 찾아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해봐야 하등 소용없는 후회를 하며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여러 가지가 뒤섞여 따로 구분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심장을 터트릴 것처럼 압박해왔다. 머리가 찌를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방으로 돌아가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사놓은 두통약을 찾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서랍을 뒤집어엎었따. 그러나 두통약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났다. 그래서 책상 위를 신경질적으로 쓸어내렸다. 스텐드가 휘청거리며 바닥에 떨어졌고 그대로 박살이 났다. 그 소리에 놀란 아줌마가 방에 들어와 소리쳤다. 

 "이게 무슨 소리야?! ...세상에! 방 꼴이 왜 이래?"

 내가 광폭을 떨어댄 흔적을 발견하고 기가 막혀 하시는 아줌마를 멍하니 쳐다보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아줌마... 두통약 좀 찾아주세요."

 머리가 아프다. 깨질 것처럼.

 약을 먹고 잠만 잤다. 저녁도 거르고 씻지도 않고 계속 침대에 누워 잠만 잤다.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발악이었다. 그러나 잠은 그리 좋은 도피처가 아니었다. 가위에 눌려 자다가 깨기를 계속 반복했고, 힘겹게 잠이 들었다 싶으면 악몽이 찾아왔다.

 결국 잠조차도 나를 괴롭히자 다른 방법을 찾았다. 침대에 앉아 스케치북을 펼쳐 무작정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움직였다. 그렇지만 얼마안가 내가 그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깨닫고 스케치북을 던져버렸다. 다시 불을 끄고 누웠다.

 째깍 째깍 시계 돌아가는 소리에 집중하며 자꾸만 떠오르려는 생각을 떨쳐냈다. 다만 머리는 억지로 비울 수 있어도 속은 아니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갈수록 체한 것 마냥 답답해졌고 정신차려보면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 형체모를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둠. 그리고 시계 초침 소리만이 전부인 공간에 끼익ㅡ 익숙한 소리가 끼어들었다. 굳이 확인해 볼 필요도 없이 그였다.

 나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감은 눈도 뜨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그와 아무것도 섞고 싶지 않았다. 말도, 시선도, 몸도, 모두 다.

 그가 침대에 앉아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러나 그 손이 얼굴을 타고 내려와 입술에 닿았을 땐 참지 못하고 머리를 흔들어 그의 손을 떨쳐내 버렸다. 그의 손이 순간 멈칫 했다. 눈치 빠른 사람이니 내 행동에서 거부감을 읽어 내리는 건 쉬울 것이다.

 "왜 이래?"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그가 내게 물었다. 대답을 요구하는 그에게 반항하듯 고집스레 입술을 사리물었다. 그에게서 등 돌리고 있기에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목소리만큼이나 표정도 차갑게 굳어 있을 것이다.

 그가 어깨를 잡아 똑바로 눕힌 뒤 다시 물었다.

 "왜 이러냐고 물었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마치 작살처럼 무섭게 파고드는 시선을 피했다. 그는 용납하지 않았다. 으스러질 듯이 턱을 붙잡아 억지로 마주보게 고정시킨 뒤 화를 억지로 눌러 담은 목소리로 또 물었다.

 "마지막이야. 말 해. 무슨 일이야."

 금방이라도 분노가 폭발할 것처럼 목소리도, 어조도, 표정도, 분위기도, 그의 모든 것이 아슬아슬했다. 이 이상은 위험하다 직감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다. 이것은 단지 오기일 뿐이다. 숨기지도 밝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닌 척 거짓말도 하지 않는 이 태도가 오기가 아니면 뭐겠는가.

 그는 고집스럽게 다문 내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관대한 척은 얼마가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던 그가 입매를 비틀어 차가운 미소를 만들어낸다.

 "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좋아. 그럼."

 그가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 빼 바닥에 던졌다. 그 행동 하나로 하여금 지금부터 그가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깨달았다. 그가 순식간에 내 위에 올라탔다.

 "알고 싶은 사람이 직접 알아낼 수밖에."

 어떻게든 뱉어내게 만들겠다고 경고하며 그가 찢어발기듯 셔츠를 끌어 올려 가슴을 움겨쥐었다. 그 때 아픔과 동시에 거부감이 급격히 치솟았다.

 "싫어! 하지마..! 하지마요!"

 최대한 소리를 죽이려 했지만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몸을 뒤틀며 발버둥을 치자 그의 인상이 눈에 띄게 구겨졌다. 그간 몸을 섞으면서 이렇게까지 거부감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그의 동작이 멈춘 사이 상체를 최대한 앞으로 비틀며 웅크렸다.

 "싫어요... 하기 싫어요. 싫다구요..."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었다. 정말 싫었다. 그만큼 거부는 단호했다.

 그는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없이... 이대로 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그가 이대로 나를 두고 나가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순적이지만, 내 속내가 그랬다.

 갑자기 그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마치 아이를 달래주는 듯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그 손길이 반복될수록 안도감과 함께 서러움도 복받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이 찰나의 순간 날카로운 흉기로 돌변했다.

 "아!"

 그가 거칠게 내 뒷 머리채를 잡아 채 고개를 젖히게 만들었다. 느른한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귓속을 파고들었다.

 "네가 아직 나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나는 싫다는 사람 붙잡고 억지로 하는 취미는 없지만, 그보다는 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는 쪽을 더 싫어해. 취미가 아닐뿐이지 못한다는 건 아니거든. 그런데도 계속 이딴 식으로 나올 건가?"

 몸을 벌벌 떨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강간을 얘기하는 그가 무서웠다.

 "이 이상 성질 건드리지 말고 말해. 더 안 물어 봐. 지금 말해."

 그는 정말이지 지독했따. 지독하게 차갑고 잔인했다. 태연하게 숨통을 조이며 끝내 원하는 바를 끄집어내려는 그를 달리 이 외에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다만 그럼에도 나는 침묵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내가 해도 될 말인지 몰라서. 그리고...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 몰라서

 내가 쉽사리 대답 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협박이 말로만 그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막상 그가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어 성기를 움켜쥐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발버둥치는 나를 간단히 제압하며 그는 바지를 벗겨냈다. 손가락이 예고 없이 비부를 뚫었다. 그러자 물기 하나 없는 내부가 고통을 호소했다. 손가락은 한부 번 난폭하게 안을 뚫고는 금세 빠져나가버린다. 흥분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가 발기한 성기를 꺼내 입구에 가져다댔고, 그에 소스라치게 놀라 저도 모르게 벌컥 소리쳤다.

 "시, 싫어! 하지마요! 안...! 흐윽!!!"

 귀두가 억지로 구멍을 벌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아팠다. 너무너무 아팠다. 준비 없이 성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빨이 딱딱 부딪힐 정도로 떨어대며 그의 팔으 붙잡았다. 눈물이 후두둑 쏟아지면서 러움도 함께 밖으로 넘쳐흘렀다.

 "...흐윽. 왜. 왜... 시, 싫다고... 싫단 말이야...! ...거짓말쟁이. 이 거짓말쟁이!"

 서러움이 흘러나오니 진심역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에 나를 무시하고 성기를 계속 집어넣던 그가 돌연 행동을 멈췄다. 그렇다고 해서 아픔까지 멈춘 것은 아니었기에 숨을 헐떡거리며 그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나한테 거짓말 했어! 아.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으면....서!"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설명해."

 "모르는 척. 흐으.. 하지. 마..!"

 "몰라. 그러니까 무슨 소리인지 설명해."

 "누나랑 잤잖아!"

 머리를 거치지 않고 속에서부터 바로 튀어나온 그 말에 나는 깨달았다. 그래. 이거였따. 나를 줄곧 답답하게 했던 것. 그에게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게 했던 것. 그에게 누끼는 거부감의 이유. 그것은 어느새 죄책감마저 살켜버린 질투였다.

 "아무 일도 없었. 다고 했으면서! 계약이라고 했으면서! 누나랑 잤어...! 잤어! 나한테 거짓말 했어! 그러니까 안 해. 이제 안 할 거야!"

 무작정 그의 팔과 가슴에 주먹을 휘두르고 몸부림을 쳐댔다. 그러자 그가 내 팔을 붙잡아 매트리스에 고정시켜 나를 제압했따. 내가 이를 악물며 틀어박힌 성기를 빼내려 허리를 뒤틀었을 땐 보란 듯이 더 깊이 처박았다.

 "하읏!! 시. 싫..."

 "기다려. 지금 어디서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지 정리가 필요하니까."

 정리? 무슨 정리. 그런 건 필요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내가 몇 번을 다시 확인해도 사라지지 않던 그 두 줄처럼.

 "말도 안 되는 헛로리를 지껄이니 화는 나는데. 성질부린다고 건방지게 반말 해대는 건 재밌어. 도대체가 어느 쪽으로 반응 해줘야 할지 헷갈리는군."

 "...으. 아...파...!"

 "뭐. 좋아. 그냥 순서대로 짚어주지. 도대체 왜 그딴 헛소리를 지껄이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그 여자 앞에서 단 한 번도 세워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마. 갖다 붙이지도 마."

 "...거짓...말!"

 "아니야."

 "...거짓말이잖..."

 "아니라고 했어."

 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누나와의 고나계를 부정했다. 그렇지만 믿을 수 없었다. 믿기엔 너무나도 확실한 증거를 내 눈으로 봐버렸으니까. 나는 그를 노려보며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가라앉힌 뒤, 내가 발견한 증거를 내밀었다.

 "임신 했어요."

 소리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웅얼거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가 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건지 눈썹을 찌푸리기에 다시 한 번 말했다.

 "임신 했어요... 누나가. 누나가 임신 했다구요."

 이 말을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따. 그 사실이 내게 죄책감이 아닌 질투를 불러낼 줄도 몰랐다. 그에게 이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원망을 쏟아낼 줄도 몰랐다.

 그는 내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변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짓말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금세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표정에 불쾌감이 섞여들었다.

 "그게 다인가?"

 "...네?"

 "그게 다냐고 물었어."

 그의 질문에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벌린 입술 사이로 하ㅡ 하고 웃음도 울음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게 다냐니... 못 들었어요? 누나가..."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그 여자가 밖에서 누구와 붙어먹든 상관 안 한다고. 그런 사이라고. 그러니 그 뱃속에 누구 씨가 들어있든 관심 없어. 상관도 없어. 이만하면 답이 되냐?"

 ".....네?"

 얼핏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그 이상 설명해 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가 혼란스러워 하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 이내 피식 웃었다. 불쾌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려 이용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것 같았다.

 그가 내 볼을 손등으로 쑬어내리며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질투하는 건 좋지만..."

 "!"

 "쓸데없는 오해는 사양하지. 불쾌하니까."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가 허리를 크게 움직여 성기를 끝까지 처박았다.

 그는 집요했고 다른 날 보다 강제적이었다. 아까 거부한 것에 대해 보복이라고 하듯 말이다. 견디기 힘든 감각에 그만 이라던가 싫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는 더 무섭게 몰아붙였다. 그 반응에 차라리 그의 입술을 물어뜯는 것을 선택했다.

 한 번의 사정으로 젖은 안을 그는 오나전히 가지고 놀았다.

 철퍽철퍽 소리를 내며 성기가 치고 들어 올 때마다 하얀 점액질이 엉겨 붙은 고환도 엉덩이에 찐득하게 달라붙어 소리를 냈다. 귀두 끝까지 잡아 빼고 다시 안을 끝까지 쑤셔대는 것을 반복하다 사정이 몰려오면 그는 아예 깊이 박은 채로 허리만 얕게 움직였다.

 힘이 빠져 허리를 감고 있던 다리가 힘없이 풀어졌다. 그러자 그는아예 자신의 어깨 위로 다리를 걸치게 만들더니 몸을 일으켰다. 불안하게 꺽인 자세로 위에서 부터 아래로 내리 박는 그의 성기를 받아들였다. 귀두는 전립선을 정확히 가격했고, 그 때마다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느라 입술은 너덜너덜해졌다.

 "흐윽... 아, 너무 깊....어!"

 처음 겪는 체위에 따라가질 못하고 울었다.

 "반말에 맛 들렸군."

 웃음기 어린 목소리는 내 반말을 타박하는 것이 아니라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사정감은 얼마안가 다시 찾아왔다. 내가 먼저 사정했고 그 뒤에 그가 내 안에 또 한 번 정액을 뱉어냈다.

 그는 잠깐의 여유도 주지 않고 내 몸을 뒤집었다. 그의 것을 품은 채로 뒤집혀 지자 성기를 집어 문 내벽이 기묘하게 비틀리며 그의 것을 콱 물었다. 그 자극에 낮게 신음하며 그가 다시 뒤에서부터 찔러왔다. 처음에는 팔꿈치로 상체를 받친 채 그를 받았지만, 곧 힘이 빠져 상체가 무너졌고 결국 엉덩이만 추켜 올린 자세로 그의 성기를 받아들였다.

 "아, 아ㅡ! 으응...!"

 느슨해진 내벽은 이제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성기가 들어오는 것을 기뿌개 받아들이기만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와 하체를 붙인 채 짐승처럼 교미에만 몰두했다. 날카롭게 곤두섰던 거부는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이질적인 소리 하나가 고막을 건드렸다. 작지만 분명 끼이익ㅡ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

 방문소리였다.

 인지한 순간 온몸이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어버렸고 그에 따라 그의 성기를 물고 있는 내벽도 잔뜩 수축했다. 그가 훗, 하고 신음하며 몸을 떨었다. 온 신경이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됐다. 느릿하게 슬리퍼를 끄는 소리마저 귀에 천둥처럼 들렸다. 소리가 멈췄다 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했고 멀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정상적인 판단이 되질 않았다. 그 역시 인기척을 느낀 모양인지 방문 쪽을 곁눈질 했다.

 숨조차 쉬지 않고 예민하게 기척을 살폈다. 그 기척이 아예 사라지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혹시라도 발걸음 소리가 가가워지는 것 같으면 심장이 조여들었다. 방문은 잠기지 않았고, 문을 열면 침대는 바로 보이는 구조였다. 숨을 곳도 없었다. 한 번쯤은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라 상상을 해본 적은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아무 생각도 나질 않고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그저 숨을 죽이는 것 밖에는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초조해하고 있는데 돌연 그가 허리를 움직여 안을 쿡 찔러왔다. 놀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다급히 뒤를 돌아보자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다시 한 번 허리를 크게 움직였다.

 "흡ㅡ!"

 나머지 한손을 더해 두 손으로 힘껏 입을 틀어막고 미친 듯이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러나 그는 멈추질 않았다.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추삽질을 계속해댔다. 그는 언제나 누나에게 들키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곤 했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관계를 감추려 하는 것엔 맞춰주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로 들키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크게 움직여 일부러 소리를 내고 있었다. 끼익ㅡ 끼익ㅡ 인식조차 하지 않았던 매트리스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가슴도 쿵ㅡ 소리를 내며 가라앉는 듯 했다.

 나는 계속 신음을 죽이며 고개를 저었고, 그는 계속 허리를 움직이며 소리르 만들어냈다.

 어느 순간 발소리가 뚝 끊겼다. 방문 소리가 나지 않았으니 아직 누나는 밖에 있을 터였다. 제발...제발... 속으로 무작정 빌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짧은지 긴지 조차 가늠이 안 되는 텀이 흐르고 다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얼마안가 끼익ㅡ 탕ㅡ 하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다. 그제야 비로소 숨이 쉬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낮은 목소리로 의미심상한 말을 던졌다.

 "이걸로 증명됐군.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

 "...네?"

 "그 여자가 밖에서 누구랑 붙어먹든 상고나하지 않는다고 말했지. 그건 그 여자도 마찬가지거든."

 "....."

 "윤수우. 잘 모르나본데 네 누나는..."

 그가 상체를 숙여 내 귓가에 입술을 대고 느릿하게 속삭였다.

 "눈치가 제법 빠른 편이야."

 며칠 동안 내가 한 것이라곤 오로지 누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뿐이었다. 누나와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던 전과는 달리 이제는 나나와 억지로라도 마주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알고 싶었다. 누나가 정말 눈치를 챘는지 아니면 그가 지레짐작 한 것일 뿐인지... 사실 그것보다는 누나가 아직 눈치 채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고, 그것을 확인받고 싶은 쪽이 더 맞을 것이다.

 그는 누나가 알게 된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아무리 서류상일 뿐이더라도 누나와 나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으니까... 새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렵게 만든 울타리를 깨버릴 자신도 자격도 내게는 없었다. 물론 누나는 처음부터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지만 말이다.

 사실은 그랬다. 누나가 알게 된다는 것 자체보다도 누나가 알게 됨으로써 가족으로 이어진 모든 관계가 무너질 수 있음이 더 무서웠다.

 누나가 과연 알게 되었을 때 어머니에게 이 엄청난 사실을 함구할 것인지에 대해 나는 자신이 없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집을 나가 서울로 올라와 버린 누나였지만, 그래도 어머니와는 연락을 자주하고 살았다는 것을 안다. 우리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 했던 것은 치부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가 가진 것이 없어 어머니를 고생시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티를 내지 않아도 그만큼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어머니에게 나는 품어줘야 할 남의 자식일 뿐이다. 그게 어머니와 나 사이에 아직까지 벽이 존재하는 이유고, 내가 '엄마'라는 호칭보다 '어머니'라는 호칭을 선택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그러니 어머니는 나의 모든 것을 감싸주지는 못할 것이다. 어머니가 나를 감싸 주지 못하게 되면 아버지와의 관계에도 금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만든 그 금은 결국 두 분이 그토록 원했던 가족이라는 관계를 무너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한번의 실패로 생긴 두 분의 상처를 내가 다시금 후벼 파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를 궁지로 물아넣고 있는 것은 그거였다. 나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내가 책임질 방도가 없다는 것... 이 최악의 결말을 상상하면서도 나쁜 짓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

 누나에게 들키는 것이 그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누나는.. 제발 누나는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 그 이기적인 내 바람이 끝이 났다.

 "언제 내려갈 생각이니."

 갑자기 아줌마에게 장 좀 보고 오라고 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따. 마치 그 소리가 자리를 피해달라는 것처럼 들렀기 때문이다. 아줌마가 나간 뒤 한참 후에야 비로소 누나가 입을 열었을 때 나는 그것이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네?"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내게 누나가 지독히도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내가 언제까지 내 남편과 놀아나는 널 봐줘야 되는지 묻고 있어."

 "챙ㅡ!

 떨어진 포크. 그리고 부딪히며 생긴 날카로운 소리. 그 두 가지만으로도 내 심경을 나타내는데 충분했다.

 "어. 어떻...게."

 "어떻게 모를 거라 생각할 수 있니. 알 수밖에 없게 해놓고, 모르길 바란 사람치곤 소리가 너무 크지 않았니?"

 "!!!"

 몇 번 위험다고 생각 한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괜찮은 줄 알았다. 왜냐면 단 한 번도 누나에 의해 방문이 열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나가 만약 소리를 들었다면 모르는 척 할 리가 없다. 그리니까 됀찮을 거다. 누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 했을 거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그렇게 달랬다. 그랬는데...

 "너와 마주 앉아 이딴 추잡스러 얘기 하는 게 싫어서 나름대로 눈치를 줬는데도 넌 계속 버티고 있더라. 뻔뻔한 건지 멍청한 건지 헷갈렸는데 이제 알겠어. 그 둘다라는 걸."

 "눈치를...줬다구요?"

 이해가 안 됐다. 언제? 누나가 언제 내게 눈치를 줬지. 누나는 언제나 똑같았다. 뭔가 다른 게 있었다면 지금껏 누나의 표정. 행동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축각을 곤두세우던 내가 눈치 채지 못 했을 리가 없다.

 혼란스러워 하는 내게 누나는 선선히 답을 내어줬다.

 "봤잖아. 화장실에 잇던 임신테스트기."

 "!"

 "누가 보란 듯이 그걸 놔뒀겠니."

 그러니까... 누나가 일부러 놔뒀다는 건가. 나한테 보라고?

 ...그래. 왜 생각을 못 했을까. 누나가 그 화장실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적당히 놀다 질리면 알아서 떨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버텼는데 더는 역겨워서 안 되겠어. 봐 줄 수가 없어. 봐주면 안 되는 이유도 생겼고. 그러니까 당장 짐싸서 내려가."

 누나가 내게 가차 없이 철퇴를 내리며 느긋하게 잔을 들어올린다. 매를 맞은 나는 정신을 못 차렸다.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 머릿속은 새하얘지다 못해 텅 비어버렸다.

 다 알고 있으니 꺼지라고 누나는 내게 말했고, 그러니 나는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어머니에겐 제발 비밀로 해달라며, 다신 안 그러겠다며, 실수였다며 그렇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비밀로 해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할 수도, 다시 안 그러겠다는 약속도, 실수라는 거짓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모순과 거짓으로 점철된 말 뿐인 사과를 할 수는 없었따. 그래서 차라리 입을 다물었다.

 커피를 다 마신 뒤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스쳐지나가는 누나의 뒤에 대고 물었따.

 "말...했어요?"

 부모님에게. 그리고 그에게.

 "아직. 하지만 곧 알게 될지도 모르지."

 누나는 싸늘한 대답을 남기고 부엌을 나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무거운 정적에 홀로 휩싸여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했다. 불현듯 저도 모르게 입이 움직였다.

 "누나... 뱃속에 있는 애. 그 사람 애 아니죠?"

 그 사람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죠? ....사랑하는 거 아니죠?

 .........사실은 정말로 묻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해 속으로 삼킨 말들을 멍청하게 되뇌다 이내 웃으며 자조했다.

 "미친..."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게 정상은 아니지.

 누나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나쁜 짓을 끝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여기서 나가야한다. 그러면 그와는 끝이다. 이제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볼 수 가 없다.

 그와 나는... 그런 사이인 것이다.

0